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할 수 있는 한에서 김중혁의 책을 읽고 있다. 우선 검색을 해보니 그의 책들은 한결같이 표지가 알록달록하고 예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책의 그림도 본인이 그린 것이었다. 그림도 그리고 디자인도 하고 그래서 색깔에 그렇게 민감했구나 싶었다. 음악(

모든 게 노래)이나 영화(대책없이 해피엔딩)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어 책도 냈고 무슨 공장 체험기 같은 책(메이드 인 공장

)도 냈더라. 세상에 이런 다재다능꾼이 있을 수가.


김중혁의 책을 몇 권 읽다보니 그의 유머코드가 익숙해져서인지 이 책이 유독 재미있어서인지 낄낄거린 대목이 꽤 되었다. 뭔가 촌철살인의 유머랄까. 


그의 글을 읽어보면 넘쳐나는 시간과 넘쳐나는 에너지와 넘쳐나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독신남 느낌이 물씬났는데 알고보니 그는 이미 결혼을 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는 언급 한 번, 아내 이야기 딱 한 번 (그것도 같이 형 가족들과 캠핑을 갔다 정도.)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남자 작가들(여자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을 두 부류로 나누면 결혼을 해서 아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루키, 김영하, 장강명 등은 아내 이야기를 꽤 많이 하는 편이고 특히나 장강명은 아내 이야기로 책도 두 권이나 내고 뭔가 어느 정도 캐릭터가 완성되어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고, 하루키의 아내나 김영하의 아내는 늘 남편의 스케줄을 따라 세계 각지로 남편을 따라다니는 특성이 있어서 그녀들의 직업은 뭘까, 그녀들은 그녀들의 삶에 만족할까(왠지 끌려다니는 삶으로 보였다. 물론 그 선택들은 본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두 커플 다 아이가 없고 고양이를 키운다는 공통점도 있다. 소설가의 아내라면, 유명인의 아내라면 아내의 직업이 없으면 더 편리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뭔가 왠지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노심초사 하게 되는 면이 있었다.) 하는 궁금증이 지속적으로 일기도 했다. 각설하고 나는 후자 작가들을 더 선호한다는 것. 사생활 이야기가 안 나올 수는 없지만 사생활은 사생활로 남겨두는 작가가 더 멋있다. 그런 면에서 갑자기 최민석 작가가 아내와 교대해서 아이를 봐야하고 똥기저귀를 두 시간에 한 번씩 갈아야 한다는 이야기(외로움이 철철 넘치던 까도남 최민석은 어디에?)를 했을 때 웬 갑툭튀하면서 약간 실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약간의 신비주의를 선호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보통 양이 많으면 깊이가 아쉽고, 깊이가 있으면 양이 적은 경우가 많은데 김중혁은 어디에도 적용이 안 되는 작가인 것 같다. 인내심이 재능이라는 말이 그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묵묵히 다작하는 작가. 질로도 양으로도 승부할 수 있는 작가. 그러고 보니 김중혁의 작품도 대부분 에세이를 읽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너무 에세이 편향인가. 어떤 사람들은 더이상 에세이를 읽지 못하게 되었다고도 하는데 나는 요즘 픽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가 더 어려워졌다. 꽉 짜인 허구의 세계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들어가도 그다지 재미가 없고 걸어 나오기도 힘이 든다. (하지만 빨려들게 만드는 책은 바로 빨려들어가준다. 그런 책을 만나기 쉽지 않아서 그렇지.)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그냥 휘리릭 읽히는 책들이 편하다. 하지만 그 편함에 질려 또 꽉 짜인 뭔가를 찾아나서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이 계절에 술술 읽히는 에세이를 잔뜩 쌓아놓고 차를 마시는 시간들이 소중한 요즈음이다. 


+ 경북 김천 고향 친구 사이인 김중혁과 김연수의 주거니 받거니 에세이집.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웃겨서 읽게 되었다. 남자들의 우정. 티격태격. 공수레 공수거라고 칭찬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수레가 비어서 요란하다는 소리라는데 빵 터질 수 밖에. 두 사람의 폭소 베틀을 경험할 수 있다. 예전 씨네 21을 다시 읽는 느낌도 나고. 십여년 전 출간된 책들을 읽고 있노라니 다시 그 시간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나의 타임머신. 이런 글들이 나를 그 시대로 돌려보내준다. 위대하다. 그런 의미에서 Seize the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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