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의 재발견
제임스 패커 지음, 장인식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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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리스도인(이하 우리)이 이 세상을 살며 힘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아마도 전도와 성화가 아닐까 싶다. 전자의 경우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우리에게 하신 지상명령((마 28:19, 20)이기에 지킴이 마땅하다. 후자의 경우도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 명령(벧전 1:15, 16)이기에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가지 모두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있다. 전도에는 열심을 보이는 경우가 있으나 성화의 경우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많이 부족하다.
 오늘날 성화, 다시 말해서 거룩은 뒷방 신세로 전락했다. 한국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축복에만 매달리고 있다. 현세에서 복만 누리길 원한다. 그저 배부르고, 평안히 사는 게 최고의 축복이라 여기며 그것을 가장 크게 구하고 있다. 그들에게 거룩을 위한 열심은 보이지 않는다.

 

 '거룩의 재발견'

 

 그렇다면 거룩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본서에서 이것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학자인 제임스 패커이다. 그는 영국 성공회 사제로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25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스스로를 '개혁적 복음주의자'라 칭하는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성령을 아는 지식' 등을 통해 많은 이들의 신앙에 큰 깨달음과 도움을 주었다. 
 본서에서 패커는 거룩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거룩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거룩의 과정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그것을 추구해야 함을 강하게 역설한다. 그는 "우리는 스스로를 성화시키지 못한다"고 말한다. 거룩의 필수 조건으로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리를 분명히 의식하고 기도하며, 우리가 해야 할 작은 일 하나까지도 그분이 도와주셔야 가능하다고 믿는 태도"라고 말한다. 이러한 거룩함에는 두 측면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오늘날 '영성'과 '도덕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두 가지는 이렇다.

 

 "영성에는 신자들이 하나님과 교제할 때 사용되는 모든 요소와 수단 포함된다. 묵상, 기도, 예배, 자기 훈련, 은혜를 받기 위해 각종 수단을 사용하는 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 마음과 순결과 평화와 인내를 유지하는 일, 모든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찾고 섬기는 일, 그분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도덕성에는 하나님이 정한 다양한 기준의 윤곽을 잡는 일, 계시된 그분의 뜻을 확정하는 일, 하나님의 형상을 타고난 인간으로서 우리 안에서 드러아야 할 독특한 특성을 계발하고 보여주는 일 등이 포함된다."

 

 패커는 "도덕성이 결여되면 영성은 무너지고, 마찬가지로 영성이 결여되면 도덕성마저 무너진다"고 말한다. "두 기둥 중 어느 하나가 가라앉으면 나머지 하나도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거룩을 다리가 셋 달린 의자에 비유한다. 이 다리는 각각 '교리', '경험', '실천'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의자의 다리가 하나라도 없으면 의자는 제대로 서지 못한다. 한쪽 다리가 다른 두 다리보다 더 길거나 짧아도 균형을 잃어 충격을 주는 순간 곧 뒤집어진다. ... 이 셋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영적인 삶은 견고해지고 튼튼해진다."

 

