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어떤 관계인가 비교신학 시리즈 11
스튜어트 괴츠 외 3인 지음, 윤석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기독교의 입장에서 인간의 구성에 대한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그것은 이분설 혹은 삼분설이다. 전자는 인간의 본질적 구성 요소를 육체와 영으로 본다. 그리고 후자는 영과 육과 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기독교 외에 여기에 몇 가지를 더한다면 일원론과 이원론을 들 수 있다. 일원론은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화 한 것으로, 인간을 하나의 단일체로 보는 것이다. 이원론은 이분설과 같이 인간을 영과 육으로 구분을 하지만 다른 면이 있다. 그렇다면 각각은 어떤지 먼저 이분설과 삼분설을 살펴 보고, 나머지 두 가지는 본 글의 말미에서 살피기로 한다.

 이분설의 입장에서는 인간을 물질과 비물질, 육체와 영으로 구성 되어 있는 존재로 본다. 따라서 삼분설이 지지하는 영과 혼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고, 영과 혼은 존재론적으로 같은 것으로 여긴다. 인간을 전인적 존재로 본다. 정통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이분설을 지지한다. 이 입장은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 및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있을 부활과 그 뒤에 이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할 인간의 체재((滯在))에 가장 잘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삼분설은 인간을 영, 육, 혼으로 구성 되어 있는 존재로 본다. 여기서 영과 혼은 각각 독립된 실체로 생각한다. 이들의 해석은 독특한데 육은 세상의 의식을 전달하고, 영은 신 의식을, 그리고 혼은 자아 의식을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삼분설은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반영 되어 있는 존재라고 여긴다. 인간의 구성을 지나치게 세분화 하는 삼분설은 인간을 분열적 존재로 만든다. 영과 혼의 구분은 감정과 의지의 충돌을 가져온다. 한쪽이 강조 될 경우 자칫 감정주의 혹은 경건주의로 치달을 수가 있다.

 인간 구성에 대한 입장은 이상에서 본 것처럼 다양한데, (이상은 신학적 입장에서의 견해이고) 기독교 철학에서는 인간의 구성을 이상과는 다르게 바라본다. 그렇다면 기독교 철학은 인간의 구성을 어떻게 보는지 살펴보자.

 

 '몸과 마음 어떤 관계인가'

 

 본서는 신학적 입장보다는 기독교 철학과 과학적 입장에서 인간의 구성을 각각 주장한다. 어서너스 대학의 스튜어트 괴츠는 '실체 이원론'의 입장에 서 있다. 그는 영혼은 실체라고 말한다. 이 정의와 함께 스스로를 영혼이라고 믿는 신념은 근본적이라는고 말한다. 이러한 논지에서 나아가 데카르트의 이원론 등을 빌려 실체 이원론을 주장한다. 헌팅턴 대학의 윌리엄 해스커는 '발생적 이원론'을 주장한다. 그는 "일정한 종류의 성분들이 제대로 조합될 때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가 생성(128p)" 된다는 뜻의 발생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개념에 따라 그가 말하는 '발생적 이원론'은 "뇌와 신경계의 일정 구성과 기능의 결과로서 새로운 실체, ... 정신이나 영혼이 생겨난다(132p)."는 주장이다. 풀러신학대학의 낸시 머피는 인간을 물리적 존재로 보는 '비환원적 물리주의'를 주장한다. 그는 영혼을 배제하고 유기체의 적응성, 생물학적 결정 능력 등을 공식화 하며 물리주의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칼빈대의 케빈 코코런은 기독교 신앙의 신념과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이으며 '인격에 대한 구성주의'를 주장한다. 그는 "내가 스스로를 물질적인 영혼이나 영혼과 몸의 혼합물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도 스슷로를 생물학적인 몸인 물리적 대상과 똑같은 것으로 믿지 않는다(265p)."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격과 물리적 실체의 수적 동일성에 관해 설명한다.

