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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시간이 

점점 빨리가니 나이 탓만 할 밖에요. 그래도 멋진 책들은 계속 나오고 읽기는 멈출 수 없으니 이대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르귄은 진리입니다. 
새해에도 르귄의 이야기를 읽으며 큰 위안과 환상을 맛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생각합니다. 
르귄의 책을 2015년 첫 추천신간으로 꼽을 수 있어서 또 행복하네요. 









익숙한 것이 더욱 좋고, 좋은 것을 계속해서 좋아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은 계속 쏟아지고 그 안에서 보물찾기 하듯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과연 독서의 엄청난 매력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모르는 작가가 많이 있고 그래서 알고 싶은 세계가 무수히 널려 있습니다. 희망적이네요. 

이 책 역시 새로 찾아낸 보물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작가, 정세랑의 새 소설. 기대하지 않을 수 있나요? 

'형광빛 나는 칼국수를 먹은 삼남매에게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다' 이것 참 매력적이지 않나요? 표지를 장식한 저 손톱깎이와 열쇠 등도 궁금해지고요. 재치있고 유쾌한 느낌이 벌써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이런 소설이 꼭 읽고 싶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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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밤 ㅣ 창비세계문학 39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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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어두침침한 오후에 드러누워 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알 수 없는 곳, 낯선 산장에 떨어진 주인공이 악몽 같은 순간을 보내는데 어떤 경계를 지나면 다시 산장에 떨어진 처음 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되돌려진 시간은 다시 시작된 순간순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고 앞서 했던 별 의미 없는 행위는 곧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습니다. 무의미한 것 같아 보이지만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반복과 환상에 저는 두통을 느꼈었습니다. 만약 그보다 먼저 이 작가, 훌리오 꼬르따사르를 만났다면 혼란이 좀 덜했을까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처럼, 규칙이 있는 것 같기도 혹은 완전히 불규칙한 것 같기도 한 작품들이 몰려옵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와 타자가 끝없이 교차되는 이야기이자 나와 타자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이야기입니다. 정제되고 잘 짜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는 혼란과 몰이해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경이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네요. 


만일 누군가에게 "좋은 건 알았어. 그래서, 대강 무슨 줄거리야?"라고 질문 받는다면 분명 쉽게 답하지 못할 겁니다. 사진 속 인물들이 이야기를 하고(<악마의 침>), 짐승이 화자로 변모(혹은 그 반대)하는(<아숄로뜰>) 이야기, 소설을 읽던 주인공이 어느 새 소설의 일부가 되는 이야기(<맞물린 공원>)들이니까요. 이 시점에서 띠지에 실린 문장,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는."을 읽어보게 됩니다(뒤에 언급할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의 한 구절입니다). 민망하긴 하지만 바로 이 문장이 소설을 접한 제 느낌과 무척 흡사하네요. 

그 중에서도 역시 <맞물린 공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압도적으로 짧습니다. 이렇게 짧은 단편을 읽어본 기억조차 없습니다. 단 두 쪽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니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한쪽에 곁눈으로 보이는 커다란 공백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짧단 말이냐? 하지만 소설이 끝나면 이해하게 됩니다. 이 두 쪽 안에 완벽하게 순환하는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요. 소설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한줄 한줄 읽어감에 따라 주변 현실이 산산조각 나는 야릇한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69쪽, <맞물린 공원>)"는데 과연 제가 그랬습니다. 작가는 이 문장을 쓰면서 그런 희열을 맛보는 독자가 자신의 탄생 100년이 되는 시점,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여기 한국에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앞서 '나와 타자가 끝없이 교차되는 이야기이자 나와 타자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이야기'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는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을 들어 설명하고 싶습니다. 저는 작가가 이 단편으로 본인이 지향하는 작품세계를 설명한 게 아닐까 하고까지 생각하는데요. 


소모사의 이야기로는 시공간을 철폐하는 방법은 상황과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집요하게 접근하다보면 언젠가는 초기 조각상과 자신이 동일해질 것인데, 이것은 중첩과 같은 이중성이 아니라 원초적인 접촉, 즉 합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79쪽,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 
우연히 어느 섬에서 발견한 유물과 두 친구의 이야기예요. 모랑은 유물을 발견한 이후 소모사의 변화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소모사는 유물을 통해 자신이 과거에 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고요. 끝내 모랑의 피를 바쳐 과거와 접촉하려고 합니다. '원초적인 접촉, 즉 합일'을 기원하는 것일 테죠.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진짜 이야기는 소모사의 실패와 함께 시작됩니다. 소모사의 광기가 그대로 모랑에게 옮겨간 듯 모랑은 도끼를 쥐고 문 뒤에 숨어 도끼날을 핥습니다. 이제 모랑이냐 소모사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집요한 광기와 피만 남았고 이야기는 끝나니까요.  