 패커는 경건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 세 가지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균형이 없으면 바로 설 수 없다. 세 가지의 균형을 유지하며 자라갈 때 비로소 거룩을, 점진적 성화를 이루어 갈 수 있다.
 본인의 사견으로 자신을 '복음주의자'라 칭하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패커가 본문에서 그의 예정과 선택의 구원관에 대해 의문이 들게 하는 말을 하고(87p), 비성경적인 관상기도에 관대한 지지를 보이는 등 신비주의에 빠져 있는 리처드 포스터의 말을 인용한 점에 있어 그에게 물음표가 찍힌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거룩이란 무엇인지, 왜 거룩해져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거룩을 이루어 갈 수 있는지 등 거룩의 중요성과 방법을 깨닫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 100% 거룩하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온전히 거룩하시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100% 거룩 할 수 없다. 창조 이후 저지른 인간의 타락 때문이다.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죄에 빠지고, 더렵혀져다. 하나님의 교제가 끊어졌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교제가 다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우리가 거룩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거룩해질 수 있는 길과 가능성이 열렸다.
 우리는 거룩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거룩하시니 우리 또한 거룩해야 함이 당연하다. 그분과 온전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그분과 교제를 나눌 수 없다.
 거룩은 한 마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그분의 성품과 형상이 우리에게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이다.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바이다. 우리에게 거룩이 없다면 하나님의 자녀인지 의심해 보야 한다. 그것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지적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거룩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도 거룩하지 않고서는 그분과 교제를 나눌 수 없다. 오염된 우리가 어찌 순결한 그분과 마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따라서 모든 신자는 거룩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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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계획 - 칼빈주의 시리즈 3
벤자민 B.위필드 지음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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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 이후 인문주의가 발달하자 사람들의 초점은 이제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맞춰졌다. 세상의 지배자는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 부르짖으며 탈신본주의를 지향하기 시작 했다. 신을 중심으로 한 정치, 문화 등의 세계관은 이제 인간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자유, 평등, 박애로 대변되는 프랑스 혁명은 가히 인본주의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인간은 신권을 거부하고, - 물론 잘못된 신권 통치는 거부되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 인권을 존중하며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서 모든 것의 판별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 되자 구원관의 변화가 일어났다.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하나님에 의한 구원이라는 이타적인 구원관은 자력구원관으로 변화 되었다. 이제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 했다. 그러한 생각은 인간의 관심을 더 이상 내세, 영원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하였다. 인간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가 전부이기 때문에 이곳에 지상낙원을 구현하겠다는 열망이 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열망은 20세기 초 양차 대전으로 무참히 부서졌다.
 외부의 구원관의 변화보다 심각한 문제는 기독교 내에 산재해 있는 여러 구원관이다. 외부의 구원관은 기독교 구원관의 강력한 변증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 단 이것은 기독교 구원관의 통일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문제는 기독교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구원관이, 구원관의 불일치가 기독교 변증에 일정부분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구원의 계획'

 

 이 책의 저자는 벤자민 B. 워필드로 그는 철저한 칼빈주의 신학자이다. 워필드는 구 프린스턴 학파에 속하여 성경의 무오와 원죄, 예정, 제한 속죄론을 믿으며 다양한 저서와 서평 등을 통해 기독교 진리를 수호하고, 변증하는데 노력하였다.  
 워필드는 이 책에서 여러 기독교 분파의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며 비교한다. 가장 먼저 개념의 차이를 설명하고, 작정에 관한 주장들을 도표를 통해 상세히 구분, 소개한다. 이 도표에서 크게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로 구분한다. 여기서 초자연주의는 다시 복음주의와 사제주의로 나뉜다. 복음주의는 제한 구원론과 보편 구원론으로 갈라진다. 이러한 네 가지의, 제한 구원론과 보편 구원론, 사제주의와 자연주의 아래에 여러 분파들이 속한다. 본문에서는 이 구분들을 다음과 같은 큰 카테고리로 소개한다. 즉 자력 구원설, 사제주의, 보편 구원론, 칼빈주의로 말이다.
  먼저 자력 구원설, 다시 말해서 자연주의에는 알미니우스와 펠라기우스가 있는데 이들 중 특히 펠라기우스는 "구원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주장이다." 이는 "인간 의지가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다는 핵심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말 그대로 하나님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인간의 '자력 구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제주의에는 성공회, 로마교회, 희랍정교회가 속해 있다. 이들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고 선포 되지만 ... 구원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에 직접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역사하신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 조직, 특히 로마교회는 "... 인간들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모든 사역을 교회의 중재를 통하여 하신다 ..." 며 교회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교회의 중요성을 주장하다보니 그 안에 있는 사제들이 핵심 역할로 작용하여 막강한 권한과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보편 구원론에는 루터주의, 웨슬레주의, 순수 보편 구원론이 속해 있다. 이들은 위에 두 입장과 달리 - 칼빈주의 / 제한 구원론과 함께 - 개신교에 속하는데 "하나님이 죄인의 구원을 원하시되, 개개인의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차별이 없이 똑같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제한된 속죄로 택한 자들만 구원 받는 게 아니라 보편적 속죄를 통해 모든 자가 구원 받는다고 이야기 한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보다는 인간의 의지에 권한과 무게를 더 두고 있다.
 마지막 칼빈주의는 총 세 가지로 분류 된다. 철저한 제한 구원론에는 타락 전 선택설과 타락 후 선택설이 있고, 불친절한 제한 구원론에는 아미랄드주의(구속 후 선택설)가 있다. 저자는 제한 구원론을 "칼빈주의의 증표"라고 말한다. 제한 구원론자들은 "구원의 진행에 있어서 제한 구원론은, 이미 구원의 초자연주의와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의 직접성 가운데 주어져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의 자율"보다는 하나님의 구원과 사역, 즉 그분의 주권을 전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특기 할 만 한 것은 구속 후 선택설을 주장하는 아미랄드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선택의 작정이 논리상 구속의 작정 뒤로 미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칼빈주의자들의 가장 낮은 가능성 또는 가장 낮은 실제성의 범주에도 이르지 못"하고 "가장 쇠약한 칼빈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결론은 제 5장 칼빈주의의 마지막 구절에 나타나 있다.

