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모든 게 끝난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조개는 살아남기 위해 진주를 만들어낸다. 진주는 외부로부터의 위기로 생성된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활동할 때 왕모래 같은 이물질이 들어온다. 조개는 분비물을 내뿜어 이물질을 감싸기 시작한다. 이물질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자꾸 감싸는 것이다. 이것이 진주가 된다. 진주는 살아남기 위한 조개의 몸부림인 셈이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다가 난데없는 침입자를 맞이한 것은 분명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조개는 그런 순간을 받아들이고 품어내어, 마침내 자신보다 더욱 아름다운 진주를 창조해낸다. 자신의 고통을 ‘~때문’이라면서 탓하지 않고, 오히려 ‘~덕분’이라며 진주를 키워내는 셈이다.
고통을 ‘~덕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된 자세다.

성장은 완성된 목표를 향한 일사불란한 행진곡을 지향한다. 성장은 양적 발전을 추구한다. 당연히 속도를 중시한다. 반면 성숙은 미완성 교향곡이나 변주곡을 지향한다. 성숙은 질적 반전을 추구한다. 당연히 모든 순간의 밀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성장이 효율을 추구하면서 빠른 길을 찾는 데 반해 성숙은 우회축적을 통해 이른 길을 찾는다. 성장은 계획 대비 목표 달성과 실적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비해 성숙은 실적보다는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보고 느끼는 깨달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성숙한 사람은 예기치 않은 변화에 휘둘리지 않으며 이익의 탈을 쓴 위험을 분간해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무한 성장을 잠시 멈추고 내면적 성숙을 기할 때다. 성숙을 통해 성장도 의미변화를 겪는다. 무엇이 성장이고 왜 성장하려고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물어보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들은 어떤 사태든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최악, 그 이상의 상황도 닥칠 수 있다고 마음에 미리 경고 신호를 보내야 한다. 가능성을 열어두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처하고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잡초는 어떤 상황에도 버티면서 자란다. 씨앗이 어디에 떨어졌든, 거기서 희망의 싹을 틔운다. 아무리 좋지 않은 조건에서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그다음 자신의 생존을 모색한다.
잡초는 위로 자란 줄기와 가지보다 아래로 자란 뿌리가 훨씬 깊다. 잡초들의 질긴 생명력, 그 원천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땅속 뿌리에 있다. 2할이 겉모습이라면 8할이 뿌리다. 식물들은 고산지역으로 올라갈수록 덜 자라면서 뿌리를 깊게 내린다.

닌텐도는 히트작을 개발한 직원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주는 일이 없다. 스타 직원을 키워 대외적으로 홍보하지도 않는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게임기업의 태생적 한계와 위험성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뼛속 깊이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은 오르막길을 신나게 오르고 있다고 해서 남들 앞에서 뻐기지 않는다. 오를 때부터 최악을 미리 상상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업이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붙박이 의자에 앉은 것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거품이 부풀든 터지든 그들 자리는 항상 일정하다. 그들은 언제나 꿋꿋하다.
이런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최악의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놓기 때문이다. 최악, 그 이상을 염두에 놓고 리스크를 관리해온 결과가 오늘의 생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최악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면 웬만한 위험이 다가와도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여유는 위험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까지 챙길 수 있게 해준다.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해 위험을 돌파할 지혜를 모아낸다.

만족으로 뾰족한 것을 감싸지 않으면, 내면에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공포에 질려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결국에는 밧줄을 놓아버리는 비이성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염없이 이어진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시기, 자책은 스스로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행위나 다름없다. 우리는 내려가면서 마음 연습을 해야 한다. 만족하자고 말이다. 만족으로 아픔을 감싸면 언젠가 진주처럼 영롱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먼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다. 목표에 집착하지 말자. 천천히 한 걸음씩 옮겨도 충분하다.
잡초처럼 질기고 강하게 살아남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하자. 마음속의 마지막 뚜껑을 열자. 최악의 가능성을 열어두자. 우리는 그 속에서 잡초처럼 성숙한 우리들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난초가 되지 말고, 잡초가 되자.
잡초는 힘겨울수록 더욱 아래로 내려간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먼동이 터오는 것이 보인다. 이제 곧 아침이다. 덩달아 희망도 터온다.

약속을 칼처럼 지키는 정확한 사람은 일을 진행할 때 실수가 드물고 매듭도 잘 짓는다. 그들은 회사의 구조조정 때문에 안절부절 떠는 경우가 없다.

