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12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여고를 다닐때 유행처럼 번진 일이 있다. 한학년 언니들 중에 꼭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팬클럽처럼 이름을 외우고 막상 그 앞에선 한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서로 누가 제일 멋있다거나 오늘 어디서 뭐하는 것을 봤다는 등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곤 하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꼭 한명쯤은 있는 것이 당연시 여겼기에 나도 동참하려 했으나 같은 교복을 입고 일년 후 나도 그녀들처럼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 그네들과 비슷한 무를 연상하는 다리모양를 하겠다는 염려와 남고가 근처에 없는 우리학교안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이 한편으로 안쓰럽기까지 느껴졌다.

 

 제목에서부터 반어적인 의미가 가득 담긴 <아름다운 나날>(2010.2 민음사)를 읽기 시작하면서 문득 온통 여자들만 있었던 여고시절 겪었던 일들이 하나둘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린 나이라고 할 수 있는 여덟살부터 열입곱살까지 수도원에 있는 여자기숙학교를 다닌 나는 어느날 새로 전학온 한살 위의 프리데리크를 만나게 되고, 유일한 감옥같은 이 생활을 유일하게 벗어나는 일은 아침 산책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열하기 보다 관찰자로서 룸메이트인 마리온이나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학생들의 특징들을 딱딱한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일기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면서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은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한 작가의 새로운 느낌의 문장들이 매력적이다.

 

 처음 시작부터 죽음에 대한 언급과 결국 아버지의 죽음으로 학교를 떠나야했던 유일한 친구인 프리데리크를 그리워하면서 새로 전학온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친구이지만 미셀린을 만난 나는 묘한 끌림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 모두 기숙학교를 떠나게 되고, 다시 못만날 것같았던 프리데리크는 미셀린의 생일파티에서 조우하게 되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모범생의 모습은 없고 상상조차 못했던 변한 모습에 놀라게 된다.

 

  이어지는  <프롤레테르카 호> 역시 아버지와 여행을 위해 떠난 한 소녀가 배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늘 주변인 처럼 맴돌기만 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죽음을 덤덤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들을 기억해 내는 서랍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면 환하고 멋진 날들도 있겠지만 하나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낸 서랍을 연 저자의 서랍을 보니 모두 드러내고 아픈 기억은 모두 지우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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