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과 스콜라주의 개혁파 정통주의 연구 시리즈 2
빌렘 판 아셀트 외 3명 지음, 한병수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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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리히 헤페(Heinrich Heppe)의 '개혁파 정통 교의학(Reformierte Dogmatik,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7.)'을  읽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헤페는 교의학을 19세기 이전의 신학과 연결을 시켰다. 그는 그 책을 통해 종교개혁 이후 개혁파 신학자들과의 연합을 이루었다. 헤페는 각 항마다 개혁파 신학자들의 주장과 신학을 인용 및 정리, 목록화하였다. 그는 방대하고도 역사적인 그 작업을 통해,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귀한 신학적 유산을 남겨주었다. 그의 노력을 통해 본인은 처음 들어본 신학자들에게 매료 되었다.

 하지만 개혁파 신학자들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개혁파 신학자들은 수 백 년에 걸쳐 있었고, 그러한 까닭에 그 신학은 매우 방대하였다.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고, 처음부터 태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관심은 이내 사그라 들었고, 결국 본인의 관심은 주요 종교개혁자들로 옮겨지게 되었다.

 


 '개혁신학과 스콜라주의'


 사그라 들었던 본인의 관심에 다시 불을 붙인 책이 출간 되었다. '개혁파 정통주의 연구시리즈' 두 번째 책인 '개혁신학과 스콜라주의'이다.

 본서는 벨기에 복음주의 신학교의 빌렘 판 아셀트외 3명이 공저한 책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는 낯선 저자들로 다소 생소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막 그 내용들은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본서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종교개혁 이후 개혁파 스콜라주의 안에서의 신학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본서는 '16 ~ 18세기 개혁주의 학자들이 사용한 스콜라적 신학 방법론에 대한 개요'를 담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개혁파 스콜라주의란 무엇인지, 그와 관련된 학계의 동향, 스콜라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의 차이점, 개혁파 스콜라주의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연관성, 중세 스콜라주의 하에서의 학교 교육 방법론, 정통주의 시대의 역사적 흐름 등을 다루고 있다.


 본서를 읽기 위해서는 주의 해야 할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특히 용어 문제는 반드시 확실하게 해결해야 한다. 본서는 그 특성상 내용이 어렵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내용 이해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본서의 서론을 인용하여 용어들을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본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스콜라주의', '정통주의', '개혁파' 등의 용어들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스콜라주의'는 특정한 '내용'과 결부됨이 없이 '방법론'을 가리킨다. '정통주의'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역사에서 16 ~ 18세기까지 이어지는 특정한 기간을 가리키며 '방법론'이 아니라 특정한 '내용'과 결부되어 있다. 개혁주의 전체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 '칼빈파'와 같이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개혁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이상 20 ~ 24p). 최종적으로 '개혁파 스콜라주의'는,


 (1) 학교의 학문적인 신학을 의미

 (2) 정통주의 시대에 실행된 신학을 가리킴

 (3) 내용에 있어서는 개혁주의 신앙고백들과 연결됨(25p)


 을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본서의 장점은 스콜라적 방법론의 배경과 구조 및 역사적 흐름을 잘 개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통주의 시대의 인물들에 대한 정리, 그들의 궤적과 계보는 참으로 돋보인다. 부록 1을 통해 제공하는 개혁파 스콜라주의 문헌 연구를 위한 안내 지침은 무척 유용해 보인다. 총평으로 본서는 개혁파 스콜라주의 연구 입문자에게 매우 유용성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어디서부터, 누구를,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그 고민을 덜어 줄 것이다. 연구의 시작점을 알려 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본서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연구를 잘 이끌어 줄 뛰어난 스승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스승을 둘 수 없는 자의 목마름을 어느 정도는 풀어 줄 것이다.

 


 개혁파 신학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종교개혁부터 시작하여 19세기까지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활동 했던 모든 개혁파 신학자들의 삶과 신학 및 그들이 사용 했던 신학적 방법론에 대해 전부 공부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루어야 할 인물과 자료가 너무나 방대하고, 따라서 그 과정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연구해도 마침표를 찍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개혁파 신학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 되어야 한다."는 개학파의 모토와 같이 '개혁된 신학은 계속 개혁'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욕을 부릴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개혁파 신학은 성경을 좀 더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결코 바람직 하지 않다. 먼저는 성경 연구에 집중해야 하고, 성경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개혁파 신학을 도구로 사용해야 함에 유의해야 한다.

