041. 학문•철학/골품제

6세기 신라의 법흥왕은 골품제를 공식화한다. 골품제는 골족과 두품층으로 구성된 신분제도인데, 왕족인 성골 귀족인 진골 골족이고 그 밑에 6두품부터 1두품까지 하급 귀족들이 있었다. 다시 그 밑에는 평민과 천민이 있었으니 매우 복잡한신분 제도인 셈이다. 신라가 진한 소국 중에 하나로 성장했고, 주변국을 복속하면서 나라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러한 신분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신라는 끝내 골품제의 틀을 깨지 못했다. 혜공왕이 암살당하면서 무열왕계 진골 혈통이 몰락했고 이때부터 진골귀족들의 치열한 왕위 경쟁이 전개된다. 대공의 난, 96각간의 난, 김헌창의난 등 혼란기가 이어지면서 신라는 지방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고 경주 일대로 세력권이 줄어들면서 후삼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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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 문화/고사관수도
종이 바탕에 수묵. 세로 23.4㎝, 가로 1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의 왼편 가장자리 상단부에 ‘仁齋(인재)’라는 그의 호를 새긴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다.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인 강희안(1417년~1464년)이 그린 문인화. 강희안은 세종 때 관료가 돼 세조 때까지 활동했다. 집현전에서는 <용비어천가》, 《동국정운> 등의 편찬에 참여했고, 《양화소록》이라는 원예서를 쓰기도 했다.
그가 그린 <고사관수도>는 명나라의 절파화풍에 영향을 받았다. 깎아지르는 절벽이나 흐드러진나무를 주변에 배치하는 것, 먹으로 강렬하게 묘사하는 방식, 중앙에 인물을 배치하는 형태가 명나라 화풍이기 때문이다. 깊은 생각에 빠진 선비의 모습이 그윽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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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유적•유물/불상

불상이 제작되는 배경에는 대승불교의 영향도 크다. 초기 불교는 수행자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불교가 널리 퍼져나가고, 민간에 보급됨에 따라 일반 민중들이 믿고 숭배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면서 불상을 제작하는 문화가 각별히 발전했다.
불상 조각은 인도를 넘어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문화로 발전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역시 불교를 수용하면서 다양한 불상을 제작한다. 현재 고구려의 불상은 흔치 않은데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이 대표적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금동으로 만든 서 있는 부처님의 형상인데 예술성이 뛰어나다. 백제와 신라의 불상은 석상이나 벽에 새긴 부조 형태의 불상이 많이 남아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입상‘, ‘배리 석조삼존불상‘ 등이 그것이다. 삼국 시대 불상 예술의 극치는 단연코 ‘반가사유상‘이다. 오른쪽 다리를 꼬고, 한 손을 얼굴에 댄 채 사색하는 모습으로 금동이나 돌, 나무로 다양하게 제작됐다. 현재 일본의 국보 1호 역시 고류지 목조 반가사유상인데 삼국과 일본 간의 문화 교류를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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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 장소/독도
한번 대한민국 땅은 영원히 대한민국 땅인 것을.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우산도‘, ‘삼봉도‘, ‘지도‘, ‘자산도‘ 등으로 불렀다. 경상도 방언으로 ‘독섬‘이란 돌을 말하는데, 독도라는 이름이 이것에서 기원했다고 본다.
"조선 시대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가 바뀌어 그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실측이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에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인식됐기 때문에 나타난 오류다. 조선 시대에는 오랫동안 섬을 비워두는 공도 정책을 실시했다. 15세기초부터 1883년까지 왜구 침입 문제 때문에 실시한 것인데 이것이 의도치 않게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빌미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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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보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이들은 합리성보다는 감정을 앞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들의 선택은 결코 비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해 심오한 무언가를 알려 준다.

오히려 ‘내가 정말로 추구하는 것’이 뭔지 알아내기 위해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내 마음이 어느 쪽에 있는지 알아보라는 것이다.

다윈은 자신의 직감을 따르고 데이터는 무시하기로 한 것 같았다. 데이터라고 해 봐야 어차피 불완전할 테니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사후에 앞뒤를 연결해서 인과 관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 낸 이야기를 자신에게, 또 남들에게 들려주며 내가 저지른 일 혹은 계획하는 일을 정당화한다.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여러 선택 중 고통에 비해 쾌락을 가장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어느 것인지 살펴보라. 벤담은 어떤 행동이나 정책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해로운 점 이상의 좋은 점을 표현하는 말로 효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의사 결정에 직면하면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내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하려면 해당 선택으로 인해 앞으로 내가 어떤 느낌이 들게 될지 알고 싶을 것이다. 비단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까지 말이다.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것은 삶을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피하는 게 아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진실성, 미덕, 목적, 의미, 존엄성, 자율성을 가지고 행동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은 그저 미래의 비용과 혜택만 줄줄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이 선택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며, 결과가 좋을 때는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힘들게 내 선택을 직시하는 것도 삶의 일부다. 답이 없는 문제의 경우에는 인간으로서의 성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말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게 낫다.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게 낫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사느냐가 내가 뭘 경험하느냐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길버트의 결론은 두 개의 관점이 각각 서로를 개의치 않기 때문에(뱀파이어 문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유형별로 각 경험에 동일한 가중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길버트는 돼지의 만족이든 철학자의 불만족이든, 어느 쪽이 되었든 지속 시간이 긴 경험이 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돼지의 만족이나 철학자의 불만족이 얼마나 지속되느냐 하는 점이다. 만약 돼지로 있는 시간이 철학자로서 고뇌하는 시간보다 길다면 당신은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루하루의 쾌락과 고통의 합계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성취 뒤에 올 기쁨보다 고통의 지속 기간이 더 길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고통은 기쁘게 감내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 내가 참고 견뎠던 고통, 특히 가슴을 찢어 놓았던 고통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아픔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더 풍요롭고 충만하게 바꾸어 놓는다. 나이가 들면, 그냥 달기만 한 초콜릿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더 좋아하게 된다.

내가 좁은 의미의 공리주의라고 부르는 것과 인간으로서의 성장은 비용 - 혜택 목록 안에 한데 묶기보다는 따로따로 생각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당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와 관련해 둘의 상대적 매력을 따져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적 성장의 역할이 절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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