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창비세계문학 16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이한정 옮김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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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을  한때 닥치는 대로 읽었던 적이 있다. 소설인데 마치 만화를 읽는 느낌은 계속 읽게 만들었다.   쉽게 쉽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책을 덮고 나면 싹 잊어버리게 되는 부담없이 읽히는 데 비해 심각한  부작용은 다소 어려운 문체의 작품은 거부반응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 뒤로 만난 내가 일대 전환이 된 작품으로  <금각사>의 미시마 유키오와 <세설>의 타니자끼 준이찌로오가 있다.  충격에 가까운  작가와 작품이었다.  두 작품은 다 일본 특유의 문화와 전통을 표현해 냄과 동시에 결말 역시도 예측불허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설>은 여성의 심리표현을 아주 세밀해서 여성작가도 이보다 더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 권으로 분권이 되어 있지만 사건의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어 생각보다 술술 읽혔다. 그 뒤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아도 나와 인연이 안되었는지 만날 수 없었다.

 

  이번 창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세계문학중에 타니자끼 준이찌로오의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은  그동안 기다렸던 보람이 느낄 만큼 반가운 소식이었다.  탐미주의의 대가와 만나는 기대감에 전작에 반대로 굉장히 얕고 깔금하다. 파격에 가까운 주제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열쇠> (2013. 6 창비)다.

 

  열쇠는  일기를 잠궈두는 장치이다.  부부의 속마음을 열고 들여다 보게 할 도구가 되기도 하고 쉽게 열리지 않는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있어야 하는 데는 어디에도 없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남편은 50대 중반의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내는 유교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평범한 40대 중반의 부부다. 그리고 20대 중반의 딸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 없이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부의 관계를 나타내는 일기 속을 들여다 보면 한마디로 동상이몽이다. 특히 부부관계에 있어서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바라는 점이 있지만 일기속에 드러나듯이 너무도 다르다.

 

  브랜디의 힘을 빌어 취해 잠든 아내의 몸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사진으로 남긴다거나 남편이 안경을 벗은 맨얼굴을 들여다보면 구역질이 난다는 다소 노골적인 묘사는 지금도 사실  거부감이 느끼기 쉬운데 작품이 나올 당시에  어떠했을까 싶다.  딸과 연을 맺어주기 위해 등장하는 남자친구를 이용해 자극제로 쓸 생각을 하고  질투를 느끼는 남편은 사실 의사의 권고를 받고 있는 중이지만 아내는 모른다.

 

  서로의 마음을 나타내는 일기는 일부러 보이려고 쓰는 게 역력하다.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두 사람의 행동을 따라가다보면 어느것이 진심인지 알 수는 없다. 마치 미로같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이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할 뿐이다. 오히려 제일 궁금한 것은 딸이다.  딸이야말로 엄마를 경멸하고 일부러 불륜을 저지르게 한 것인가 의심이 간다. 하지만 결국 피해를 입은 것은 딸 자신임을 - 아버지는 죽고 엄마와 불륜인 상태의 남자친구와 셋이 살게 된 - 후회할 테니 말이다.

 

   중간 중간 흑백의 판화로 된 삽화도 다른 책에 비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차갑고 냉정해 보이기도 하고 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지만 유교적인 관습에 따라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아내의 숨겨진 비밀을 알 게 된 순간, 이책의 묘미는 이거였어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리고 더붙여 일기를 본 사람은 두 부부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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