 몸과 영혼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사색과 이해를 위해 이 책을 짚어든 독자라면 실망 할 것이다. 본서의 내용은 다분히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네 논찬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기독교적 이해와 연결시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 설명은 신학적 분석과는 명백히 다르다. 네 명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철학적 혹은 과학적 논증을 내세운다. 성경 해석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연역 및 추론은 전혀 없다. 따라서 그것을 기대한 독자라면 본서에 대해 크게 실망 할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하여도 본서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얻을 것이 전연 없지는 않다. 본서의 내용은 솔직히 말해서 어렵다. 그렇지만 본서를 꼼꼼하게 읽는다면, 인간의 물질적 실체인 몸과 비물질적 실체 인격 및 자아 의식 등의 구성과 상호 연관성 등에 대해 숙고 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성경에는 언급 되지 않았고,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지 않는 영역에까지 도약을 해보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본 글을 마무리 하기 전앞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나머지 두 주장을 간략히 살펴보자. 인간의 구성을 단순화시키는 일원론은 인간을 그저 다른 피조물과 같은 동물로 만든다. 이 견해는 정신은 물질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 견해가 연장 되면 인간의 자아 의식과 의사 결정 등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단지 본능 혹은 자연적으로 프로그램화된 것의 결과가 된다. 따라서 이 입장에 따른다면 인간의 성스러움은 그 가치를 잃게 된다. 인간의 도덕과 사회 질서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다른 주장인 이원론은 언뜻 보면 이분설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분설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원론은 세계 전체가 서로 독립된 두 개의 근본 원리로 나누어져 있다고 여긴다. 예를 들면 빛과 어둠, 선과 악 등 세계는 대립되는 두 개의 실재로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한 구분 안에 따라 인간도 영과 육으로 나뉜다고 본다. 여기서 이분설과의 차이점이라면 이원론은 영과 육 또한 대립 되는 실체로 보아 육은 이 세상에 속해 있기에 악한 것으로, 육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에 선한 것으로 여긴다. 이것은 인간을 전인적 존재로 보는 이분설과 명백히 다르며 주로 이단 및 이교에서 나타나는 주장이다.

 이상에서 인간의 구성에 관한 견해로 이분설과 삼분설, 그리고 일원론과 이원론을 살펴 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네 개의 견해가 동시에 대립하지는 않는다. 주로 이분설과 삼분설이, 그리고 일원론과 이원론이 서로 대립한다. 어쨌든 인간의 구성은 신학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살펴볼 수가 있다. 각각의 설명은 인간의 근원고 그 실체 및 실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서로의 대립각이 분명하기에 모두가 하나로 환원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 존재에 대해 누구든 어느 하나를 선택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여도,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견지하는 가운데 다른 주장을 인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다른 주장을 잘 살펴보면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있다. 그것은 다른 주장을 통해서 내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을 맛보리라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을 통해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혁주의 성령론
김재성 지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무분별한 성령론이 한국 교회를 혼란케 하고 있다. 제각각 다른 견해로 성령론을 말하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은사와 관련한 성령의 사역은 이해와 해석이 너무 다르다. 은사주의자들은 성경을 다르게 해석한다. 성령의 사역은 성경에 분명한 답이 있음도 그들은 성경 말씀을 등한시 한다.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령의 사역을 주장하니 점점 무당이나 주술사처럼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성경 말씀 위에 두며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성도들은 어느 것이 옳은 답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다.

 성도들이 그러한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목회자들이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현재, 목회자들 조차도 잘 모르거나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목회자들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성도들은 바른 앎과 분별 및 건강한 신앙 생활을 위해 개별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성경에 근거하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좋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

 국내에 성령론에 관한 책이 여럿 있지만, 성도들이 안심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책들은 그것에 대해 잘 모르는 성도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성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은 바른 기반 위에 서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이 된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안심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예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최근 추천 할만한 책이 한 권 출간 되었다. 목회자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아우를 수 있는 성령론에 관한 좋은 책이 나왔다.

 

 '개혁주의 성령론'

 

 본서는 목회자 및 성도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내용이 너무 깊지 않기에 성도들의 성령론 입문서로 삼으면 제격인 책이다. 그렇다고 그리 얕은 것도 아니기에 더 깊은 성령론 연구로 나아가기 위한 전단계로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누구나 읽기 좋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책은 누구나 읽기 좋고, 성령에 관한 바른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내세울 만한 장점이 있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그러나 잘못된 성령에 대한 이해와 추구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을 큰 장점으로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오순절 성령강림에 대한 몰이해, 성령세례에 대한 오류, 그리고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잘못된 주장, 성령의 조명에 대한 왜곡된 주장 등 이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성령의 사역 및 조명과 관련한 위험 천만한 가르침을 본서는 바른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이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는 귀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자는 개혁주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잘 가르치는 교사이기에 본서는 믿고 읽을만 하다. 그러한 저자의 충실한 노력으로 본서는 독자로 하여금 성령에 관한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잘못된 지식을 바르게 고쳐 준다. 따라서 왜곡된 가르침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 이들과 아직 성령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에 관한 안전하고 바른 지식의 정립을 원하는 이들에게 본서를 추천하고 싶다.

