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유적•유물/조선왕조실록

한국의 대표적인 기록 문화유산으로,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연도와 일자순으로 정리했다. 총 1,893 권 888 책으로 이루어졌다. 고종과 순종의 실록도 존재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실록으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고종과 순종의 실록을 빼고 《조선왕조실록》이라 부른다.

실록은 단순 사실만 기록한 문서는 아니다. 사실을 기록하되 사관의 의견을 별도로 남겼다. 사실과 견해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록이 이상적인 문서라고 할 수는 없다. 국왕이 쫓겨나거나, 특정 인물이 역모에 몰려 죽거나, 반정이 일어나서 정권이 바뀌는 가운데 수정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기록되기도한다.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왕조실록‘이라는 서술 형식 자체다. 국왕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서술되고 고위 관료 중심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여전히 조선 시대를 이해할 때는 국왕, 고위 관료, 지배층 그리고 정치사 중심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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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교에 있을 때 느낀 것 중 하나가 본인이 속한 집단 안으로 시야를 좁히면 쉽게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세요.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주목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고등학교가 대학입시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스스로가 못났다며 자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에게는 학교가 세상의 전부니까, 거기서 빛을 보지 못하면 영영 패배자가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죠.
하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습니까? 야구 경기에서 한 이닝이 종료하면 다음 회가 시작하듯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매번 게임은 다시 시작됩니다. 사회에서는 학교와 다른 기준이 적용되죠. 혼자 똑똑한 사람보다는 소통을 잘하고 협력을 잘하는 사람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고 성과를 내지요. 저 역시 제자들을 통해서 그런 경우를 참 많이 보았습니다.
비단 학생들만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직장인도 조직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삶의 전부라고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말이죠.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에 부딪힌다면 642년의 신라를 떠올려봅시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결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예요. 가장 먼저 비전을 세워야겠죠? 위기를 극복하는 것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지 그 목표를 정해보는 겁니다. 선덕여왕이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듯이 말이죠. 어쩌면 지금이 혁신의 적기일지 모릅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나와 내 주위를 바라보고, 새로운 첫걸음을 떼야 하는 때가 온 것이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우리가 써 내려가는 인생 드라마에 최고의 반전이 되어줄 것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사방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제국이 한순간에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요. 역사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물론이고 순항하고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지금 정말 괜찮은가?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 잘못된 건 없을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자꾸 물어봐야 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면 그저 관성에 따라 선택하고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역사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있어요.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현재를 점검하지 않으면 잉카의 마지막 황제나 연개소문과 같은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창조나 창의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꾸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열광하지 않으면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소수를 위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술은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창조인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한 창조만이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바꿔나갈 테니까요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협상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거래를 할 때, 업무를 정할 때, 연봉을 높일 때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협상을 합니다. 심지어 연애를 하고 친구를 사귀면서도 협상이 필요해요. 협상이란 상대방도 만족시키고 나도 만족하는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내 것만 생각해서도, 상대의 것만 생각해서도 안 되죠.
어떤 종류의 협상 테이블이든 그 앞에 나서기 전에 서희와 원종의 외교술을 떠올려봤으면 좋겠습니다. 배짱을 가지고 섬세하게 상대를 관찰하면서 본인의 패를 놓지 않는다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되리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협상이란 이처럼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조건을 찾는 일입니다. 다짜고짜 들이밀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떼를 써서도 안 되고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겁을 먹고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돼요. 섬세한 감각을 발휘해서 상대의 패를 읽으며 상대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상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인지를 알아차려 양쪽 모두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제안을 해야 합니다.

