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 천국잔치 맛보기 평신도를 위한 개혁주의 교리시리즈 1
이성호 지음 / 그라티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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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가톨릭 교회는 비성경적 성례관을 가지고 있다. 세례와 성찬 외에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5가지 성례를 추가하여 지키고 있다. 반면 개신교는 오직 세례와 성찬만 인정하며 지키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성례는 오직 세례와 성찬 뿐이기에 개신교는 그것만 행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의 개신교, 적어도 한국의 개신교는 세례는 충실히 잘 지키고 있지만, 성찬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많아야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 년에 서너번 하면 많이 한다고 할 수 있는 게 한국 개신교회의 현실이다.

 

 '성찬'

 

 본서는 오늘의 한국 개신교회가 외면하고 있는 성례 중 하나인 성찬을 다루고 있다. 먼저 1장에서는 성경에서의 식사의 의미, 구약과 신약을 통해 식사를 의미를 알아본다. 2장에서는 성찬의 본질을 살펴본다. 특별히 2장만 조금 살펴보자. 한국 교회는 성찬식을 장례식처럼 생각하는데, 저자는 강조하기를 성찬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찬은 식사이이다. 식사는 기쁘고 복된 시간이다. 성찬식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영적인 음식을 나누어 주는 시간"(41p)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은 "하늘에서 내리는 새 양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시간"(42p)이라고 말한다. 이외에 저자는 성찬의 본질을 '성도의 교제', '언약적 식사', '잔치로서의 성찬', '화목으로서의 식사'라는 총 5가지 관점에서 살펴봄으로 성찬의 본질과 그것을 대하고 시행하는 방식을 바로잡는다. 3장에서는 교회사에 나타난 성찬의 해석과 논쟁을 알려준다. 마지막 4장에서는 성찬을 실시하는 실제적 방법을 가르친다.

 저자는 신학 교수이자 개척 교회 목사로 교회를 섬기며 경험하고 느낀 바를 질솔하게 담아 성찬의 전반에 대해 가르친다. 본서는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소책자이다. 책은 비록 얇지만 내용은 알차다. 성찬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바로 알고자 하는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성찬은 많이하면 많이 할수록 좋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 천상에 올라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그분과의 풍성한 교제와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은혜의 방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 성찬은 말씀과 함께여야 한다. 권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바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도를 가르치고, 세례를 받은 성도들이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성도의 교제에 참여토록 해야 한다. 그리고 죄에 빠진 성도는 권징을 통해 수찬 금지를 내려야 한다. 이러한 일들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교회는 건전해지고, 건강해질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교회의 표지를 바른 말씀의 선포와 성례(세례와 성찬)와 권징의 시행으로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교회 성장, 특히 예배의 핵심을 말씀, 설교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예배의 시선이 말씀에 쏠려있다. 다른 요소들은 그저 장식품인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특히 성찬이 그러하다. 이는 분명히 잘못 되었다. 예배에서 말씀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성찬과 함께 할 때 더욱 은혜로워진다. 말씀과 성례(그리고 기도)는 은혜의 방편이기 때문에 그 둘은 항상 같이 가는 것이 좋다. 따라서 교회는 은혜의 방편 중 하나인 성찬을 자주 시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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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 관한 새 관점
제임스 던 지음, 최현만 옮김 / 에클레시아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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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이 제창한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교리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교리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는다는 이 교리는 죄인 된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칭함 받는다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강조하는 교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는 이 교리를 칭하기를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조항"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런 이신칭의 교리는 비단 개신교에만 내세우는 교리는 아니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도 동의하는 교리이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의 칭의 교리는 개혁주의 정통신앙과 다르다. 그들은 이신칭의의 완전성을 거부한다. 로마 카톨릭은 1545년 트렌트 공의회를 통해 종교개혁자들의 칭의개념을 부인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한 비성경적 칠성례와 사제에 의한 은혜의 주입을 내세우며 신인협력적 공로설, 반펠라기안적 칭의 교리를 주장한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의 칭의 교리는 개혁교회의 그것과 명백히 다르며 신학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굳게 붙들며 전했던 이신칭의 교리가 현대에 와서 그 정당성을 의심 받았다. 구미(歐美)에서 진행 되었던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 연구'의 한 갈래로써 '바울에 관한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에 의해 개신교의 이신칭의 교리는 유대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교리라는 문제제기가 일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신칭의를 옹호하는 측과 그것에 문제제기를 한 측 간에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바울에 관한 새 관점'

