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르리라 - 작은 교회 희망의 씨앗
이태형 지음 / 좋은생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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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교회는 크고 작은 교회가 있다. 여기서 크고 작음은 두 가지 관점에서의 크기이다. 먼저 외적 크기로 예배당의 크고 작음이다. 다음으로는 내적 크기로 교회의 질적 수준을 말한다. 한국에는 정말 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중 외적으로 큰 교회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회는 작은 교회이다. 그런데 외적 크기와 내적 크기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외적으로 큰 교회라도 내적으로는 작을 수 있다. 외적으로는 작더라도 내적으로는 클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자본주의와 성과주의 등에 빠져 큰 교회가 좋은 교회, 성공한 교회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통탄 할 일이다. 교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부정적인 관점에서의 세속주의에 빠졌다.  

 과연 교회에 성공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 누가 감히 하나님을 위한 일에 성공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는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 하나님 품에 안겨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말을 듣지 못하면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크면 하나님의 일을 다 한 것으로 착각하고, 자만에 빠져 자신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성공 했다며 그것에 안주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가장 먼저는 목회자들의 잘못이다. 그들 스스로 부패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을 주입시켜 교회를 부패시켰다. 물론 이것은 모든 교회가 그렇다는 일반화가 아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것은 많은 교회가 그렇다. 

 한국 교회의 대부분은 작은 교회이다. 그러나 큰 교회가 워낙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에 작은 교회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작은 교회는 별 쓸모가 없어 보인다. 힘이 없어 보인다. 이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생각이다. 본질을 들여다 보지 못한 생각이다. 한국의 수많은 작은 교회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 주신 일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 큰 교회의 손길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 작은 교회가 포진하여 자신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  

 

  여기 열 개의 교회가 있다. 모두 작은 교회이다. 작다고 말하는 것은 서두에서 말한 두 가지 중 외적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그 열 교회는 작은 교회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작은 교회가 겪는 어려움을 보여 준다. 작은 교회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 준다. 외적으로는 별로 보잘 것 없는 교회들이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작은 교회는 쓸모 없는 교회로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 나온 교회는 작은 교회의 모범이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믿으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외적으로는 별로 보잘 것 없지만 내적으로는 참으로 야무지다. 외적으로 큰 교회 못지않게 큰 일을 감당하고 있다. 열 교회의 특징은 모두 섬김의 본을 잘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교인들끼리의 섬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섬김의 대상인 교회 밖 사람들에 대한 섬김을 말한다. 여기 작은 교회들은 자신의 손길과 능력이 닿는 지역 주민들을 모두 섬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그들을 섬긴다. 참으로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섬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모두 인내했고, 끝까지 섬겼다. 그렇기에 오늘의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아직 달려 갈 길이 멀지만 현재의 모습은 외적으로 큰 교회가 본받아야 할 모습임에는 분명하다.  

 작은 열 교회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목회자들이 모두 목회에만 전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 사례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돈을 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무튼 열 교회를 보고 있으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야 말로 참 교회가 아닌가 싶다. 크기에 상관 없이 그 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의 중심은 하나님이다. 하지만 그분을 제외한 구성원들만을 놓고 봤을 때 교회의 중심은 교인들이다. 그리고 그 교인들의 중심에는 목회자가 있다. 그것은 목회자가 바르지 못하면 교인들 또한 바르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교회의 외적 크기가 너무나 크다보면 한 목회자의 - 담임목사 - 손길이 모든 교인들에게 닿지 못하기에 목회자가 아무리 바르다 하더라도 모든 교인이 바르게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목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교회는 외적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 둘 중 어느 한 교회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큰 교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작은 교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적 크기이다.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바른지가 중요하다. 교회 내적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지, 서로 간에 교제와 양육 등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외적으로는 교인들 각각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있는지, 자신의 가정과 이웃을 잘 돌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 내적, 외적 모습 모두가 잘 이루어질 때 건강한 교회, 바른 교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목회자는 목회에만 전념한다. 기독교 일각에 것을 못 마땅하게 본다. 하지만 그것은 부족한 생각이다. 교회가 처한 상황과 역할에 따라 목회자가 목회에만 전념해야 하는지 개인적인 일을 목회와 병행해야 하는지가 결정된다. 그러한 여건과 역할을 무시한 채 무조건 모든 목회자는 목회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편협한 생각은 바르지 않다. 작은 교회임에도 목회자가 목회를 핑계로 교회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자립하지 못한다. 목회자가 스스로 자신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벌면 교회는 자립할 수 있다. 그러면 가장 좋은 점은 목회자는 소신 있는 목회를 할 수 있다. 교인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또한 교회는 목회자에게 들어가는 사례비를 아껴 다른 곳에 재정을 사용할 수 있어 좋다. 그렇다고 현실과는 반대로 모든 목회자가 자립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베드로와 같이 목회에 전념해야 할 목회자는 목회에 전념하고, 그렇지 못한 목회자는 바울과 같이 자립하여 목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교회의 사정에 따라 목회자의 상황을 결정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상당히 많은 욕을 먹고 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성과주의, 세속주의에 물들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길로 가고 있다. 물론 또한 일반화 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교회가 있고, 그렇지 않은 교회가 더 많다. 하지만 그런 교회가 세상에 너무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 각성의 외침이 있기 때문이다. 자정을 요구하고 있기에 아직은 절망적이지 않다.  

