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시는 하나님 부흥과개혁사 앨버트 몰러 1
앨버트 몰러 지음, 김병하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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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설교의 홍수인 시대이다. 이전 시대 그 어느 때보다 설교가 넘친다. 수많은 설교에서 매주일 헤아리 수 없이 많은 설교가 선포 된다. 그 설교는 TV, 인터넷, 라디오, 책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보고, 읽는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설교가 선포되어도 정작 들을 만한 설교는 몇 되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일까?
아무리 많은 설교가 수많은 교회 강단에서 울려 퍼져도, 그 중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설교는 전체에 비하면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말씀만을 온전히 전하는 설교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성경을 온전히 해석하고, 설명하며 그 적용을 알려주는 강해 설교를 하는 목회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상의 말은 주로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의 두드러진 사정이다. 최근 미국 교회와 그 유행을 쫓는 한국 교회에서는 강해 설교보다는 예화 설교가 유행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긴 설교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에 따라 성경 본문에 집중하여 그것을 설명해 주는 설교는 듣기 힘든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본서는 그러한 교회의 현실 가운데 '강해 설교'를 강력히 옹호하고 주장한다. 설교가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위기를 맞고 있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작금의 현실에서 본서는 다시금 설교의 본질을 고찰한다. 예배 안에서의 설교의 중요성, 설교의 토대을 알아본다. 이러한 설교의 기본을 살핀 후 가장 바른 설교는 강해 설교임을 주장한다. 그것을 바탕을 설교자의 권위, 설교의 내용, 설교자의 자세 등 설교에 관하여 총체적으로 알아본다.
이 책은 앞서 언급 했듯이 강해 설교가 가장 바른 설교임을 주장한다. 성경적 설교를 무시하는 현 세태에 안타까운 마음을 보이며 성경적 설교, 강해 설교를 할 것을 주장한다. 나아가 설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하나님이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한 전도의 미련한 수단으로 설교를 명령하셨음을 알리고, 바른 자세로 바른 살교를 할 것을 종용한다. 설교자들이 진정한 강해자들이 될 것을 촉구한다. 단지 상담가나 관리자가 아니라 바른 말씀 선포를 통해 진정한 설교자, 온전한 사역자가 될 것을 주장한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와 목회자 후보생은 바른 설교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바른 설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설교답지 않은 설교, 잘못된 설교가 전파되는 지금 설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고, 자신의 역할과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설교와 관련하여 목회자와 목회자 후보생들은 반드시 다독 할 것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설교는 예배에서 가장 중요하다. 물론 예배의 모든 요소가 중요하지만, 설교는 특히 더 중요하다. 설교를 통해 신자는 회개하고, 은혜를 얻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딤후 3:16)하다. 이러한 성경의 유익은 바로 설교를 통해 신자에게 전해진다. 바꿔 말해서 설교를 통해 전해진 성경 말씀은 신자를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는 중요하다.
무엇보다 설교는 복음 전파의 중요한 수단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롬 10:17)는다. 말씀을 들어야 마음으로 믿고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롬 10:10) 된다. 여기서 들음은 곧 설교를 통해 이뤄진다. 이렇게 설교는 구원, 복음 전파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설교는 반드시 성경 말씀을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설교는 성경 말씀이 아니라 다른 말을 전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성경적 설교를 시급히 회복해야 할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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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
이안 머리 지음, 김귀탁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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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청교도',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자' 등으로 불리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누구보다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었다. 본래 그는 의과 대학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의사로서 전도 유망한 장래를 보장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어느날 부르심을 느끼고, 목회자가되기로 결심 했다. 그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30년 간 목회를 하며 부르심에 합당하고, 충실한 삶을 살았다.