 

 본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A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와 '새 관점(New Perspective)' 연구의 대표주자인,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바울신학의 대가로 정평이 나 있는 영국의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의 책이다. 던은 본서를 통해 자신의 새 관점 연구가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새 관점과 관련하여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해명한다. 자신은 믿음을 통한 칭의라는 바울의 가르침을 부인하지 않음을 말한다. 나아가 '새 관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보여준다. 본문 한켠에서 던은 자신의 저서인 '바울신학(The Theology of Paul the Apostle)'을 통해 칭의에 대한 견해를 어느 정도 피력하고 있음을, 그 부분을 잘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던은 본문의 세 장을 통해 율법과 행위의 문제, 바울과 율법에 대한 문제, 그리고 칭의에 관한 문제 등과 관련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리고 5장 결론을 통해 바울에 관한 '새 관점'에 대한 현재(2005년)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현재나 1세기의유대교를 빈약하고 무익하며, 지나치게 율법주의적인 종교라고 묘사하는 과거의 설명으로 기독교 저통에 서 있는 하문이 회귀할 가능성은 분명 없어 ㅂ인다. 마찬가지로 유대교와 기독교, 율법과 은혜, 순종과 믿음에 대한 선명한 대조에 입각해 바울의 칭의 교리를 해석했던 전통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그렇다."

 2. 이신칭의에 대한 바울의 설명이 "이방인 선교라는 맥락에서 ... 복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이방이이 유대교로 개종하거나 유대인의 삶의 방식을 따르도록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변호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사실이 부수저긴 것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3. 이신칭의 교리는 "과거에 바울, 어거스틴,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강력하게 재차 천명할 필요가 있다."

 4. "'이신칭의'와 '행위에 따른 심판' 사이의 내적 관계는 유지되어야만 한다."

 5.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했던 의미는 모든 사람을 위한 그의 복음과 성경과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말하는 구원에 대한 이해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으로 여전히 남아있다."(이상 109 ~ 111p 인용)

 

 그동안 '새 관점'과 관련하여 던을 의심 했던 독자라면 그의 속시원하고 진솔한 해명을 통해 그의 입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던에 대한 의문점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1세기 유대주의에 근거하여 바울서신을 이해하려는 '새 관점'의 대표주자이기에 이신칭의와 관련한 그의 견해는 여전히 불안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나의 관심사는 바울의 구원에 대한 이해가 신인협력설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바울을 펠라기우스주의적 혹은 반펠라기우스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조장하려는 의도도 없다. ... 나의 관심사는 ... (가) 바울이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도 일부가 신인협력설이라는 혐의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자신 있게 유대교에 신인협력설이라는 혐의를 둘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 ... (이하 생략) ..."(98p)

 

 라는 던의 조심스런 문제제기를 보면, 새 관점은 지금도 그러하듯 1세기 유대교 연구는 바울의 구원에 대한 전통적 해석에 대한 비판을 계속적으로 굽히지 않을 것이고, 그 연구 결과에 따라 이신칭의에 대한 던의 관점도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어쨌든 독자는 본서를 통해 던의 견해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새 관점'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본서를 구입하거나 읽기 전에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본서는 던의 '바울에 관한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이라는 저서의 완역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 책의 서론인 1장만 번역한 책이다. 이점은 '알려두기'를 통해 안내 해주고 있긴 하지만 자칫 놓칠 수가 있다. 본서는 던의 저서의 서론부이기에 '새 관점'과 관련한 던의 견해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나머지 부분도 번역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유대교에 대한 전통적 해석은 '율법주의 종교(Legalistic Religion)' 즉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반펠라기안적 종교로 이해한다. 그러나 '새 관점'은 이러한 전통적 해석에 반대하며 1세기 유대교는 '언약적 신율주의(Covenatal Nomism)', 당시의 유대교는 율법 준수를 언약의 범주로 이해하는 '은혜의 종교'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서 언약적 신율주의는 율법에 대한 복종은 하나님의 계획 내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에 기반하여 인간이 저지른 죄를 속죄 할 수단이자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율법 준수는 이미 얻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본다. 이 주장에 따르면 전통적 바울신학은 1세기 유대교와 율법을 오해하고, 왜곡 했으므로 시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는 기독교의 핵심인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도 거부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구미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설전이 오갔고, 현재는 소강상태에 놓여 있다.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가 '새 관점'의 주장과 같이 유대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 되었고, 유대교를 왜곡 했다면 마땅히 시정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대 최고 랍비의 문하생이었고, 철저한 유대교인이었던 바울이 과연 우리보다 유대교에 대해 몰랐을까? 그가 유대교를 오해하고 잘못된 주장을 했을까? 아니면 바울의 주장을 전통적 해석이 잘못 이해한 것일까? 글쎄, '새 관점'의 주장이 맞다면 구원에 관한 기독교의 기존 해석은 폐기 되고, 기독교의 구원관은 종국에 보편구원론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새 관점'의 주장이 틀리다면 그들은 괜한 시간 낭비만 하는 셈이다. '새 관점'의 연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향후 주장이 어떻게 펼쳐질지 더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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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하나 됨’과 교리의‘하나임’ - WCC의 비성경적, 반교리적 에큐메니칼 신학 비판
문병호 지음 / 지평서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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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릴 제10회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하다. 그것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설전이 오가고 있다. 주로 보수 성향을 띄는 신학교와 교단은 반대를, 진보 성향을 띄는 신학교와 교단은 찬성 의사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보수, 진보 성향을 가진 교단이 반대와 찬성으로 명확하게 갈리지는 않는다. 보수 교단 중에도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한 교단이 있는가 하면 진보 교단에 속한 이라도 WCC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WCC에 대한 반응이 보수와 진보에 따라 분명히 나눠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주로 보수 교단측에서는 반대를, 진보 교단측에서는 찬성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보수 교단은 WCC를 왜 그리도 반대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려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주장을 보면 될 것인데, 그 입장을 잘 드러내는 책이 나왔다.