협상가는 보통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협상가에게 중요한 건 훌륭한 말솜씨보다 정확한 눈이지요. 여기서 정확한 눈이란 정세를 파악할 줄 아는 통찰력과 상대의 의중을 감지하는 관찰력을 말합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상상해보고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일입니다. 결과만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아니라 그 속내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헤아리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고, 자꾸 갈등이 생긴다면 그 관계는 서로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된 것일 수 있습니다. 서로의 사정을 모르다 보니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고, 그러다 보면 미움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은 상대가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헤아려보는 것 아닐까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시대를, 상황을, 입장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겁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단어 중 하나가 가성비죠? ‘가격 대비 성능’의 줄임말로 지불한 가격에 비해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이 클 경우 가성비가 높다고 말합니다. 소비 측면에서 보자면 체면보다 실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가성비를 삶의 문제에 대입시켜 보면 어떨까요? 자존심만 세우다가 손해만 보는 경우는 가성비가 낮은 선택입니다. 반면에 겉치레는 좀 덜하더라도 순이익이 발생하는 경우는 가성비가 높은 선택이죠.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가성비가 높은 선택을 하는 데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 역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걱정하다가 정작 제 삶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될 때 장수왕을 떠올리며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거든요.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역사를 화제에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상대와 나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잖아요. 그래서 출신 학교를 묻고, 지역을 묻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역사적 사실로 다가가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어요? 역사는 꽤 유용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서 상대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된다면 역사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분명 같은 경험이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연결 고리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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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장소/대교

우리나라는 한강 대교의 건설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한남대교 건설 이후1970년대에는 마포대교, 잠실대교, 영동대교, 천호대교, 성수대교가 만들어졌고, 1980년대에는 성수대교, 성산대교, 원효대교, 반포대교, 동작대교, 동호대교가 놓인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올림픽대교, 서강대교, 청담대교 등이 개통되는데, 이를 통해 각종 한국의 건설 회사들은 중요한 토목 노하우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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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에 이 ‘쓸데없다’는 것만 찾아 모은 분이 계세요. 바로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입니다. ‘유遺’라는 한자에는 ‘버리다, 유기하다’라는 뜻이 있어요. ‘유사遺事’라는 건 말 그대로 ‘버려진 것들을 모은 역사’입니다. 버려졌다는 말은 곧 이미 무언가를 취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선택된 것은 무엇이냐? 바로 『삼국사기』입니다.

『삼국사기』는 고려시대 유학자 김부식이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삼국시대 역사서입니다. 어느 연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인물이 있었는지를 쭉 정리한 책이지요. 나라가 주도하여 편찬한 정사正史이기 때문에 신비하고 기이한 일을 전하는 야사野史는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확인, 즉 팩트 체크가 된 사건만 담은 겁니다.

그렇게 버려진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렸습니다. 고려 후기에 살았던 일연 스님이 쓰레기통에 처박혀 꼬깃꼬깃해진, 한마디로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꺼내 하나하나 펴서 기록한 것입니다. 일연 스님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청년 시절부터 사료를 모았다고 합니다. 단군신화를 비롯해서 전설, 민담 등 정식 역사로 인정받지 못한 이야기들을 모은 거예요. 그걸 다시 다듬고 정리해서 썼습니다. 그래서 참 재미있어요. 재미도 없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대대손손 전해질 리는 없으니까요.

저는 일연 스님이 안데르센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우리나라 최고의 이야기꾼이거든요. 그런데 일연 스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지나치게 고정적입니다. 어쩌면 『삼국유사』의 콘텐츠가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탓이기도 합니다.

고려시대 귀족들이 즐겨 하던 고급 스포츠는 매사냥이었어요. 매를 날려 보내면 이 매가 토끼나 꿩 같은 작은 짐승들을 탁 잡아채 오거든요. 저마다 자기 매를 가지고 모여서 내기를 하는 거죠. 귀족들에게 인기 만점인 스포츠였는데, 사냥용 매가 굉장히 비쌌어요. 야생에 있는 매를 그냥 날려 보낼 수는 없잖아요. 새끼일 때부터 훈련하며 길러야 합니다. 오랫동안 길을 들여야 하는 만큼 귀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매 주인은 자신의 매에 하얀 깃털을 매달아뒀습니다. 자기 이름을 써서 달아둔 거예요. 한마디로 이름표였던 거죠. 이걸 떼면 도둑질입니다. 이 이름표를 뭐라고 불렀을까요? 이게 제가 자주 내는 퀴즈입니다.
아는 분도 있을 거예요. 정답은 ‘시치미’입니다. 매가 비싸니까 어떤 사람들은 시치미를 떼어내고 마치 그 매가 자기 것인 양했습니다. 시치미를 떼고도 모르는 척했어요. 여기에서 시치미 떼지 말라는 말이 유래된 겁니다. 요즘도 많이 쓰는 말이죠.

