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페이퍼에서 『페소아와 페소아들』를 번역한 김한민 씨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페소아 시선집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썼는데, 드디어! 페르난두 페소아의 대표작인 『불안의 책』이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포르투갈어 원전 완역'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출판사 책소개를 보면 이러합니다.


 

〈불안의 책〉은 페소아가 생전에 완성한 작품이 아니라 사후 연구가들이 유고 더미에서 찾아낸 미완성 원고를 엮은 책이다. 그 때문에 편집본마다 수록된 텍스트의 수와 배열 순서가 다른데, 문학동네에서는 페소아 연구가로 유명한 리처드 제니스의 포르투갈어 편집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중략) 

 

모더니즘 작가로 페소아를 높이 사는 이유는 바로 ‘복수성’의 창조 때문이다. 그는 단일한 나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고유한 이름과 전기(傳記)를 지닌 수많은 인격체로 분화시켜 그들에게 글을 쓰는 임무를 부여했다. 시골에 사는 목동 시인 알베르투 카에이루, 현대문명을 좇는 선박기술자 알바루 드 캄푸스, 사라마구의 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던 의사이자 시인인 히카르두 헤이스를 비롯해 그가 사용했던 이명은 어림잡아도 70개가 넘는다. 페소아의 이명은 작가의 분신 혹은 일부가 아닌 완전한 독립체이자 타자였고, 페소아는 ‘하나’의 나가 아닌 ‘복수’의 나가 되는 타자화 방식을 통해 자신 안에 잠재된 수많은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었다.


페소아가 사망한 지 47년 만에 포르투갈에서 출간된 『불안의 책』 또한 페소아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명이 쓴 작품이다. 하지만 베르나르두 소아르스는 수많은 이명 중 페소아를 가장 많이 닮은 반(半)이명으로, 리스본 시내를 거닐며 사색에 잠기고 글을 끄적이는 그의 모습은 페소아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페소아는 ‘나 아닌 나’인 소아르스를 통해 좀더 다층적이고 다각화된 자신의 모습을 끄집어냈고, 현실의 나를 허구의 세계에 투영시킴으로써 현실에서 느끼는 것을 넘어 감각의 폭을 넓히고 더 깊이 사유했다.

 

(중략) 

 

 

작년 배수아 소설가가 독어본을 우리말로 옮겼었는데 어떤 판본인지는 모르겠고, 김효정 번역가가 옮긴 책도 타부키의 이태리본과 영역본을 참고했다하니 둘 다 중역인데요. 문학동네에서 선택한 것은 페소아 전문가 리처드 제니스의 포르투갈어 편집본입니다. 그동안 원어 번역본을 기다려온 만큼 행복한 소식이지요. 페르난두 페소아에 대한 간단한 소개글을 올린 적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페르난두 페소아 작품 소개

http://blog.aladin.co.kr/769383179/7660645


-페르난두 페소아 시선집 소식

http://blog.aladin.co.kr/769383179/7734912




-『불안의 책』 다른 버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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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20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드디어! ^^

수이 2015-09-2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렐루야!!

단발머리 2015-09-2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타이밍에 `아멘!?` ㅋㅎㅎㅎ
 
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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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 네 작품이 실린 『별도 없는 한밤에』는 스티븐 킹의 마지막 중편집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사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처음 읽은 건 그의 주력 분야가 아닌 추리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였다. 추리소설 매니아가 아니라서인지, 부족한 부분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고 그저 재미있게 읽었다. 스티븐 킹의 많은 작품을 읽지 않았음에도 그의 명성과 실력을 알고 있는 것은 『그린 마일』, 『쇼생크 탈출』, 『미스트』, 『캐리』, 『미저리』와 같은 영화와 드라마 『언더 더 돔』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장르'에 한정시킬 수 없는 세계를 영상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컸다. 

 

'별도 없는 한밤에' 일어나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파헤친 네 작품들은 각기 성격이 달라, 마치 다른 작가가 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 다른 인물들이 행하는 복수는 어떤 점에서 맞닿아 있다. 종국에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사건의 복잡함만큼은 현실적이다. 「1922」는, 1922년 미국 네브라스카 주에서 한 농부가 아내를 살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내가 상속받은 땅을 탐내어 아들을 공범으로 만든 후 일을 벌이는데, 자기 합리화와 살인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구역질이 일 정도다. 독서량이 많은 그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으며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한다. 아내를 죽이는 것! 살인 후 변화를 겪는 아들에게 미안함을 느껴 후회한다는 그가 조지 엘리엇의 『사일러스 마너』를 읽는 모습에서는 부성애에 감동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애초에 땅을 물려줄 생각에 일을 벌였다 하니... 범죄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사실이 밝혀질 일을 두려워하는 그를 단죄하러 온 지옥의 사자들은 러브크래프트의 『벽속의 쥐들』을 연상시켰고 그의 최후 역시 마음에 들었다. 잔인하긴 했지만, 사건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 태도와 정신상태가 역겨웠으므로.

