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이란 단어와 예술이 동시에 붙여진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누구나 한 때는 학생으로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때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살았는데 이제 내 아이의 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어렵고 또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가 없다. 하지만, 저자는 학교에서만이 가르침으로 국한하지 않고 부모도 성직자도 정치가도 의사도 모두 스승이면서 동시에 제자라는 전제하에 글을 쓰고 있다. 삐뚤어지지 않고 올곧게 자랄 수 있도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진 각 개인의 특성을 읽어만 준다면 가르침이란 복잡함을 넘어 예술로 승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교사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든가 교수법에서는 사실, 뭐 나처럼 일개 평범한 사람이 공감하기에 동떨어지지 않나하는 생각도 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무래도 유명한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에서 부터 예수까지 다양한 방법의 교수법이다. 지금처럼 학교라는 곳을 지정해 가르치던 획일적인 방법이 있기전에 회당에서 혹은 길에서 일대일 대화를 통해, 서로 스스럼없는 질문과 답변, 스스로 깨칠 수 있도록 도왔던 스승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 교육현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게 만든다. 전국적으로 일제고사를 치르는 나라, 학력을 일렬로 세워 학력증진이 아니라 오히려 학습하고자 하는 의지마저 박탈하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시대착오적인 교육이 과연 누굴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의문스럽기까지 한다. 가르침의 예술을 읽으면서 하고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태어나 처음 아무도 없던 빈 강의실에 앉았던 그때 내가 생각나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어딘가 가슴 뿌듯해지던 성취감마저 느끼게 했던 곳이었는데 지금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자신감 말이다. 꼭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부담없이 술술 읽힐 담백한 책이다. p100 배움의 가장 큰 목적은 전체를 꿰뚫어보는 구조적 능력을 기르는 거시다. 구조적 능력은 지적 영역에서는 톨찰력이나 조정 능력을, 예술 영역에서는 조화를 이해하는 능력과 예술을 탄생시티는 능력을 부여해준다.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준비할 때 이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앞날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서는 곤란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차근차근 삶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