시간관념이 흐린 것은, 위험을 불러들이는 습관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을 적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 개념은 공교롭게 돈과도 맞물려 있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셈에도 흐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공은 ‘시간에 대한 생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시간을 잘 활용한 것이 성공이고, 성공은 그 대가로 보람찬 시간을 선물해준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시간을 아까워한다. 남의 시간 역시 소중하게 생각한다. 양측의 시간들이 어우러지면서 더욱 성공적인 시간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나의 성공에 대한 포기다. 약속시간에 늦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그 시간만큼을 어디선가 생산적으로 활용한 다음에 나타나는 법이란 없다.

지각습관은 나의 성공에 대한 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남의 시간을 도둑질함으로써 남의 성공적 시간을 방해하는 행위다. 상대방이 성공한 사람일수록 그 타격을 매우 크게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실패는 우리가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쌓였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시간의 복수극’이다. 나의 시간 외에, 내가 낭비했던 남들 시간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휘몰아친다. 최악의 상황은 최악의 습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매 순간이 기적이고 경이로운 감동의 순간인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살면서 타성에 젖기 시작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마주침에도 감탄하는 시인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습관의 덫에 걸려 살아가는, 의미와 감동을 잃은 사람도 많다.

빙하기는 성공과 위협이 민감하게 교차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성공보다 위협에 집중해야 한다. 거의 모든 위협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관계를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높았던 내 시간에서 낮았던 남의 시간으로 내려가자. 남의 시간에서 바라본 내 시간이 그동안 얼마나 높았는지 깨닫자. 우리는 시간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켜야 한다.
평상시에는 적이 많다는 것이 성공의 척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빙하기다. 모두가 생존 스트레스로 눈이 벌겋다. 예전의 게임 규칙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온갖 반칙이 난무할 수도 있다.

자존심. 물론 중요하다. 자아를 떠받치는 정신적 주춧돌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자존심 때문에 고집을 부리다가 엉뚱한 사람들의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밑으로 내려갈 때까지 자존심을 유예하기로 규칙을 정했다.

로스 컷은 우리말로 ‘손절매’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기관투자가들의 손절매를 뜻하는데, 주가가 떨어질 때 과감히 팔아 손해를 보더라도 추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주가가 오르길 기다리다가 오히려 경영의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규칙이다.
"본전 생각을 손절매하고, 남을 치켜세워주어라. 그러면 위험은 피할 수 있다."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든,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본전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본전’ 생각하다 ‘본질’까지 잃을 수도 있다. 이제 본전보다 본질을 고민하고 찾아야 할 때다. 본전은 이해타산으로 얽혀 있는 경제적 가치지만, 본질은 근본과 핵심이 내재되어 있는 본연의 가치다. 본전의 경제적 가치보다 본질이 내포하고 있는 본연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본질은 나목(裸木)처럼 모두 버리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선에 설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빙하기는 어쩌다 재수 없게 찾아온 환경적 위협이 아니다.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 반드시 내려가야 하는, 어디가 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첩첩산중 내리막길이다. 올라갈 때는 정상만 보고 가뿐하게 움직였지만, 내려갈 때는 눈보라까지 휘날려 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세상이다.
빙하기 세상은 눈과 얼음에 덮인 하얀 세상이다. 튀면 쉽게 눈에 띈다.

성공한 사람들은 최단 거리로 질주해 지금 그 자리에 이르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위험에 대비하고 위험을 관리해왔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성공이란 위험 관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언제나 최악을 염두에 두자. 방심으로 인한 실패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
손절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싸움을 내주고 큰 싸움에서 이기는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는 더욱 더 내려가보아야 한다. 지혜는, 이겨서 오를 때보다 패배하고 내려갈 때 비로소 얻어지는 법이라고 선현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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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문화/홀로서기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홀로서기> 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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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필요하지 않다. 빌 게이츠의 말이다. 제품의 기능만 강조하는 기관은 사라지지만, 제품이 담고 있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기능’을 제공하는 ‘기관’은 사라지지만, ‘본능’을 강조하는 ‘감각기관(경험)’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조된다는 의미다. 오프라인 점포에서 금융업을 했던 금융 기관은 사라지고 있지만, 금융 자체의 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 오프라인 점포 중심의 아날로그 은행은 사라지지만, 온라인 중심으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디지털 금융이 혁신을 거듭하며 발전해가는 이유다.