이야기가 지나치게 불친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하고 더욱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무수히 많은 상징과 비유가 오히려 독자를 자유롭게 만들어줘요. 소설을 읽는 시간, 장소, 각자의 처지에 따라 제각각 다른 이야기가 될 겁니다. 백 명이 읽으면 백 가지 이야기로 기억되겠지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주변과 나누고 싶어지나 봅니다. 


마침 크리스마스에 환상적인 세상에서 신나게 놀다오니 드물게 즐겁습니다. 아마 두고두고 들춰볼 책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습관이 된 것입니다. 앙드레, 습관이란 리듬이 구체화된 형식입니다. 리듬이 우리 삶을 도와주고 받는 요금입니다. -24~25쪽,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아숄로뜰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조용한 모습에 반했다. 무심한 부동성으로 시간과 공간을 철폐하려는 아숄로뜰의 은밀한 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92쪽, <아숄로뜰>


나는 보는 것이 무언지 안다. 내가 무언가를 안다면 말이다. 보는 것은 거짓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우리를 우리 바깥으로 무작정 내던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146쪽, <악마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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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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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빚 권하는 사회'입니다. 부채 부담은 세대 불문이어서 대학생은 학자금을 대출받고요,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은 전세 대출을 받습니다. 그들은 다시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게 되지요. 이 대출의 굴레는 중년기, 노년기에도 여전합니다. 국가는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대출 금리를 점점 낮추고 더 많은 대출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지금이 내 집 마련을 위한 최적의 시기라고 유혹합니다. 하루 커피 한 잔 값이면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다는 광고가 지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군요. 가용 범위 내에서만 소비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빚을 내 소비하는 이런 행태 역시, 전혀 낯설지 않아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죽을 껴안고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파티 하는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폭죽이 위험한 것도 알고요, 할 수만 있다면 폭죽을 넘기고 싶기도 합니다. 다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불을 꺼야하는지 알 수 없을 뿐이지요. 


한참 '하우스 푸어'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던 적이 있었죠? 한쪽에서는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과도하게 빚을 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손가락질 했고, 한쪽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빚을 구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사람들의 욕심을 탓하는 쪽이었습니다. 집을 투기 대상으로 바라보고 갚을 능력도 안 되면서 부채를 안고 집을 산 사람들에 대해 먼저 잘못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막연히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고 사회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집을 산 결과이므로 그 사람들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90쪽 


그런데 말입니다. <빚으로 지은 집>에서 경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가계 부채 문제는 가계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 개의 섬 대목이요. 함께 읽어볼까요?  

'한 경제가 채무자 섬과 채권자 섬,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85쪽)' 생각해 봅시다. 이름 그대로 한쪽은 빚이 많고 한쪽은 빚이 전혀 없어요. 두 섬이 '자동차와 이발 서비스 두 가지 상품을 소비(86쪽)'한다고 가정하고요. 이발 서비스는 서로의 섬 간 거래가 자유롭지 않고 자동차는 거래가 자유롭다고 칩니다. 

어느 날 빚이 많은 섬(채무자 섬)의 집값이 폭락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자동차 판매와 이발 서비스 수요가 떨어지겠지요? 이발사 임금도 떨어지겠고요. 이들은 임금을 더 주는 자동차 산업에서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인력 공급이 많아지니 자동차 산업의 임금 수준도 떨어지네요. 그렇게 해서 자동차는 더 싼 가격에 생산, 판매 됩니다. 자, 위의 가정 하나, 자동차는 각 섬 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떠올려봅시다. 빚이 전혀 없는 섬(채권자 섬)에 싼 값의 자동차가 넘어가요. 그에 대응하기 위해 채권자 섬의 자동차 값도 떨어지네요. 그러기 위해서 임금도 떨어뜨리고요. 

경제는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놀랍도록 유기적인 것이 또 경제입니다. 채권자 섬의 임금이 하락한 이유가 채무자 섬의 경제 불황에서 시작했던 것처럼요. 마치 나비효과 같네요. 이런 상황에서 가계 부채를 해당 가계만의 문제로, 그들의 어리석임이나 과도한 욕심으로 치부해도 좋은 걸까요? 

 

더욱이 빚이라는 것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돈 많은 사람들,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의 금융 자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행의 자산은 곧 그들의 자산이지요. 집값이 떨어졌을 때 친절한 얼굴로 대출을 해주었던 은행들은 냉정한 태도로 돌변해 채무자가 갚지 못하는 대출금 대신 채무자의 자산, 얼마 되지 않는 자산, 거의 유일한 자산을 가져갑니다. 은행은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 구조지요. '저소득층의 부채는 고소득층의 자산(39쪽)'입니다. 사람들이 빚을 질수록 부의 불평등은 심화됩니다. 

