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주택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제목으로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싶었다. 20평대 방 2개 30평대 방 3개 40평대 방 4개. 여기에 변화를 준다는 것이 고작 20, 30평대에 억지로 방을 하나 더 만들거나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드는 정도. 3베이건 4베이건 그 구조가 숨막혔다. 외국처럼 스튜디오, 원룸, 투룸의 개념이 아니었다. 


특히나 다이닝룸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주택 구조에 대한 지적은 정말 공감이 되었다. 40평이상 아니 60평 이상의 집에서 살지 않는 한 우리는 그냥 주방에서 대강 밥을 먹고 있는 것이다. 다이닝 룸없이. 미국에서는 집을 볼 때 다이닝 룸을 가장 중시하고 다이닝 룸이 집의 가장 중앙에 있다. 아무리 평수가 작더라도 말이다. 좀 오래된 집은 주방과 다이닝 룸이 벽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최근에는 오픈 키친이 유행이라 주방과 다이닝 룸이 오픈되어 있고 거기에 넓은 공간을 배정한다. 우리도 최근에 6,8인용 식탁이 유행하면서 주방에 아일랜드를 없애고 긴 식탁을 놓는 것이 유행이라는 데 왜 아일랜드를 유지하면서 다이닝 룸에 공간을 더 배정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1인 가구가 절반을 넘긴 상태이고 2,3인 가구까지 합치면 4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훨씬 낮은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택 구조는 사회의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4인가구 기준의 주택 구조에서 변화를 꾀하지 못 하고 있다. 부부가 안방을 공유하고 나머지 두 개의 방에 두 명의 자녀가 각각의 방을 차지하는 구조. 3인 가구도 부부가 침실을 쓰고 한 명의 자녀가 나머지 두 개의 방을 차지하는 구조. 숨막히는 이 쓰임새에 반기를 드는 것이 바로 '침대는 거실에 두는 것'이다. 침대를 거실에 둠으로써 우리는 방 두 개나 세 개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 부부라고 하지만 부부라고 해서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여분의 방을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침대를 거실에 두면서 새로 생긴 방 하나를 더 알뜰하게 사용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방의 갯수를 더 줄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한국의 주택은 방을 너무 많이 만든다. 리빙룸 또는 패밀리 룸의 면적도 줄이고(아. 한국의 거실 사용은 또 얼마나 천편일률인가. 통창을 중심으로 한 쪽 벽에는 티비와 에어컨을 놓고 맞은편에는 소파를 놓는 그 숨막히는 구조. 티비를 없애고 책장을 놓거나 다른 변화를 시도해도 소파를 놓는 위치는 바꾸지 않는 듯하다.) 방의 갯수도 줄이고 방의 면적은 늘리는 것이다. 한국의 주택은 제한된 면적에 방을 많이 만들어야 하므로 방 하나 크기가 너무 적다. 같은 평수에 방을 하나나 두 개만 만들면 공간을 더 의미있게 쓸 수 있다. 다이닝 룸에도 면적을 많이 배정할 수 있다. 방의 사용이 덜 제한적이다. 4베이 구조의 좁은 방 두 개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면 그냥 벽을 부수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자녀 한 명이 쓴다면 방을 터서 공간을 넓게 쓰게 할 수는 없을까. 


또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층고를 225cm 정도로만 하고 그 위 바로 20cm 위에 윗집을 놓는다는 대목에서 숨이 막혔다. 사람은 250cm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300cm는 되어야 개방감을 느낀다는데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른 책에서 보니 창의력도 향상된다고 한다.) 우리는 225cm 층고와 그 20cm 위에 윗집을 이고 앉아서 생활하고 있다. 숨 막힌다. 이런 지적들이 매우 공감이 되었다. 


물론 대출을 받아서 비싼 집을 사 놓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맞벌이를 해야 하고 아이는 자동으로 학원셔틀을 돌린다는 식의 다소 거친 의견도 나온다. 물론 저자의 주장은 우리가 비싼 집을 사놓고 그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온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지만 이는 너무 단편적인 시선이다. 돈만을 위해서 맞벌이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길지만 이 언급은 이 책의 주된 논의는 아니므로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옥의 티 정도이다. 다른 부분들은 하나하나 도움이 되는 각종 팁들까지 제공되고 있다. 


또 하나 재미있게 읽은 실용서 중 하나는 바로 이 책. 프랑스 요리학교를 수석 졸업한 의대 출신 요리사(?), 요리도 전공한 의사가 되려는 의대생(?)의  프랑스식 자취요리에 대한 이야기. 프랑스 요리도 자취 요리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이 좋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쉽게 쉽게 한다. 아무리 복잡한 요리라도 공정을 간단히 해서 가볍게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물론 이 책에도 '네가 먹은 것을 알려줘라. 그럼 내가 네가 왜 살 쪘는지 말해 줄 수 있다'는 식의,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도 있는 식의 언급도 있지만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적어도 치즈와 버터는 한국 것을 먹지 말라는 지적이었다. 한국 치즈는 우유맛이 많이 나고 버터는 거의 전부 가공버터로 진짜 버터가 아니다. 유럽산 아니면 적어도 미국산을 먹어야 한다. 스트링 치즈의 경우 눈을 감고 먹어도 한 두번만 씹어도 그것이 한국산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 그 맛이 확연히 다르다. 