 

「빅 드라이버」는 30대 후반의 코지 미스터리 소설가, 테스의 이야기이다. 테스는 잘 나가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꽤 히트한 작품들을 썼다. 일상의 변화를 즐기지 않기에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열리는 낭독 행사 등에 참석한다. 의외로 이러한 행사들이 작가의 수입이 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어느 날 유명 작가 대타로 행사에 갔다가 북클럽 회장이 알려준 지름길에 들어서면서 비극이 벌어진다. 평소답지 않았던 그녀의 선택이 이끈 길은 성폭행과 살해 위협이다. 성폭행이 말 그대로 강제적인 성관계만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피해자가 반항을 하건, 하지 않건 엄청난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돌이킬 수 없는』에서의 폭력 씬은 아주 사실적이며, 「빅 드라이버」에서도 테스가 느끼는 공포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소설 장르에 등장하지 않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테스는 장르적 법칙에 따라 위협에서 벗어나는데 이 과정  묘사가 뛰어나다. 집으로 돌아와 안심 아닌 안심을 하던 것도 잠시, 일상생활에서의 아웃팅(알려진 소설가 강간과 살해 위협의 피해자! 연쇄살인사건이 의심돼, 한적한 마을이 범죄의 온상지?)과 다가올 생존의 위협 앞에 두려워하던 테스. 그녀가 사건을 종결하기 위한 준비와 행동에 착수하는 장면이 놀라웠다. 아주 세심하게 그려졌고, 기대하지 못한 바였다. 복수를 마무리하는 장면과 겹쳐지는 폭력의 상흔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남성 작가가 그 공포를 풀어낸데 점수를 주고 싶다. 킹의 단편이 남기는 울림과 생각해 볼 문제와 다르지만, 여성을 범죄 대상으로 삼는 남성을 단죄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가 생각나기도 했다.

 

분량은 가장 짧지만 책을 덮고도 종종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던 「공정한 거래」. 중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내 삶을 연장할 수 있다면? 그 대가가 죽마고우의 불행이라면 어떠할까? 딜레마가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보다 앞서기만 했으며 '내 것'을 앗아갔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불행해질 때 마다 나는 상쾌함을 느끼고, 나의 행복과 즐거움은 더욱 돋보인다. 친우에게 닥치는 불행의 다양성과 그 한계를 읽으면서 감탄하였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소원이라는 말에는 소름이 끼쳤으니... 역시 대가는 짧은 글에도 영혼을 담는구나 싶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사건, 거대한 비밀을 알게 된 가정주부가 주인공이다. 상반기를 강타했던 『허즈번드 시크릿』과 유사한 소재이지만 킹의 작품은 소재와 필력 모두 차원을 달리한다. 결혼 27주년, 다아시의 남편은 연쇄살인범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아시는 멘붕에 빠져 잠이 드는데, 잠깐의 통화로 눈치 챈 남편 밥이 밤새 차를 몰아 귀가한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친다. 아주 다정하게 볼을 쓸어내리며 아내를 깨우는데 정말... 그가 16년 동안이나 살인 충동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다아시가 자신의 비밀을 알아채는 순간 찾아올 쾌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쇄살인의 휴지기 이후 재범시엔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다아시가 행동을 취하거나, 밥이 다아시를 지켜보는 흥미를 잃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 같다. 두 사람 사이에서 지키고 싶은 것이 많은 것은 다아시였고, 밥의 상황통제 욕구와 충동 사이의 줄은 이미 끊어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그 차가운 그 눈동자를 봐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BTK 킬러 사건에서 남편의 범죄행위를 몰랐다는, 그의 부인을 본 후 쓴 글이라 한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지만, 「1922」만큼은 읽다가 몇 번 책장을 덮어야 했는데 독자의 심리를 주무르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상황에 빠진 등장인물들의 자기합리화는 합당해 보이기도, 부당해 보이기도 한다. 독자로서 내린 결론까지 포함하는 인간 심리의 복잡함이야말로 스티븐 킹이 그려내는 필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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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 크툴루의 부름 외 1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7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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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톨킨, 어둠의 러브크래프트’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들은 지 꽤 되었지만, 영화 『캐빈 인더 우즈』를 보기 전엔 큰 관심이 없었다. 이 영화는 「어벤저스 시리즈」의 조스 위든이 만든 작품으로, 토르 역의 크리스 햄스워스도 출연한다. 호러계의 온갖 크리처들이 등장하는데 최종 보스는 바로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 속 고대 신(그레이트 올드 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주인공들이 어떤 버튼을 누르자 갇혀 있던 크리처들이 풀려나와 학살을 시작한다. 이 크리처들이 궁금해 검색한 것이 러브크래프트가 어떤 작가인지, 제대로 알게 된 시작이었다. 