 

 '교회의 하나됨과 교리의 하나임'

 

 본서는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의 협의체인 WCC를 반대하는 책이다. 왜 WCC를 반대하는지 그 의견을 뒷받침 하기 위해 WCC의 역사와 신학 등을 살피고 분석한다.

 본문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서론, 2장은 WCC가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 그 역사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 성격을 살펴봄으로 정체를 파악한다. 3장에서는 성경론, 삼위일체론, 기독론, 교회론, 성례론을 바탕으로 WCC 신학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그 신학이 성경의 가르침과 어떻게 다른지 고발한다. 4장에서는 협의회임을 표방하면서도 교회의 정체성을 가지려 하는 WCC의 교회 일치 주장을 비판한다. 가시적 교회 일치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마지막 5장에서는 교회의 교회 됨은 무엇인지를 고찰하며 WCC의 협의회적 교제를 비판한다.

 본서의 장점은 많은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WCC의 신학과 방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혹자와 같이 단지 정치적 입장에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 있는 학자로서 성경적, 바른 신학을 견지하며 그것을 필터로 WCC의 문제를 선명히 밝힌다는 게 이 책의 큰 장점이자 그 가치를 더한다고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바른 말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그 바른 말을 필두로 현실성 있게 행동에 나서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지적할 수 있다. 말하는 자가 따로 있고, 행동하는 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종교개혁가들과 그 후손들은 상아탑에 갇힌채 말만 번드르르하게 한 이들이 결코 아니었다. 바른 신학을 견지한 그들은 그것을 지키고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행동을 했고, 그에 따른 모든 불이익을 묵묵히 감수하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말은 잘 하지만 그 말을 책임지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쉬운 길만 택한다. 본인을 포함하여 모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어쨌든 저자는 상하탑에 갇힌 학자가 아님을 한 사례가 보여주기에 앞으로 그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독자는 본서를 통해 WCC의 문제점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역사와 신학을 통해 WCC의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저자는 단지 정치적 입장에서 WCC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진정한 학자로서 책임감 있는 자세로 바른 신학을 바탕으로 그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 비판을 통해 WCC의 문제점을 알고, 반대로 어떤 게 바른 교회의 일치됨인지 알게 될 것이다.

 

 1948년에 창립 된 WCC는 그 용어가 말하듯이 '세계교회협의회'이다. 이는 '초교파 기독교 연합 단체'라고 할 수 있다. WCC는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을 바탕으로 결성 되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선교적 목적으로 결성된 신학 운동인데,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모든 교회가 협력하여 선교 현장 및 사회, 정치, 문화, 경제에서 복음의 실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바탕으로 탄생한 WCC는 세계 교회의 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좋은 단체로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추구하는 협력에 있다.

