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사건/해방

1945년 8월15일 식민지조선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됐다. 당시에는 해방이나 광복 같은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해양 초기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우리만의 힘으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한 것이문제였다. 1941년부터 미국과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드웨이 해건 이후 승기를 잡은 미국은 태양과 동남아시아에서 연거푸 승리하여 오키나와성 일대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일본의 저항에서 소련의 참전용정식 요구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소련은 8월 초 만주와북부의 일본군을 물리치면서 빠른 속도로 남하했다. 결국 38도선을 기준으로주와 한반도 북부는 소련이 한반도 남부와 일본, 그 밖의 일본 지배 지역은 미국이 관할한다는 합의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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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돌고 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좋은 것을 따라가면, 막차를 탈 가능성이 높다. 지금 좋은 것이지, 앞으로도 좋을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이류, 삼류였다고 해서 지금 탄식할 이유가 없다. 지금부터 앞서나가기 위해 그토록 치열한 숨고르기를 해온 것이라고 해석해보자.
게다가 지금은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는 게임이다. 오르는 게임에서는 뒤처졌지만 내려가는 게임에서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일류와 이류의 차이는 도전에 한계를 두느냐 아니면 한계에 도전하느냐로 갈린다. 이류들은 도전하기 전에 한계를 먼저 그어놓는다. 그 한계는 물리적 한계가 아니라 심리적 한계다. 도전을 해보기도 전에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부터 내리는 것이다. 심약한 결론 뒤에는 두려움이 놓여 있다. 그보다 깊은 내면에는 아예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욕조차 없다. ‘어렵다’는 생각 뒤에는 ‘사실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숨어 있다.

자세를 낮추는 것은 비굴이 아니다. 그것은 내려갈 수 있는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솟구쳐오를 무한한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도 하다.
바닥은 신념이다. 바닥에 도달하면 신념이 바뀐다. 그리고 사람이 변한다. 겸손한 ‘낮음의 미학’이 거들먹거리는 ‘높음의 어리석음’을 무너뜨린다. 바닥을 찍은 사람만이 흐름을 타면서도 자기중심을 잡을 수 있다.

앞문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으면 뒷문이나 옆문으로 탈출하자. 새로운 관문을 만나는 기쁨을 포기하지 않으면 삶에는 그런대로 여전히 살 만한 의미와 가치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능성을 찾기도 전에 포기하는 순간, 고집스러운 기쁨은 사라진다. 고집스러운 기쁨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나쁘지는 않아!’라는 태도,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 희망의 종류를 바꾸는 용기다. 그럴 때, 삶의 또 다른 기쁨이 열린다.

이류는 일류를 흉내 내려 한다. 일류가 떠나는 것을 보고 따라 내려간다. 하지만 높은 곳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가끔씩 뒤돌아본다. 그러다가 바람의 흐름을 놓친다. 완급을 조절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맞바람 때문에 고생을 한다.

지금은 내려가는 길이다. 모두가 오르는 연습에만 열중해왔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낯설다. 지금은 우리들을 위한 역전의 찬스다.

내려가는 것, 그것은 패배해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속의 심연을 찾아서 떠나는 새로운 출발이자 여행이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걸음이 아니다. 욕심과 공포, 질투, 집착 같은 과거를 비우는 걸음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이제는 내려가는 것이 행복하다. 내려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느끼고, 흐름에 맞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오를 것이다.

반문(反問)을 통해 반전(反轉)을 시도하자. 당연하게 여겨온 것에 대해 ‘왜’라고 묻자. 대답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왜 안 돼?’ 우리는 역전의 명수들에게 감동한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미 졌다고 생각할 때, 모두가 졌다면서 포기할 때, 그 최후의 순간에 역전 드라마는 시작된다. 짙게 깔렸던 어둠의 절망을, 찬란한 한줄기 희망의 빛이 강렬하게 뚫고 나온다.
‘반전’은 ‘반문’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절호의 찬스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역전’의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 눈물겨운 스토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신다.
우리가 인생의 반전을 결심할 때, 우리 삶의 역전 드라마도 시작된다. 반전과 역전 드라마는 반문을 통한 도전에서 비롯된다.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동안 못 이룬 것에 대해서.
‘왜 안 되는데?’

일류와 이류의 차이는 흐름을 타느냐, 흐름을 놓치느냐로 갈린다. 삼류와 사류는 흐름에 맞선다.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숙인다. 무능은 겸손이 아니다. 실력 있는 사람만이 겸손할 자격을 얻는다. 겸손은 땅에서 멀어질수록 없어진다.

