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송인규 지음 / IVP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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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를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자기 존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자기 존재의 필요성과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면 극단적으로 갔을 경우 이 세상에서 살 의지를 잃게 된다. 따라서 자아 인식, 곧 자기 정체성의 확립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매우 소홀히 한다. 자기 존재에 대해 막연하게만 인식할 뿐 그것을 진지하게 고민 해 본 이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 정체성의 확립은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달라진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진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르게 확립해야 한다.   

 이 책은 단순히 인간으로서의 자아 확립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아 확립을 돕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 알려 준다.   

 내용은 총 4부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자아에 대해, 2부에서는 자아와 자아상, 자기 평가 등에 대해 다룬다. 3부에서는 바울이 자기 평가를 다루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평가를 다룬다. 마지막 4부에서는 자아 확립 후 자기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어두운 터널 밖으로 나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하나의 모델이다. 

 책이 얇기 때문에 자아와 그것의 확립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아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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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룽엔의 반지 -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된 판타지의 고전
볼프강 홀바인, 토르스텐 데비 지음, 이미옥 옮김 / 예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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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벨룽겐의 반지(전설)는 1200년경 독일어로 씌어진 서사시이다. 북유럽 신화의 지크프리트의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다. 그것을 1800년 대에 바그너가 각색하여 니벨룽겐의 노래라는 오페라를 탄생시켰다. 니벨룽겐의 반지는 수년 전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바 있는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에 모티브를 제공 했다.

 

 이 책 니벨룽엔의 반지는 앞서 말한 니벨룽겐의 반지를 독일의 작가이자 판타지의 거장인 홀바인에 의해 재창조된 작품이다. 내용은 어지러운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지그프리트, 군터, 브룬힐데, 크림힐트, 이 네 명의 남녀의 사랑과 배신, 복수와 마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서는 종래의 서사시를 재해석, 재창조 하였다. 인물의 심리 묘사가 두드러지고, 개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완벽한 영웅들이 아니라 단지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모습이 엿보인다. 사건이 원작 서사시와는 달리 좀 더 현실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과장과 허구를 최대한 뺀 느낌이다.
 반대로 본다면 신화적 색채가 지나치게 제거 되었다. 물론 용과 니벨룽족이 여전히 등장하지만 그 존재들에 대한 고유성이 많이 빛을 잃었다. 인물과 그 심리 묘사에 그리고 현실성에 중점을 둔 나머지 원작의 색을 상당히 많이 잃어 버렸다. 따라서 재창조 되었다기 보다 별개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그러한 점이 참으로 아쉽다.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없느니만 못하다. 사랑 또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나친 사랑은 집착을 불러 일으키고, 집착은 결국 관계의 파멸을 가져온다. 남녀 간에 사랑, 부모 자식 간에 사랑, 형제 간에 사랑, 친구 간에 사랑. 모두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 서로 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선을 넘어서면 독이 된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칭송 받고 있지만 동시에 복수와 저주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다. 사랑을 이렇게 사용하면 아름다운 것이 되고, 저렇게 사용하면 저주가 된다. 사랑은 독과 약이라는 양 날을 가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약으로 사용하다가 순식 간에 독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도 사랑은 여전히 아름답다. 사랑 그 자체는 순결하고, 고귀하다. 사랑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것을 움켜쥔 이의 탐욕이 문제를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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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신학 개요 -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 1
한국칼빈학회 지음 / 두란노아카데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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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존 칼빈은 종교개혁으로 유명한 마틴 루터와 츠빙글리에 이어 등장한 종교개혁가이다. 칼빈은 루터와 츠빙글리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신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사역을 한다.
 