고객의 필요나 요구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기보다 고객의 잠재된 욕망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서 순식간에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차경진 교수의 책 《데이터로 경험을 디자인하라》에 따르면,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의미나 경험을 구입한다.

마켓컬리의 새벽배송은 다양한 기술과 소비자의 욕망을 접목, 최상의 해결대안을 모색하다 찾아낸 혁신적 솔루션이라는 것이다

이제 고객이 당장 원하지는 않지만 잠재적으로 내면에 갖고 있는 비기능적 요구에 집중해야 한다. 제품과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과 신념으로 사고 싶은 고객의 욕망을 자극하면 시장은 언제나 무한대로 열려 있다.

경제 빙하기에 접어들수록 과거 비즈니스 혁신을 통해 성공한 경험을 과감하게 버리고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혁신을 거듭해야 살아남는다. 경제 빙하기가 지속될수록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고객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 그들이 경험에서 얻는 통찰을 활용, 제품과 서비스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 팔아야 한다. 단순히 경쟁사와 품질 경쟁을 통한 차별화에 집중하기보다 고객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듯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철저한 노력 와중에 혁신적 씨앗은 발아된다.

돼지는 죽을 때까지 하늘을 볼 수 없는 동물이다. 원래는 하늘을 볼 수 있었다는데, 아주 오랜 기간 땅에서 먹이를 찾다 보니 목뼈가 퇴화되었다.

이런 돼지에게도 하늘이 보일 때가 있다. 넘어져서 발라당 뒤집혔을 때다. 뒤집힌 돼지는 처음으로 하늘을 발견한다. 돼지에게는 신세계가 열리는 셈이다.

넘어져서 발라당 뒤집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넘어지고 뒤집혀야만 발견할 수 있는 진실들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다.
성공의 오르막길을 전력 질주해 올라간 사람들은, 인생에는 성공 이외의 다른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을 추앙하고, 올라오다가 포기한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리고 성공이 무너져 내리막길로 내몰린 뒤에야 세상에 또 다른 귀중한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는 그동안 돼지처럼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정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렸고, 지금 이렇게 내리막길에서 버티다가 넘어져 있다. 넘어져서 발라당 뒤집힌 김에 하늘을 조금만 더 보자. 그리고 한동안 잊었던 감정들을 되살려보자.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선수들로 하여금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게 하려면 ‘최고의 경쟁자’와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쟁을 통해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가고, 그런 경험이 쌓여 자신감이 생길 때에야 선수들이 거듭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실제로 여러 나라 사람이 섞여 지내다 보면, 먼 나라 사람들과는 잘 지내는데 오히려 주변 국가 사람들과 불화를 빚는 경우가 많다. ‘잘 안다’고 생각해 방심하기도 하지만, 깔보는 심리가 은연중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레이엄 존스는 이런 측면까지 면밀하게 간파해 합동훈련을 실시했고, 그의 경쟁을 통한 윈윈(win-win)전략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정말로 최정상에 오르고 싶다면 자신을 극한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경쟁자와 훈련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계속 내려간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이런 위기를 겪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렇게 잘 버티며 내려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 덕분이다. 오를 때는 치열하게 경쟁했던 사람들.
우리는 경쟁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눈여겨보면서 따라 내려간다. 서로서로 눈치를 보면서 어기적거리면서 우왕좌왕 간다. 내려가는 일에 대단히 뛰어난 사람은 없다. 각자가 시행착오를 나누면서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상호협조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경쟁자들 덕분에 이 추위에서 얼어 죽지 않은 것이다. 경쟁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가며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함께 내려가기 때문에 외롭지 않은 것이다.
모두에게 감사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이 발을 헛딛고 굴러 떨어지기를 바라지 않겠다. 그다음은 내 차례니까. 경쟁자들은 적(敵)이 아니다. 동반자다. 그들이 나를 성숙하게 해준다. 그들은 위대하다.

쓰러지고 넘어져봐야 비로소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말이다.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다. 쓰러지고 넘어진 다음 다시 일어서지 않는 것이 실패다. 실패는 그만두는 순간 시작된다.

실패는 누구나 다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그 실패로 인해 우뚝 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똑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실패를 통한 학습(learning?by?failure)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남들의 성공은 한결같이 ‘완성형’이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회의와 좌절, 실패의 흔적은 보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으로 오해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그런 재능을 주지 않은 신을 원망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점은, 쓰러질 때마다 기꺼이 배운다는 것이다. 노여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서 도전을 반복하는 것이다.