서구의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두 책은 서구의 문화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아주 재미있었다. 책의 크기는 작고 가벼운 종이를 썼지만 정말 유용하고 재미도 놓치지 않는 책들인 것 같다. 발상도 좋고 책표지까지 좋다. 요즘 이런 책이 많이 만들어져 매우 기쁘다. 비록 온라인 서점에서는 이런 책을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동네 서점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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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매혹적이다. 기초대사량의 저하로 나이가 들수록 똑같이 먹어도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 정상인데 10kg을 빼고 그걸 유지하다니. 156.5cm 신장에 62.5kg의 몸무게를 갖고 있던 저자가 1-2년에 걸쳐 52.5kg의 목표했던 몸무게에 도달하고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성공 비결을 담은 책. 더불어 다른 동료들도 체중 감량에 동참해 160cm정도의 키에 51,52kg 정도의 몸무게였던 동료들이 49kg대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도 짧게 담겨있다. 이는 다이어트는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사례 제시로 보여주는 것. 과체중이 아니어도 좀 더 나은 옷맵시를 위해서 살을 빼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체중 감량 성공의 비결은 여럿이지만 우선은 대부분 자신이 주로 섭취하는 음식의 열량을 알고, 자신의 몸무게를 매일 측정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먹은 음식들을 기록하고 그것을 되돌려 반성해 보는 것. 그리고 이것이 습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실패없이 요요현상없이 저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이 활동을 심리상담과 더불어 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음식을 먹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 가장 주된 이유는 바로 우리의 심리 상태 라는 것, 그리고 사소한 습관이라는 점. 그리고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것. 우리처럼 밥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인이라 우리와 비슷해 더 도움이 되는 점이 있다. 또, 체중 감량은 원하지만 단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체중 감량에 성공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과 습관을 읽고 돌아보며 바른 습관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런데 그것을 억지로 참으며 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해 나가는 것. 오래 해 나가는 것의 비결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읽던 책이 생각이 났다. 


바로 이 책. 최고도비만의 저자 록산 게이가 자신의 삶을 펼쳐 보인 책인데, 결국 그녀의 최고도비만도 심리적인 이유에서였다. 이상적인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자신의 욕구를 참는 일시적인 것으로는 요요현상으로 좀 더 늘어난 체중을 기록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알고 그것을 잘 다잡아 나가는 과정이 (매사에 중요하겠지만) 체중 감량과 유지에도 중요하다고 한다. 치명적인 비만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특히나 정신적으로 많은 괴로움을 겪고 있는 저자 록산 게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비법이다. 내 느낌에는 비록 그녀도 이미 이것을 알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을 자학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자신이 어떻게 최고도비만이 되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라 앞의 책과는 완전히 상반된 내용의 책일 수 있고, 그래서 오히려 이 책에 씌여진 내용을 정반대로 하면 체중 감량에 성공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결국 저자는 심리적 허기를 폭식으로 잊으려 했기 때문에 최고도 비만이 된다. 모든 다이어트를 다 시도했지만 심리적인 이유로 심각한 요요현상을 겪게 되고 비만의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한다. 그리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된다. 


매사에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며 고칠 점을 찾고 바르게 나아가는 것. 비단 이것이 체중 감량에만 적용되겠는가. 세상살이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내용을 만화와 적절히 배합하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해서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휘리릭 읽기에도 좋고 실제로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참 마음에 드는 실용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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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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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잃어도, 내게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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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작가들의 주거니 받거니 글을 읽다보니 그들의 우정이 부러웠다. 물론 본인들은 손사래를 치며 그런 거 아니라고 하겠지만. (맞죠?) 40대였던 작가들이 2020년이 된 지금은 50의 문턱에 서 있겠지. 함께 여전히 티격태격 성숙해져가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드는 생각. 여자들은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쓰면 안 되나. 그런 글들이 있나 생각해 보게 됐다. 40대 작가가 누가 있었나. 그럼 50대는. (왜 혈기 왕성하게 아니면 꾸준히 활동해오는 40,50대 여성 작가는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30대는. 아무리 꼽아봐도 내가 아는 한 이렇게 주거니받거니 글을 쓴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아. 요조 임경선의 작품이 있구나 싶었다. 


이 책은 팟캐스트에서 홍보 이야기를 들었지만 왠지 별로 보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김연수 김중혁 두 작가의 우정어린 티격태격을 보고 있노라니 샘이 나서 이 책은 여자로서 무조건 읽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사명감까지 생겨났다. 내 생각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읽어봐야 알겠지만 괜시리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다가 드는 독서 욕구. 