 WCC는 교회의 사명을 추구하기 위해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협력을 꾀한다는 명목으로 교회의 하나됨을 지향하고 있다. 교회의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리적으로 하나가 되는가에 있다. 성경에서 도출한 바른 교리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WCC는 이 근본 원리를 무시한 채 모든 교회, 성경적 교회와 교회답지 않은 교회를 모두 하나로 단지 가시적 일치를 추구하는데 문제가 있다.

 더욱이 WCC는 모든 종교 안에 구원이 있음을 인정한다. 열린 대화를 통해 다른 종교와의 연대를 꾀한다. 간단히 말해서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WCC 관계자들은 그것을 거부하지만 그들의 지향점은 다원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들은 교회와 종교의 하나됨에 가장 큰 장벽인 교리를 제거한 채 단지 가시적 연합만을 꾀한다. WCC는 연합을 핑계로 스스로 교회됨을 거부하고, 기독교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하나, WCC 관계자는 "WCC가 용공이나 다원주의라고 한다면 거기 가입된 교단 역시 용공이고 다원주의여야 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특집 좌담 '한국교회와 WCC 부산총회', CBS TV)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궁색한 변명이다. 물론 WCC에 가입한 모든 교단과 그 교인들 전부가 용공과 다원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WCC에 협력하는 이상, 설령 그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교단은 WCC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 결국 한통속이 되는 것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도둑질을 하지 않더라도 도둑질을 도우면 공범자가 되는 것과 같다.

 WCC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그 목적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종국에는 배교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한다는 허울 좋은 핑계로 성경을 붙든 하나됨이 아니라 외형적 하나됨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결국 다같이 배교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교회는 성경을 바탕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발판으로 하지 않는 교회의 하나됨은 연합은 할 수 있을지라도 결국에는 교회의 정체성은 상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리의 하나됨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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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전쟁 - 속임의 시대에 확실한 진짜를 가려내는 싸움
존 맥아더 지음, 신성욱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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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교회는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무신론자들의 거센 공격, 사회에 보편화 되어 있는 윤리와 상충되는 기독교 윤리, 기독교 타락에 대한 질타 등 외부의 많은 공격과 손가락질이 교회에 가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내부적으로는 자멸하려는 듯 진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움직임이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는 가히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교회가 외부의 위협을 받는 것은 비단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교회 탄생부터 오늘까지 교회는 이단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위협을 받았다. 내부 문제로 심한 홍역을 치른 것은 교회사에서도 수없이 나타난다. 그러에도 교회는 스스로를 잘 지켜내었다. 그렇기에 오늘의 문제만 달리 걱정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만 공격과 분열이 끊이지 않음에도 이에 힘을 모아 적절한 대응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멸을 꾀하는 듯 보이니 안타깝기만 하다.

 현재 교회를 위협하는 많은 도전들이 있지만, 그 중에 특히 위협적인 도전은 아마도 진리를 부인하는 포스트모던 사상이 아닐까 싶다. 이 사상의 성격을 특정 형태로 명확히 규정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진리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라리 진리를 왜곡한다면 대응하기 쉽다. 기독교 진리는 선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제시하면 되니까. 포스트모던 사상은 기독교 진리를 특별히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인하지도 않는다. 나아가 진리라 주장하는 모든 사상을 전부 인정한다. 그렇기에 포스트모던 사상의 입장에서 기독교 진리만 고집하면 근본주의자나 배타주의가 된다.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대응하기가 참 어렵다. 기독교 진리만 주장하면 한 쪽으로 몰리고, 그렇다고 진리 아닌 다른 진리를 인정할 수도 없고.

 '진리전쟁'

 본서는 외부로부터 맹렬히 공격 당하고 있는 기독교 진리가 살아 남을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싸워야 하는지 역설한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려준다. 진리를 믿고 고백한다 하면서도 그것에 무감각한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진리를 위해 싸울 것을 종용한다.

 본문은 총 4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근대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현재 상황을 알려준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진리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알려준다. 진리가 어떻게 부정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2부에서는 그리스도인은 전쟁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배교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배교의 시대에 왜 싸워야 하는지를 말한다. 3부에서는 진리가 어떻게 공격 받고 있는지 알려준다. 거짓 선생과 이단과 거짓 사상 등이 진리를 공격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적의 공격 방식을 알려줌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안목을 길러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알려준다. 누구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독자는 본문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이 처한 심각한 상황을 깨닫고,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 경각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적의 공격을 방어 할 수 있는 태세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우리 그리스도인이 놓인 심각한 상황을 바로보기 바란다. 우리는 적진 한 가운데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직시하고 진리를 사수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까지 하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진리 전쟁은 생존 전쟁이다. 지금 당장은 생명의 위협을 받지는 않지만 만약 앞으로 그 전쟁이 지금보다 더욱 거세진다면 초기 기독교 시대와 같이 생명의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사회 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내 신앙만 고집하면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어 직장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 외에 영적으로는 구원과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에 진리를 거부하거나 외부와의 타협은 하나님과 원수 되기를 자초하는 것이다.