우리는 너무 유행에 민감하다. 역전에 성공하려면 지금 남들이 좋다고 하는 방향으로 부화뇌동해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서는 절대 남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들 가는 방향으로 물밀듯이 따라간다. 그래서 똑같은 결과를 얻는다. 현명한 어머니들은 자식을 남들처럼 만들지 않으려고 각별한 신경을 쓴다.

빨리 가는 ‘도로(road)’보다 굽이 돌아가는 ‘길(way)’이 아름답다. 틀린 길은 없다. 다만 풍경이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모든 길은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주 뒤집힌다. 어제는 최고였던 것이 오늘은 최악이 된다. 어제는 별 볼일 없던 것이 오늘은 최고가 된다. 대한민국처럼 냄비 끓듯 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상을 앞두고 포기했다고 해서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다시 도전하기 위해 내려가는 것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냉소주의다. 분노에 투항하지 말자.

내려가는 길에 만나는 돌은, 우리가 딛기 나름이다. 잘 딛고 뛰면 디딤돌이다. 디딤돌로 이용해 몇 걸음을 아낄 수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걸려 넘어진다면 그것은 걸림돌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걸림돌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짙은 어둠의 터널 끝에는 천지가 ‘개벽’하는 ‘새벽’이 있는 법, 깊은 절망의 밑바닥에 숨 막히는 희망의 텃밭이 있는 법이다

삼류와 사류는 마지막까지 높은 곳을 포기하지 못한다. 본전이 아까워서 고집을 부린다. 그러다가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는 시기를 놓친다. 손해가 너무 막심해서 손절매를 할 수 없는 지경에 몰린다. 결국에는 끝까지 버티기로 한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내려가는 길이 사라지고 추락의 위험이 높아진다. 쩔쩔매면서 내려간다. 사류는 세상을 원망하며 구시렁거린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걸음씩 차분하게 내려간다.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미를 만드는 사람은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내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면 의연해져야 한다. 의지의 칼날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내려가다가 설혹 넘어져도 걸림돌을 탓하지 않는다. 그것을 디딤돌로 활용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할 뿐이다.

굽은 길은 ‘방황’이다. 곡선은 아름답다. 곡선에는 방황의 여정이 담겨 있다. 그 길을 가다가 넘어져 생긴 상처가 추억의 흉터로 남는다. 모든 길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천천히 걸으며 그 의미를 곱씹어볼 만하다.
누구든 예외일 수 없다.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오랜 방황과 고뇌의 여정을 거쳐야만 한다. 성취는 오랜 과정을 거쳐 끊임없이 성숙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자랄 수 있다.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풀은 부드럽기 때문에 모진 비바람에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카리스마 중의 최고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부드러운 모성이 잔혹한 세월을 이겨낸다.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말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 말한다. 걸림돌과 디딤돌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계는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할 디딤돌이다.

멈추지 말고 내려가자. 이 추위가 언제 끝날지, 희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숲 모퉁이를 돌아 또 다른 내리막을 만나면 거기에서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긍정과 낙관을 연습하자.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려가자.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자. 그리고 희망을 나누자. 우리는 사랑해야 버텨낼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기회는 위기 ‘덕분’이고, 일류는 이류 ‘덕분’이고, 고귀함은 고생함 ‘덕분’이다. ‘덕분’에 운명도 바뀐다! 곤경 덕분에 풍경도 생기고 비극 덕분에 희극을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다. 좌절과 절망 덕분에 절치부심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하다 희망의 싹을 틔우면서 판단착오를 줄일 수 있는 비결을 알게 된다.

심호흡은 잠시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쉬는 게 아니다. 기를 끌어모으기 위한 치열한 숨고르기인 것이다.
멀리 가기 위해서 때로는 뒤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장벽에 가로막혔다면 뒤로 돌아가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가 뛰어넘는 것도 방법이다.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는 ‘다 알았다’고 생각한다. 높은 곳에서 보면 세상이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자기가 본 것 이외에는 무시하는 속성을 보인다.
하지만 내려가다 보면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일류는 흐름을 파악하고, 내려가야 할 때임을 가장 먼저 깨닫는다. 감히 맞설 수 없을 때는 가장 먼저 포기한다. 먼저 내려가면서 바람의 흐름을 탄다. 골짜기를 휘몰아치는 칼바람에 몸을 맡긴다. 바람이 밀어줄 때는 힘을 빼고, 맞바람이 달려들 때는 자세를 낮추거나 옆으로 걸어 압력을 해소한다. 완급을 조절하면서 흐름을 타는 셈이다.

가장 절망적인 때가 가장 희망적인 때이고, 어두움에 질식할 것 같은 때가 샛별이 나타날 때다. 별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 아름다운 것처럼, 축복도 조금 멀리 있어 보일 때 오히려 인생의 보약이 된다. 사투 끝에 맞이하는 ‘전화위복’이 가장 멋지고 풍성한 축복이다.

