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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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영화를 세 번이나 본 것은 아마 빌리 엘리어트가 길지 않은 내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세번을 봤는데 그 때마다 느낌이 모두 달랐다.  내용을 모두 알고 있었는데도 두번째 보았을 때나 이미 다 알고 본 세번째에도 역시나 나는 울면서 봤다.

 

   인문학 강의에서도 잠시지만 몇 장면을 보여주었을 때에는 강사가 당신은 어떤 인물에 가깝냐고 질문했을때 나 뿐아니라 모두들 즉각 대답하지 못했다.  작은 목소리나마 빌리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줄 알았는데 지금 나는 역시 재키에 가깝게 느낀다.

 

   영화로 봤지만 원작이 있다면 덮어놓고 읽어 보고 싶다.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서 책으로 나온 특이한 경우다. 저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른데 어떻게 영화를 책으로 나왔을까.

 

  한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중 일인칭 소설'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를 재해석하고 있다. 인물들 모두의 입장이 되어보고 나를 대입시켜보는 것이다.

 

  빌리는 열두살이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 재키와 나이차가 나는 형과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와 살고 있다. 엄마가 열여덟살이 되면 읽으라고 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사본도 만들어 두었다. 내용도 외울정도이면서..

 

  할아버지가 쓰고 아버지가 쓴 복싱글러브를 물려받아 마을회관에서 배우는 권투를 배우러 다니다 우연히 옆 교실에 있는 발레강습을 보게 된다. 토슈즈를 신고 껑충껑충 뛰는 계집애들이나 하는 발레에 관심을 갖다니 자신도 의아하다.

 

  발레선생님의 권유에 못마땅한 듯  점프연습을 해 보다 저도 모르게 성공한다. 급기야 복싱 글러브를 목에 건채 스핀  연습을 한다. 물론 이 사실을 알면 안되는 아버지 앞에서도 저도  모르게 하고 있다.

 

  아버지 재키와 형 토니는 지금 탄광을 없애려는 것에 반대 농성중이다. 자그마치 넉달 째이다. 아들의 미래의 직업을 위해서라고 꼭 파업은 성공을 해야 한다. 하지만 녹록치 않다.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답답하다.  엄마의 빈자리며 가정 경제까지 크리스마스에 흥겨움은 커녕 당장 뗄 장작이 없어 아내의 유품인 피아노를 도끼로 패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 영화에서는 그저 빌리만 보였지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던 내게 책은 온통 재키만 보인다.

 

  어려서 나는 지금처럼 흔하디 흔한 미술학원에 한 번 가보는게 소원이었다. 결국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학교에서 밀어준 덕에 몇 몇 대회에서 상을 탄 뒤 나는 더 가고 싶었다. 어렵게 내맘을 비쳐보려했지만 마침 우리집에는 할머니가 치매로 하루하루가 외나무 다리를 걷는 상황이라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그저 나는 가끔 있었던 대회에서 받아온 상과 상품이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 때 만약 내게 빌리처럼 기적같은 기회가 왔더라면 빌리처럼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혼자 웃고 만다.

 

  그때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이 재키와 비슷했을거라 생각이 든다. 끝없이 궁지로 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런 희망도 줄 수 없고 오직 상을 타오는 날에 만들어 주거나 언니 몰래 사주었던 만두한접시로 나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도 엄마는 손녀인 내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만 봐도 한번씩 던지시는 말이 있다. "네 엄마도 어려서 그림 잘 그렸다고" 아마 잊지 못하고 계신 것이리라.

 

  마지막 남은 아내의 패물을 전당포에 맡기고 가지게 된 돈을 쥐고 돌아서던 재키는 굳은 결심을 한다. 바로 배신자라는 말을 들을 각오를 하고 다시 일터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등을 돌리줄 알았던 사람들의 모금으로 어렵게 발레학교의 오디션을 보러 가는데..

 

  마지막에 무대에선  백조의 호수 주인공이 된 빌리가  높게  점프하는 컷은 아버지의 희망이자 가족의 힘을 보여준 승리의 멋진 엔딩이자  빌리 엘리어트의 가장 멋지고 잊을 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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