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을 거슬러 내가 처음 만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여성학우회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 갔을 때다. 어두컴컴한 대강당에 많은 여학생들이 모여있었다. 제목이라든가 내용을 먼저 보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마침 내가 좋아하는 케시 베이츠가 나와 안심이 되었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니 왠지 모를 믿음이랄까.
 

  이야기의 구조가 두가지로 전개되었다. 표정 자체가 내키지 않은 시어머니 병문안을 간 애벌린은 우연히 혼자 중얼거리듯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상대가 그리운 스레드굿 부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1920년대의 휘슬스톱의 이야기중에서 시누이 이지와 루스의 이야기에 과거를 기억하는 그녀의 놀라우리만치 자세한 묘사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영화가 끝나고 과연 루스의 남편은 누가 죽인것인지 그 솥안에서 움직이던 무엇이었는지 알듯 모를 듯 상상에 맡기는 식의 결말에 시간이 지나도록 의문이 풀어지지 않았다.

 

  나의 소망대로 원작을 만나보게 된 나는 무엇보다 그 부분을 먼저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베고 잘 수도 있을 만큼 두께가 상당한 데 일단 헉 하는 한숨이 나왔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니 도저히 놓지 못했다. 과연 루스의 남편을 죽인 사람은 누굴까?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많이 줄이고 변형된 내용을 기억하든 하지 않든 이야기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시나리오에 참여했다는 작가 패니 플라그의 환한 미소와 그아래 그녀가 레즈비언임을 당당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시대가 많이 변한 지금도 사실 살짝 거부감이 있는 내게도 그녀가 내세운 것이 인종뿐만 아니라 아직도 남아있는 남녀평등에 관한 이야기였음을 느끼게 해준다.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흑인과 백인 , 철도를 따라 떠도는 부랑자와 그들의 범죄시하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인 이지의 캐릭터로 통해 작가가 바라고 또 원했던 세상이 보여주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해준다.

 

 모두가 사랑했던 오빠 버디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후 그를 따라하고 싶은 이지, 그녀가 사랑했던 루스의 결혼이 가져가 준 절망감에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몰래 가본다. 술주정과 폭행을 일삼는 남편에 시달리던  루스는 결국(낙태도 이혼도 인정되지 않은 시대라) 도망치다시피 다시 휘슬스톱으로 오게 된다.

 

  행복하려던 순간도 잠시 루스가 낳은 아이 스텀프가 철도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고 팔하나를 잘리게 되자 작은 묘비가 만들어주는 이지, 슬픔도 그녀의 엉뚱하고 당찬 모습에 웃음이 난다.

 

 무엇보다 한 집안의 이야기가 소소하지만 정감이 간다. 중간 중간 휘슬스톱의 소식지에 담긴 이야기도 자잘한 미소를 만든다. 영화로 보았을 때 20대였던 내가 어느새 아줌마가 되어 이야기의 다른 중심인 애벌린을 공감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그녀의 상상장면을 읽다가 삼백프로 공감하기까지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엄마로서 정말 본받아야할 이는 바로 스레드굿 부인이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늦게 아이를 낳게 되지만 태어날 때 뇌출혈로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데...

 

 그녀가 애벌린에게 한 말,

 

  많은 사람들이 출산 과정에서 다친 아이 때문에 슬픔에 잠겨 살지도 모르지만, 나는 주님이 위 아기가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해요. 그 아이는 이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어요.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를 하느님이 내게 보내 주신 천사라고 믿어요. 어떨 땐 어서 하늘나라에 가서 내 아이를 만나고 싶어 초조해지기까지 한답니다. 내 친구였죠. 보고 싶어요. .... 특히나 부활절에는요.

 

 

  마지막으로 폭식과 우울증이었던 애벌린이 새로운 인생을 찾고 덧붙여 범인이 밝혀지고 (루스의 남편을 죽인) 이지처럼 자신의 방식대로 당당한 여자가 되어가는 데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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