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낳는 가정 - 신앙 1세대 부모를 위한
메리 디머드 지음, 지영순 옮김 / 미션월드라이브러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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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자녀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생물들과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2, 9:1)"고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예비 부모와 이미 아이를 가지고 있는 부모들이 자녀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고민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인 까닭이다. 때문에 그에 대한 도움을 얻고자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육아 서적들을 섭렵한다. 그것들이 여의치 않으면 무방비 상태로 실전에 좌충우돌 임한다.

 자녀를 기르는 법에 대한 기독교 서적이 참으로 많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앙 1세대를 위한 책은 아직 못 봤다(내 눈이 어두워 그런 것일수도...).

 신앙 1세대란 누구인가? 믿음의 조상과 부모가 없는 세대이다. 신앙적으로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못한 이들이다. 그럼에도 자식들에게 신앙 유산을 만들어서 물려주어야 하는 이들이다. 참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이 책은 미개척지를 내딛는 신앙 1새대를 위한 책이다. 신앙의 개척자들을 위한 책이다.

 내용은 크게 3부로 '과거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지금 함께하시는 하나님', '내일의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즉, 과거와 현재, 미래로 나누어 신앙 1세대에게 귀한 말씀을 전해준다. 아래에서 각 부분에 대해 짧게 살펴 보고자 한다(그렇기 때문에 생략된 부분이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1부에서는 과거를 청산하라고 한다.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모든 것을 용서하라고 한다. 헛된 맹세(모든 맹세가 아니다.)를 하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헛된 맹세란, '더 이상 아무도 나에게 상처주지 못해.', '사랑을 쟁취하는 것이야.' 등과 같은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사소한 말이나 생각들을 일컫는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떠나라고 한다. 육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말이다.

 2부에서는 현재 할 일을 알려 준다. 자녀 양육시 마음이 약해지려 할 때, 그 전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 준다. 스스로 몇 가지 규칙을 정하고 지키라고 한다. 무엇에든 감사하라고 한다. 그리고 자녀의 잘못과 자신에 대해서도 용서라하고 하라고 한다. 집안에 웃음이 넘쳐나게 하라고 한다. 멘토의 도움을 받으라고 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가정이 되도록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가교한 세상에 자녀를 독립시킬 때 부모의 마음의 자세를 나눈다. 자녀를 양육하는 다른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책을 읽기 전에 무척 기대했다.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았지만 장차 나 또한 신앙의 부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도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나와 같은 때에 믿었기에 신앙의 선배가 아니라 동반자, 즉 그분들과 더불어 나 또한 신앙 1세대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신앙의 모델이 필요 했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도움이 필요했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실망스러웠다. 자녀의 행동에 대해 부모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목록화하여 조목조목 알려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간증과 경험을 이야기 하고, 그것을 토대로 느끼고, 꺠달은 바를 설명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약재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행동지침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다른 방향의 행동 지침을 가르쳐 주었다. 자녀의 행동에 대한 대처법이 아니라, 자녀를 맞는 부모의 자세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제목 그대로 '믿음을 낳는 가정을 이루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다. '자녀의 행동에 대한 대처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내가 엉뚱한 기대를 한 것이다.

 인상 깊은 부분은 자녀에 대해 청지기 자세를 갖으라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부모는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자녀에 대해서도 청지기적 자세를 갖어야 한다.
 청지기적 자세란, 자녀는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고귀한 계획을 위해 이땅에서 자녀를 사용하시기 전에 나에게 잠시 맡겨 주신 것이라는 자세이다. 그러한 자세를 갖는다면 내가 바라는대로 자녀를 가르치고, 기르려는 그릇된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대개의 부모들은 자식을 통해 자신이 못 다 이룬 꿈을 성취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녀의 행동을 강제하고, 통제한다. 그것은 자녀에 대한 청지기적 마음이 없는 까닭이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자녀에 대해 청지기적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비록 못마땅한 행동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지적하고, 통제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 이해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아야 할 부분이 된다. 세상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 행동이므로 하나님께 어찌해야 하는지 여쭙고, 그분이 그 아이에게 주신 고유의 모습으로, 그분이 원하시는대로 변화시켜 주어야 한다.
 
