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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사전 - 부모와 아이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조재연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3월
평점 :
올해 초 4학년에 올라가는 아이의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한 두번씩 꼭 전화를 받는 관계로 긴장도 하지 않고 갔다. 학기초라 아직 선생님의 스타일이 어떤지 잘 모르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괜찮은 말을 듣은 나는 나오면서 웃음이 났다. 나에게 이런 날도 오는 구나 하면서..
학년이 올라가면서 제일 긴장되는 것은 성적보다 아이의 감정에 더 내 관심이 많았던 터 학교생활에 적극적이며 선생님께 좋은 첫인상을 남겼다는 데 내심 기쁜 것이다. 하지만 몇달 뒤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었다. 정말 그분이 오신 것인지 사춘기의 전조라는 검은 장막이 드리워진 것인지 조금만 말 실수라도 할라 치면 눈물이 글썽거리지 않나 밥도 안먹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지 않나. 정말 변덕이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날은 배가 아프다고 잘 가던 공부방도 빠지겠다며 예전에 유치원 다닐때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아파도 유치원 가길 고집했던 일) 엄마에게 서운했다고 하질 않나 급기야는 공부방에 가느니 차라리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는 말로 나를 울렸다. 그 한마디에 마침 몸도 안좋던 것까지 겹쳐 서운함에 바닥까지 내려간 내 감정을 추스리는 데 많은 시간을 흘려 보내야 했다.
정말 내게도 이런 날이 오고야 만 것인가. 이제 4학년인데.. 아직 시작도 안한 사춘기인데 아이보다 엄마인 내가 먼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지금 나는 멘붕상태다.
우리아이와의 소리없는 전쟁을 누구에게 물어봐야하는데 내게 온 <청소년 사전>(2012. 3)을 통해 내게 던져진 이 문제의 해답을 찾고자 읽기 시작했다.
속시원한 답을 원했다. 이 답답한 마음을 뻥하고 뚫리게 하고 이렇게 저렇게하면 된다는 식의 처세술을 바랬던 내게 이 책은 대답대신 물음을 던져줬다. 지난 20년동안 신부님의 청소년상담내용을 하나 하나에 대한 들여다 보니 지난날 내가 똑같이 내 부모님께 했던 말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나 왜 이런 집에 태어나서 내방하나 없이 옷하나 갈아입으려면 좁은 욕실에서 힘들어야 하고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은 시원한 곳으로 한번 놀러가보자고 말조차 꺼낼 수 없어서 혼자 신경질을 부리다 삼키길 여러번 하고 결국 혼자 상상으로 마무리했던 일들이 말이다.
아마도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나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감히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지금 내아이가 내게 던지듯 표현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만 있었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같은 공간에서 살면서 한솥밥을 먹고 서로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마구 내 맘대로 던지듯 내밷는 말들,때로 말로는 네가 알아서 해라 하면서도 사실 일일이 간섭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내맘에 드는 것으로 처음부터 뒤집어 버리고 말았던 일들까지 새록새록 생각나게 만든다.
서로 감정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보다 행동이 먼저 나오게 만드는 비이성적이었던 그 모든 것까지 모두 아이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심각하게 되짚어보게 만들기도 했다.
청소년사목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이야기, 신부님의 어린시절의 어머니와의 추억이 특히나 잊지 못할 같다. 진정 부모의 존재 이유는 부모가 되어 보기 전에 절대 알 수 없었던 것을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직접 느껴보라는 데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어두운 터널을 불빛 하나 없이 막막하게 지나가야 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에게는 용기를 그리고 터널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모들에게는 위안이 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