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하철 안은 집중이 잘 되는 곳이었다. 

희한하게 형광등의 지하철 조명이 적당하다고 느껴졌고, 소음과 사람무리로 둘러싸인 환경이 편안하고 아늑하기도 하고, 흉내내기 책 읽기가 아닌 진짜 집중을 하기 위한 긴장 탓인지..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학시절의 독서는 대부분 지하철에서 이루어졌고, 온갖 시험공부에서 부터 유학준비까지 그 안에서 안 해본 게 없었다.  그 탓에 항상 가방은 책과 프린트물로 가득차서 무거웠는데, 이게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하면 어깨가 죽어나갔다. 어느날 너무 어깨가 아파서 가방을 선반위에 올려둔 적이 있었다. 딱 한번.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그런데, 그 가방을 놓고 내린 것이다. 사실 한국 있을때는 워낙 물건을 잘 잃어버렸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는데, 문제는 그때 놓고 내린 가방에는 gre 시험 자료들이 들어있었고, 게다가 시험도 며칠 남지 않은 때였다. 분실물 센터에 전화는 해놓기는 했는데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자료들을 다시 공수하며 잊고 있었는데 며칠 후에 한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다. 내 가방을 가지고 있으시다고.  책 첫페이지에 써놓은 전화번호 보고 연락 주셨다고...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게 된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부터, 나의 손으로 들어온 물건에는 전화번호를 남겨둔다.

 

 

지하철 대신 비행기 안.

요 책들이 들어가 있는 이북 리더기들고

 *14-*05-01**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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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7-09 07: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두 지하철 독서가 젤루 집중 잘돼 넘 좋아했어요. 읽다 내릴 역 놓치기 다반사였고, 어떤 땐 읽기를 멈추고 싶지 않아 일부러 안 내린 적도 있어요. 지하철 독서가 그리워요. ㅋ 저 귀한 가방 잃고 찾은 경험이 한님에게 좋은 습관을 들이게 해주었네요. 근디, 비행기 안이시라니 한국으로 돌아오시는 중???

han22598 2021-07-15 04:05   좋아요 0 | URL
지하철을 좋아하는 건지 책을 좋아하는 건지 잘 구별이 되지는 않지만 ..순환선 타면 한바퀴 더 타고 싶을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ㅎㅎ 이번 비행기는 한국행은 아니었어요..겨울쯤 기대해봐야할 것 같아요 ^^

다락방 2021-07-09 09: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하철 안에서 제일 집중이 잘 돼요! 와 동지를 만나니 너무 반갑네요. 특히나 출근길 지하철 안은 최고에요. 읽는대로 머릿속에 쏙쏙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소음과 사람이 있는데도 저 혼자 제 방에 있을 때보다 집중이 더 잘 되더라고요. 그걸 일찍 알았다면 저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었겠지만 너무 늦게 알아서 저는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말았네요.

중요한 가방 다시 찾으실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줌파 라히리‘ 소설중에도 지하철에 쇼핑백 두고 내려서 망연자실하던 주인공이, 유실물센터를 통해 찾게 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 때 되게 안심했었어요.

han22598 2021-07-15 04:0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과 동지가 되다니...영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줌파 라히리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본 줌파님은 매우 멋진 여성처럼 보이던데 ㅎㅎ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네요 ㅎㅎ

페넬로페 2021-07-09 09: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하철에서 책읽기 좋아하는데 어떤 책은 밑줄도 그어야하고 태그도 붙여야해서 요즘은 외출할때 읽을 책은 좀 가벼운 것으로 들고 나가요~~
지하철에서 뭔가를 두고 내리면 엄청 당황할듯 싶은데 찾게 되면 너무 기분좋고 감사하게 될 것 같아요^^

han22598 2021-07-15 04:09   좋아요 1 | URL
책을 읽는 행위는 참 능동적인 것 같아요.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손으로 밑줄도 긋고...태크도 하고..최고의 멀티작업인 것 같아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9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dh,맞아요. 지하철이 정말 책 읽는 데 도움이 되는 화이트노이즈를 생산하는 곳. 이상하게 책이 잘 읽힙니다...ㅎㅎㅎㅎ

han22598 2021-07-15 04:10   좋아요 0 | URL
진짜 희한합니다. 집중 잘 못하는 저에게도 지하철에서 만큼은 집중이 잘 되니 말이죠.ㅋㅋ 곰곰님도 희한하시네요 ㅎㅎ

mini74 2021-07-09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차. 일주일에 한 세번쯤 기차를 타고 일하러 간적이 있어요. 중간에 책 읽다 내릴려고 허둥지둥 ㅠㅠ 문에 에코백이 끼여서 기차 계단에서 에코백 손잡이만 잡고 서서 다음역까지 간 적이 있어요. 다행히 큰 사고는 안났지만. 기차에서 참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han22598 2021-07-15 04:12   좋아요 1 | URL
오맛! 진짜 큰일 나실 뻔 하셨네요....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책이 문제네요. 책이...ㅠㅠ
그래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는 운명이기에...기차에서는 조심하세요^^

희선 2021-07-09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하철이 없는 곳에 살아서 지하철에서 책을 본 적은 없군요 버스에서는 읽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버스에서 책을 보려니 멀미가 나더군요 그 뒤로는 차 탈 때 책 안 봐요 누군가 놓고 내린 물건은 분실물 센터에 갖다 주면 좋을 텐데 싶은데... 그래도 han22598 님이 놓고 내린 가방 찾아서 다행이네요 지하철은 모르겠고, 기차는 내릴 역이 올 때마다 놓고 내리는 물건 없도록 방송해주기도 하는군요 기차 안 타 본 지 오래돼서 지금도 그럴지 모르겠네요


희선

han22598 2021-07-15 14:32   좋아요 2 | URL
맞아요. 희선님. 버스는 아무래도 덜컹거림이 좀 있어서 책을 보기에는 좀 힘든 것 같더라고요 ^^
방송을 해주는 거 보면, 저 같은 사람은 한두명이 아니라는 생각에 좀 위안이 되네요 ㅎㅎ 저는 물건을 사용할 때 소중하게 다루는 편은 아닌데, 사용하다 잃어버리면 그렇게나 아쉽더라고요...(그러면서 자주 잃어버리는 모순)...그래서 다시 찾게 되면 참 기쁜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