'은혜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

본서는 앞서 소개한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에 관한 책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어떠한 면에서 로이드 존스 목사의 전기라고 볼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의 전기는 동저자(이안 머리)의 '로이드 존스 평전(3권 세트, 부흥과 개혁사)'이다. 이 책은 전기는 아니고, 로이드 존스 목사 사역의 핵심을 전하는 책이다. 다시 말해서 본서는 로이드 존스 목사의 사역의 핵심 교훈들 중에 몇 가지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로이드 존스 목사 사역 엑기스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로이드 존스 목사에게 인재로 발탁되어 그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얼마간 사역을 하였고, 진리의 깃발사( The Banner of Truth Trust)를 공동 설립한 이안 머리이다. 그는 로이드 존스 외에 여러 영적 거장의 전기를 집필한 탁월한 전기 작가이자, 청교도 관련 서적을 출간한 유능한 작가이다.
이 책에서 머리는 로이드 존스의 삶과 사역을 총 13장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먼저 1장을 통해 로이드 존스가 목회자가 되기 이전의 삶과 목회자가 된 후의 삶을 들여다 본다. 다른 장에서는 주로 로이드 존스의 설교에 대해 살펴본다. 그의 설교의 특징과 탁월성을 알아보고, 특별히 그 설교를 분석한다. 이 부분은 다른 모고히자나 모고히자 후보생들에게 무척 유용 할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장들에서는 로이드 존스 목사의
사역을 살피는데 눈여겨 볼 점은 그의 생애에서 논란이 되었던 '성령 세례'와 '복음주의 분열 논쟁' 문제이다. 그러한 문제가 촉발된 원인과 평가를, 로이드 존스를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 지켜본 입장에서 상세하고도 중립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상 독자는 이 책을 통해서 설교자로서의 로이드 존스를 살펴봄으로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역자로서의 로이드 존스를 통해 교회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외적으로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삶과 사역을 통해 목회자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모습과 방향을 되돌아보고, 다시 설정해 볼 계기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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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마틴 루터도 CCM 사역자였는가 예영 현대문화신서 13
김철웅 지음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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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자에 들어 기독교 음악의 대세는 CCM 에 기울어 있다. 가히 CCM 시대라 해도 좋을 정도로 CCM 은 기독교인의 모든 영역에서 불려지고, 들려지고 있다. 일상은 물론 예배에도 CCM 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CCM 의 주 수요자는 젊은이들이다. 그 음악적 스타일이 젊은이들에게 꼭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CCM 은 젊은이들에게만 국한 되지 않고 그 수용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일부 기성 세대에게도 불려지고, 앞서 말했듯이 심지어 금단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공예배에서도 불려지니 CCM 은 기독교 음악의 대세가 아닐 수 없다.
CCM 의 수요가 증가하고, 그 사용 역역이 넓어짐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CCM 은 기독교 음악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과 기독교 음악으로써 문제가 없다는 입장 사이의 견해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추적! 마틴 루터도 CCM 사역자였는가?'

본서는 앞서 언급한 CCM 논쟁에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책이다. 본서가 취하고 있는 입장은, CCM 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CCM 의 향후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기 할 만한 점으로는 마틴 루터를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틴 루터는 본래 로마 카톨릭 신부이자 신학자로서, 16세기 종교 개혁자로 개신교 탄생을 촉발시킨 인물이다. 그런데 CCM 논쟁에 무슨 이유로 마틴 루터를 끌어다 놓았을까? 그 이유는, 마틴 루터는 뛰어나 신학자이면서 많은 찬송가를 작곡한 훌륭한 음악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서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루터와 오늘의 CCM 을 연관시킨다. 루터가 작곡한 찬송가도 당대에는 CCM 이었다는 관점에서 오늘의 CCM 이 처한 상황과 그 당시의 상황을 비교한다. 그 비교 과정을 통해 오늘의 CCM 의 당위성을 찾는다.
본서의 장단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장점으로 CCM 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을 들 수 있다. 본서는 먼저 CCM 을 세 가지 관점에서 정의한다. 문자적, 실용적, 언어학적으로 CCM 이라는 용어를 정의한다. 현재 CCM 에 대한 정의가 경험적 혹은 심증적으로 제각각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초기 접근을 통해 CCM 의 정체성과 연구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본서의 특장점은 체계적 연구와 분석을 들 수 있다. CCM 논쟁의 흐름과 주제를 면밀히 살피고 평가한다. 저자는 CCM 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최대한 중간자적 입장에서 CCM 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을 살펴보고 평가한다. (물론 그러한 노력에도 저자의 견해 쪽으로 평가의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각 입장의 주장들을 분석하고, 평가한 결과는 앞으로 계속 될 CCM 논쟁에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아쉬움이 있다면 CCM 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입장에 있다. CCM 을 찬성하는 입장의 주장과 근거에 무게를 더 실어주고, 반대 입장을 평가 할 때는 다소 감정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해하더라도 반대 입장의 주장을 좀더 면밀히 살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를테면 예배에서의 CCM 사용 문제, 그리고 CCM 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 되는, 그것의 두드러진 음악적 요소인 락(Rock)이 우리 정신과 감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단지 간접적으로만 다룬점) 다루지 않은 점은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CCM 의 문제가 계속적으로 대두 됨에도 그 관련자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CCM 논쟁이 지속 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서 및 논의서가 절대 부족한 현실은 여러 모로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본서의 시도는 참으로 환영 할 만하다. 비록 본서에 (지적한, 그리고 지적하지 못한) 부족한 부분들이 여럿 있지만 그점은 다른 이들의 몫이 될 것이다.
과연 CCM 은 기독교인의 음악으로 적합할까? 관련자들의 함구로 인해 현재 그에 대한 결론에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CCM 사역자들과 신학자 등 관련 문제를 논의해야 할 이들은 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을까? 물론 간헐적으로 그에 대한 언급이 있긴 했지만, 논쟁을 잠재우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기독교 음반 시장의 침체가 CCM 논쟁의 진행을 막고 있는 것일까? 이유야 어떻든 기독교 음반 시장, 나아가 하나님을 위한 기독교인의 찬양과 영적 생활을 위해서 CCM 과 관련된 논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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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신학 - 성. 사형제. 정치문화. 이주자. 안락사. 생명
이승구 지음 / 합신대학원출판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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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어느 순간부터 공적 영역에 대한 담론에서 목소리를 거두었다. (제대로 목소리를 낸 적이 있기는 할까?) 단지 자신의 영역 안에만 갇혀 나만 잘 먹고 잘 살기식 행보를 보이기 시작 했다. 나만 은혜 받으면 되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행태를 보여왔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책임도 의무도 모두 거부한 채 그저 자신만을 위한, 어떠한 면에서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사상을 올바로 직시한다면 결코 보일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광장의 신학'