 그것에 주의해야 함을 강조하며 개혁파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좀 더 쉬운 방법을 소개하면. 개혁파 신학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신앙고백서들을 연구하고, 주요 신학자들의 삶과 신학, 그리고 쟁점이 되는 신학 주제들을 연구해 나간다면 개략적인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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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을 먹이라 - 성경적 설교의 본질, 기초, 능력, 그 열매 Coram Deo 코람데오 시리즈 3
제임스 보이스 외 지음, 장호준 옮김, 존 맥아더 외 / 복있는사람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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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에 만연한 현상이 있다. 그 현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드러지는 것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성경적 설교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 교회는 성경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설교하는데 성경적 설교를 하지 않는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맞는 말이다. 모든 교회가 설교시에 성경을 사용한다. 성경 말씀을 봉톡하며 그 내용을 설교한다. 하지만 그 설교를 잘 들어보면 성경에 담긴 내용이 아니라 온통 다른 내용들로 채워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설교에 예화가 가득하고, 시사, 상식, 덕담 등 온통 귀에 듣기만 좋은 소리가 가득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결코 성경적 설교라고 할 수 없다. 단호히 말하면, 그것은 예배의 한 요소로서 바른 교회임을 가늠할 수 있는 바른 설교가 아니다! 그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은 잘못된 설교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모든 교회가 잘못된 설교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전하고 그분에 대해 잘 가르치는 교회가 아직 많이 있다. 하지만 아마도 더 많은 수의 교회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 양을 먹이라'


 본서는 잘못된 설교가 만연한 한국 교회에 참된 가르침을 제공한다.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설교의 중요성과 기초를 가르친다. 예화집에서 잔뜩 베끼고, 인터넷 유머나 생활체험 등으로 얼룩진 오늘의 잘못된 설교에 비수를 꼽고, 바른 설교의 회복을 종용한다. 바른 설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른 설교란, 성경적 설교 즉 강해 설교이다. 강해 설교란 어떠한 것인지,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말한다. 단지 강해 설교에 대해서만 말하지는 않는다. 설교가 왜 중요한지, 설교는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설교자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지적한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스스로 먼저 체험해야 하고, 설교는 회중의 지성과 마음에 전해져야 함을 강조한다.

 본서는 목회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설교, 바른 설교란 어떠한 것인지 고민할 필요 없이 이 책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설교의 자세를 교정 받고, 설교자의 뜨거운 소명을 회복하는데 본서는 큰 자극을 줄 것이므로 목회자들의 필독서라고 하고 싶다.

 그렇다고 목회자만 읽어야 할 책은 아니다. 성도들도 읽으면 도움이 되는 점이 있다. 먼저 성도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성도가 본서를 잘못 읽으면 목회자를 판단하고, 그 설교를 평가하며 정죄하는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만야 그렇다면 그는 이 책을 잘못 읽은 것이고, 이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성도가 본서를 읽을 때는 설교와 설교자가 왜 중요한지, 설교를 들을 때는 단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부분을 얘기하는 장(chapter)에 초점을 맞추며 읽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설교 및 설교자를 대하는 바른 태도를 배우게 될 것이다.


 바른 설교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역사(役事)를 가르치는 설교. 반대로 말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그분의 말씀을 깨닫는 설교.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북돋으며 그분을 위한 사명과 열정이 타오르게 만드는 설교가 바른 설교일 것이다! 그러한 설교는 오직 성경을 말할 때에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우리를 먹이시며 자라게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설교는 하나님의 양들의 영을 풍성히 살찌우며 자라게 한다. 성경에 담긴 말씀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까닭에 그것을 가감없이 전하는 설교는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케 한다. 성경 말씀을 오롯이 전하는 설교는 상한 영을 치유하고, 완악한 마음을 고꾸라져 하나님 앞에 무릎 꿇도록 만든다. 설교자는 그런 설교를 해야 하고, 성도는 그런 설교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하나님의 양들은 목이 말라 죽을 지경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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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5대 제국 - 통通박사 조병호의
조병호 지음 / 통독원(땅에쓰신글씨)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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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인류의 역사(歷史)와 면밀한 관계를 갖는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歷史)를 통해서 일하신다. - 물론 역사(歷史)라는 말 자체는 지나간 과거의 자취를 뜻하지만, 어쩄든 -  하나님은 인류와 그 역사(歷史)를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歷史)에는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녹아 있다. 따라서 인류사를 잘 들여다 보면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성경과 5대 제국'


