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와 링컨은 크리스천들(그렇다고 '모든'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이 매우 친근하게 느끼고,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입니다. 록펠러는 '십일조의 사람' 그리고 링컨은 '기도의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이들에 대한 전기와 일화를 통해 많은 크리스천들이 감명을 받았고, 그들의 본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둘 모두 같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좋은 이면 뒤에는 그렇지 못한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록펠러가 십일조를 열심히 해서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엄청난 거부로 당시 미경제의 1.53%를 차지 할 정도의 재산을 소유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가 거부가 된 이유는 십일조 때문일까요? 

 록펠러는 크리스천들(특히 우리나라)에게 존경을 받지만, 경제사에서 본다면 결코 존경 받을만한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그가 거부가 된 것은 석유 사업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하는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를 조직 할 정도로 석유 사업을 통하여 막대한 이윤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경쟁사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음모, 술수, 협박 등의 비신사적 방법을 동원하여 악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유의 매점매석으로 인한 반(反)트러스트법 - 시장의 독점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 합동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법률(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 위반으로 스탠더드 오일은 해산명령을 받고 해체되었습니다.

 록펠러가 십일조를 열심히 내서 거부가 되었다면, 사업 과정에서의 좋지 않은 모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비도덕적 방법으로 번 돈을 십일조한 것인데 그것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물론 스탠더드 오일이 해체된 후 재단을 설립하여 자선에 몰두한 그입니다. 어쨌든 그의 양면성을 좋게 봐야할지 나쁘게 봐야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의 좋은점은 본받고, 그의 나쁜점에서는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또 한 사람, 링컨을 살펴 보겠습니다.



 링컨은 역사적으로 보면 수없이 거듭된 실패에도 다시 일어나 마침내 대통령이 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내 지혜, 내 능력, 내 노력만 가지고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한다." 라고 고백할 정도로 기도의 사람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정치사로 본다면 노예 해방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결점이 있으니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노예 해방 문제입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은 정치, 사회 갈등 등으로 인하여 발생 하였습니다. 그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노예 문제이지, 노예 해방을 위해서 남북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링컨의 관심은 연방 유지에 있었지 노예제의 존폐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링컨의 노예 해방, 즉 그의 정치적 처사를 좋은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남북 전쟁 이후에도 노예는 존재 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거나 그의 연설과 편지를 증거로 그를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링컨은 남북 전쟁 후 얼마 뒤에 암살 되었기 때문에 그가 계속 살아 있었다면 노예 문제는 어떻게 처리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링컨에 대해 칭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 또한 존재합니다.



 예수님 조차 비판과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만인에게 칭찬만 들을 수 있는 이는 이 세상에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 두 사람 아니, 더 나아가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겉만 보고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비난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얻게 됩니다.

 한 사람의 진정성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취하지만, 당신은 마음을 보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분을 닮은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를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좋은점은 취하고, 나쁜점에서는 거꾸로 뒤집어 배우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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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이동원 지음 / 두란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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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을 하며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한 것이 있다. 어느 책의 제목과 같이 (어떠한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어떻게 하셨을까? 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겪는 상황들로 인한 어려운 마음들을 100% 공감하실 수 있을까? 만약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지 않으셨다면 이해는 해도 공감은 어렵지 않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어쨌든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적이 있기 때문에 분명 우리의 곤란한 마음을 100% 공감하신다는 확신이 든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곤란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그분께 여쭙는 것은 당연하다. 창조주, 아버지로 인함일 뿐만 아니라 인생 선배이기 때문에라도 말이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종종 "예수님이라면 과연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고 묻곤 한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제 1 목적은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역할 모델로써 우리의 행할 바를 알려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분은 우리 믿음의 삶의 모습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우리가 예수님의 습관을 좇아 산다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고,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습관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이 책에서는 그것을 총 22가지로 소개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님의 습관은 '전도', '기도', '예배', '함께하심', '말씀 암송', '단기 선교', '섬김', '제자 삼기', '터치','경청', '작은 자 사랑', '나라를 위한 기도', '가독 돌봄', '가정 모임', '어린이 사랑', '용서', '교회 사랑', '순종', '감사', '침묵', '안식', '질서' 이상 22가지이다.
 그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만큼 자라기 위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 '가정과 교회를 세우는 삶', '내면의 실력으로 자리 잡아야 할 덕목들' 이라는 총 4 가지의 큰 범주로 나눈다.