 부디 한국 교회가, 정확하게는 목회자들이 정신을 차려 하나님께서 교회에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 했으면 좋겠다. 모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날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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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인생 수업 - 꿈을 축복으로 승화시킨 하나님의 꿈쟁이
원용일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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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성경의 많은 인물들은 매우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그것을 거꾸로 보면 그들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살았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하나님 믿고 살면 편히 살지 못한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러나 그것은 한 면만을 본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제대로 된 믿음으로 산 성경 인물들의 삶을 크게 보면 그들은 결국 축복을 받았다. 여기서 축복이란 만사형통을 뚯하기도 하지만 오직 그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만사형통보다 더 큰 축복, 생을 마감한 후 결국 하나님 품에 안겼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성경 인물들은 다 주목 할 만하지만 특히 여기서 주목 할 인물은 요셉이다. 꿈의 사람 요셉이라 불리기도 하는 그는 참으로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릴적 아버지의 편애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렸다. 애굽의 군대 장관 보디발의 노예로 팔렸지만 집 안에 모든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모함으로 간신히 죽음은 면하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풀려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채 오랜 시간을 보내다 놀랍게도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그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매우 놀라운 신분의 급상승을 이루게 되었다. 이처럼 기복이 심한 인생을 산 인물이 있을까? 그와 같이 급격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여러 번 경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일을 어느 누가 견뎌낼 수 있을까? 아마 백이면 백 견뎌내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요셉만은 예외였다! 그의 그 놀라운 인내력은 어디서 얻은 것일까?  

 요셉은 꿈의 사람이라고 불린다. 형들에게 꿈꾸는 사람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꿈쟁이, 몽상가가 아니었다. 꿈을 현실로 이룬 진정한 꿈쟁이었다. 그가 꿈을 이룬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매사에 최선을 다 했고, 지독한 인생 수업을 받았다. 그것을 모두 이겨냈기에 마침내 꿈을 이룬 것이다.  

 

 ’요셉의 인생수업’ 