칼빈 신학의 정수는 그가 남긴 세기의 걸작 기독교 강요에 잘 나타나 있다. 기독교 강요는 1536년 초판이 발간된 이래 20년 동안 수정, 증보되어 총 네 권으로 1559년 최종판을 발간하게 된다. 그 후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으며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칼빈 신학 개요'는 칼빈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간된 책이다. 칼빈 탄생을 기념하여 본 책과 더불어 '칼빈 그후 500년'이라는 책이 함께 발간 되었다. 두 책의 특징은 칼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칼빈 전공자들의 연구 자료를, 칼빈 신학의 주요 요체를 한데 모았다는 것이다. 전공자들의 글을 모았기에 확실히 전문성이 있다. 꽉 짜서 잘 숙성 시킨 맛 좋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의 추천사와 광고 카피에 나온 바와 같이 두 책은 칼빈 학습의 유익한 길잡이요, 칼빈에 대한 교과서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칼빈에 대한 연구와 자료의 발표는 외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그 주요 원인은 일제 강점기와 6 ·25전쟁 등으로 인한 어수선한 시국 때문이었다. 6. 25 이후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발전을 보이긴 했지만 그 때에는 교회 성장이 시급하였기 때문에 칼빈은 물론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대한 연구가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국가 경제 및 사회가 안정세와 함께 교회 또한 안정을 보임에 따라 칼빈에 대한 연구물이 속속 발표 되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외국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고, 더욱이 번역 자료가 아닌 국내 학자에 독자적 작품은 별로 없다. 따라서 칼빈에 대한 연구는 걸음마 단계 혹은 걸음마를 막 뗀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발간된 두 책은 참으로 기념비적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칼빈에 대한 더욱 활발한 연구가 진행 되고, 심도 있는 연구서가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칼빈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종교개혁가 중 한 사람으로서 종교개혁의 시발자인 루터보다 한 세기 뒤에 태어난 사람이다. 물론 세기적 구분으로는 그렇지만 시대적으로는 동시대 사람이다. 비록 종교개혁의 후발주자였지만 그는 루터 못지않게 개신교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 그의 가르침은 개혁주의교회를 탄생시킨 것은 물론 교회법과 여러 신앙고백서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의 설교와 작품이 그 가치를 뒤늦게 인정을 받아 많은 양이 소실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신학과 사상의 결정체인 '기독교 강요'가 우리에게 온전히 전해지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120 여년에 불과하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역사이지만 나라의 많은 변란으로 인하여 개신교의 안정세는 뒤늦게 찾아왔다. 따라서 신학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는 늦게 시작 되었다. 그로 인해 칼빈과 같이 내놓을 만한 세계적 목회자 혹은 학자는 아직 없다. 물론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세계 교회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이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평양 대부흥과 60 ~ 80년대를 통해 한국에 큰 은혜를 주셨지만 세계를 뒤엎고, 정화할 만한 큰 인물은 아직 주시지 않았다. 그분께서 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위한 한국 교회의 헌신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현실에 서운함이 든다. 개인적인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교회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 할 그리스도의 종이 탄생하길 소망한다. 때를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주의 종을 주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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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의 장소 - 오스왈드 챔버스의 그리스도가 이끄는 삶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3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엮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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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의 도움은 어디서 오는가? 그야 당연히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시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돌려 그것으로부터 도움을 얻는다. 물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해서도 인생의 도움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도움이 아니다. 근본을 해결하는 도움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인 도움일 뿐이다. 미봉책에 불과하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유일한 도움이시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영국의 목사로 1906년부터 1910년까지 미국, 영국, 일본 등을 순회하며 성경을 가르치다가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소천 하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주님은 나의 최고봉'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으며 기독교의 고전 중에 고전이 되었다.

 이번에 번역된 '도움의 장소'는 '토기장이 고전시리즈 오스왈드 챔버스' 중 세 번째 작품이다. 토기장이에서 번역된 오스왈드 챔버스의 책은 이 책과 더불어 '산상수훈'과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다. 그 중 후자는 앞서 말했듯이 국내외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끈 바가 있다. 그리고 전자는 그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내용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 못지않게 깊은 지성과 영성이 있다. '도움의 장소' 또한 역시나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도움의 장소'는 신앙의 본질 중 복음의 능력과 영적 지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오스왈드의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여 읽는 이에게 큰 도전과 자극을 준다. 총 6챕터에 담긴 메시지 하나하나가 묵상거리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명료하고, 깊이가 있다. 그래서 영적 지식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부터 도움을 구한다. 다른 것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분명히 경험 했다면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선명한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 했다면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모순되게도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했어도 인간은 죄로 가득하여 그분의 능력을 금세 잊고만다. 곧 또다시 다른 것에 눈을 돌린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다."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이 우리의 도움은 오직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로만 온다. 세상이 주는 도움은 거짓 도움이다. 혹 좋아보일지라도 겉만 번드르르한 모조품이다. 하나님의 도움만이 참된 도움이요, 우리를 문제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능력이 있다. 거짓된 것에 속지 마라. 오직 하나님께만 나아가 참된 도움을 얻으라. 그것이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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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여,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라 - <교사여, 일어나라> 실천편
최윤식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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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 개신교인 수는 1천만 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통계에 의한 결과가 아님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찌 되었든 분명한 것은 개신교인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영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장년 교인 수의 감소와 더불어 주일학교 어린이 수도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는 곧 미래이다. 미래를 떠받칠 자원의 수가 줄고 있다는 사실은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예견한다. 