 

 "세상의 구원은 (개인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주 그리스도 자신의 불가항력적인 능력 안에서 그의 유일한 사역이 되는 구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개인 구원이든 세상 구원이든, 구원을 믿을 보증을 가진 것은 칼빈주의자 하나뿐이다. 개인 구원과 세상 구원 모두는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달려 있다. 그 외에 다른 모든 근거는 무너지는 모래다."

 

  즉 이 책은 기독교의 다양한 구원관을 비교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실은 칼빈주의 구원관의 강력한 변증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한 마디로 칼빈주의만이 참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입장에서 본다면 이 주장은 상당히 배타적이고,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참진리를 알 수 없는데 어찌 칼빈주의만이 옳다고 할 수 있는냐는 반론이 제기 될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저자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종교이다. - 본인은 기독교를 종교라고 부르는 것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모든 것의 정점에 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이 계시기에 인간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 인간이 있기에 하나님이 계신 게 아니다. 칼빈주의는 이것을 고백하기 때문에, 본인 또한 이것에 도으이하기 때문에 칼빈주의를 지지하고, 지향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믿는 이들 조차 이 순서와 사실을 뒤바꾼다. 즉 인간이 없으면 하나님이 홀로 계신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인간의 의지와 자율을 하나님의 주권보다 주위에 둔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는 말씀은 없음에도 그리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어쨌든 이 책은 주로 칼빈주의를 중심으로 다른 구원관을 살펴보기 때문에 다른 고백을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내용이 다소 부당하게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비록 이 책은 칼빈주의를 강력히 변증하지만 다른 주장들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칼빈주의자 뿐만 아니라 다른 입장에 있는 이들도 참고 할 만할 것이다.
 