+ 김중혁의 공장 산책기 '메이드인 공장'은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 씨네 21인가 한겨레인가 ESC 코너의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는데(잡지 제목은 긴가민가 해도 그 코너만큼은 기억이 난다. 맞아. 그런 코너가 있었지.) 김중혁 작가가 아이디어 기획도 했단다. 아이디어도 좋고, 그림도 그리고, 발상도 기발하고, 글도 쓰고. 책도 참 예쁘다. 중간중간 실린 만화도 곱고 아이디어도 좋다.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어디선가 그의 글에서 '펭귄뉴스' 데뷔작이 부끄럽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 호기심이 일었다. 그럼 어디 한 번 그의 소설도 도전해 볼까. 뭐가 그리 부끄러울까. 







이렇게 이책저책 넘나드는 것 재미있다. 넘나드는 독서!!! 책 속에서 텀벙텀벙. 종횡무진. 어디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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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할 수 있는 한에서 김중혁의 책을 읽고 있다. 우선 검색을 해보니 그의 책들은 한결같이 표지가 알록달록하고 예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책의 그림도 본인이 그린 것이었다. 그림도 그리고 디자인도 하고 그래서 색깔에 그렇게 민감했구나 싶었다. 음악(

모든 게 노래)이나 영화(대책없이 해피엔딩)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어 책도 냈고 무슨 공장 체험기 같은 책(메이드 인 공장

)도 냈더라. 세상에 이런 다재다능꾼이 있을 수가.


김중혁의 책을 몇 권 읽다보니 그의 유머코드가 익숙해져서인지 이 책이 유독 재미있어서인지 낄낄거린 대목이 꽤 되었다. 뭔가 촌철살인의 유머랄까. 


그의 글을 읽어보면 넘쳐나는 시간과 넘쳐나는 에너지와 넘쳐나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독신남 느낌이 물씬났는데 알고보니 그는 이미 결혼을 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는 언급 한 번, 아내 이야기 딱 한 번 (그것도 같이 형 가족들과 캠핑을 갔다 정도.)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남자 작가들(여자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을 두 부류로 나누면 결혼을 해서 아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루키, 김영하, 장강명 등은 아내 이야기를 꽤 많이 하는 편이고 특히나 장강명은 아내 이야기로 책도 두 권이나 내고 뭔가 어느 정도 캐릭터가 완성되어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고, 하루키의 아내나 김영하의 아내는 늘 남편의 스케줄을 따라 세계 각지로 남편을 따라다니는 특성이 있어서 그녀들의 직업은 뭘까, 그녀들은 그녀들의 삶에 만족할까(왠지 끌려다니는 삶으로 보였다. 물론 그 선택들은 본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두 커플 다 아이가 없고 고양이를 키운다는 공통점도 있다. 소설가의 아내라면, 유명인의 아내라면 아내의 직업이 없으면 더 편리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뭔가 왠지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노심초사 하게 되는 면이 있었다.) 하는 궁금증이 지속적으로 일기도 했다. 각설하고 나는 후자 작가들을 더 선호한다는 것. 사생활 이야기가 안 나올 수는 없지만 사생활은 사생활로 남겨두는 작가가 더 멋있다. 그런 면에서 갑자기 최민석 작가가 아내와 교대해서 아이를 봐야하고 똥기저귀를 두 시간에 한 번씩 갈아야 한다는 이야기(외로움이 철철 넘치던 까도남 최민석은 어디에?)를 했을 때 웬 갑툭튀하면서 약간 실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약간의 신비주의를 선호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보통 양이 많으면 깊이가 아쉽고, 깊이가 있으면 양이 적은 경우가 많은데 김중혁은 어디에도 적용이 안 되는 작가인 것 같다. 인내심이 재능이라는 말이 그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묵묵히 다작하는 작가. 질로도 양으로도 승부할 수 있는 작가. 그러고 보니 김중혁의 작품도 대부분 에세이를 읽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너무 에세이 편향인가. 어떤 사람들은 더이상 에세이를 읽지 못하게 되었다고도 하는데 나는 요즘 픽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가 더 어려워졌다. 꽉 짜인 허구의 세계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들어가도 그다지 재미가 없고 걸어 나오기도 힘이 든다. (하지만 빨려들게 만드는 책은 바로 빨려들어가준다. 그런 책을 만나기 쉽지 않아서 그렇지.)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그냥 휘리릭 읽히는 책들이 편하다. 하지만 그 편함에 질려 또 꽉 짜인 뭔가를 찾아나서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이 계절에 술술 읽히는 에세이를 잔뜩 쌓아놓고 차를 마시는 시간들이 소중한 요즈음이다. 


+ 경북 김천 고향 친구 사이인 김중혁과 김연수의 주거니 받거니 에세이집.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웃겨서 읽게 되었다. 남자들의 우정. 티격태격. 공수레 공수거라고 칭찬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수레가 비어서 요란하다는 소리라는데 빵 터질 수 밖에. 두 사람의 폭소 베틀을 경험할 수 있다. 예전 씨네 21을 다시 읽는 느낌도 나고. 십여년 전 출간된 책들을 읽고 있노라니 다시 그 시간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나의 타임머신. 이런 글들이 나를 그 시대로 돌려보내준다. 위대하다. 그런 의미에서 Seize the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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