 진리 전쟁은 나의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진리는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합리성과 이성을 중시하는 사고가 지배적인 이때에 우리는 그들과 똑같이 생각으로 맞서려 한다면 전쟁을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참진리를 지키며 나아갈 때 비로서 그 전쟁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 전쟁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엡 6:12).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위하여 대적자들을 능히 대적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힘껏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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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 기독교교리 - 한 권으로 끝내는 쉬운 조직신학
이상화 지음 / 카리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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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의 태반은 열정을 바탕으로 신앙 생활을 한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에 대한, 제대로 된 성경적 지식 없이 감정에 충실한 신앙 생활을 한다. 물론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성경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주일 학교나 설교 등을 통해 성경 내용을 듣고 또 들어 그와 관련된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 쌓은 지식은 교육방법의 한계로 양과 깊이가 적고 얕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과 삶의 표준을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없다. 바꿔 말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지식, 그것을 정리한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바른 신앙을 할 수가 없다. 이정표가 없는데 어떻게 바른 곳을 찾아갈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의 대부분은 교리를 배워 무얼 하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아예 교리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관통 기독교 교리'

 

 시중에는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는 교리서, 조직시학 책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태반은 신학생이나 목회자, 신학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성도를 위한 교리서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런 와중에 성도를 위한 교리서가 출간 되었다!

 본서는 광고 문구 그대로 "바른 신학과 균형 잡힌 신앙을 위해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담고 있다. 본문은 총 9장으로 구성 되어 있다. 그 내용을 순서대로 간략히 정리하면, 종교론, 성경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본서의 장점은 정말로 꼭 필요한 기본 교리를 담고 있다는 데 있다. 조직신학서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을 모두 다루고 있다. 260 여 페이지에 불과한, 교리를 다루기에는 다소 적은 분량임에도 주요 내용들을 다 정리 해놓았다. 다른 장점으로는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교리에 대해 처음 접하는 성도들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천천히 꼭꼭 씹는다면 대부분의 내용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장점은 '바른 신학'이라 할 수 있는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교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신학을 중심으로 다른 주장들도 비교 해주고 있어 바른 신학과 잘못된 신학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본서는 이렇게 여러 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성령론이 빠져 있다는 점이 아쉽다. 구원을 다루고 있는 6장에서 성령에 대해 언급하기는 하지만 너무나 간략하다. 물론 조직신학 책이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성령론이 빠지곤 한다. 그러나 이왕 다룰 거라면 성령론도 포함하는 게 어땠을까 싶다. 그 외에 개인적인 아쉬움으로는 이왕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교리를 다룰 것이라면 개혁신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언약신학'도 조금 다루어 주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 권으로 끝내는 쉬운 조직신학'이라는 부제는 과장된 면이 있지만, 본서 한 권으로 교리의 전반을 배울 수 있음에는 틀림없다. 물론 본서를 통해 깊고 넓게 배울 수는 없지만 그것은 본서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바이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본서는 성도들을 주 대상하고 있다. 그들을 위한 교리 입문서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교리에 관심 있는 성도가 독학을 하거나 성도를 위한 교리 교육의 기본 교재로 사용하기에 좋은 책이다.

 

 교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 내용을 알고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교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교리를 모른다고 해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리를 모르면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없고, 균형 잡힌 신앙을 유지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인 교리는 신앙의 성숙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교리, 지식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듯이, 열정만 있는 신앙은 열광주의자로 전락하기 쉽다. 지식만 있는 신앙은 교조주의자가 되기 쉽다. 감정만 있는 신앙은 신비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신앙은 바른 지식(신학 혹은 교리)의 안내를 받으며 뜨거운 감정으로 열정을 불태울 때에 그 성숙에 이를 수 있다. 다만 지식은 이정표라고 할 수 있기에 반드시 신앙의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식의 중요성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가 아무리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지라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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