내려가보지도 않은 채, 왜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했을까. 그런 거드름 때문에 위기를 자초했던 것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차라리 잘된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내려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연스런 들숨과 날숨을 가진 것만으로도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불평과 원망은 행복에 겨운 자의 사치스런 신음이라고.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것도 기적이고,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밥과 반찬 그리고 국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축복이자 행복이라고.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삶의 기적이라고. 이런 기적의 선물을 받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이 가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서 평생을 비참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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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명문장/나라를 살리는 길

강항(1567년~1618년)은 임진왜란 당시 남원에서 군량 보급과 의병 모집을 위해 노력을 하다 포로가 된다. 일본으로 끌려가 약 3년간 고생하다 1600 년에 간신히 귀환에 성공한다. 강항은 이때의 경험을《간양록>에 자세히 적어놓았다. 왜 조선은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지, 일본은 어떤 시스템으로 국가를 운영하는지 그리고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백성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록이다.
그는 일본에 있을 때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성리학을 전했고 이것이 일본 성리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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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는 한계를 기회로 바꾸어 삶을 이어가는 지혜의 풀이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아남고, 밟히는 순간조차 번식의 기회로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회는 자세를 낮추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기회가 높은 곳에 있다고 착각하지만, 대개의 경우 땅바닥에 깔려 있다고, 앞서 경험했던 사람들이 말한다.

다른 담당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한마디로 추리자면, 거의 모든 취업준비생들이 ‘정답’을 맞히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면접에서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게 담당자들의 견해였다.

얼마나 똑똑한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전반적으로 균형 잡힌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인터넷에 나와 있는 수많은 모범답안은 ‘정답’이 아니다.
면접관들이 보고 싶은 것은 상대방의 ‘토대’다. 실력뿐 아니라 성격, 품위, 발전 가능성 등을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유추해낸다. 면접관들은 정직한 사람에게 끌리는 성향이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터지는 문제에 얼마나 임기응변을 발휘해 유연하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나 오만함보다 나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겸손함으로 뭐든지 새롭게 배워보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장하는 인간은 여섯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가 ‘안다’이다. 인식하는 것이다. 알기 위해서 학교에서 배우고 책을 본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직장에 취업하기 전까지 ‘알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직장에 들어간 이후에는 그런 노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음은 ‘분석한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사실을 분석하고 이면을 발견한다. 분석을 통해 ‘아는 것’이 ‘아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게?하는 힘이다.
그리고 ‘해본다.’ 알고 분석한 것을 토대로 실천한다. 실천을 통해 아는 것을 검증해보는 것이다. 실천은 도전이며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행위다.
마침내 ‘성공한다.’ 해봐야 성공할 수 있다. 성공의 희열을 맛보고서야 해보기를 잘했음을 느낀다.
그래서 ‘성과가 생긴다.’ 성과는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답이다. 우리는 그 보답을 만끽하며, 보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은 ‘습관이 된다.’ 새로운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분석하고 해보고, 성공하고 성과를 얻는 생활이 반복되어 마침내 습관이 되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여섯 단계를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반복해온 사람이다. 단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면서 깨닫는 과정이 몸에 밴 사람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아는 것을 실천에 옮겨보고 성공한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대부분은 ‘나도 알아’로 끝을 맺지 않았는지.
자세를 낮춰 새로운 각도로 세상을 보자. 분석하고 시도해보자.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IDEO(아이디오)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는지.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이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P&G같은 거대 기업들에게 디자인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 회사의 고객이다.

아이디오 회의의 특징은 ‘작은 것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열정적인 회의를 통해 사소한 부분까지 파고든다. 회의에는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구분이 없다. 누구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 방향으로 아이디어가 몰린다.

아이디오의 ‘작은 것에 대한 집중’에는 이유가 있다. 더 이상 ‘원래 그런 것’이 통하는 세상이 아니란 판단에서다.

소비자들은 ‘작은 차이’에 민감하다. 그래서 아주 작은 차이만 눈에 들어와도 어제의 제품을 고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살아남으려면 ‘아주 작은 차이’까지 감지하고 혁신을 이루어내는 ‘아주 섬세한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이디오의 철학이다.

아이디오는 회의에 대한 충고로 ‘회의를 망치는 여섯 가지 방법’을 들었다.
1. 언제나 보스가 먼저 말한다.?2. 모두가 말해야 한다.?3. 전문가가 혼자 말한다.?4. 장소는 언제나 회의실이어야 한다.?5. 모두가 열심히 적어야 한다.?6. 농담금지. 진지한 말만 해야 한다.
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도 관심 있게 봐두어야 할 대목이다.