 각 습관에 대한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책이나 인터넷 등에서의 좋은 글을 인용하여 주의를 환기 시킨다. 그후 제재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본격적인 내용 설명에 들어간다. 

 예수님의 습관이 나타나 있는 성경 본문을 인용하여 내용에 대한 신빙성을 돕는다. 그리고 본문이 어디인지 밝히고 있어 필요하다면 각 습관을 좀 더 묵상하거나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습관을 이해시키고, 따르게 해야 하는 만큼 내용은 상당히 쉽다. 그리고 각 습관마다 분량이 많지 않아 금새 읽을 수 있다.



 습관은 생각에 따른 행동의 결과이다. 행동의 반복이 습관이 된 것이다. 그래서 습관을 고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시금 또 다른 행동의 반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쁜 습관은 고쳐야 한다. 왜냐하면 습관의 걀과는 인생이기 떄문이다. 나쁜 습관을 갖은 사람은 나쁜 인생을 낳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좋은 습관은 좋은 인생을 낳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습관이란 당연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습관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 주신 예수님의 습관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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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의 항해
Holland, Danny 지음, 권영주 옮김 / 예수전도단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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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인생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다양한 비유가 가능하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유는 '항해'이다.

 대해는 그 광막함을 통해 우리에게 시원함을 준다.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있을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기대를 품게 한다. 하지만 반대로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과연 끝이 있을까라는 막막함을 준다.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따르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의 인생은 드넓은 바다 한 가운데 놓인 작은 배와 같다. 거친 파도를 이겨내면 또 다른 파도가 와서 친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내가 가는 방향이 앞인지 뒤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앞도 뒤도 없다. 끝도 보이지 않는 광막함이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어떠한 위험이 다시 나를 칠지 알 수 없어 움츠러 들게 만든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 언젠가 육지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지만 방향을 정확하게 이끌어 주는 지표가 있다. 그것은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다. 그것만 바라보면 길을,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목적이 있다. 우리의 인생에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부르신 이유와 같다!



 이 책, '부르심의 항해'의 부제는 '인생의 목적을 끝까지 이룰 수 있는 지침서'이다. 인생에는 분명한 지침이 있어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다른 것에 한 눈을 팔지 않을 수 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그 방법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크게 세 파트로 구성 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는 '내 인생의 항로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내 인생의 항로로 나아가기 전에 점검해야 할 사항들을 짚어 준다. 주의 해야 할 사랑을 이야기 해준다.
 두 번째 '항해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가?'에서는 항해를 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항해 과정에서 필요한 6가지 마음가짐 또는 자세에 대해 알려 준다. 
 마지막 '항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에서는 항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리고 항해의 목적과 목표를 알려 준다.

 우리의 인생 지침서로써 나름대로 훌륭하다. 우리의 인생 목적을 바로 세워주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잘 준비시켜 준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들을 잘 짚어 준다.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 책을 분류하자면 비전, 영적성장 등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느 자기계발 서적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자의 구분은 신앙서적으로써의 분류이고, 후자의 구분은 일반서적으로써의 분류를 뜻하는데 일반서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을 기준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 줄 책으로 기대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냥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 줄 뿐이다. 한 마디로 기독교인의 인생 지침이 아니라, 사람의 인생 지침이다. 

 그렇다고 신앙인의 인생 지침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위의 문제는 주로 두 번째 파트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나머지 파트에서는 신앙인의 인생 지침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읽는데 큰 문제는 없다.

 뒷부분에서 부록으로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더욱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질문들이 제공되기 때문에 인생을 다시 계획하고,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믿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고, 그 믿음을 조금씩 완성해 가는 여정이다. 아무리 좋은 말을 많이 듣는다 하여도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말이 나의 인생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노력은 지금 당장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만 하다 인생의 막이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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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의 탐험수첩 - 고대의 신비와 유물을 수호하라
데니스 키어넌.조지프 다그네스 지음, 이상구 옮김 / 보누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탐험, 모험이라는 말을 들으면 진취적이고, 능동적이며 신비한 느낌이 든다. 미지의 세계가 떠오른다. 그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새로운 무언가를 획득함으로써, 그 과정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사실 인간의 역사는 탐험과 모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학을 예로 든다면 한 가지 가정에 대한 데이터,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탐험이고, 도전이다. 비단 과학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행위는 새로운 것에 대한 탐험이고, 모험이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얻어낸 것이다. 그것이 쌓여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흥미진진한 탐험 이야기.'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1982년 1편이 개봉한 이래 올해까지 총 4개의 시리즈를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깊이 빠졌던 적이 있을 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손에 땀을 쥐게하는 액션, 흥미를 자극하는 유물과 역사이야기. 뭇사람들의 관심을 매우 돋우는 소재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문화우월주의가 드러난 영화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최고의 영화이고, 평생 기억될 영화이다.