 본서는 성경과 관련된 세계 역사와 성경 속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접촉점, 바꿔 말해서 성경과 연관이 있는 제국들인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와 이스라엘 민족 - 본 평에서는 편의상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모두를 통틀어 국가를 칭할 때는 '이스라엘', 민족을 칭할 때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기술한다. - 의 긴장 관계를 잘 조망한다. 그것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신앙을 보여주고, 그들의 삶과 신앙에 담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다섯 제국의 역사를 담기에는 책의 분량이 적어 보인다. 때문에 저자는 다섯 제국의 역사 중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이 있는 부분만 살펴본다. 덕분에 본서에는 제국의 역사에서 필요한 부분이 잘 요약 되어 있다. 그와 맥을 같이 하는 이스라엘 역사가 잘 정리 되어 있다. 본서의 백미는 그러한 인류 역사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신앙과 하나님의 경영하심 및 그분을 섬기는 방법을 잘 가르친다는 점이다. 인류 역사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역사 경영하심을 똑똑히 보여줌으로써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돕고, 그분으 올바로 섬기는 방법을 일깨워준다.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쉬움도 느껴진다. 내용 구성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진다. 교훈과 정보를 하나라도 더 담으려다보니, 가끔 내용 전개에서 이탈하는 일이 발생한다. 물론 도움이 되는 내용이지만 그것이 읽는 흐름을 방해하곤 한다. 때문에 차라리 모양새는 좋지 않더라도 각주로 넣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낫다고 생각되는데) 한쪽 페이지를 따로 꾸며서 '흥미거리' 등의 타이들을 달아 제공하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더하여 학자로서 균형을 잃고 링컨에 대해 편향적으로 평한 데에 아쉬움을 느낀다.

 아무튼 본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와 이스라엘 역사(歷史)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신학생은 물론 성도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앞서 인류사를 잘 들여다 보면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개인사에도 적용 된다. 오늘과 어제가 다르다. 어제와 그제가 다르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어제와 그제를 잘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어 주셨는지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다. 역사, 과거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다. 역사에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교훈이 담겨 있다. 역사를 통해 인류의 잘못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울 수 있다. 지난 날의 실수를 깨닫고 앞으로를 보완할 수 있다. 무엇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살펴봄으로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더욱이 역사를 잘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의도하심을 알 수 있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 배울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 과거를 잊혀져야 할 기억으로 여겨 기억 깊은 구석에 뭍어둘 것이 아니라, 언제고 꺼내어 볼 수 있도록 항상 곁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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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입문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교리문답 시리즈 3
라일 비어마 외 지음, 신지철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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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잘못된 교리에 맞서 바른 신학과 신앙을 세우고 지키기 위한 종교개혁자들의 노력과 투쟁은 신앙고백이라는 유산을 만들어 냈다. 종교개혁자들이 작성한 신앙고백서들은 교회에 제공된 귀한 유산들이다. 그 유산들은 비록 신학적 내용들을 담고 있으나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성도들을 가르치고, 교훈하여 그들의 신앙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졌다. 그 유산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전해져 동일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유산을 활용하는 교회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유산들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혹 알더라도 그것들은 낡고 우리에게는 맞지 않은 것으로 여겨 그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그 값지고 풍부한 유산들을 외면한채 잘못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교육하고 있다. 잘못된 교육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있는 신앙적 무지와 혼란은 구원 받은 자의 삶의 이유와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입문'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16세기에 작성된 신앙고백서들 중 으뜸을 차지하는 신앙고백서이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성경공부와 신앙교육을 위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본서는 그러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안내서이다.

 본서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한다. 그것의 기원을 상세히 다룬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인, 주요 저자를 밝힌다. 또한 그 교리문답의 작성 목적과 내용의 특징을 살핀다. 주요 저자 중 한 명인 우르시누스의 소교리문답 및 대교리문답과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관계를 논한다. 본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작성은 주로 두 명이 주측이 된 것으로 여겨졌다.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우르시누스가 교리적인 부분을 작성하고, 올레비아누스는 신앙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다듬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본서는 그러한 분석을 비판한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여러 학자들의 공동 작업의 결과인 것은 맞지만 기존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올레비아누스의 역할은 크지 않다고 본다. 대신 우르시누스가 주요 작성자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칼빈주의, 멜란히톤파, 츠빙글리파, 불링거파 등의 신학적 입장을 지지하는 신앙고백서라 주장한다. 하지만 분서에서는 그러한 꼬리표에 주의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상황과 압박의 상황에서 탄생하였기에 교회일치를 위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음을 주지시킨다. 다시 말해서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자신의 영토 안에서 신학적 입장으로 나뉘어져 논쟁을 벌이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 신앙의 일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작성케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의 신학적 입장의 근거를 제공한 신학사상 또는 자료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굳이 신학적 이름표를 붙여야 한다면 아우굿부르크 신앙교백(수정본)에 멜란히톤파와 개혁파의 주해를 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덧붙여서, 그럼에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개신교의 다양한 입자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뜻을 요구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우르시누스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이전에 대소교리문답의 저자로 알려져 왔다. 본서에서 밝히는 바에 따르면 우르시누스는 소교리문답을 먼저 작성하고 대교리문답을 후에 작성한 것으로 본다. 전자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성인과 청소년을 위해서, 대교리문답은 대학생을 위한 중급 신학 교재를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더하여 소교리문답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초안 작성에 활용된 반면, 대교리문답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작성되던 과정의 후기에 참고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본서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심도 있는 정보와 다양한 자료를 제공한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목적, 저자, 역사적 기원, 그리고 그 신학적 기초와 입장 등 그것의 전반에 대한 귀한 지식과 목록을 제공하여 그것을 연구하는데 있어 귀중한 입문서 역할을 한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보다 정확히 이해함으로 그에 대한 연구에 깊이를 더하고, 교리문답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후반부에서 제공하는 우르시누스의 대소교리문답고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사이의 일치와 차이를 분석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해 알기 원하고 그것을 연구하며 개인과 교회에 더욱 효과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이라면 본서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신앙고백서를 통한 교리 교육은 신앙의 기초를 다지고, 체질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신앙고백서는 신앙을 바르게 하며 그것을 보다 완숙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지만, 훈련되지 않은 이는 혼자서 그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성경으로부터 체계적인 지식과 교훈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이때 매우 유용한 것이 신앙고백서이다.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신앙의 선배들이 그들에게 주신 바른 지식과 분별력으로 성경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교육서이다. 신앙고백서만으로 성경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신앙고백서를 통해 성경의 주요 내용, 필수적인 가르침들을 손쉽게 습득할 수 있다. 성도를 바르게 하는데 있어 최상의 교육 자료로 신앙고백서 만한 것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활용 할 필요가 있다.