 이 책을 통해 요셉이 어떤 인생 수업을 받았고, 그가 겪은 어려움들을 어떻게 이겨 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요셉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인생 수업은 ’갈등’, ’비전’, ’성실’, ’섭리’, ’태도’ 등 14가지이다. 요셉이 각각의 수업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준다. 비단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요셉의 인생 수업은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14가지의 수업을 통해 인생에서 겪는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지혜를 준다. 요셉과 함께 받는 그 수업으로 큰 도전과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 모르는 이는 이 책을 살펴 봄으로 부족한 것들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요셉은 신분적으로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평범한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참으로 대단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자신에게 닥친 인생의 어려움을 모두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형들에게 버려져 노예로 팔렸고, 감옥에도 갇혔지만 그는 하나님을 신뢰 했다. 현재 상황에 낙담하고 가만히 있던 것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 빠지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여 주신 꿈을 이루어 주실 거라는 것을 끝까지 믿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인내하고, 노력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말이다. 성경에 써 있지는 않지만 그도 하나님을 원망 했을지 모른다. 절망에 신음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떨치고 기약할 수 없는 내일을 바라보며 자신의 현재에 충실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렸다. 그렇기에 그는 마침내 꿈을 현실로 이룬 놀라운 축복을 얻은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빠지든 좌절하면 안 된다.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처절해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한 준비를 하고 계신다. 그것을 믿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내면 마침내 그분이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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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인생에 많은 유익을 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습니다. 대개는 자신이 보고 싶은 책을 사서 읽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도서관 등에서 빌려 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무계획적으로 책을 읽을 것입니다. 여기서 무계획적이라는 말은 일련의 계획에 따른 책읽기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책 즉 관심 있는 저자, 현재 나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책 등을 선택하여 읽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썩 바람직한 책읽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책읽기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 정, 의에 만족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서 지란 지식을 말하고, 정이란 정신 혹은 감성을 말하며 의는 윤리를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겠습니다. 지식이란 자기계발 등 현재나 미래를 위한 지식 혹은 기술 향상을 위한 것입니다. 실용성 추구입니다. 감성이란 시나 소설 등을 통한 정신적 즐거움의 추구입니다. 윤리란 인격 성장을 통한 인간다움의 추구를 말합니다(원용일. 『요셉의 인생수업』p207-208 참고.). 그 세 가지를 고루 누리는 것이 균형 잡힌 책읽기이고, 바람직한 책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내적, 외적 만족과 발전을 이루어 현재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와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획성 없는 책읽기는 한쪽으로 편중된 책읽기를 하게 합니다. 그것은 결국 지성과 영성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합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물론 계획적이지 않은 책읽기를 하더라도 살아가는 데, 무엇보다 책을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왕 책을 읽을 거라면 좀 더 나은 방법을 통하여 더 큰 도움을 얻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쨌든 자신의 내적 성장과 외적 성장과 그것을 통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균형 잡힌 책읽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계획적인 책읽기가 필요합니다. 책을 계획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당연히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영역으로 큰 틀을 잡고, 각각의 영역에 세부 사항을 작성하면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책을 골라서 읽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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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박철수 지음 / 대장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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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마 많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곳, 피안의 세계로만 생각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만 맞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그리고 미래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천국으로도 번역이 되는데 그것은 유대적 문서인 마태복음에서 유래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였기에 유대인을 대상으로 썼던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 즉 Kingdom of God을 Kingdom of Heaven 이라는 말로 대체하여 사용한다. 그것이 천국으로 번역 되었다.    

  천국은 단지 죽어서만 가는 세계가 아니다. 그곳은 이미 이곳에 임한 세계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는 그 어느 곳이든 천국이다. 그렇기에 그곳은 저 너머의 세계도 되고, 바로 이 세계도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곧,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즉 하나님 나라는 저 너머의 세계인 것은 물론 이 세상과 나 자신인 것이다.   

 

  위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 하였다. 하지만 다음의 책에서는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 한다.   

  '하나님 나라' 

  이 책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총론이라고 할 수 있다. 초반부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부터 시작하여 그에 대한 신학적 설명을 한다. 그리고 중후반부에서는 현시대에 대한 대안으로써의 하나님 나라를 설명한다. 한 시대를 살면서 겪는 다양한 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말한다. 가난, 정치, 환경 등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야기 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아마 많은 이들이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 다시 말해서 천국에 대해 단지 죽어서 가는 장소적 개념을 가진 일종의 피안의 세계로 배우거나 생각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먼저 이야기 했듯이 반만 맞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반만 알고 있을까?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신학도는 물론이고, 평신도에게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평신도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겠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른 개념 정리와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므로 꼭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하나님 나라와 정치에 대한 설명 등 몇몇 부분에서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 책을 추천한다. 참고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생소한 사람은 마지막 장인 '요약과 평가'를 먼저 읽고, 본문을 읽을 것을 당부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이  하나님 나라, 천국이다.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저 너머의 세계라는 장소적 개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세상, 곧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 어디나 천국이다. 그 천국은 기뻐하는 자들의 세계이다. 여기에 그리고 내 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만 바라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반대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만 누리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되, 지금 여기 임한 나라에서는 그에 맞는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은 임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동시에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히는 데 전심전력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천국은 단지 인간이 만든 유토피아가 아니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 세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분의 나라이다. 분명한 현실이다. 천국에 대한 환상을 깨고, 그것을 바로 직시해야 한다. 천국에 대해 바로 알고, 누리며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현실을 보지 못한다면 망상에 빠져 장차 임할 좁은 천국의 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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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_jidong 2009-07-19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마지막을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상당히 방대한 말씀인지라 나무들에 가려 숲을 볼 수 없다는 느낌이 좀 들었어요. 지도를 먼저 보는게 현명합니다.
 
