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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깊은 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한 남자, 야소베가 아내를 암으로 잃게 된다. 그 아내는 죽으면서 남편에게 부탁한다. "반드시...다시 태어날 거니까..찾아요..날 찾아요." 야소베는 환생된 아내로 짐작되는 여자아이를 찾으러 인도로 떠난다. 하지만 아이를 쉽게 찾지 못한다. 만나지 못한 실망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걸하는 한 여자아이를 만난다. 야소베는 공포같은 깨달음이 밀려온다. "어쩌면 이 아이는 아내가 아닐까. 다시 태어난 아내가 아닐까. 그 생각이 칼로 가슴을 에이는 듯이 스쳐갔다." 야소베는 환생된 아내를 찾는 여정 가운데서 아내와 같이 살면서 보낸 삶의 시간들을 복기하면서 아내가 자신에게 행했던 소소하고 작은 친절과 미소들을 기억한다. 그렇게 아내의 손길이 야소베의 삶 가운데 스며들어 있었다. 야소베는 "아내에 대한 추억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었다."라고 고백한다. 언제나 존재했던 아내의 손길이 죽어 사라지고 없어지자 야소베는 그 손길을 찾아 헤맨다. 오쓰는 말한다. "신은 존재라기보다는 손길입니다. 양파는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 인간은 윤회된 손길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내가 믿는 신도. 양파는 사랑이라도 하셨다. 양파 덩어리가 베푸는 손길을 기억하는 자들은 이제는 본인이 사랑의 손길을 행하는 양파 덩어리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야소베의 양파의 덩어리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는 황급히 동전을 아이에게 건네고, 택시에 몸을 숨겼다" 그 이후에도 다시 한번 양파 덩어리 손길을 원하는 수많은 자들이 야소베 앞에서 구걸한다. 과연 야소베는 아내의 환생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종교에는 전혀 관심 없는 미스코는 신부가 되려하는 오쓰를 인도 바라나시에서 다시 만난다. 신혼여행 중 리옹에서 만난 후의 일이다. 오쓰를 매력적으로 여기지도 않고 괴롭히고 놀리곤 하지만, 존재에 이끌려 미스코는 오쓰를 쫒아 다닌다. 그리고 미스코는 스스로를 가리켜 "...... 통 알 수 없는 혼돈스러운 여자"라고 말하며 "이런 멍청한 짓거리고 난 대체 무얼 찾고 있는 걸까. 모두에게 부추김당해 오쓰를 곯려주고, 이것이 나의 삶일까".하며 고뇌하고 번민한다.혼돈이 있는 곳. 가버나움(Capernaum). 예수님이 제자를 택하시고, 말씀 전하고 기적을 행하신 곳이다. 가버나움은 바로잡기에는 너무 엉망이 되어버린 혼돈이라는 뜻도 있고. "나훔"의 마을 이라는 뜻도 있다. 나훔의 위로라는 뜻이다. 박영선 목사님은 "우리가 실패한 그 자리가 하나님이 은혜를 담는 자리 ([인생], 박영선, 62p)" 라고 하신다. 양파는 엉망이고 혼돈스러운 곳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택하시고 기적과 사랑을 베푸시며, 고뇌하고 번민하는 자들에게 위로자가 되어주신다. Grace다. 마음이 어지럽고 혼돈스러운 마스코 마음 가운데 양파가 찾아오신다. "자신을 채워 줄게 틀림없는 X를. 그러나 그녀는 그 X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마스코가 아직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더라도...하지만 무엇인가에 이끌려 쫒아가고, 그 길 가운에 양파를 일생을 신뢰하며 그길을 따라가는 오쓰의 고난의 삶을 본다.
생의 마지막 길에 다다르는 갠지스 강. 신분과 부의 격차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품는 곳. 그곳은 추하고 냄새하고 불결한 것. 모든 슬픔을 품는 깊은 강. 갠지스 강.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 인생의 순례길에서 우리가 찾고 머물고 싶은 곳이다. "갠지스 강을 볼 때 마다 저는 양파를 생각합니다. 갠지스 강은 썩은 손가락을 내밀어 구걸하는 여자도, 암살당한 간디 수상도 똑같이 거절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를 삼키고 흘러갑니다. 양파라는 사랑의 강은 아무리 추한 인간도 아무리 지저분한 인간도 모두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흘러갑니다" 갠지스강은 모든 이의 슬픔과 죄를 씻고 새로 태어나는 곳. 환생을 꿈꾸는 자들의 것이다. 예수는 우리의 더러움과 죄를 품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양파의 사랑이다. 그 사랑이 우리 마음과 삶에 환생됨이 곧 "다시 태어남" (거듭남,reborn)이다.
감동적이고 놀라운 책이다. 양파의 삶과 양파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지 이처럼 은유적으로 잘 표현한 문학 작품이 있을까 싶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뜰이 보살폈던 야소베의 아내, 더럽고 가장 천한 사람의 곁에서 함께 하는 오쓰, 죽어가는 자의 옆에서 꼬부라져 그의 고통을 흡수하는 가스통.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을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구관조. 모두 양파 덩어리의 흔적들이라고 이 소설은 말한다. 이러한 양파의 손길을 느끼고 아는 자들이..그들의 마음에서 양파가 환생되어 우리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머물길 소망한다.
*파랑색 글자는 책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페이지는 편의상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