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하철 안은 집중이 잘 되는 곳이었다.
희한하게 형광등의 지하철 조명이 적당하다고 느껴졌고, 소음과 사람무리로 둘러싸인 환경이 편안하고 아늑하기도 하고, 흉내내기 책 읽기가 아닌 진짜 집중을 하기 위한 긴장 탓인지..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학시절의 독서는 대부분 지하철에서 이루어졌고, 온갖 시험공부에서 부터 유학준비까지 그 안에서 안 해본 게 없었다. 그 탓에 항상 가방은 책과 프린트물로 가득차서 무거웠는데, 이게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하면 어깨가 죽어나갔다. 어느날 너무 어깨가 아파서 가방을 선반위에 올려둔 적이 있었다. 딱 한번.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그런데, 그 가방을 놓고 내린 것이다. 사실 한국 있을때는 워낙 물건을 잘 잃어버렸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는데, 문제는 그때 놓고 내린 가방에는 gre 시험 자료들이 들어있었고, 게다가 시험도 며칠 남지 않은 때였다. 분실물 센터에 전화는 해놓기는 했는데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자료들을 다시 공수하며 잊고 있었는데 며칠 후에 한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다. 내 가방을 가지고 있으시다고. 책 첫페이지에 써놓은 전화번호 보고 연락 주셨다고...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게 된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부터, 나의 손으로 들어온 물건에는 전화번호를 남겨둔다.
지하철 대신 비행기 안.
요 책들이 들어가 있는 이북 리더기들고
*14-*05-01**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