 

 지금은 교단을 믿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는 교단으로 신학을 구분할 수 있었다. 교단마다 색깔과 신학이 분명하였기에 교단을 따라 교회를 다니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교단마다 색깔과 가르침의 경계가 무너졌다. 교단은 더 이상 안전 장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더 작은 단위인 교회, 그리고 목회자로 그 신학과 가르침을 구분해야 한다.

 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교회를 옮겨야 한다면, 그 교회는 바르게 가르치고 있는지 분별 할 필요가 있고 세심한 주의가 있어야 한다. 교회를 옮기지 않더라도 자신의 신앙 성숙을 위해, 내가 섬기는 교회는 바르게 가르치고 있는지 판단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회 외부적으로 잘못된 가르침과 사상이 성도들을 삼키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지금, 바른 지식과 분별력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바른 교육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러한 분별력이 성도들에게 갖추고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제 교회 의존에서 벗어나 개별적으로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을 부지런히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교육을, 대부분의 교회가 온전히 감당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성도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성도들은 혼란한 이 세상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고 섬기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마치기 위해, 신학 공부는 신학자와 목회자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짜 결혼
서창원 지음 / 우리시대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녀 결혼 적령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도 남녀 결혼 적령기는 남자가 31.9세, 여자가 29.1세라고 한다. 이와 함께 평균 결혼 비용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와 비용의 증가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요 원인은 아마 사회 구조와 상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 여성의 사회 진출 시기는 예전에 비하면 늦어진 편이다. 그런데 남성이 첫 직장을 얻는 시기는 여성보다 더 늦다. 대학 진학, 군복무 및 여타의 이유로 첫 직장을 얻기까지 오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남성의 사회 진출 시기는 30세에 근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결혼 비용을 적당히 마련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이로 인해 결혼이 늦어지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결혼이 늦어진다는 게 아니다. 결혼 준비에 그만큼 소홀해진다는 게 문제다.

 결혼 준비라 하면 으레 결혼 비용을 모으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부족한 생각이다. 결혼 비용 마련은 결혼 준비의 한 부분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결혼 준비는 물질만이 아니라 정신적 준비도 포함 된다. 보다 나은 남편과 아내가 되기 위해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미혼 남녀는 앞으로 어떻게 결혼 생활을 해나갈지 계획해 두어야 한다. 결혼을 할 사람이 있다면 그 계획을 서로 상의하고, 조율해 두어야 한다. 재산 관리에서부터 가정에서의 역할 분담, 그리고 자녀 양육 등 결혼 생활 전반에 대해 미리 합의를 해두어야 한다. 그래야 결혼 생활에서의 시행 착오를 덜 겪을 수 있고,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혼 남녀는 여기까지 이르지 못하고, 그저 비용 마련에만 몰두한다.

 

 '진짜 결혼'

 

 본서는 결혼을 한 선배 부부가 예비 부부 및 부부들에게 전하는, 결혼에 대한 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실제로 체험하고, 느낀 부분들을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연애에서부터 이성교제, 그리고 결혼과 자녀양육, 부부관계 및 재정관리 등 결혼 전과 후에 걸친 긴 과정과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알려준다.

 1부에서는 싱글 혹은 미혼 커플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싱글 남녀가 가장 궁금한 것은 아마도 도대체 짝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일 것이다. 저자는 가까운 곳에서 찾고, 교회 특히 신앙의 선배들에게 상대를 알아봐 줄 것을 부탁하라고 말한다. 이성교제를 시작하면 상대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와 스킨십 등 실제적인 부분까지 알려준다.

 2부에서는 결혼을 할 이들과 결혼을 한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 결혼이란 무엇인지, 자녀양육, 부부의 성, 언어생활, 재정관리 등 결혼 생활 중 맞딱뜨리게 될 문제들을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도록 귀한 가르침을 준다.

 이 책은 결혼에 관해 막연한 가르침을 전하지 않는다. 분명한 가르침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각 문제에 대해 세세한 답을 마련하고 있지는 않다. 각 문제의 큰 틀을 제공하고, 그 기준에 따라 독자가 그 나머지 부분을 채워 나가도록 한다. 독자들의 몫을 분명히 남겨 놓고 있다. 그 나머지 부분은 커플, 예비 부부가 상의하에 채워 나가야 할 것이다.

