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학문•철학/골품제

6세기 신라의 법흥왕은 골품제를 공식화한다. 골품제는 골족과 두품층으로 구성된 신분제도인데, 왕족인 성골 귀족인 진골 골족이고 그 밑에 6두품부터 1두품까지 하급 귀족들이 있었다. 다시 그 밑에는 평민과 천민이 있었으니 매우 복잡한신분 제도인 셈이다. 신라가 진한 소국 중에 하나로 성장했고, 주변국을 복속하면서 나라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러한 신분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신라는 끝내 골품제의 틀을 깨지 못했다. 혜공왕이 암살당하면서 무열왕계 진골 혈통이 몰락했고 이때부터 진골귀족들의 치열한 왕위 경쟁이 전개된다. 대공의 난, 96각간의 난, 김헌창의난 등 혼란기가 이어지면서 신라는 지방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고 경주 일대로 세력권이 줄어들면서 후삼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