 주일학교에 어린이가 줄고 있는 원인은 먼저 사회적인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 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6.25 동란 종결 뒤 전후 복구 과정 중 베이비붐 시대를 맞이했다. 그 후 사회는 점차 안정되고, 고속 성장을 기록함에 따라 인구도 함께 증가하여 80년대에는 남아선호 사상을 없애고, 인구 증가도 억제하기 위해 "아들, 딸 구분하지 말고 둘만 낳자" 라는 구호를 외쳤다.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양육비와 교육비 증가로 자녀를 1명만 두는 가정이 늘어났다. 급기야 현재는 그 1명마저도 늦게 낳거나 낳기를 망설이는 시대가 되었다. 교회는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그와 맞물려 주일학교 어린이 수가 줄게 되었다. 그 외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대형 교회를 제외한 중소 교회는 교사 수의 부족하고, 시스템이 열악하여 주일학교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따라서 주일학교는 스스로 혹은 전도에 의해 찾아온 아이들을 붙잡는데 실패했다. 그나마 출석하던 아이들마저 같은 이유로 놓치고 마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문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어린 양, 미래의 자원을 계속 잃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먼저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교사의 지극한 보살핌과 깊은 관심이 요구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일학교 시스템이 받쳐 주어야 한다. 그러나 중소 교회는 교사를 세워 가르치고, 교육 시스템을 개발 할 여유가 없다. 헌신 할 교사의 수도 부족한데 그러한 것들에 어떻게 신경을 쓴다는 말인가? 따라서 그것을 돕고자 나온 책이 바로 '교사여,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라!'이다.

  

 이 책은 자력으로 새 시스템을 개발할 수 없는 중소 교회의 주일학교를 돕기 위해 출간 되었다. 본서는 저자가 20년 간 주일학교 사역을 해오며 깨닫고, 개발한 결정체를 담고 있다. 교회 교육을 다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방법을 코치한다. 주요 내용은 비전의 중요성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핵심 사항은 저자가 예수님의 코칭 기술을 현대화, 그리고 심화 시킨 10단계이다. 그 주제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르심
 비전 자극비전 코딩
 비전 스캐닝
 비전 디자인
 비전 이퀄라이징
 비전 훈련
 비전 재인식
 비전 네트워킹
 비전 재생산 

 저자의 경험과 연구를 집적한 결과물답게 구체적이고, 실용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러한 기대에 부합할지는, 다시 말해 현장에서 그 효과를 발휘할지는 그것을 사역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하는 교사들의 열의와 역량에 달려 있다. 우선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을 각자의 사역 현장에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현장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일학교 교육 시스템이 그것을 적용하기에 적합한지 살펴본 후 제시한 방법을 좀 더 분석하여 적용하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비천 코칭, 즉 아이들 개개인을 세우는 데에 국한 된다는 것이다. 교회 교육의 정상화와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다. 바꿔 말하면 교회 교육 시스템 설계 혹은 정비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전체 시스템이 그것을 받쳐 주지 못한다면 한 사람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책의 방법으로는 저자의 의도인 '자력으로 새 시스템을 개발할 수 없는 중소 교회의 주일학교를 돕겠다는 목적'을 반밖에 이룰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일학교는 매우 중요하다. 거기서 장차 교회의 기둥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교회가 현재의 기둥인 장년에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 바로 다음 기둥인 청년들에게 마저도 투자를 않는 교회가 수두룩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정책이 근시안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교회마저 그러하니 이루 말 할 수 없는 애통함이 밀려온다. 사회의 구습과 잘못된 시스템을 교회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의 사교육 현장과 같이 당장의 결과만 좇는 투자는 지양 되어야 한다. 사회든 교회든 교육에 있어 백년지대개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든 교육이 가장 등한시 되니 우리의 현실을 개혁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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