 결혼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본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경건한 결혼 생활을 이루도록 돕는다.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고, 인정할 만한 가정생활을 이루는 올바르고 안전한 방법을 제시한다. 따라서 이 책은 싱글 남녀는 물론이고, 커플, 예비 부부, 그리고 이미 결혼한 부부들에게도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결혼은 환상이 아니다. 결혼은 철저히 현실이다. 그렇기에 확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그리스도인들에게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다. 따라서 그것을 더욱 소중히 생각하고, 신중히 대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결혼관이 무척 빈약하다. 남들이 하니까 한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 으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 아무 생각과 준비 없이 하는 듯 하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자녀를 낳아 교회를 구성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일조하는 귀한 섬김이다. 두 남녀는 하나의 진리 아래에서 동일한 사명을 향해 나아가며, 그 거룩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 돕는 역할을 한다. 남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룩한 목표를 세우고, 아내는 그 남편을 섬기고 도와 그 목표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결혼, 가정의 존재 목적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결혼에 대해 믿지 않는 자들과 방법과 태도를 달리해야 한다. 결혼의 목적을 바로 이해하여 그 목적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미혼 남녀는 그것을 위해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와 이미 결혼한 부부는 결혼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바르게 수정하여 그 목적을 온전히 이룰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빈주의와 개혁교회
스티븐 E. 스몰맨.필립 라이켄 지음, 류근상 옮김 / 크리스챤출판사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칼빈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오명을 받고 있다. 교조주의자라거나 호전적이라거나 말이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성경을 충실히 정리 해놓은 교리와 신조와 고백서를 잘 지키고 가르치려다보니 교조주의자라는 오해를 받게 된다. 그리고 모든 칼빈주의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칼빈주의자가 호전적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교리 논쟁 시에는 이유를 막론하고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상은 분명 사실인 동시에 오해이기도 하다.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발생하게 되는 오해이다. 물론 그렇다고 칼빈주의자들이 계속적으로 교조주의자처럼 보이고, 호전적인자로 낙인 찍힌 채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칼빈주의자들은 그러한 오해를 받도록 원인을 제공한 잘못도 있기 때문에 그 오명을 벗도록 노력하고, 그외의 사람들은 칼빈주의자들에 대한 이해를 통해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칼빈주의와 개혁교회'

 

 본서는 칼빈주의를 오해하고 있는 이들은 오해를 풀도록,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이해를 돕는다. 1부 '누가 진정한 칼빈주의자인가?'에서는 칼빈주의자의 신앙, 경건한 삶의 방식과 모습은 어떠한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진정한 칼빈주의자는 편협하고 불친절한 태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는 관용의 자세를 견지하는 가장 훌륭한 신자가 되어야(8p)"함을 역설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친다. 하나님 중심적인 마음으로, 회개와 감사, 순종과 거룩한 생황 등이 삶에서 필요함을 말한다.

 2부 '무엇이 개혁교회이가?'에서는 칼빈주의, 개혁교회의 교리를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간단히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언약과 율법,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단명료한 설명을 통해 개혁교회의 특성과 그 방향을보여준다.

 이 책은 비록 얇고 작지만 내용은 꽤 알차다. 개혁교회의 유산과 특징을 잘 요약하고 있어 개혁교회 혹은 칼빈주의에 대한 소개서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주제를 쉽게 잘 다루고 있어 칼빈주의에 대해 잘 모르고, 그것을 오해 하고 있는 이에게 그 안내와 소개를 위한 책으로 삼기에 좋다. 물론 내용의 깊이가 깊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이해와 오해를 풀도록 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작점으로 삼기에는 좋은 책이 될 것이다.

 

 많은 칼빈주의자들의 신학과 신앙이 분리되어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귀한 유산을 이용한 체계적인 배움을 통해 성경에 부합하는 좋은 신학을 정립하고 있지만, 신앙은 엉망인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여기서 신앙이 엉망이라는 것은 (칼빈주의자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숙해져가는 그리스도인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성령의 열매가 전혀 보이지 않는 칼빈주의자가 많다는 뜻이다. 온유와 겸손이 없고, 대신 거칠고 교만한 경우를 자주 본다. 물론 24시간, 365일, 항상 온유 하고 겸손한 모습이 보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성화 되어 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일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성숙하고, 거룩해져 가는 모습이 가끔이라도 보여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칼빈주의들에게서 그런 성화의 모습을 가끔이라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들의 신학은 어딘가 잘못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학은 교회, 신자의 신앙이 바르게 유지 되도록 돕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신학이 신자의 신앙과 삶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그가 추구하는 신학이 잘못 되었거나, 그가 신학을 추구하는 목적은 신앙을 위한 게 아니라 다른데 있다는 말일 것이다.

