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받아야 하는가 케빈 드영 시리즈 3
케빈 드영 지음, 김수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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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을 구한다. 많은 이들이 그분의 뜻에 합당한 결정을 내리고자 매순간 그분께 뜻을 구한다.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 해 주실 때까지 무작정 그분의 뜻을 기다린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다.

 우리 삶에 대한 책임은 각자에게 있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일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무언가를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물론 우리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뜻을 구함이 면피의 목적이나 수동적 태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구하되, 우리의 의지로 결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받아야 하는가'


 이 책은 '왜 우리는 이머징 교회를 반대하는가', '왜 우리는 지역교회를 사랑하는가'로 알려진 개혁주의의 젊은 기수 케빈 드영의 책이다. 국내에 소개된 몇 권의 책을 통해 좋은 인상을 남긴 저자는 본서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본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책으로 그와 관련된 우리의 잘못된 이해와 방식을 교정 해 준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바른 방법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성경은 뭐라 말하는지 살펴본다. 기드온이 했던 양털 시험과 같은 기적의 요구, 성경 구절을 무작위로 뽑아 그대로 하려는 운에 맡기는 방식, 주관적 느낌에 의존하는 태도 등의 잘못을 지적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성경과 상담, 기도와 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책의 주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맞딱뜨리는 문제인 직업과 결혼 선택에 있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 등을 알려준다.

 

 저자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만 말고 결정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말씀해 주시길, 그것을 알아내길 기대하지 말고 그저 그분을 신뢰하고 나아갈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드러내거나 우리 삶에 대한 계획을 보여 달라고 간구할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별 있고 훈련된 삶을 살 것을 말한다.

 본서의 내용은 참으로 간결하다. 명확하다. 충동과 환상과 느낌을 쫓는 우리의 잘못된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성경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본서를 통해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인지 화실히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이끄시지 않는다. 물론 구약과 신약 시대는 그러한 경우가 있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끌어 주셨다. 예수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바울을 찾으시어 그의 삶을 변화시키셨다. 그러나 그것은 특수한 경우였다. 그러한 기적적인 인도하심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하나님은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다면, 우리의 나아가는 발걸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염려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나아갈 때, 훗날 뒤돌아 보면 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일들이 사실은 생각도 못했던 기적적인 일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저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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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계신 성령
변종길 지음 / 말씀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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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에서(외국의 상황은 조사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성령론 논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물론 그것은 주로 목회자나 신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논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조용히 그에 관한 논쟁이 일었다 사그라 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성령 세례와 은사와 관련해서 말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본다면 중생과 성령 세례의 관계, 그리고 방언의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이 두 문제는 오순절주의자들과 치유 집회 등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최근에 논쟁이 일었고, 여전히 그 견해 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견해가 성경에 보다 근접한 것인지 현재로써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본서는 고신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는 변종길 교수의 책이다. 저자는 본서에서 성령론을 가르치고 있다. '성령의 인격', '성령의 내주와 충만', '성령의 은사', '성령의 열매', '성령 세례와 중생' 등 조직신학 분과에서 다루고 있는 성령에 관한 연구의 주요 부분을 다루고 있다.

 본서의 장점은 읽기 쉽다는 것이다. 신학책은 어떠한 내용을 다루던 관련 지식이 없으면 읽고 이해하는데 곤란을 느낀다. 본서는 다루는 내용을 보면 신학책으로 분류 할 수 있다. 하지만 표현 방식을 보면 신앙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성령론에 대해 처음 접하는 성도도 크게 막힘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게 기술되어 있다. 신학적 용어가 사용되기는 하지만, 최대한 절제하는 가운데 각 주제들을 누구나 읽기 쉽도록 배려한 흔적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머리말에서 저자가 이야기 했듯이, 본서는 "여러 곳에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에게 강이한 권고들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의 장점 외에 본서에는 특기 할 만한 점이 있다. 기존의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곱지 않게 느껴질 만한, 그 반대의 입장에서는 반길 만한 내용이 있다. 개혁교회의 성령론을 비판한 부분이다.

 

 성령론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 되는 견해는 아마도 성령 세례와 방언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저자의 성령 세례에 관한 견해는 그리 특이한 부분은 없다. 굳이 특이하다고 볼 만한 부분이 있다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전에 제자들은 이미 중생을 했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 강림 사건 때에 성령 세례를 받았다. 개혁신학은 중생 시 성령 세례를 받는다고 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는 이 문제애 대해 '시초적 사건'이라는 견해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압축하여 설명하면, "오순절 성령 강림은 신약 시대의 교회 탄생을 가져온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교회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의 성령 세례는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한 단회적 사건이다. 따라서 앞서 지적한 문제가 해결된다. - 여기서는 저자의 견해를 매우 간단히 기술하였기에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를 직접 참고하길 바란다. 