 근자에 이르러서는 보편 구원론 - 개신교에서의 보편 구원론이 아닌 다른 의미에서의 - 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다원주의 사상을 따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에만 구원과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과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신적 속성은 만물에 내재 되어 있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와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기독교 입장에서는 천인공노 할 노릇이다. 특히 칼빈주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이러한 구원에 관한 외부의 위협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사분오열 되어 서로 다른 구원관을 내세우고 있다. 외부의 위협을 연합하여 막으려 하기는커녕 집안싸움에 바쁘다. 지금은 집안싸움을 할 때가 아님에도 말이다. 기독교의 중심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그러한 입장차는 좀 더 좁혀 질 수 있을 텐데, 하나님보다 자꾸만 사람을 먼저 내세우는 기독교 내의 다른 주장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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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수업 - 성장과 도약을 선물하는 최고의 인생 교과서
도코 다케히사 지음, 박혜령 옮김 / 토네이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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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른 살이라는 나이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이다. 어디서는 어른 대접을 받고, 또 어디서는 젊은 사람 취급을 받는 어중간한 나이이다. 20대의 입장에서 서른은 조금 많아 보이고, 4,50대에서의 서른은 조금 적어 보인다. 서른이 느끼는 서른은 남녀 간에 차이가 있다. 남자의 경우 서른이 되면 이제 나름 어른 - 만 20세가 되면 성인으로 보는 법적 기준에서의 어른이 아니라 나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도덕적 기준에서의 어른 - 으로서 행세를 할 수 있게 된다. 어딜 가도 어른으로서의 대접을 제법 받는다. 반면 여자의 경우 서른이 되면 속된 말로 - 어디까지나 외적 기준에서 - 퇴물 취급 받는다. 여자가 외적으로 완숙하는 시기는 스물세네 살이므로 여자 나이 서른이면 - 최소한 외모만 놓고 봤을 때 - 이제 늙었다고 본다. 따라서 서른은 남녀에게 극명한 차이를 가져온다. 서른에 대한 이러한 남녀의 인식 차이는 사회적으로 느끼는 면이다. 인생의 한 부분으로써의 서른, 그것을 시기적으로 본다면 남녀 모두 동일하다. 그것은 상당히 두려운 시기이다. 20대는 좌충우돌의 시기로 어떠한 도전과 실패도 용납이 된다. 다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고, 길을 잘못 들어서도 다시 돌아 나올 충분한 시간이 있다. 하지만 20대와 달리 서른은 인생의 대략적인 좌표를 정해놓고, 그곳을 향해 한창 나아가야 할 시기이다. 넘어져도 일어설 힘이 있고, 잘못된 길을 가도 다시 돌이킬 수 있지만 20대와 달리 여유가 부족하다. 더 큰 위험과 부담을 안아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 할 수 없다. - 물론 상대적으로 4,50대보다는 여유가 있지만 - 이처럼 30대는 많은 감정과 희비가 교차하는 시기이다. 20대에게는 맞이하기 싫은 두려움의 시기, 그보다 많은 4,50대에게는 "십년 만 더 젊었어도..." 라는 되돌아가고 싶은 시기이다. 따라서 서른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색깔이 많이 달라지게 된다.

 

 

 

 '서른 살 수업'

 

 이 책은 특히 서른의 문턱, 20대 후반에 있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인 도코 다케히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30대 비즈니스 컨설턴트이자 자기계발 코칭 전문가"이다. 국내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젊은 비즈니스맨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모델"이다. 국내에 그의 책은 이번에 출간된 '서른 살 수업'과 '가속성공'과 '프로워커로 서로' 라는 세 권의 책이 소개 되어 있다.

 

 저자는 서른을 "인생을 끌어 오르게 만드는 발화점이 되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이 시기에 "몸과 마음에 태울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으면 미래의 꿈과 성공도 불투명해진다"고 말한다. "서른이라는 시기는 앞으로 남은 약 50년간의 인생이 결정 되는 무시무시한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고 서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에서 30대가 알아야 할 성공의 비결을 가르쳐 준다.

 