앞에서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러면 많은 분이 제게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냐고요. 인물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모두 다릅니다. 질문하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저의 대답 역시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대답은 새날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인물들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볼 때 기본적으로 원인, 전개, 결과 그리고 의의를 다룹니다. 갑신정변의 엘리트 청년, 동학농민운동의 농민 모두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어요. 그렇다고 이들의 운동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의 주장은 1차 갑오개혁에 상당 부분 반영됩니다. 조정 역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까닭이죠.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신분제와 함께 반상班常의 구별도 사라집니다. 비록 당대에는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했지만, 역사는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어떤 인간이든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는 점, 그 선택은 때때로 예측 불가능할 만큼 기상천외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 그리고 한 번 선택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선택을 한 이상 무를 수 없습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선택한 자의 몫이에요. 그래서 후회는 늘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후회가 적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만,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한 채 선택에 내몰립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과거를 알 수 있습니다. 한두 해도 아니고 수천 년의 시간, 한두 사람도 아니고 수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사례가 역사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참고 자료가 이토록 많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미래는 몰라도, 지금의 우리처럼 사는 내내 수많은 갈등 속에서 결정을 내렸을 과거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를 말이죠.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지금 닥친 상황과 욕망에 자꾸 눈이 멀어요. 그래서 과거의 무수한 사례를 까먹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기 십상입니다. 그 잘못 하나 때문에 그때까지 쌓아온 모든 공이 다 무너지기도 해요. 내가 내뱉는 말과 지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살펴볼 수 있다면 선택은 한결 쉬워질 겁니다.

저는 품위 있는 선택에 역사적 사고가 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현재만을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까지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아요. 역사적 사고란 역사 속에서 나의 선택이 어떻게 해석될지 가늠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지식인이나 오피니언 리더에게 역사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본인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말, 의견이 누군가의 나쁜 선택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죠. 저도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의견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 편인데 공정한 평가뿐만 아니라 제 말이 어떻게 해석되고 사용될 수 있을지 점검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가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의 강의를 듣고 제 의견을 믿어주는 사람에게는 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까요.

앞에서 말한 대통령들 모두 적당한 때에 물러났으면 명예와 품위를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과욕을 부리다가 내려올 때를 놓쳐버렸죠. 역사 속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정상에서 배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 알고, 잘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내려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나의 존재, 나의 격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크고 작은 곳에서 이 사회를 이끄는 사람일수록 역사의식을 갖추는 일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더 많은 사건과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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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1-03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치미‘의 어원이 매에서 온 줄은 잘 몰랐던 사실인데 하나 배우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금이야 2024-01-03 11:02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 저같은 분이 계시다면 같이 공유하고 싶어 밑줄을 그었는데 제가 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셔요~~
 

114.인물/이봉창

이봉창은 독립운동사에서 예외적이며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애초에 독립운동의지가 없었고 식민지 조선 아래서 개인적인 출세를 염원했다. 기노시타 쇼죠를 비롯한 여러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만주와 일본 본토에서 10여 년간 개인적 영달을 위해 노력했다. 이 와중에 이봉창은 식민지 모순에 눈을 뜨게 된다. 조선인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신분적 한계에 대한 자각, 일본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극도의 무례함과 차별적인 처우에 크게 좌절한 것이다. 이때 상해에 임시정부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봉창은 망명을 결심한다. 독립운동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살고 싶은 개인적 욕망 때문이었다.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능숙했고 일본 문화를 향유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독립운동가에게 의심받았으나 결국 그는 민족 문제 앞에 자신을 던지기로 결심한다. 그의 결기를 인정한 김구는 자금과 폭탄을 건넸고 1932년 1월 도쿄에 잠입하여 천황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다. 하지만 폭탄의 성능이 약해 거사는 실패한다. 이봉창의 거사는 항일 여론이 뜨거웠던 중국인들을 감복하게 했다. 한편 김구는 폭탄 성능 개선에 주력하여 이후 윤봉길 의거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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