 이상의 내용은 수긍할 만 하다. 문제는 다른데 있다. 저자는 개혁주의자들의 은사에 대한 견해를 비판한다. 예컨대 저자는 개혁주의 신학자들 중에 '치유 은사'가 초대교회에 한정된 은사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예를 든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육체의 병 치유, 능력 행함, 예언, 그리고 방언과 방언 통역 은사는 사라졌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은사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지적한다. 각각의 은사가 어떻게 유효한지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줄곧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 지적은 옳다. 그러나 저자의 지적에 일말의 아쉬움을 느낀다. 성경에 그 은사들이 그쳤다는 말이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은사들이 지속 될 것이라는 말도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것을 어떻게 해석 할 것인지는 해석자의 입장과 선택에 달려 있다. 여기서 기민하게 반응해야 할 부분이 있다. 성경을 해석 할 때는 물론 그 내적 증거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은사 문제와 같이 내적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문제는 교회 역사를 일정 부분 '참고'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성경 말씀을 교회 역사로 증거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답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교회 역사를 근거로 제시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선교 상황에 대한 짤막한 언급이 있다. 하지만 설명에 무척 단촐하여 근거가 너무나 빈약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언급된 은사들의 제한에 대한 견해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이해와 66권 성경의 완성과 완전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이 부분을 언급하고 견해를 제시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책의 성격과 지면의 한계상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느껴지긴 한다.

 

 이 외에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소위 '상수도 이론'이라 불리는 성령에 관한 견해에 대한 비판, 헤르만 리덜보스의 '바울 신학'에 나타난 그의 주요 사상에 대한 비판, 그리고 리처드 개핀의 고린도전서 12장 13절 해석에 대한 비판이다. 카이퍼의 견해에 대한 비판은 이미 있어 왔기에 별다를 것이 없지만, 리덜보스와 개핀에 대한 비판은 꽤 흥미롭게 느껴진다. 

 위에서 지적한 눈여겨 볼 부분들에 잘 유의해서 본다면 본서는 상당히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목회자와 신학자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성도들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씌어졌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성령론에 대한 올바른 정립이 필요한 한국 교회에 본서는 일조 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일하시는 분이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말씀인 성경과 다르게 일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성경으로 제한 될 정도로 작은 분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극히 한정된 이해와 작은 존재성을 생각하시어 당신의 뜻과 일하시는 바법과 내용을 성경을 통해 표현하셨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우리는 성경을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는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이해와 지식의 불완전성에 있다. 성경은 완전하지만 우리의 이해는 불완전하다.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곤 한다. 그 잘못된 해석을 옳은 해석이라 여기며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잘못된 길로 끝도 없이 나아간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행동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성경을 오용하면 안 된다. 거꾸로, 성경대로 우리의 행동을 교정 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신앙과 생활에 열심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분께 결코 칭찬 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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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구원의 길을 아십니까?
한국청교도연구소 제작 / 부흥과개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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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이다. 그런데 여기에 꼭 따라 붙는 전제가 있다. 그 믿음은 택함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성령님의 역사로 얻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되 믿음과 구원에 있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믿음도 구원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때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또 한 가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택함 받은 자와 그가 구원 받는 때를 알 수 없으므로 주위에 꾸준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기독교 구원관은 우리에게 전도의 열심을 독려하고, 그 방법을 안내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전도 시에 이상의 사항을 크게 간과한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을 취한다. 즉 많은 이들이 전도 시에 복음 제시와 영접기도라는 일회적이고 속성적인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이것은 잘못된 전도 방법이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그 마음은 존중 받아 마땅하지만, 잘못된 방법은 고쳐야 한다. 그렇다면 옳은 전도 방법이란 무엇일까?

 

 '참 구원의 길을 아십니까'

 

 이 책자는 작은 크기로 된 전도지이다. 페이지는 24페이지로 다른 전도지와 마찬가지로 분량이 적다. 적은 대신 핵심적인 사항을 담고 있다.

 본 책자는 크게 1장 신론, 2장 인간론, 3장 기독론, 4장 구원론, 5장 종말론으로 구성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내용은 인위적인 설명은 전혀 없고, 성경의 내용만 온전히 담고 있다. 따라서 본 책자는 참 구원의 길에 대한 핵심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전도지로 사용하기에 무척 좋다는 말이다.