 이 책은 총 5개의 장과 45개의 소(小)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장에서는 자신을 알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모든 일의 기본은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 그러한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서른이라는 불안한 시기에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성공을 그려 볼 것을 말한다. 단순히 머릿속으로 구상해 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적어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종이에 적으라고 한다. 이 장에서는 단순히 구상만 할 것이 아니라 구상을 실행 할 것과 어떻게 실행하면 되는지 방법들을 가르쳐 준다. 그 다음 장에서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관계에 있어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고, 대화의 기술과 능력을 기를 것을 말한다. 4장에서는 돈에 대해 가르쳐준다. 돈을 다루고 대하는 법과 돈에 대한 가치관을 올바로 정립해 준다. 돈에 대한 지식을 쌓고, 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 할 것을 말한다. 마지막 5장에서는 잠재의식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일단의 광신도들과 같이 잠재의식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당히 활용 할 것을 이야기 한다. 몇 가지 미신적인 이야기들도 언급하긴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거나 빠지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의 장점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45개의 장은 다소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내용이 짤막짤막하여 읽기에 부담이 없다. 가독성이 무척 좋다. 이 책의 내용들은 실제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점에 있어서 가치가 있다. 저자가 서른 즈음에 직접 경험하고, 그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강연을 하며 지도해준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효용성이 높다. 단지 철학적 혹은 형이상학적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방법들을 알려주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아쉬움이 있다면 각 부분의 내용은 적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독자가 한 번에 다 소화할 수 없다. 더욱이 일부든 전부든 독자가 책의 내용대로 실제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 이것은 이 책 뿐 만이 아니라 모든 자기계발서가 가진 맹점 중 하나이다. - 다르게 말해서 이 책은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유익해 보이지만 자극과 동기는 별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은 많이 아쉽다. 물론 서두 부분에서 자극과 동기를 제공하긴 하지만 조금 빈약해 보인다. 따라서 한창 경주 중인 서른이 아니라 그동안 시간 낭비를 하여 아직도 출발선상에 있는, 그동안의 시간 낭비로 앞으로에 대한 조급함과 두려움을 크게 갖고 있는 서른 혹은 20대의 막바지에 있는 이들이 과연 이 책의 내용대로 실천할지 의문이다. 과연 그들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책의 내용을 잘 따라할지 의문이 든다. 가장 큰 문제와 해결책은 본인이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람에게 주는 자극과 동기가 너무 작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 행동 할 수 있는 이라면 이 책이 다소 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남녀 모두 서른이면 이미 결혼하고 어린 자식까지 있을 나이였다. 하지만 사회 구조와 경제 상황 등이 변함에 따라 이제는 서른이어도 결혼은 물론 변변한 직장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남자의 경우 사회 초년생 대부분이 서른 정도이니 이제 서른은 결혼생활과 사회생활을 한창 하고 있는 나이가 아니라 이제 겨우 사회 진출, 인생의 출발 시간이 되었다. 따라서 서른에 대한 두려움은 전보다 커졌고, 막막함이 한층 더해졌다. 그렇다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될 것도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더 안 된다. 남들보다 뒤쳐지고, 갖춰진 것이 없다고 느껴질 경우 더욱 노력해야 하고, 준비해야 한다. 남들과 동일선에 있다는 착각과 안심은 무조건 버려야 한다. 긴박감은 필요 없지만 긴장감은 가져야 한다. 서른은 좁게 보면 프로가 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지만 넓게 보면 인생의 나머지 전반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욱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여기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래도 아직은 비틀거릴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꼼꼼하게 준비하고, 노력한다면 지난 시간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준비하고 노력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자는 세상도 결코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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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끄 엘륄 총서 9
자끄 엘륄 지음, 김은경 옮김 / 대장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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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예수가 만들어지기 시작 했다. 예수에 관한 설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성혈과 성배', '예수는 신화다', '다빈치 코드' 등을 중심으로 하여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예수를 왜곡하기 시작 했다. 급기야 학자들, 바트 어만의 경우 그의 책 '예수 왜곡의 역사'에서 예수에 대한 회의적인 시작을 견지한다. 일단의 신학자들은 신인인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여 연구하기 시작 했다. 신이자 인간인 예수가 아니라 신 혹은 인간 예수로 나누어 연구하여 예수를 훼손하기 시작 했다. 예수는 복음서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이기에, 어떤 존재이기에 사람들은 그를 그리도 갈가리 찢어 놓을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프랑스의 저명한 지성, 법률학자이자 사회학자, 철학자, 신학자, 환경운동가인 자끄 엘륄은 이 책에서 예수의 참 모습을 고찰한다. 만신창이가 된 예수를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시킨다.
 이 책에서 자끄 엘륄은 인간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은연 중에 '나사렛의 목수의 아들, 인간 예수'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성자 예수' 중 한 면만을 강조하고, 고백하곤 한다. 하지만 엘륄은 '완전한 인간 예수'와 '완전한 하나님 예수' 즉 신인 예수를 있는 그대로 살펴본다. 복음서에 나타난 신인 예수의 고난과 유혹을 가감 없이 조망한다. 예수가 겪은 고난과 유혹을 인간 예수의 혹은 그리스도의 어느 한 측면에서만 살피지 않고, 신인 예수가 겪은 그대로 본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적 예수와 신학적 그리스도가 첨예하게 대립 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참으로 귀중한 책이 아닐 성 싶다. 예수가 광야로 이끌리는 장면과 광야에서의 악마에 대한 해석이 다소 의아한 면이 들어 물음표가 찍히지만 어쨌든 이 책을 통해 예수가 받은 고난과 유혹을 신인의 온전한 모습 속에서 균형감 있게 살펴 볼 수 있다. 신인 예수가 겪은 고난과 유혹의 크기와 무게가 얼마나 크고 무거웠을지 이 책을 통해 깊이 공감 할 수 있다.

