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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의 세계사 ㅣ 창비청소년문고 10
이영숙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평점 :
옷장을 열고 역사의 현장으로 고고씽~
청소년판 역사책이라고 읽기 시작했을 때 처음 등장하는 청바지는 중1 영어 교과서에 나왔던 "골드러시"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옷장속의 세계사는 딱 그 거기까지라 입시위주의 암기교육이 주가 된 역사교육의 피해자임을 내스스로 증거자가 셈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사회교과서를 들여다 보며 예전처럼 엄마 생각에 맞춰 무조건 외워!라고 아이를 다그치다가 역효과가 나는 걸 봤다. .
재밌있는 역사교육이나 역사를 자신만의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심어주기 위해 그동안의 방법으로는 역부족임을 살면서 느끼기에 아이에게도 강요하기 어려운 요즘 <옷장 속의 세계사>(2013. 6 창비)는 시작은 작은 옷장이지만 담긴 이야기는 세계사다.
처음에 골드러시란 단어에 웃음이 나온 것은 청바지가 생각나서 였고 그 시절 한참 청바지를 즐겨 입었던 반 친구들과 새로운 상표가 무엇인지 영어단어를 (뜻도 사실 모르면서) 알기 위해 간판을 쳐다보면 다닌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뱅뱅이나 리바이스라는 단어가 주는 왠지 모를 멋스러움에 비싼 옷을 사달라고 조르다가 혼이 난 일은 나나 내 친구들사이뿐 아니라 집집마다 유행이었다.
그 유명한 청바지의 대명사는 청바지를 처음 만든 리바이 스투라우스였는데 멕시코의 땅 이었던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승리로 미국땅이 되고 게다가 금이 발견된 뒤 벌어진 새로운 역사의 현장에서 나오게 된 결과물이었다. 동시에 점령자들 때문에 피를 흘린 많은 원주민들이 있었음도 간과하지 말아야함은 생각해볼 여지임을 남겨두고 있다.
부드럽고 우아한 옷감의 대명사인 벨벳에 붙여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독립혁명, "벨벳혁명"과 "프라하의 봄"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동유럽국가들의 아픈 역사현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당시의 긴박하고 무서웠던 강대국 소련의 영향아래에서 자유를 외치던 함성과 독립을 향한 처절하고 안타까운 희생이 낳은 승리의 현장은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건 역사적 사실이 교차되기도 했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인공 험브리 보가트가 입고 나왔던 그 옷, 트렌치코트는 사실 전쟁과 관련이 있었다. 트렌치 (trench)는 '참호'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세계1차 대전에 방수복으로 입었던 것이 처음이었다. 참호 속의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사진 한장이 주는 전쟁의 참혹한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참호전쟁에서 더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살상무기들의 등장과 아프리카에서 차출되어 전쟁에 참여하고 죽어간 식민지 흑인들의 사진속에서 트렌치코트 일명 바바리 입은 군인들의 모습이 그들의 아픈 역사 현장이었다.
한아름 '바틱"(인도네시아의 염색한 전통 옷감)을 이고 해맑게 웃고 있는 여인의 모습과는 달리 인도네시아인들과 그들을 식민지로 삼았던 네덜란드와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인도에만 동인도회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한 풍차와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로 부터 독립을 쟁취한 후 여러 섬을 병합하면서 티모르섬에 이야기는 또다른 인도네시아의 역사적 사실에 놀라게 된다.
핵폭탄 만큼 파격적인 수영복 "비키니"에 이름은 섬이름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핵실험의 현장을 담아내고 있다.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섬이름 비키니는 전쟁과 비극이란 두 단어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미국이 일본에 떨어뜨린 핵폭탄으로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 살상과 그 핵폭탄을 만들어낸 과학자 , 오펜하이머가 남긴 말 "내 손에는 피가 묻어 있습니다" 란 말로 죄의식을 분명히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어닥친 "매카시즘"의 희생자가 된 오펜하어머의 일화를 통해 20세기의 냉전과 전쟁, 극도의 공포와 편가르기를 모두 만나게 된다.
아름답고 멋있는 옷에 담긴 아픈 역사를 들어보면서 이렇게 편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살게 된 수많은 이들의 희생의 대가였음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동시에 역사는 내가 이순간을 사는 것도 역사의 한 순간임을 느끼게 되는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