 자녀에 대해 청지기적 자세를 갖는다면 그들은 내 소유가 아니라, 내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는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에 더 아끼고, 더 소중히 대하게 된다.
 
 그들도 나의 동반자인 셈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수직적 권위로와수평적 교제로 대해야 한다. 권위로 가정의 질서를 잡고, 교제로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온전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는 신앙의 선배로서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이든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든 그것들을 통하여 본이 되야 한다.

 오늘도 믿음의 가정을 튼튼히 지키고 있는 신앙 세대와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장차 신앙의 부모가 될 나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고,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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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는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자녀에 대해서도 청지기적 자세를 갖어야 한다.
 청지기적 자세란, 자녀는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고귀한 계획을 위해 이땅에서 자녀를 사용하시기 전에 나에게 잠시 맡겨 주신 것이라는 자세이다. 그러한 자세를 갖는다면 내가 바라는대로 자녀를 가르치고, 기르려는 그릇된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대개의 부모들은 자식을 통해 자신이 못 다 이룬 꿈을 성취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녀의 행동을 강제하고, 통제한다. 그것은 자녀에 대한 청지기적 마음이 없는 까닭이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자녀에 대해 청지기적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비록 못마땅한 행동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지적하고, 통제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 이해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아야 할 부분이 된다. 세상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 행동이므로 하나님께 어찌해야 하는지 여쭙고, 그분이 그 아이에게 주신 고유의 모습으로, 그분이 원하시는대로 변화시켜 주어야 한다.
 
 자녀에 대해 청지기적 자세를 갖는다면 그들은 내 소유가 아니라, 내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는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에 더 아끼고, 더 소중히 대하게 된다.
 
 그들도 나의 동반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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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자꾸만 성경을 읽지 않을까?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대적들의 방해.
 말씀은 성령의 검(엡 6:17)이다. 그것은 대적들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다. 대적들은 그 무기를 두려워 한다. 그것은 자신들을 해치니까. 그래서 대적들은 우리가 말씀으로 강해지고, 그것으로 자신들을 공격할까봐 두려워 한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가 공격 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공격한다. 우리가 무장하는 것을 방해한다.
 둘째, 나의 죄.
 말씀은 우리의 속사람이 드러나게 한다. 말씀을 읽다보면 나의 죄를 깨닫게 된다. 그로 인해 치유와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 따르는 수치도 감당해야 한다. 죄로 인한 나의 수치가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워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도 말씀으로 인한 유익이 더 크기 떄문에 반드시 말씀을 우리 안에 심어야 한다. 그것은 성령의 검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고, 대적들을 물리치도록 돕는다. 우리의 죄를 고발하여 속사람이 변화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한다.

 그래서 나는 다음달 나의 핵심 과제로써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습관적으로 내 심령과 입술에 말씀이 고여서 울려 퍼지게 하도록 다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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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펠러와 링컨은 크리스천들(그렇다고 '모든'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이 매우 친근하게 느끼고,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입니다. 록펠러는 '십일조의 사람' 그리고 링컨은 '기도의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이들에 대한 전기와 일화를 통해 많은 크리스천들이 감명을 받았고, 그들의 본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둘 모두 같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좋은 이면 뒤에는 그렇지 못한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록펠러가 십일조를 열심히 해서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엄청난 거부로 당시 미경제의 1.53%를 차지 할 정도의 재산을 소유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가 거부가 된 이유는 십일조 때문일까요? 

 록펠러는 크리스천들(특히 우리나라)에게 존경을 받지만, 경제사에서 본다면 결코 존경 받을만한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그가 거부가 된 것은 석유 사업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하는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를 조직 할 정도로 석유 사업을 통하여 막대한 이윤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경쟁사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음모, 술수, 협박 등의 비신사적 방법을 동원하여 악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유의 매점매석으로 인한 반(反)트러스트법 - 시장의 독점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 합동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법률(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 위반으로 스탠더드 오일은 해산명령을 받고 해체되었습니다.