삭개오의 고백
E.K. 베일리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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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복음서에서 예수님 만나기를 무척 갈망 했던 이들을 여럿 볼 수 있다.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삭개오'이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다. 한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던 관리 중 가장 높은 이였다. 당시에는 세금을 통한 부정축재가 가능 했다. 삭개오가 세리장이었다는 것은 부당한 방법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 했을 거라는 걸 짐작하게 한다. 그의 이름의 뜻이 '의로운 사람', '순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름 값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눈에 띄는 이유는 그런 이력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에 대한 그의 마음과 태도 때문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키가 작았다. 게다가 사람이 많아서 예수님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그가 예수님을 보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병 고침을 받고 싶은 간절함이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한 호기심에 그분을 보려 했다. 예수님에 대한 삭개오의 관심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큰 부를 축적 했지만 마음에 만족을 누리지 못했고, 동족들의 멸시를 받아 그분으로 그러한 마음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었다고 말이다(톰슨 2 성경 주석, p128). 아무튼 그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고, 결국 근처에 있던 나무 위로 올라갔다.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다! 나무 위로 올라간 게 왜 놀라운 일일까? 그 행동은 물질적, 사회적 지위 등으로 인한 체면을 아랑곳 하지 않은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부당한 행동으로 주목 받는 이었는데 예수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나무 위로 올라갔을까? 결국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을 집으로 모시는 큰 영광과 새사람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다! 예수님과는 너무나 먼 삶을 살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단 한 번 만나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눈에 띄는 것이다.

 

 '삭개오의 고백'

 이 책은 위에서 이야기 한 삭개오를 묘사한 책이다. 예수님에 대한 삭개오의 갈망, 그분에 대한 고백을 담고 있다. 동화 형식으로 내용은 무척 짧다. 그래서 읽기 쉽다. 금세 읽을 수 있다. 내용은 비록 쉽고 짧지만 다 읽고 난 후 여운이 남는다. 잔향이 오래 간다.

 본문에서 삭개오가 예수님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왜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는지 묘사하고 있다. 여러 사건을 통해 커져만 가는 예수님에 대한 삭개오의 궁금증과 갈망을 보고 있으면 결말이 기다려진다. 책을 읽는 동안 삭개오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그러자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삭개오가 느꼈던 영적 갈증이 나 또한 느껴졌다. 예수님에 대한 궁금증과 갈망이 점점 크게 일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놀라운 감격이 일었다!

 이 책의 내용은 특이하다. 전체적인 내용은 복음서에 나온 삭개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삭개오가 겪는 사건들은 모두 성경에 나온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들을 한데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래서 참으로 특이하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다른 사건들을 하나로 이었기 때문에 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결정적으로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이 너무 싱겁게 끝나 버린다. 단순히 성경에 나온 이야기대로 그치고 만다. 이왕 픽션으로 하려 했으면 좀 더 이야기를 구성 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삭개오의 변화 되는 심경 묘사가 세밀하지 않아 아쉬웠다. 삭개오가 느끼는 감정 표현이 너무나 밋밋하고, 단순한 감탄이나 찬송시로 그칠 뿐이다. 그의 감정의 변화를 좀 더 세밀하게 그렸으면 감동이 더 컸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때문에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뜻 읽어보라고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삭개오에 대한 책이 없다시피 하기에 복음서에 나온 짤막한 구절보다는 그에 대해 조금 더 느끼고 싶은 이라면 한번 쯤 읽어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삭개오는 자신의 체면을 전혀 무시하고, 예수님을 보기 원했다. 그의 모습을 보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예수님을 얼마나 보기 원하나? 그분을 얼마나 갈망하나? 둘의 갈망의 이유가 무엇이든 삭개오와는 너무나 차이나는 내 모습에 부끄러움이 일었다. 삭개오는 구원 받지 못했기에, 반면 나는 이미 구원 받았기에 여유가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식어 버린 내 마음에 삭개오를 보며 다시 한 번 불을 지핀다! 예수님 목마릅니다! 당신을 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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