많이 넘어져본 아이가 빨리 걷는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봐야 넘어질 수밖에 없다. 넘어져봐야 안 넘어지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살면서 여러 번 넘어진다.
실패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과 다른 점은, 넘어졌을 때 그냥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몸은 넘어져도 마음은 넘어지지 말아야 한다.
넘어지는 데는 ‘마지막’이 없다. 수도 없이, 하염없이 넘어질 수 있다. 풀잎도 바람보다 먼저 넘어진다. 그러나 아주 넘어지지는 않는다.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다시 일어선다.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게 인생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는 새로운 가능성을 물구나무 세운 것이다. 실패는 재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실패는 망각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의 대상이다. 잘되는 방법만이 아니라 안 되는 방법까지 배워야 성공할 수 있다. 실패의 안쪽에는 성공의 불씨가 잠자고 있다.

사랑까지 잃지 않았다면 아직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실패는 우리의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주는 압착 롤러다. 우리들의 사랑과 믿음도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거듭난다. 끊임없는 깨달음을 주는 실패에게 오히려 감사의 뜻을 전하자.

시련에게로 기꺼이 내려가자. 시련이 우리를 더욱 단련시킬 것이다. 우리는 밑바닥에 이르러서야 정상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여유를 찾아낸다. 여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니 바닥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내려가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배운다.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경쟁자들에게 고마워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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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유적•유물/삼국유사

일연의 생각에 기존의 역사책들은 너무 고답적이었다. ‘괴력난신‘ 같은 신비한 이야기는 서술하지 않고, 오직 ‘예약‘, ‘인의‘같은 도덕적인 이야기만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연은 새로운 역사를 열었던 인물들이 알에서 태어나거나 신비한 일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니 그런 일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삼국유사》에는 신화적인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덕택에 오늘날 삼국 시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삼국유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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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둘러라(Festina?lente).’
원래 아우구스투스(Augustus)?황제가 한 말이라고 한다. 그는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벌어졌던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종식시킨 후 이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Festina?lente’라는 말은 ‘서둘러라’를 의미하는 ‘festina’와 ‘천천히’를 의미하는 ‘lente’의 합성어다.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고, 천천히 하다 보면 서두를 수 없다. 따라서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말은 논리적 모순이다. 하지만 이 말은 모순을 넘어서 역설적으로 들린다. 서두르지만 전후좌우를 따져보면서 서두르라는 말이다.

멈춰야 할 시기를 아는 지혜와 ‘천천히’의 여유가 조급함보다 중요하다.
‘천천히 서둘러라.’
이 말은 두 가지에서 의미심장하다. 먼저,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 서두르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의미다. 상식적으로는, 곡선으로 가는 것보다 직선으로 가는 길이 빠른 길이다. 그러나 빨리 가는 직선 길에는 장애물도 많고 경쟁자도 많은 법이다. 그래서 우회하는 길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도 있다.

직원들은 사장의 마음을 모른다. 수줍어하면 안 된다. 속마음을 과감하게 표현하라. 자신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그들이 알아야 한다.

직원들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도록 자긍심을 세워주어야 한다.

직원, 특히?MZ?세대에게 업무를 부여할 때, ‘3요 질문’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3요 질문은 상사가 뭔가를 하라고 지시하면 젊은 직원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 질문이다.

객관적 시각으로 보면, 상대방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차분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첫 번째다.

성공이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줌으로써 한 계단씩 쌓아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팽개친 채 혼자만의 힘으로 혼자만의 성공을 이뤄낸 사람은 찾기 어렵다. 성공하려면 집안부터 일으켜세워야 한다. 식구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성공은 의미가 없다.

사업에서의 성공은 직원과 관계회사들을 배불리 먹여주면서 시작된다. 고객에게는 푸짐한 만족을 선사해야 한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사장은 직원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직원들과 함께 서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정치인들 역시 국민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상대방의 시각으로 다시 느껴보아야 한다.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물건을 훔치면 범인이지만 마음을 훔치면 연인이 된다. 사장이 직원들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최우선의 일은 마음관리다. 특히 경제 빙하기 시대에는 다른 모든 관리보다 마음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마음을 불태우면 다른 것이 힘든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힘을 합쳐 난국을 돌파할 혜안과 대안을 만들어낸다.

