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Lab Girl (Paperback, 미국판) - 『랩 걸』 원서
Hope Jahren / Vintage / 2017년 2월
평점 :
제목은 연구실 소녀라는데 독자로서 그녀가 소녀라는 걸 인지하게 되는 때는 두
세 번 정도이다. 갑자기 첫눈에 반한 남자를 만나 결혼할 때,
임신 증상도 그녀의 성정만큼이나 엄청나서 임신 기간 중에 연구실에 못 나오게 되는 처우를 받을 때, 아들을 픽업해 아들과 대화하며 바닷가에서 노는 모습 정도이다. 그 이외에 이 이야기는 남자로
바꾸어도 별 손색이 없는 이야기다. 특히 아들과 놀 때는 아빠로 바꿔도 별 상관없었으니 두 번 정도.
어떻게 한 소녀가 과학자가 되었나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추천도
받은 책이겠거니 하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흙수저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하고 안정적이고 그럴싸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아직은 미국에서 유효한 개천의
용 시리즈의 하나일 수도 있다.
종신고용 또는 정년보장 교수가 되기 까지의 험난한 길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과학계에는 문외한이고 특히나 미국의 과학 연구 환경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으므로 그녀의 종횡무진 좌충우돌 체험기는 휘리릭 책장을 넘기기에
충분했다. 다양한 식물 이야기는 때로는 공감이 갔지만 때로는 산만해지고 흥미를 잃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보다는 아빠 역할을 더 잘 할 것 같다는 그녀의 고백이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이다. 그녀는 그냥 남자 과학자 같았다.
특히나 빌이라는 동료와의 관계를 주변에서 규정짓고 싶어한다는데 나도 그렇다. 남편보다 친한 느낌인데 결혼은 결국 엄마가 의사인 같은 명문대학 동문과
하고 일은 정작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는 빌과 하다니..빌의 월급을 위해서 학교를 옮기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관계이긴 하다. 관계를 늘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열정과 노력만으로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종신 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상당히 부러워 보이는 일면이기도 하다. 특히나
그 사람이 여자이고 그 분야가 과학일 때는 더한 것이겠지. 그것도 미국이라 가능하다. 유리천장이니 뭐니 해도 한국보다는 낫다.
좌충우돌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어딘가 빌 브라이슨과 닮은 것도
같다. 빌 브라이슨 특유의 위트와 냉소는 거의 없지만 뭔가에 돌진하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비슷하다. 아니면 그냥 숲이라는 공간적 환경이 유사해서 아니 그녀의 전공이라 매번 식물 이야기를 해서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기대했던 시골 소녀가 어떻게 과학자의 꿈을 품고 과학자가 되었나의
이야기는 앞의 극히 일부분에만 나오고 그 이유도 극히 평범했다. 아빠가
커뮤니티 칼리지 대학 교수여서 늘 실험실에서 놀았기 때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어릴 때 미네소타에서 자라서 그 극한 추위에 대한 묘사만이 근처에서 살아본 나에게 와 닿은 내용이었다.
그녀의 열정과 그녀의 열정을 쏟아부을 만큼 좋은 것이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누구에게나 20대는 눈부신 것이겠지만
그녀는 참으로 후회없이 살고 있구나 싶다. 후회없이 사는 인생..이것이
이 책의 주제인 것인가. 역시 독서는 독자 마음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