 이 책자가 다른 전도지와 다른 점은 앞서 언급한 내용들 말고도 하나 더 있다. 다른 전도지들은 마지막에 영접기도를 하게 하는 반면 본 책자는 복음제시 이후에 마지막으로 가까운 '복음적인 교회'에 방문할 것을 권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도자는 이 책자를 사용하기 전에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 말고도 근처에 있는 복음적인 교회를 알아두는게 좋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구원의 길에 대해 가르쳐 주는 책으로 소개한 참고 서적의 목록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본 책자는 한 권만 제시하고 있는데 구도자나 새신자를 위해 좀더 많은 책을 제시해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여기서 지적한 아쉬움은 전도지의 역할 상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 그리 문제 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본 전도지는 복음의 핵심을 잘 담고 있어 전도에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옳은 전도 방법은 복음의 핵심을 온전히 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함이란,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를 전하는 것을 뜻한다. 전도자는 전도 할 때에 성경의 내용에 인간적인 해설을 덧붙이지 말고 성경의 핵심만 전해야 한다. 피전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성경을 풀어 설명한다면 설령 감동을 주어 관심을 끌 수는 있을지라도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심어 줄 수 있다.

 전도자의 할 일은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이를 이해시키거나 감동시키는게 아니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을 이해시키고, 말로써 믿게 하는게 아니다. 전도자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선한 의도와 열심으로 그런 것이라하더라도 자신의 역할을 넘어선다면 그는 전도자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구원자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전도자는 전도 전에 자신의 역할을 명심하고, 전도의 방법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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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의 소망
이안 머리 지음, 장호익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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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악이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번영이 실현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가운데서, 예수님의 재림으로써 이루어 질 것이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며 그 나라의 확장을 위한 거룩한 사명에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러한 소망의 성취를 잊은채 그저 개인 구원에만 몰두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와 관련한 부흥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지극히 개인적인 구원에만 머물러 있다. 물론 수년 전 일각에서는 다시금 대부흥이 일어나길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무척이나 아쉽게도 그것은 부흥에 대한 너무나 제한된 시각에서의 접근을 보였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 확산과 전 지구적 승리"를 위해 부흥에 대한 시각을 바로 잡고, 그 열정을 다시 불태울 필요가 우리에게 있음을 느낀다.

 

 '청교도의 소망'

 

 본서는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던 부흥에 대한 견해를 다루고, 그것을 향한 소망을 보여주고 있다. 신앙의 부흥, 영적 번영을 위해 청교도들이 어떻게 활동을 했고 그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려준다.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던 소망의 기초와 그들이 추구 했던 소망의 회복을 향한 노력을 잘 보여준다.

 한편 청교도들의 소망이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산 되었는지를 증거하며 그와 함께 그들의 소망이 쇠퇴하게 된 원인과 과정을 잘 추적한다. 나아가 앞으로 그 소망이 어떻게 이어질지 저망을 한다.

 본서에서 말하고 있는 소망은 부흥과 그것의 세계적 확산을 위한 노력인 선교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그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열정의 표현인 세계 복음을 위한 선교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청교도들이 가졌던 그 소망에 대한 태도와 노력을,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오늘 우리 역시 그 소망을 갖고 그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회복 할 것을 이야기 한다.

 독자들은 본서가 보여주는 청교도들의 소망과 그 소망을 향한 열정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소망의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고 그리스도의 피이며 그분의 마지막 나타나심이다. 독자들은 본서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소망의 근거를 마음에 함께 품고 복음을 선포함으로 그것의 승리를 함께 누리는데 다시금 초청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축복은 구원이다. 그 구원은 죄로 가득한 우리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축복이다. 이것은 개개인에게 해당하는 사실이지만, 개인에게만 적용 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구원은 종국에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전체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택자들은 마침내 구원을 받고 전 지구적 재창조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에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이 다시 새롭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기대는 우리가 그저 개인의 구원으로 만족하고, 그것에 머물 것이 아니라 더 큰 영역으로 그 구원을 이끌어 갈 것을 종용한다. 개인의 구원은 그 책임을 다할 것을 함의한다. 구원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일반 사회의 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주변에 펼쳐진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온전한 회복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전제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 확산과 전 지구적 승리"에 동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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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운동과 성령 세례
변종길 지음 / 말씀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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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 세례와 성령의 은사 등에 대해 신학자들 간에 뜨거운 논쟁이 오가고 있다. 물론 그 논쟁의 열기가 지금은 사그라든 듯 하지만, 어쨌든 그 논쟁은 여전히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있다. 두 대립각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못하고 있다. 서로 간에 초점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의 의견이 맞는지 당장에는 결론이 나지 않을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문제를 풀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하나님께 쏟으려면 신학적 난제들을 풀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을 풀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신앙생활 계속 해나갈 것이다. 각자의 견해가 신앙에 치명적인 독이 되지 않는 한 서로의 견해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하여도 우리는 성도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편을 택하는게 모두에게 유익한 방향이 아닐까 싶다.