연구팀은 소빙하기의 강추위 때문에 나무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에 착안했다. 나무들이 성장하는 대신 매우 내밀해졌다는 것이다. 나무가 어떻게 자랐는지는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나이테 간격이 넓은 것은 여름에 자란 흔적이고, 나이테 간격이 좁은 것은 겨울의 기록이다. 따라서 나이테 간격이 극히 좁다는 것은, 그만큼 외부 환경이 녹록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눈보라에도 나무는 나목으로 버틴다.

어떤 나무들은 빙하기에도 견디면서 자란다. 사람들이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게 자란다. 작은 성장이지만 의미심장한 성숙을 통해 튼튼하게 자란다. 그런 나무는 외형 성장보다 내면 성숙을 통해 거듭난다. 빠르게 성장한 나무는 충격에 약하다. 자칫하면 부러진다. 그러나 더디게 자라난 나무는 웬만한 충격과 압력에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내성을 갖고 있다. 시련과 역경을 견뎌낸 대가이기도 하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는 혹독한 추위를 버티면서 참아내고, 그 세월을 마침내 내면으로 승화시킨 나무가 들려주는 매혹의 소리인 것이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내려는 삶의 의지가 고스란히 기록된 나이테, 그것이 신비한 소리를 내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매력이다.

책을 읽지 않고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남다르게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꿈은 몽상이나 망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성공하기를 원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꿈을 머리로만 꾸는 경우가 많다.

꿈꾸기 전에 꿈에서 깨야 한다. 꿈은 머리로 꾸는 게 아니라 몸으로 꾸는 것이다. 경제 빙하기일수록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더욱 공부해야 한다. 지금이 절호의 찬스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며 실험하고 모색하며 몸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독서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고, 깨달음을 얻고,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배웠다는 것을, 하다못해?TV?쇼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보았다. 꾸준한 독서가 사람들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조명한?TV?프로그램을 여러 번 접했다. 하루?15분의 독서습관이 얼마나 큰 차이를 부르는지도 보았다.
그런데도 책을 읽지 않는다.
경제 빙하기는 우리에게 성숙을 요구하고 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나이테를 스스로 좁혀가며 내밀한 성장을 이루라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 변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프로페셔널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내면을 성숙시키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독서다. 독서는 상상과 사색이라는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은 시련과 역경에 부딪혔을 때 유효하다. 요모조모 따져보면서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다. 독서광들이 성공에 이른 경쟁력은 사실,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책과 경험을 통해 빙하기 나무의 나이테처럼 다져진 지혜 말이다.

경제 빙하기가 계속되는 난국에도 좁혀야 할 거리가 있다. 바로 책과의 거리다. 읽을거리를 많이 준비해서 고독한 시간 속에서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을 접목시켜 색다른 생각을 잉태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난국을 극복하고 돌파할 수 있는 멘탈 머슬(mental?muscle)과 복잡한 문제를 조급해하지 않고 풀어낼 지성의 폐활량도 늘어난다.

진짜 책 읽기의 완성은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이 아니다. 읽으면서 메모하고 느낀 점을 다른 사람과 함께 토론한 다음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순간이다.

지하철에서 가볍게 본 책에서도 일생일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독서가들은 책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책에서든 배울 것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다만 책을 읽는 나쁜 마음이 존재할 뿐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과 사물 전부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라고 생각하자. 챗?GPT가 인간지능을 능가하는 시대, 인간은 이전과 다른 질문으로 무장해야 한다.

책은 내가 찾는 정답을 주기보다 새로운 질문을 품게 만드는 매개체다.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만이 새로운 질문을 잉태할 수 있다. 질문 없는 독서는 독소(毒素)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자세를 낮추고 끊임없이 배우는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인생의 주연 배우는 하나같이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고생길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고생의 뒤안길에서 갈라진다. 독서가들은 상처의 흉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록한다. 도전의 성취와 보람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한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깊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비견되는 ‘인간 명품’인 것이다.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 ‘책을 읽읍시다’는 더 이상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국민 계몽 구호가 아니다. 경제 빙하기에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결단의 전략이다.
빙하기는 우리들에게 내면적 성숙을 요구하고 있다. 거듭나기 위해 책을 읽자. ‘텅 빈 오만함’에서 ‘꽉 찬 겸손함’으로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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