황금가지에서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출간했는데, 오역이 있다는 평이 있어 찾아 본 단편은 「에리히 잔의 선율」이었고 악기 비올을 비올라로 번역해 실망... 그리고 이야기가 썩 끌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전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반값세일을 할 때 꽤 고민했다. 결국 『반지의 제왕』 양장 세트를 구입했으니 어둠보다 빛을 택한 셈이다! 번역에 대한 우려보다 더 망설이게 한 것은 내가 공포문학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회의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오에 겐자부로 선생의 말씀처럼) 책을 만나는 시기는 정해져있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울랄룸」이 좋아져서 유투브 등을 통해 시 낭송을 듣다보니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관심이 크게 자라났기 때문이다. 장바구니에 있은 지 오래지만, 과연 즐길 수 있을지 여전히 의심하면서, 현대문학에서 나온 단편선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을 구입했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전에는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작품들의 매력, 러브크래프트가 의도한 ‘미지에의 공포’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이다. 이 한 권으로 ‘공포문학’에 대한 호감을 끌어 올려준 것은 번역가의 공이다. 딴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번역가는 두 분이 있는데, 박현주 씨와 공진호 씨다. 여기에 김지현 번역가를 추가하려 한다. 찾아보니 왜 이 번역이 제대로 되었는가 분석한 글도 있던데 진짜 최고... 문장이 좋았던 것은 소설가이기 때문인 것도 있나 보다. 하여튼 이와 관련하여 북스피어에서 나온 『공포문학의 매혹』이라는, 러브크래프트가 쓴 이 장르에 대한 소논문/비평이 있는데 참고가 될 것 같아 구입했다. 출판사들은 김지현 번역 작가에게 의뢰를!


이 책에는 총 13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가장 재밌었던 건 『시체를 되살리는 허버트 웨스트』였는데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의 원조 캐릭터가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다. 최근 메리 셸리의 작품을 읽었기에 더 중첩된 것 같기도... 약물 주입 등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되살리려는 허버트 웨스트가 주인공인데, 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조되는 광기가 대단한데 결말도 멋지다. 원제는 『Herbert West-Reanimator』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현대의 의료 상식을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20세기 초의 문학이니까... 게다가 러브크래프트가 추구하는 ‘우주적 공포(코스믹 호러)’는 '인간이 인식하는 현상은 안락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 시쳇말로 ‘멘붕’에서 오는 공포라 하겠다. 이 작품은 허버트 웨스트의 ‘광기’가 중요하므로 따져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은 「벽속의 쥐들The Rats in the Walls」이다. 주인공의 성 드라포어Delapoer는 에드거 앨런 포Poe의 이름에서 빌려왔다. 또 포의 작품인 「어셔 가의 몰락」도 슬쩍 등장하는 작품이다. 미국으로 이주해온 귀족의 자손이 그 뿌리를 거슬러 가 고향 성을 되찾아 리모델링 후, 이 곳에 거주하며 겪게 되는 일들인데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었다. 막 현대영어에서 고대영어로 거슬러 올라가는... 제임스 조이스 생각도 나고... 또 「크툴루의 부름」도 좋았다. 지진이 일어 바다 밑에 잠긴 석조 도시, 그 곳에 잠든 고대 신을 깨우려는 컬트(Cult)의 광기가 등장한다. 깨어난 외계 신은 파괴와 학살을 일삼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근원적인 공포다. 이유도 정체도 몰라 더 무섭다. 이 단편선은 작가를 소개할 만한 대표작들이 수록되어 있어, ‘크툴루 신화’를 더 알고 싶다면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봐야 한다. 지금이면 시간이 꽤 흘러 교정쇄가 나왔을 테니 진지하게 전집 구매를 고려중이다. 


이외에 참고할만한 설은 러브크래프트의 해양 공포증으로 인하여 크리처들의 외양이 해양 생물을 연상한다는 것인데, 몇몇 서양인들의 해산물 공포(?)를 떠올리면 아주 틀린 말 같진 않지만... joysf 에서 본 글을 링크해둔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세계와 해양공포증 (출처: joysf)

http://www.joysf.com/world_gac/4425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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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7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서 에이바님의 글을 다 읽었어요. 황금가지 번역본에서는 ‘Delapoer’를 ‘델라포어’라고 쓰더군요. 예전에 제 블로그에 썼던 ‘비올라’ 번역 오류를 지적하는 글을 황금가지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올렸는데 출판사 측에서는 역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확인한 뒤에 교정할 때 반영하겠다고 대답했어요. 그 이후로 고쳤는지 잘 모르겠어요.