 이 책 '인디아나 존스의 탐험수첩'은 존스 박사처럼 탐험을 할 때 필요한 정보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타난 탐험에 대한 요소들을 분석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정리된 정보들은 사실 실제 탐험과 모험에는 적합하지 않은 내용들이다. 어느 고고학자가 존스 박사와 같은 기가막힌 경험들을 할 수 있겠는가? 영화에 나타난 일들은 모두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 영화적 기법과 장치들이지 실제와는 별개의 일들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영화상의 모든 일들이 실제에서는 100%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는 장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존스 박스의 시대라면 몰라도 최소한 오늘날에는 그런 정보를 사용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책의 내용은 매우 흥미롭다. 그 내용을 몇 가지 살펴본다면, '움직이는 기차 위에서 달리는 법', '잠망경에 매달려 며칠을 버티는 법', '독사에 대처하는 법', '통로와 부비 트랩을 식별하는 법', '신의 진노로부터 도망치는 법'. 실제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흥미를 갖고 본다면 매우 재미가 있다. 특히 본문에 해당하는 영화 - 를 봤다는 가정하에 - 의 장면들을 생각하며 읽는다면 더욱 재미가 있다.

 이 책에 나타난 정보들은 실제 고고학과 실제 탐험에 필요한 것이라기 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위한 정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영화에 나타난 탐험에 필요한 정보들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4편을 본 후에 이 책을 보니 본문의 내용들에 공감이 가고, 맞장구를 치는 또 다른 재미에 빠져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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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에 앞서 한 가지 양해를 구한다. 논리적 구성력이 떨어지더라도 감안해 주셨으면 한다. 나의 논리력이 워낙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정 없이 최초에 쓴대로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 할 것이다.

 

 성경이 날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둘 중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란,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운동력이 있고, 살아서 날마다 새롭게 역사한다."

는 성도들의 고백과 같이 성령이 성경을 통해 성도들에게 날마다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경을 읽는 당사자의 마음가짐이 날마다 다르기 때문에, 날마다 겪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날마다 새롭게 역사한다는 말은 성경을 - 같은 본문이든 다른 본문이든 - 볼 때마다 성령에 의해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성경 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는 것이다. 비신앙인들이 다른 책을 읽을 때도 그러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책은 한 번 읽었을 때와 두 번 읽었을 때 느끼는 바가 다르다. 두 번째 읽을 때 그리고 그 이상 읽을 때는 처음 읽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처음 읽고난 후에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되어 그것 만큼 성숙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경험이나 생각을 통해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두 번째, 혹은 그 이상을 읽을 때 다른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책을 읽고 느끼는 바는 독자의 경험과 생각에 좌우 된다. 그의 마음의 지경이 얼마나 넓으냐에 따라 그리고 얼마나 넓어졌느냐에 따라 같은 책일지라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가 달라지게 된다.

 그것을 성경읽기에 적용해보자. 성령의 영향을 제거한다면 성경도 다를 바가 없다. 성경 또한 한 권의 책(66권을 묶어서 만든 한 권이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여러 책 중 하나라는 뜻이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다른 책을 읽을 때의 경험이 일어나지 않을리가 없다. 성령을 배제한다면 성경을 읽을 때의 새로움은 순전히 독자 개인의 문제인 것이다.

 어쨌든 위와 같은 이유에 성령이 개입됨으로써 성경을 혼자 읽을 때보다는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마음의 지경이 넓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느낀다해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성령이 개입함으로 인해 그 한계를 뛰어 넘게 한다. 성령은 무한한 지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것을 조금씩 보여 준다. 그래서 성경은 날마다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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