본서는 근자에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응을 마련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공적 영역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기독교인은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를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동성애, 성전환자, 사형제, 이주자, 안락사, WCC 등 기독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 있는 문제들을 다룬다. 분명한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 문제들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그 기본 자세를 보여준다.
이 책의 주안점으로 다음 사항을 들 수 있다. 기독교인이 공적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공적 신학에서의 일치를 촉구한다. 교회 안에서의 일차적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한다. 교회 안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공적 영역에서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함을 알린다. 따라서 사회적 담론에 대한 교회 구성원들의 함의와 일치를 마련한 후에 공적 영역에서 이차적 논의를 이룰 것을 제안한다.
앞서 말했듯이 본서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에 대한 이차적 논의를 위해, 일차적 논의에 대한 기본 방향을 제공한다. 본서에 담긴 제안들을 바탕으로 먼저 교회 안에서 일차적 논의를 하여 명확한 합의점을 찾은 후에야 공적 영역에서의 이차적 논의를 활발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나만 잘 살자고 있는 유기체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의 약동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하나님 나라는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교회와 세상의 유기성은 하나님 나라의 전파와 관련을 맺고 있다. 절정을 향해 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 그것을 넓혀 가는 과정에서 교회는 사회적 담론과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 나라는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회적 문제들을 검토하고, 긍정적 대안을 마련 할 책임이 있다. 지금과 같이 교회가 그 내부에서 침잠 되어 있는 것은 바르지 않다. 교회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그 문제들을 적극 해결해 나갈 때에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는 전파되고, 확장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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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의 재혼 어떻게 볼 것인가 비교신학 시리즈 5
고든 웬햄 외 지음, 이영란 옮김, 마크 스트라우스 편집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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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에 산업 혁명 이후 진행된 도시화, 산업화 등으로 인해 가족 형태가 핵가족화 되었다. 이는 가정의 기능과 역할의 상실을 의미한다. 산업 혁명의 결과 가정의 가치가 추락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가정의 중요성을 잊었다. 가족의 행복보다는 나의 행복이 우선 되었다. 때문에 이혼 가정이 점차 늘어났다.
동서양 모두 전통적으로 사별 등과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혼은 허용되지 않았다. 특히 성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서양은 이혼을 막았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경의 권위가 약화되어 비신자는 물론이고, 신자의 경우도 이혼은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성경에서는 이혼을 어떻게 말할까? 성경은 이혼을 철저히 제한한다. 간음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혼을 분명히 막는다. 그런데 이혼 후 재혼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혼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한 후, 어느 시점에서 재혼 바라는 이들이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성경의 침묵은 심각한 고민 거리가 된다.

'이혼 후의 재혼 어떻게 볼 것인가'
 
본서는 이혼 후 재혼에 대한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전적 불가, 제한적 허용, 무제한적 허용이라는 세 관점에서 재혼 문제를 논한다. 재혼을 바라는 이에게 전적 불가론은 실망을 안겨 줄 것이다. 제한적 허용론은 조금의 희망을 줄 것이다. 무제한적 허용은 부담을 크게 덜어 줄 것이다.
재혼을 바라는 신자는 세 관점 중 과연 어느 관점을 따라야 할까? 재혼에 대한 성경 해석이 각각 다른데 과연 어느 관점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결정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이 속한 교파와 교단의 해석에 따르는 것이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그나마 나을 것이다.

신자의 경우, 주변의 시선이나 자식들로 인해 이혼이나 재혼에 대해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이는 많다. 그러나 과연 성경의 권위 아래서 그에 대해 고민하는 이는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신자라 하더라도 각 개인의 안위를 먼저 살피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혼이나 재혼 문제 뿐만이 아니다. 성경을 중심에 놓고 그에 어긋나는 것을 염려하고, 괴로워하는 신자는 생각보다 많아 보이지 않는다. 성경은 생활과 신앙의 최종 규범으로 고백하고 그에 순종하는 신자가 몇이나 될까? 성경에 온전히 믿고 순종 한다면 삶에 문제들로 인해 비록 고통은 따르겠지만 행동을 결정하는 데 고민은 좀더 줄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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