무화과(無花果)는 꽃이 없는 열매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 없이 열매만 열린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꽃이 피기는 하지만 꽃받침과 꽃자루가 주머니 모양처럼 부풀어오르면서 꽃들을 안으로 감추는 것이다. 무화과 열매를 잘라보면 그 안에서 ‘작은 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꽃을 감추니까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이고, 꽃은 보지도 못했는데 열매가 열렸으니, 어쩔 수 없이 ‘꽃 없는 과일 무화과’로 이름 붙여졌다.

지금껏 우리는 ‘크고 높은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이론과 계획을 세웠다. 확립된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비이성’, ‘비과학’으로 낙인찍었다. 이론과 과학을 맹신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과학적 이론들이 눈과 얼음을 불러와 세상을 꽁꽁 얼려버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과학과 이론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헤맨다.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이론이나 완벽한 계획과 분석에서 나오지 않고, 실제로 행동하면서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가운데 나온다.

다른 눈으로 보자. 지금은 ‘감’을 발동할 때다. 무화과의 꽃들처럼 숨어 있던 다른 눈, 감은 유연성의 시작이며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세상에 대한 가장 빠른 직관적 대응책이다. 계획과 설계의 맹신에서 벗어나 직관적 능력을 발휘해보자.
모든 것은 감에서 시작된다. 이론 역시 처음에는 감에서 출발한다.

꿈의 사회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가치는, 상징적 가치다. 상품의 경제적 가치 이외의 정신적이고도 심미적인 의미에서의 가치를 뜻한다. 그것은 감의 영역이다. ‘아는 것’으로 풀이되는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다.

정답을 찾아내는 모범생보다 전대미문의 질문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모험생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는 시대다. 지금까지의 성공신화는 앞으로의 성공신화를 가로막는 장본인이 될 수 있다. 경험이 소중한 스승이기도 하지만, 경험이 또 다른 상상력과 지혜를 창조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경제 빙하기 시대는 훈풍이 세상을 따듯하게 녹이던 시대의 이론적 틀만으로는 전혀 해석되지 않는 특별함을 갖는, 전무후무한 시기다.

성공은 세상과의 연애다.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연애의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다. 그 진리란 ‘주고받기’다.

기업들이 ‘열려 있는 인재’를 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울림을 통해 자신과 회사, 세상의 균형 있는 발전을 모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조직력이나 자금력, 기술력, 마케팅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기업정신과 기업문화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다.
최고의 기업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배려를 고객에게 전한다.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말한다. 아이를 인재로 키우려면 감성을 계발하는 데 집중하라고. 위대한 어머니의 표본 장병혜 박사는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큰 인물이 된다’면서 더불어 사는 지혜를 일깨워줄 것을 항상 강조한다.
그러나 대다수 어머니들은 ‘그런 건 시간이 남아돌아서 한가할 때 생각해볼 문제’로 여기는 듯하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우겨넣으면서 이겨야 살아남는다고 가르친다. 인생에는 오르는 길밖에 없다면서 몰아붙인다. 아이들은 오르다가 미끄러지고, 헛딛고 넘어지면서도 하염없이 오르기만 한다. 어머니도 불행하고, 아이도 불행하다.

자기 수준을 깨닫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발전의 기초다. 우리는 자기 수준도 모른 채 무리하게 도전했다가 탈진하고 마침내 실패한다. 그러고는 가슴속 깊이 분노의 씨앗을 심어놓는다. 사실은 자기 수준을,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지는 것을 죽는 것만큼이나 두려워하니까.

왜 그렇게 분노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흐르는 대로 흐르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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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1-28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밑줄쳐주신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이 짧은 문장이면서도 뭔가 깨달음이 느껴지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이야 2024-01-29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다 제게 하는 말 같아 의식적으로 힘을 빼고 천천히 읽었어요…고급스러운 문장들이거나 기교있지는 않지만 제 마음에도 충분한 울림이 있었는데 공감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새로운 한 주의 시작도 건강하고 안전하시길 바래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1-29 08:25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홍합님이 밑줄쳐주신 것만 읽어봤는데도 굉장히 좋은 얘기들이 많아서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홍합님도 좋은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139.학문•철학/신화

한때는 신뢰를 역사와 대조되는 허무맹랑한 전설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신화는완벽한 사실은 아닐지언정 여러 역사적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가 고대 폴리스 귀족들의 삶을 반영하듯 단군 신화를 비롯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여러 신화 역시 당시의 역사상을 반영한다.

20세기 들어 신화학이 발전하면서 신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다. 창세 신화, 영웅 신화 등 신화의 성격을 분류하고 인도, 중국 유럽 등 지역에 따라 신화의 특징을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신화‘ 같은 개념도 등장했다. 영응이 알에서 태어나거나 활을 잘 쏘는 등 전 세계 신화에는 반복되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인류 문화의 공통점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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