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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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빚 권하는 사회'입니다. 부채 부담은 세대 불문이어서 대학생은 학자금을 대출받고요,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은 전세 대출을 받습니다. 그들은 다시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게 되지요. 이 대출의 굴레는 중년기, 노년기에도 여전합니다. 국가는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대출 금리를 점점 낮추고 더 많은 대출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지금이 내 집 마련을 위한 최적의 시기라고 유혹합니다. 하루 커피 한 잔 값이면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다는 광고가 지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군요. 가용 범위 내에서만 소비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빚을 내 소비하는 이런 행태 역시, 전혀 낯설지 않아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죽을 껴안고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파티 하는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폭죽이 위험한 것도 알고요, 할 수만 있다면 폭죽을 넘기고 싶기도 합니다. 다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불을 꺼야하는지 알 수 없을 뿐이지요. 


한참 '하우스 푸어'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던 적이 있었죠? 한쪽에서는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과도하게 빚을 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손가락질 했고, 한쪽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빚을 구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사람들의 욕심을 탓하는 쪽이었습니다. 집을 투기 대상으로 바라보고 갚을 능력도 안 되면서 부채를 안고 집을 산 사람들에 대해 먼저 잘못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막연히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고 사회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집을 산 결과이므로 그 사람들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90쪽 


그런데 말입니다. <빚으로 지은 집>에서 경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가계 부채 문제는 가계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 개의 섬 대목이요. 함께 읽어볼까요?  

'한 경제가 채무자 섬과 채권자 섬,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85쪽)' 생각해 봅시다. 이름 그대로 한쪽은 빚이 많고 한쪽은 빚이 전혀 없어요. 두 섬이 '자동차와 이발 서비스 두 가지 상품을 소비(86쪽)'한다고 가정하고요. 이발 서비스는 서로의 섬 간 거래가 자유롭지 않고 자동차는 거래가 자유롭다고 칩니다. 

어느 날 빚이 많은 섬(채무자 섬)의 집값이 폭락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자동차 판매와 이발 서비스 수요가 떨어지겠지요? 이발사 임금도 떨어지겠고요. 이들은 임금을 더 주는 자동차 산업에서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인력 공급이 많아지니 자동차 산업의 임금 수준도 떨어지네요. 그렇게 해서 자동차는 더 싼 가격에 생산, 판매 됩니다. 자, 위의 가정 하나, 자동차는 각 섬 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떠올려봅시다. 빚이 전혀 없는 섬(채권자 섬)에 싼 값의 자동차가 넘어가요. 그에 대응하기 위해 채권자 섬의 자동차 값도 떨어지네요. 그러기 위해서 임금도 떨어뜨리고요. 

경제는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놀랍도록 유기적인 것이 또 경제입니다. 채권자 섬의 임금이 하락한 이유가 채무자 섬의 경제 불황에서 시작했던 것처럼요. 마치 나비효과 같네요. 이런 상황에서 가계 부채를 해당 가계만의 문제로, 그들의 어리석임이나 과도한 욕심으로 치부해도 좋은 걸까요? 

 

더욱이 빚이라는 것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돈 많은 사람들,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의 금융 자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행의 자산은 곧 그들의 자산이지요. 집값이 떨어졌을 때 친절한 얼굴로 대출을 해주었던 은행들은 냉정한 태도로 돌변해 채무자가 갚지 못하는 대출금 대신 채무자의 자산, 얼마 되지 않는 자산, 거의 유일한 자산을 가져갑니다. 은행은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 구조지요. '저소득층의 부채는 고소득층의 자산(39쪽)'입니다. 사람들이 빚을 질수록 부의 불평등은 심화됩니다. 

 
집값의 폭락은 빚을 지고 있는 가난한 주택 소유자들의 순자산을 허공에 날려 버리면서 부의 불평등을 증폭시켰다. -106쪽 
보험과 비교를 하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보험이 개인의 위험을 더 넓은 조직이 공동으로 준비, 부담하려는 것이라면 빚은 더 넓은 조직이 공동으로 개인의 자산을 위협하는 것이니까요. 


빚은 보험과 정반대로 위험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빚은 주택 소유와 관련된 위험을 분산시키기는커녕 그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위험을 전가시킨다. -51쪽 


이 책은 미국의 사례를 들어 가계 부채가 위험한 이유와 구조적인 흐름을 살피고 있지만 한국의 사례와 많은 부분 일치합니다. 경제 부양책으로 나온 부동산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지 감이 안 온다, 하는 분들은 이 책을 먼저 읽으셔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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