 2000년 전 이 세상을 살다 간 예수는 누구인가? 그는 배고픔과 피곤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었다. 동시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폭풍우를 잠재울 수 있는 하나님이었다.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왜곡했고, 모략 했다. 신인 예수를 인간 예수 혹은 그리스도로 나누어 그를 욕보였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예수께서 그런 인간들의 행태를 보며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까? 누가 뭐라 해도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이다. 이것은 불편의 진리이고, 바꿀 수 없는 가치이다. 따라서 예수를 말 할 때 어느 한 쪽으로만 말해서는 안 되고, 한 측면만 강조해서도 안 된다. 예수를 이야기 할 때는 신인 그대로를 이야기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분리된 예수는 진정한 예수가 아니라 그저 허구의 인물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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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전설을 만든 카이사르 군단
스티븐 단도 콜린스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지난 인류의 역사에서 수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멸망 했다. 수많은 민족이 지구상에 족적을 남겼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여러 나라와 민족 가운데 지금까지 화자가 되고, 가장 큰 매력을 끄는 나라는 아마 로마일 것이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지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로마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로마는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몇 안 되는 나라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로마가 많은 이들의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마도 그만의 아름다운 문화와 대제국 때문일 것이다.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지중해 연안과 유럽 전역을 제패하였다. 막강한 힘과 넓은 영토를 바탕으로 로마의 찬란한 문화와 독특한 양식은 유럽 곳곳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서양 문화의 한 뿌리가 되었다.
 이와 같은 로마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시기는 오현제 시기이다. 이 시기에 로마는 북으로 브리타니아, 서쪽으로는 이베리아반도, 남으로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으로는 시리아, 발칸 지역 등 엄청난 길이의 경계와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이러한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지도자는 아마도 카이사르일 것이다.
 카이사르는 로마가 도시국가에서 벗어나 세계 제국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군사 독재를 바탕으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 그의 독재는 비록 공화정을 파괴하였지만 후에 로마 제정의 초석이 되었다. - 카이사르가 대제국을 건설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의 뛰어난 능력 덕분이었지만 그 외에 또 다른 강한 원동력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로마군단, 특히 10군단이다.

 

 '로마의 전설을 만든 카이사르 군단'

 

 이 책은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군단, 카이사르와 수많은 전쟁을 함께 치루며 제국 건설의 혁혁한 공을 세운 정예 군단인 10군단에 관한 책이다.
 기원전 61년 카이사르에 의해 창설된 10군단은 카이사르와 함께 수많은 원정을 치뤘고, 여러 내전을 진압했다. 10군단은 카이사르와 함께 하며 언제나 승리했다. 카이사르의 신뢰를 전적으로 받았고, 그의 사후에도 그 영광은 지속 되었다. 이 책을 통해 10군단이 많은 전투를 얼마나 유능하고, 노련하게 치뤄 냈는지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카이사르가 10군단을 얼마나 신뢰하고, 아꼈는지 살펴 볼 수 있다. 그러한 10군단의 멋진 모습을 - 물론 그 반대편 입장에서는 멋지기는커녕 치가 떨릴 테지만 - 생생히 목격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직의 신뢰와 협동, 충성은 어떠해야 하는지 카이사르와 10군단의 모습을 통해 배우게 될 것이다.

 

 카이사르는 10군단을 신뢰 했다. 그리고 10군단은 카이사르에 충성 했고, 다른 군단과 협력했다. 그렇다면 신뢰가 먼저일까? 충성이 먼저일까?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내가 먼저 아랫사람을 신뢰 할 때 그가 내게 충성한다. 내가 먼저 윗사람에게 충성할 때 그가 나를 신뢰한다. 내가 먼저 동료를 도울 때 그도 내게 협력한다. 물론 가끔 예외가 있지만 남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내가 먼저 신뢰하고, 충성하며 도울 때 남도 나를 신뢰하고, 충성하며 돕는다. 내가 먼저 나설 때에 내가 있는 조직이 바로 서고, 전진 할 수 있는 것이다. 카이사르와 그의 10군단으로부터 나는 이러한 교훈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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