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계신 성령
변종길 지음 / 말씀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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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에서(외국의 상황은 조사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성령론 논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물론 그것은 주로 목회자나 신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논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조용히 그에 관한 논쟁이 일었다 사그라 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성령 세례와 은사와 관련해서 말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본다면 중생과 성령 세례의 관계, 그리고 방언의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이 두 문제는 오순절주의자들과 치유 집회 등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최근에 논쟁이 일었고, 여전히 그 견해 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견해가 성경에 보다 근접한 것인지 현재로써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본서는 고신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는 변종길 교수의 책이다. 저자는 본서에서 성령론을 가르치고 있다. '성령의 인격', '성령의 내주와 충만', '성령의 은사', '성령의 열매', '성령 세례와 중생' 등 조직신학 분과에서 다루고 있는 성령에 관한 연구의 주요 부분을 다루고 있다.

 본서의 장점은 읽기 쉽다는 것이다. 신학책은 어떠한 내용을 다루던 관련 지식이 없으면 읽고 이해하는데 곤란을 느낀다. 본서는 다루는 내용을 보면 신학책으로 분류 할 수 있다. 하지만 표현 방식을 보면 신앙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성령론에 대해 처음 접하는 성도도 크게 막힘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게 기술되어 있다. 신학적 용어가 사용되기는 하지만, 최대한 절제하는 가운데 각 주제들을 누구나 읽기 쉽도록 배려한 흔적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머리말에서 저자가 이야기 했듯이, 본서는 "여러 곳에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에게 강이한 권고들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의 장점 외에 본서에는 특기 할 만한 점이 있다. 기존의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곱지 않게 느껴질 만한, 그 반대의 입장에서는 반길 만한 내용이 있다. 개혁교회의 성령론을 비판한 부분이다.

 

 성령론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 되는 견해는 아마도 성령 세례와 방언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저자의 성령 세례에 관한 견해는 그리 특이한 부분은 없다. 굳이 특이하다고 볼 만한 부분이 있다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전에 제자들은 이미 중생을 했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 강림 사건 때에 성령 세례를 받았다. 개혁신학은 중생 시 성령 세례를 받는다고 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는 이 문제애 대해 '시초적 사건'이라는 견해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압축하여 설명하면, "오순절 성령 강림은 신약 시대의 교회 탄생을 가져온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교회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의 성령 세례는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한 단회적 사건이다. 따라서 앞서 지적한 문제가 해결된다. - 여기서는 저자의 견해를 매우 간단히 기술하였기에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를 직접 참고하길 바란다. 

 이상의 내용은 수긍할 만 하다. 문제는 다른데 있다. 저자는 개혁주의자들의 은사에 대한 견해를 비판한다. 예컨대 저자는 개혁주의 신학자들 중에 '치유 은사'가 초대교회에 한정된 은사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예를 든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육체의 병 치유, 능력 행함, 예언, 그리고 방언과 방언 통역 은사는 사라졌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은사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지적한다. 각각의 은사가 어떻게 유효한지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줄곧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 지적은 옳다. 그러나 저자의 지적에 일말의 아쉬움을 느낀다. 성경에 그 은사들이 그쳤다는 말이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은사들이 지속 될 것이라는 말도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것을 어떻게 해석 할 것인지는 해석자의 입장과 선택에 달려 있다. 여기서 기민하게 반응해야 할 부분이 있다. 성경을 해석 할 때는 물론 그 내적 증거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은사 문제와 같이 내적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문제는 교회 역사를 일정 부분 '참고'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성경 말씀을 교회 역사로 증거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답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교회 역사를 근거로 제시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선교 상황에 대한 짤막한 언급이 있다. 하지만 설명에 무척 단촐하여 근거가 너무나 빈약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언급된 은사들의 제한에 대한 견해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이해와 66권 성경의 완성과 완전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이 부분을 언급하고 견해를 제시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책의 성격과 지면의 한계상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느껴지긴 한다.

 

 이 외에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소위 '상수도 이론'이라 불리는 성령에 관한 견해에 대한 비판, 헤르만 리덜보스의 '바울 신학'에 나타난 그의 주요 사상에 대한 비판, 그리고 리처드 개핀의 고린도전서 12장 13절 해석에 대한 비판이다. 카이퍼의 견해에 대한 비판은 이미 있어 왔기에 별다를 것이 없지만, 리덜보스와 개핀에 대한 비판은 꽤 흥미롭게 느껴진다. 

 위에서 지적한 눈여겨 볼 부분들에 잘 유의해서 본다면 본서는 상당히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목회자와 신학자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성도들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씌어졌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성령론에 대한 올바른 정립이 필요한 한국 교회에 본서는 일조 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일하시는 분이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말씀인 성경과 다르게 일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성경으로 제한 될 정도로 작은 분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극히 한정된 이해와 작은 존재성을 생각하시어 당신의 뜻과 일하시는 바법과 내용을 성경을 통해 표현하셨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우리는 성경을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는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이해와 지식의 불완전성에 있다. 성경은 완전하지만 우리의 이해는 불완전하다.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곤 한다. 그 잘못된 해석을 옳은 해석이라 여기며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잘못된 길로 끝도 없이 나아간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행동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성경을 오용하면 안 된다. 거꾸로, 성경대로 우리의 행동을 교정 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신앙과 생활에 열심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분께 결코 칭찬 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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