 
집값의 폭락은 빚을 지고 있는 가난한 주택 소유자들의 순자산을 허공에 날려 버리면서 부의 불평등을 증폭시켰다. -106쪽 
보험과 비교를 하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보험이 개인의 위험을 더 넓은 조직이 공동으로 준비, 부담하려는 것이라면 빚은 더 넓은 조직이 공동으로 개인의 자산을 위협하는 것이니까요. 


빚은 보험과 정반대로 위험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빚은 주택 소유와 관련된 위험을 분산시키기는커녕 그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위험을 전가시킨다. -51쪽 


이 책은 미국의 사례를 들어 가계 부채가 위험한 이유와 구조적인 흐름을 살피고 있지만 한국의 사례와 많은 부분 일치합니다. 경제 부양책으로 나온 부동산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지 감이 안 온다, 하는 분들은 이 책을 먼저 읽으셔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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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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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둘기가 무섭습니다. 비슷한 크기와 모습의 다른 새에 대해서도 막연한 불안함이 있어요. 까치나 까마귀 같은.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비둘기입니다. 이 공포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어요. 다만 스무 살 즈음에 본 히치콕의 영화 '새'에서 공포의 실체를 엿보긴 했습니다. 저 살집 좋고 두려움 없고 공격적으로만 보이는 생물이 반드시 떼로 달려들어 제 얼굴(특별히 눈 위주로)을 쪼아댈 것 같은 그런 기분. 비명은 자동 발사고요. 가던 길목에 그 새들이 보이면 기꺼이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합니다. 돌아간 길에 또 그 새들이 있어 좌절한 경험도 한두 번이 아니지요. 불행히도 이 도시에 비둘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 탓에 종종 주변에 피해를 주곤 합니다만 그걸 잘 알면서도 또 괴성을 지르고 도망가기 바쁩니다. 이런 저도 괴로워요. 제 뜻과 다른 반사적인 반응이니까요. 공포는 극복해야 할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아직 제게는 극복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그저 최대한, 가능한 저 멀리 피하고만 싶은 기피대상일 뿐입니다. 

 

어쩌면 무섭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더 무섭게 만들어서 무서움이 점점 증폭되는 것도 같은데...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분석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요. 공포에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면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다분히 은유적이고 감성적인 영역이잖아요. 공포라는 게. 그래서일까요. 공포의 영역에 자리하는 문학들이 이리도 많은 것은. 

 

진지하게 글문을 열었지만 사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는 무척 발랄한 소설입니다. 톡톡 튀고 재기가 넘쳐요. 제목과 작가 이름(박'생강'), 그리고 표지와 쨍한 색감까지 힘차게 한 팀을 이룹니다. 게다가 출판사의 전략(?)이었을까요. 정확히 빼빼로가 두려워지는 시기에 빼빼로를 두려워하는 등장인물과 빼빼로를 둘러싼 무수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소설을 내놓았으니 말입니다. 

 

한 심리 상담사에게 미모의 고객이 찾아옵니다. 그녀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빼빼로 포비아'가 있다고 털어놓아요. 상담사는 그 사연(혹은 고객의 외모)에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강한 직업의식을 동원해 그 공포의 원인을 찾아보려 애씁니다. 편의점에 깔린 빼빼로를 관찰하고, 먹어보면서 말이에요. 그러나 당사자가 약속한 상담에 오지 않고, 갑자기 상담사에게 협박 전화를 걸어옵니다. 상황은 급변합니다. 상담사는 두려움을 안고 그를 만나러 갑니다...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있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같은 과 선후배 김만철과 최향기는 미지의 카페 사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에게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밝혀지지 않아야 비밀이라지만 이들은 그 비밀을 밝히고 싶습니다. 드디어 카페 사장과 단독으로 만나는 선배 만철. 사장이 데려간 곳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을 펼쳤다면 곧 당황하고 마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위의 두 이야기가 급작스럽게 게 전환됩니다. 처음 적응한 세계가 만철의 소설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소설보다 더 황당하고 기이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처음의 당황은 이어 오는 더 큰 당황에 묻혀버리고 이어 오는 더욱더 큰 당황이 독자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재미있어요. 두 발로 걷는 개, 첫사랑 누나, 외계인, 인류... 작가는 익숙한 것들을 비틀어 계속해서 낯설게 하고 그 안에 유머를 넣어 이 독특한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비극적이어도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무겁지 않아도 진지한 이야기가 가득한 소설 말이지요. 

 

소설가의 머릿속엔 저울이 있어야 한대요. 그리고 그 저울은 인간에게 이렇게 속삭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삶은 비극적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미리 포기할 만큼 암울한 건 아니다. -178쪽 

 

이제 보니 상반신과 하반신이 두 동강 나 있는 책의 표지 그림이 눈에 띄는군요. 읽을 때는 몰랐는걸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책을 읽어 보면 알게 됩니다. 여러모로 재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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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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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는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더 열심히 읽혀야 하는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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