 

 

 

 '오순절 운동과 성령 세례'

 

 본서는 성령론 중에서 참으로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19세기에 발생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오순절 운동, 그것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성령 세례를 논하고 있다.

 

 본문은 총 2부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오순절 운동의 역사를 다루고 2부에서는 오순절 사건과 성령 세례를 다룬다. 먼저 1부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면, 오순절 운동의 핵심은 '성령 세례'에 있고, 특히 '회심 후 체험'으로서의 '성령의 세례'를 강조한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이러한 오순절 운동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을 유보한다. 그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대신 저자는 오순절 운동을 평가할 때 '교리'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온전한 평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신앙생활은 교리만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신앙생활은 삶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가깝고도 밀접한 관계에서 오는 '풍성한 생명'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오순절주의자들이 교리 부분에 있어 잘못이 있더라도 그것이 치명적이지 않다면, 그들이 열심히 기도하며 풍성하고 능력 있는 영적 생명을 누린다면 그것대로 인정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교리에 있어서도 치우치지 않고 생명에 있어서도 부족하지 않은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이기에 본서에서 교리만 평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이해를 구한다.(25, 26p)

 이어서 저자는 오순절 운동의 역사를 조사한다. 간략히 정리하면, 18세기에 웨슬리로부터 발생한 메소디즘에서 기원하여 19세기 찰스 피니로부터의 부흥 운동, 그리고 R. A. 토리의 성결운동, 마지막으로 20세기의 오순절 운동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1950년대에, 오순절교단을 뛰어 넘어 비오순절 교회로까지 퍼지게 되는 신오순절 운동의 출현을 더한다.

 

 다음 2부에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대한 오순절주의자들과 전통적 교회의 견해를 비교 분석하며 그 대립의 해결을 찾는다. 먼저 저자는 오순절주의자들과 신오순절주의자들은 오순절 사건에서 제자들은 그 전에 중생한 것이 분명하므로 오순절 사건은 제자들에게 있어 '두 번째 체험'이기 때문에 '성령 세례'는 '회심과는 구별되며 보통 회심 후에 일어나는 체험'이라는 주장을 한다고 한다. 반대로 전통적인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구속사적 사건'으로 보기 때문에 오순절 성령 강림을 '두 번째 체험'이라는 주장을 거부하고 '첫 번째 사건'으로 보려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 저자는 한 가지 문제제기를 한다. 전통적인 교회는 오순절 사건 전에 제자들이 중생한 것에는 동의하는데, 그렇다면 오순절 사건에서 제자들이 받은 성령 세례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다.

 이상의 대립과 문제에 대해 저자는 나름의 견해와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선 저자는 기본적으로 오순절 사건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는 전통적인 견해가 옳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지적한 문제, 오순절 사건 전에 중생한 제자들이 오순절 사건에서 받은 성령 세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안한 말이지만 본 평에서는 그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을 적지 않겠다. 그것까지 적는다면 다른 독자들이 본서를 읽을 맛이 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서는 성령론 문제에 있어 특히 '성령 세례'에 집중하여 분석을 시도하고, 답을 찾아 나간다. 그런데, 성령 세례와 관련된 문제를 다룬 책은 이미 국내에 여러 권 출간 되어 있다. 그 책들을 다 읽었다면 본서는 별 흥미를 자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본서는 다른 책들이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은 부분(위에서 답을 생략한 저자가 지적한 문제)을 다루고 있기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저자가 특별히 지적한 문제에 대해 다른 책들은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으나 '성령 세례'를 풀어가는 맥락 속에서 자연스레 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특별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본서의 토대가 되는 저자의 논문이 나온 시기는 꽤 지났기 때문에, 이미 그 부분에 대한 답을 구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저자는 문제를 보다 구체화 시켰기 때문에 본서를 통해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직접적이고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령 세레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읽어볼 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 평을 마무리 하기 전에 성령 세례에 대한 본인의 관점을 제시함으로 한쪽 견해를 소개하고 싶다. 전통적인 견해로, 성령 세례는 신자의 중생 때 함께 받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중생과 동시에 성령 세례를 받게 된다. 따라서 중생한 이후에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 노력 할 필요가 없다. 오순절주의자들의, 방언이라는 가시적 은사(방언에 대한 견해차도 조율 할 필요가 있지만)가 성령 세례의 증거이기 때문에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오순절주의자들이 아직도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하는 것은 헛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미 성령 세례를 받았음에도, 그 증거가 방언이라는 잘못된 주장에 따라 그것을 받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려 한다면 어서 생각을 바꾸고 그 시간에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게 그분과 본인에게 훨씬 더 유익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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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사자 2022-05-01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매 전에 많은 도움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