 신학의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도록 하고, 특히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방법과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법을 알려주는 데 있다. 따라서 진정한 칼빈주의자라면 그 신학의 존재 목적을 바르게 이해하고, 선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에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비록 경우에 따라 교조주의자와 호전적으로 보일지라도, 평소에는 그리스도를 더욱 닮기에 힘쓰므로 말미암아 누가 봐도 그 중심에 계신 그리스도가 보여지게 될 것이다. 제대로된 칼빈주의자라면 칼빈주의자라 자처하지만 과연 그게 사실인지 의심이 드는 어느 누구들처럼 신학과 신앙이 분리 된 게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 그렇다고 믿는, 바른 신학으로 말미암아 그 신앙과 삶은 경건에 경건을 더해가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회개와 부흥 송인규 교수 라이브러리 시리즈 2
송인규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 한국 교회에는 부흥 운동이 유행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07년 즈음에, 평양대부흥을 100주년을 기념하며 그때와 같은 대부흥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하는 강한 열망이 한국 교회를 휩쓸었다. 그와 별도로 한국 교회는 70~80년서부터 시작된 폭발적인 교회 성장으로 인해 교회 부흥에 대한 바람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바람이 어느 정도냐하면, 교회가 얼만큼 부흥(성장) 했나를 목회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을 만큼 부흥에 대한 기대가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부흥에 대한 이해는 부흥의 본래 의미와는 전연 다르다.

 지금 통용 되고 있는 '부흥'이라는 말은 '성장'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불신자가 한 교회에 등록함으로 그 교회의 교인이 숫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부흥으로 보고 있다. 한 교회의 교인이 증가하면 그 교회가 부흥 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많은 교회가 자교회의 부흥을 위해 열을 올린다. 각종 전도법을 사용하여 보다 많은 불신자를 교회에 불러 들이기 위해 기를 쓴다. 각종 용품의 물량 공새와 광고 및 판촉을 통하여 교인의 수를 늘리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물론 그 열심은, 표면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과 영혼 구원을 위한 것이기에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흥에 대하 바른 이해를 갖는다면, 열심은 여전할지라도 부흥이라는 말을 그리 쉽게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회개와 부흥 :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본서는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흥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고 있다. 총 3부, 8장으로 되어 있는 본문을 통해 부흥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고쳐준다. 먼저 1부에서는 부흥에 대한 어휘와 의미를 엄밀하게 고찰하고 바르게 규명한다. 그리고 2부에서는 부흥에 대한 입장을 소개하고 평가한다. 전면적 거부설, 조건적 성취설, 조작적 가능성, 주권적 도래설, 이 네 입장 중 어느 입장이 성경적으로 바른 입장인지 알려 준다. 마지막 3부에서는 부흥에 있어 회개의 필요성과 그 내용을 알려준다.

  부흥에 대한 건전한 접근을 보여주는 본서를 통해 그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흥에 있어 참된 회개의 중요성을 앎므로 조작적이고 의도적인 부흥의 추구가 아니라, 이제 참된 부흥의 갈망과 그것을 위한 보다 진실한 노력을 보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부흥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추구를 멀리하고, 성경적인 바른 이해를 통해 부흥과 그 이후에 이어지는 신자의 바른 삶의 방향을 알게 될 것이다.

 

 부흥은 단지 교인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엄밀히 말한다면 부흥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부흥은 거듭나지 못한 자가 진리를 들음으로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며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러한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분이 정하신 때에 일어난다. 부흥은 성령님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의 결과이다. 우리가 부흥을 갈망하고 기다린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부흥을 위해 우리 인간 편에서의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부단히 진리를 전해야 한다. 진리를 들은 그들이 상한 심령으로 주 앞에 서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러한 노력 가운데 성령님의 강권적 역사로 부흥의 물결이 일어나 단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많은 심령이 연속적이고 지속적으로 회개하며 그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된다. 바로 이 사건이 부흥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부흥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