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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 관한 새 관점
제임스 던 지음, 최현만 옮김 / 에클레시아북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바울이 제창한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교리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교리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는다는 이 교리는 죄인 된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칭함 받는다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강조하는 교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는 이 교리를 칭하기를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조항"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런 이신칭의 교리는 비단 개신교에만 내세우는 교리는 아니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도 동의하는 교리이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의 칭의 교리는
개혁주의 정통신앙과 다르다. 그들은 이신칭의의 완전성을 거부한다. 로마 카톨릭은 1545년 트렌트 공의회를 통해 종교개혁자들의 칭의개념을
부인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한 비성경적 칠성례와 사제에 의한 은혜의 주입을 내세우며 신인협력적 공로설, 반펠라기안적 칭의 교리를 주장한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의 칭의 교리는 개혁교회의 그것과 명백히 다르며 신학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굳게 붙들며 전했던 이신칭의 교리가 현대에 와서 그 정당성을 의심 받았다. 구미(歐美)에서 진행 되었던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 연구'의 한 갈래로써 '바울에 관한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에 의해 개신교의 이신칭의 교리는
유대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교리라는 문제제기가 일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신칭의를 옹호하는 측과 그것에 문제제기를 한 측 간에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바울에 관한 새 관점'
본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A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와 '새 관점(New Perspective)'
연구의 대표주자인,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바울신학의 대가로 정평이 나 있는 영국의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의 책이다. 던은
본서를 통해 자신의 새 관점 연구가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새 관점과 관련하여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해명한다. 자신은 믿음을 통한 칭의라는 바울의
가르침을 부인하지 않음을 말한다. 나아가 '새 관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보여준다. 본문 한켠에서 던은 자신의 저서인
'바울신학(The Theology of Paul the Apostle)'을 통해 칭의에 대한 견해를 어느
정도 피력하고 있음을, 그 부분을 잘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던은 본문의 세 장을 통해 율법과 행위의 문제, 바울과 율법에 대한 문제, 그리고 칭의에 관한 문제
등과 관련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리고 5장 결론을 통해 바울에 관한 '새 관점'에 대한 현재(2005년)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현재나 1세기의유대교를 빈약하고 무익하며,
지나치게 율법주의적인 종교라고 묘사하는 과거의 설명으로 기독교 저통에 서 있는 하문이 회귀할 가능성은 분명 없어 ㅂ인다. 마찬가지로 유대교와
기독교, 율법과 은혜, 순종과 믿음에 대한 선명한 대조에 입각해 바울의 칭의 교리를 해석했던 전통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그렇다."
2. 이신칭의에 대한 바울의 설명이 "이방인 선교라는 맥락에서 ... 복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이방이이 유대교로 개종하거나 유대인의 삶의 방식을 따르도록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변호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사실이 부수저긴 것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3. 이신칭의 교리는 "과거에 바울, 어거스틴,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강력하게 재차
천명할 필요가 있다."
4. "'이신칭의'와 '행위에 따른 심판' 사이의 내적 관계는 유지되어야만
한다."
5.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했던 의미는 모든 사람을 위한 그의 복음과 성경과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말하는 구원에 대한 이해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으로 여전히 남아있다."(이상 109 ~ 111p 인용)
그동안 '새 관점'과 관련하여 던을 의심 했던
독자라면 그의 속시원하고 진솔한 해명을 통해 그의 입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던에 대한 의문점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1세기 유대주의에 근거하여 바울서신을 이해하려는 '새 관점'의 대표주자이기에 이신칭의와 관련한 그의 견해는 여전히 불안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나의 관심사는 바울의 구원에 대한 이해가
신인협력설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바울을 펠라기우스주의적 혹은 반펠라기우스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조장하려는 의도도 없다. ...
나의 관심사는 ... (가) 바울이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도 일부가 신인협력설이라는 혐의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자신 있게
유대교에 신인협력설이라는 혐의를 둘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 ... (이하 생략) ..."(98p)
라는 던의 조심스런 문제제기를 보면, 새 관점은
지금도 그러하듯 1세기 유대교 연구는 바울의 구원에 대한 전통적 해석에 대한 비판을 계속적으로 굽히지 않을 것이고, 그 연구 결과에 따라
이신칭의에 대한 던의 관점도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어쨌든 독자는 본서를 통해 던의 견해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새 관점'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본서를 구입하거나 읽기 전에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본서는 던의 '바울에 관한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이라는 저서의 완역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 책의 서론인 1장만 번역한
책이다. 이점은 '알려두기'를 통해 안내 해주고 있긴 하지만 자칫 놓칠 수가 있다. 본서는 던의 저서의 서론부이기에 '새 관점'과 관련한 던의
견해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나머지 부분도 번역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유대교에 대한 전통적 해석은 '율법주의
종교(Legalistic Religion)' 즉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반펠라기안적 종교로 이해한다. 그러나 '새 관점'은 이러한
전통적 해석에 반대하며 1세기 유대교는 '언약적 신율주의(Covenatal Nomism)', 당시의 유대교는 율법 준수를 언약의 범주로 이해하는
'은혜의 종교'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서 언약적 신율주의는 율법에 대한 복종은 하나님의 계획 내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에 기반하여 인간이
저지른 죄를 속죄 할 수단이자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율법 준수는 이미 얻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본다.
이 주장에 따르면 전통적 바울신학은 1세기 유대교와 율법을 오해하고, 왜곡 했으므로 시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는 기독교의
핵심인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도 거부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구미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설전이 오갔고, 현재는 소강상태에 놓여 있다.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가 '새 관점'의 주장과 같이 유대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 되었고, 유대교를
왜곡 했다면 마땅히 시정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대 최고 랍비의 문하생이었고, 철저한 유대교인이었던 바울이 과연 우리보다 유대교에 대해
몰랐을까? 그가 유대교를 오해하고 잘못된 주장을 했을까? 아니면 바울의 주장을 전통적 해석이 잘못 이해한 것일까? 글쎄, '새 관점'의 주장이
맞다면 구원에 관한 기독교의 기존 해석은 폐기 되고, 기독교의 구원관은 종국에 보편구원론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새 관점'의 주장이
틀리다면 그들은 괜한 시간 낭비만 하는 셈이다. '새 관점'의 연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향후 주장이 어떻게 펼쳐질지 더 지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