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이었던가. 고딩들의 휴학,자퇴 등이 흔하지 않던 시절 당차게 ‘네 멋대로 해라’를 외치며 당당히 학교문을 박차고 나온 한 사람이 있었다. 한겨레 출판애서였던가 출간했던 그 책을 보고 그녀를 응원했었다. 그녀의 용기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그리고 살면서 문득문득 그녀는 지금 뭘 하며 살고 있을까 긍금했다. 한국이 다양성이 그리 많이 허용되지도 않고 그것을 포용할 여건도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박차고 나온 그녀의 그 이후의 삶이 좀 걱정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근 십년이 훌쩍 지나버린 이야기여서 잊고 지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차에 주로 전자책을 읽는 내가 전자책 베스트셀러 목록을 훑던 차에 발견한 바로 이 책.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반가운 마음에 얼른 클릭클릭해서 읽어보았다. 역시나 그녀는 계속해서 쓰고 있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겠지.
소설은 지나치게 리얼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다. 요즘은 페미문학이 대세인가. ‘나의 미친 페미...’를 읽은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어리둥절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바쁘게 오고 갔다. 내용은 좋으나 르포와 문학을 구분해야한다는 나의 소신에 비추어서 좀 더 문학적으로 승화되기를 바랬다. 그래도 그녀의 소설은 반가웠다.
그녀는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냥 늘 거기 있었는데 내가 잊고 산 것이었다. 우리 여전사들 힘내시라.
+ 종이책 베스트셀러 목록과 전자책 베스트셀러 목록은 사뭇 같은 듯 다르다. 종이책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는 잘 찾을 수 없던 이 책이 전자책 목록에서는 단연 눈에 띄었다. 노골적인 묘사들 때문인가.
++ 이런 책들을 읽으면 대한민국 여성들은 다 아이를 안 낳겠구나 싶은데 40세 이웃이 다다음달이 들째 산달이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38에 첫아이(아들)를 낳아 둘째(따님이시란다)는 아예 고려대상이 아닌 듯 말했어서 매우 의외였고 산모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아이도 그렇고. 하지만 경제적으로 매우 여유가 있고 젊은 친정엄마가 도와주신다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재택근무를 하는 그녀가 일도 하고 큰 아이도 돌보고 뱃속애서 둘째도 기르느라 고생이 참 많겠구나 싶기도 하고. 역시 아웃소싱을 하면 불가능은 없는지, 결국 돈이 문제인 건지, 딸 가진 엄마는 60넘어 두번째 손주를 돌보는 유효 노동력으로 소비되어야만 하는지 오만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시대에도 사람들은 정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구나 싶기도 하고 자칫 외동으로 코로나 시대를 힘겹게 버텨야했을 큰 아이에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그런데 남매는 어릴 때 맨날 싸우기만 하다가 조금만 크면 남남되고 소 닭보듯 하게 되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봐서 그게 다행인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엄마에게는 딸이 좋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 딸도 딸 나름이지 하는 생각도 들다가. 딸도 효녀보다는 본인이 행복해야지 싶다가. 그런데 그 딸이 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안전할 수 있을까 싶다가.
내가 둘째를 낳는 것도 아닌데 혼자 오만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이렇게 한 여성(내 이웃인 그녀) 아니 두 여성(8월이 산달인 그녀와 그녀의 엄마) 아니 세 여성(엄마 할머니 손녀)의 삶이 결정되는 것인가 싶어 무섭기도 하고 생각이 끝이 없었다. 이래저래 잠 못드는 밤. 둘째 고민은 둘째를 낳는 순간 없어진다는데 적어도 그녀는 둘째 고민은 안 하겠지 그것 하나만은 좋은 것이겠지 하면서 잠을 청하게 되는 밤이다.
+++ 그래도 김현진의 에필로그의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맴돈다. 태아들이 모여서 내린 결론들. 엄마. 나 안 낳아도 되나까 엄마는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노답인 세상에 정답인 것만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