 록펠러가 십일조를 열심히 내서 거부가 되었다면, 사업 과정에서의 좋지 않은 모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비도덕적 방법으로 번 돈을 십일조한 것인데 그것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물론 스탠더드 오일이 해체된 후 재단을 설립하여 자선에 몰두한 그입니다. 어쨌든 그의 양면성을 좋게 봐야할지 나쁘게 봐야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의 좋은점은 본받고, 그의 나쁜점에서는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또 한 사람, 링컨을 살펴 보겠습니다.



 링컨은 역사적으로 보면 수없이 거듭된 실패에도 다시 일어나 마침내 대통령이 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내 지혜, 내 능력, 내 노력만 가지고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한다." 라고 고백할 정도로 기도의 사람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정치사로 본다면 노예 해방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결점이 있으니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노예 해방 문제입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은 정치, 사회 갈등 등으로 인하여 발생 하였습니다. 그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노예 문제이지, 노예 해방을 위해서 남북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링컨의 관심은 연방 유지에 있었지 노예제의 존폐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링컨의 노예 해방, 즉 그의 정치적 처사를 좋은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남북 전쟁 이후에도 노예는 존재 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거나 그의 연설과 편지를 증거로 그를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링컨은 남북 전쟁 후 얼마 뒤에 암살 되었기 때문에 그가 계속 살아 있었다면 노예 문제는 어떻게 처리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링컨에 대해 칭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 또한 존재합니다.



 예수님 조차 비판과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만인에게 칭찬만 들을 수 있는 이는 이 세상에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 두 사람 아니, 더 나아가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겉만 보고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비난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얻게 됩니다.

 한 사람의 진정성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취하지만, 당신은 마음을 보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분을 닮은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를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좋은점은 취하고, 나쁜점에서는 거꾸로 뒤집어 배우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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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이동원 지음 / 두란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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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을 하며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한 것이 있다. 어느 책의 제목과 같이 (어떠한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어떻게 하셨을까? 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겪는 상황들로 인한 어려운 마음들을 100% 공감하실 수 있을까? 만약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지 않으셨다면 이해는 해도 공감은 어렵지 않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어쨌든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적이 있기 때문에 분명 우리의 곤란한 마음을 100% 공감하신다는 확신이 든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곤란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그분께 여쭙는 것은 당연하다. 창조주, 아버지로 인함일 뿐만 아니라 인생 선배이기 때문에라도 말이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종종 "예수님이라면 과연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고 묻곤 한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제 1 목적은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역할 모델로써 우리의 행할 바를 알려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분은 우리 믿음의 삶의 모습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우리가 예수님의 습관을 좇아 산다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고,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습관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이 책에서는 그것을 총 22가지로 소개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님의 습관은 '전도', '기도', '예배', '함께하심', '말씀 암송', '단기 선교', '섬김', '제자 삼기', '터치','경청', '작은 자 사랑', '나라를 위한 기도', '가독 돌봄', '가정 모임', '어린이 사랑', '용서', '교회 사랑', '순종', '감사', '침묵', '안식', '질서' 이상 22가지이다.
 그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만큼 자라기 위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 '가정과 교회를 세우는 삶', '내면의 실력으로 자리 잡아야 할 덕목들' 이라는 총 4 가지의 큰 범주로 나눈다.

 각 습관에 대한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책이나 인터넷 등에서의 좋은 글을 인용하여 주의를 환기 시킨다. 그후 제재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본격적인 내용 설명에 들어간다. 

 예수님의 습관이 나타나 있는 성경 본문을 인용하여 내용에 대한 신빙성을 돕는다. 그리고 본문이 어디인지 밝히고 있어 필요하다면 각 습관을 좀 더 묵상하거나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습관을 이해시키고, 따르게 해야 하는 만큼 내용은 상당히 쉽다. 그리고 각 습관마다 분량이 많지 않아 금새 읽을 수 있다.



 습관은 생각에 따른 행동의 결과이다. 행동의 반복이 습관이 된 것이다. 그래서 습관을 고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시금 또 다른 행동의 반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쁜 습관은 고쳐야 한다. 왜냐하면 습관의 걀과는 인생이기 떄문이다. 나쁜 습관을 갖은 사람은 나쁜 인생을 낳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좋은 습관은 좋은 인생을 낳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습관이란 당연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습관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 주신 예수님의 습관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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