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선암사는 사랑이 막 시작되는 때, 겨우

손만 잡았는데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던 때이고요

쌍계사나 분황사는 마음이 깊어지던 시기

해인사나 화엄사는 서로에 대한 신뢰로 바위처럼

단단한 시간 같죠

그 사랑이 조금씩 식어 가는 때가 통도사라면

기림사는 이제 그 식어가는 바위를 보내고

혼자 앉아 있는 때인 듯합니다.

절집을 대상으로 한 후배의 멋진 비유에 나는

짧은 답 글을 한 줄 달았다.

운주사는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윤용인의 시가 있는 여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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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리 디버의 잠자는 인형에서 캐트린 댄서가 마이클 오닐이

 통조림공장 골목에 나오는 닥이 연상된다고 해서 궁금했다.

 작가가 소개나 인용하는 책들이 실망을 주는 경우가 드물어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캐너리 로의 묘사가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통영 묘사만큼 인상적이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작가가 캘리포니아 설리너스 출신이라서그런지

 캐너리 로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리청의 식료품점

 맥 패거리가 사는 팰리스 플롭하우스

 닥의 웨스턴 생물학 연구소,  도라의 베어 플래그식당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인 맥의 패거리 중심으로 소소하고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캘리포니아 주 몬테레이의 캐너리 로는 시이고, 악취이고,

삐걱거리는 소음이고, 독특한 빛이고, 색조이고, 습관이고,

노스탤지어이고, 꿈이다.

캐너리 로는 모여 있는 동시에 흩어진 곳이고, 함석과 쇠와

녹과 쪼개진 나무이고, 잘게 부서진 보도와 잡초가 무성한

나대지와 고물 수집장이고, 골함석으로 지은 통조림공장이고,

초라한 극장이고, 식당과 매음굴이고, 북적이는 작은 식료품점이고,

연구소와 싸구려 여인숙이다.

그 주민은 그 사람이 말한 적이 있듯이, “창녀, 뚜쟁이, 도박꾼,

개자식들인데 그 말은 곧 모두라는 뜻이다.

그 사람이 다른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았다면 성자와 천사와

순교자와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차피 뜻은 마찬가지이지만 7-8

 

* 캐너리 로 : 말 그대로 통조림공장 골목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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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륨

 

정작 중요한 건 엄청난 즐거움보다는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자세랍니다.

전 행복해지는 진짜 비결을 알아냈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과거에 얽매여 평생을 후회하며 산다거나

미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최대의 행복을 찾아내는 거죠.

순간순간을 즐기고 즐기는 동안은 제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할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을 산다기보다는 경주하고 있을 뿐이예요

지평선 멀리에 있는 목표에 도달할려고 무던히 애쓰죠.

한창 헉헉대며 달려가느라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풍경엔

눈길 한번 못 주고 말이에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늙고 지쳤으며 목표에 도달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게 되는 거죠

   진 웹스터의 "키다리아저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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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갈 때는 인생을 데리고 가지 말자 -이병률

  

 

한 우주비행사는 달에 갈 때

휴대할 수 있는 개인물품 자격으로

신세계 교향곡이 담긴 음악테이프를 가져갔다

 

신세계 교향곡이었을까

우주비행사는 자신이 한 행동이었음에도

그것이 두고두고 궁금하였다

 

왜 재생기도 없는데 테이프였으며

그 제목은 신세계였을까

 

단 한 번도 결투에서 진 적이 없던 한 무사는

하루종일 치러진 결투에서 최후의 칼을 휘두르다

나뭇가지 끝에 옷소매가 슬쩍 걸려 박자를 놓는 사이

상대의 칼에 찔렸다

 

무사가 줄곧 생각한 거라곤

자신을 흐트러뜨린 옷소매뿐이었다

왜 허리에 칼이 스쳐 큰 칼자국이 생겨났음에도

상대의 칼끝이 아닌 옷소매만을 생각했을까

 

생각해도 우리는 모른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전생까지 탈탈 털어

생각을 생물 대하듯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오후에 귤을 까면서

하염없이 귤껍질에 대해 생각하느라

귤의 맛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아는 맛 따위를 뭐하러 생각하겠는가

 

옷을 걸어두라고 벽에 쳐둔 못을 생각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겠는 것들을 그 못에 걸기도 하겠지만

 

뭐라도 알겠다고 온갖 열기를 쓰다가도

못에 걸린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보이지 않는 안간힘의 상태를 더이상은 궁금해하지 않기로 한다

 

이제 달로 떠나야 할 채비를 마쳤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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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민들레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고 사계절이 있습니다.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은 봄입니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여름의 단계를 지나

점차 무르익는 가을을 거쳐 겨울이 오는 권태의 시기가

찾아오기도 하고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사랑은 헤어지는 과정까지 포함합니다.

사랑은 서로에게 삶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강신주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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