 신앙 교육을 위해 다른 방법을 사용 할 필요가 없다. 성경을 정리하는 수고를 또다시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선배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활용하면 된다. 그분들이 전해준 유산은 성도들을 가장 바르고 안전하게 교육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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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와 사랑에 빠진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제임스 K. A. 스미스 지음, 장호준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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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분은 오직 한 분이요, 믿는 바도 오직 하나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삼위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시어 구원에 이르게 하셨음을 믿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믿는 바를 함께 공유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해는 불완전하여 믿는 내용에 있어 차이가 발생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라는 사실은 동일하게 인정하지만 누구를 구원하시는지,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지, 그리고 그분을 어떻게 섬기는지 등에 대한 이해는 서로 다르다. 하나님은 한 가지로 말씀하셨지만 인간의 죄성으로 인하여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진다. 따라서 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내용이 다르게 나타난다.


 '칼빈주의와 사랑에 빠진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본서는 한 복음주의 신학자가 가상의 젊은이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본문은 편지 형식이다. 편지글의 특성을 그대로 받았기에 내용이 쉽다. 각 주제들을 간결하게 다루기 때문에 저자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읽는데 부담이 없다. 어떠한 부분에서는 분명히 귀담아 들을 지적들이 담겨 있다. 칼빈주의자들이 종종 저지르는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는 부분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대부분의 내용이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를 잘 돕고 있다. 하지만 본서에는 칼빈주의에 대한 잘못된 평가 혹은 불분명한 입장이 있어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1.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과는 달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부정적으로 묘사.

 2. 여성 직분자에 대한 편향적 이해와 적용.

 3. 톰 라이트와 관련된 칭의 문제를 가볍게 여김.


등 저자는 어떠한 문제들에 대해 가볍게 여기거나 칼빈주의의 몇몇 입장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오도하고 있어 이점들은 분명히 주의 할 만하다. 따라서 입문자보다는 - 제목만 보면 칼빈주의 입문자가 읽기에 적합한 책처럼 보이지만 몇몇 사안으로 인해 - 칼빈주의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읽는게 적합 할 것이다. 어쨌든 본서에는 칼빈주의자들이 귀담아 들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적 사항에 잘 유의한다면 칼빈주의자들이 한 번 읽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믿을지, 무엇을 믿느냐는 참으로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신앙고백의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좌우하는 지표이기 때문에 어떻게 신앙을 고백하는지는 무척 중요하다. 신앙고백이 잘못 되면 구원은 받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믿는 바대로 행동하며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른 신앙고백을 하며 그것의 안내를 받을 필요가 있다.

 바른 신앙고백은 물론 성경이 가르쳐 준다. 하지만 인간의 이해력은 각기 달라서 어느 누구는 혼자서도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지만 또 누구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선배들은 성경을 잘 요약하고, 그것으로부터 전혀 어긋나지 않은 신앙고백서드을 작성하였다. 그 신앙고백서들을 통해 이해가 부족한 자를 도왔다.

 우리는 선배들의 섬김과 노력의 결실인 귀중한 유산들을 잘 간직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그 유산들을 통해 우리는 바른 신앙의 토대를 쌓고, 그것을 굳건히 유지하며 그로 말미암아 더욱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신앙고백들이 아무리 귀하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성경보다 앞세우거나 높여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귀중한 유산들을 존중하는 선에서 잘 습득하고 간직하며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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