크틀루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저 또한 헷갈릴 때가 있어요. 에이바님도 글을 쓰시다가 혼동한 것 같습니다. ‘그레이트 올드 갓’을 ‘그레이트 올드 원’으로 고쳐야 합니다. 그밖에도 ‘엘더 원’, ‘엘더 갓’, ‘아우터 갓’이 있습니다.

에이바 2015-09-17 16:43   좋아요 0 | URL
이건 제 생각이지만 영어 그대로 읽으면 델라포어지만 이 성의 주인이 귀족이기때문에 ~의 라는 뜻을 가진 de를 드 라고 읽는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띄워서 de la poer 이렇게요. 그레이트 올드 원이 맞습니다! 읽으면서도 몰랐군요. cyrus님 감사합니다.
 
정지용 시선 : 카페 프란스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9
정지용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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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지용 시인이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향수'인데, 여기서는 시가 아니라 가곡이다. 학창시절 라디오를 들으며 녹음을 하곤 했다. 어느 오후 가곡 「향수」가 소개되었고, 기계적으로 녹음 버튼을 누르고 그 테이프의 존재를 잊고 있을 무렵이었다. 국어 선생님이 「향수」 노래를 가지고 있는 사람 있느냐 물으셨고 나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 테이프를 재생하고 다들 기대하고 있는데 전주가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한 1분 정도... 선생님은 당황하시고 친구들은 웃는다고 난리고, 내 얼굴은 빨개졌던 기억이 난다. 결국 빨리감기를 했지...


그런 추억이 있는 시인 정지용이 바로 아티초크에서 소개하는 세번째 한국 시인이다. 월북시인이라 분류되어 시인의 작품을 볼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고 나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현대사의 비극은 시인의 가족을 피하지 못했다. 집을 나선 후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북으로 갔던, 시인의 삼남 정구인 씨가 51년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가족을 만난 것이다. 결국 시인의 사망 원인과 장소는 밝혀지지 않았다. 시인의 가족들은 군 수사대에 의뢰하여, 시인이 월북이 아니라 납북되었음을 알았지만...


충북 옥천이 고향인, 시인의 가정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지만 출신 학교(휘문고)에서 유학 비용을 대주어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했다고 한다. 시집 『카페 프란스』의 구성을 보면  서정적이고 토속적인 시들, 「카페 프란스」, 「슬픈 인상화」, 「파충류 동물」, 「향수」, 「바다」 연작과 「유리창」, 「종달새」, 「호수」 등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작품 경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와 더불어 「가톨릭 청년」의 편집을 맡아 종교적 신앙을 드러내는 시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에서도 등장했던 윌리엄 블레이크를 보니 반가웠는데, 정지용 시인의 졸업 논문이 「윌리엄 블레이크 시에 있어서의 상상력」이고 그의 초기 시에 영향을 끼쳤다 한다. 타고르와 위트먼에도 관심이 있었고, 귀국 후에는 모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하며 '정종'이란 애칭을 얻었다고 한다. 애주가이기도 했다 하니 이보다 더 귀여운 애칭이 있었을까? 요즘이라면 영어교사이니 영어 정지용을 줄여 영정, 영지라 불렸을지도.


김영랑의 「시문학」 동인으로 이후 「구인회」 활동에도 참여했고, 「문장」의 편집위원으로 청록파 시인들을 등단시키기도 했다. 「가톨릭 청년」 시절에는 시인 이상을 알렸고, 카프의 임화와도 친분이 있었다. 이러한 친분으로 좌익 계열 문인단체 소속이기도 했는데 광복 이후엔 작품 활동이 뜸했다. 아마 순수시를 지향하는 그와 맞지 않아서인 듯 하다. 시선집의 제목이기도 한 「카페 프란스」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애송된 작품이다. '자작의 아들도 아닌' 나라도 집도 없는 식민지 청년들의 하소연, 아무도 반기지 않는 처지를 그리고 있다. 잘 알려져 있고,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는 「유리창」. 이 시는 폐렴으로 잃은 자식에 대한 슬픔을 노래하는데, 감정의 노출을 자제하고 절제미를 보여준다. 「옥류동」, 「 비로동」, 「백록담」에선 제목에서와 같이,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소개하고 싶은 시는, 아티초크의 다음 시선으로 예정된 폴 발레리의 「석류」와 비교할 수 있는 시. 그리고 일부만 소개할 「우리나라 여인들은」 시인이 바라보는 여인들에 대한 애정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마티스의 「춤」이 생각났다. 그리고 요즘 유행인 먹방도. 어울릴 음악은 역시 가곡 「향수」이겠지만 그토록 전주가 길었던 버전은 웹 상에 없나 보다. 아, 선생으로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세 편의 산문도 아름답다.



석류


장미꽃처럼 곱게 피어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개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여릿여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해 시월 상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이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보며

신라 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Henri Matisse, Danse (1910) 사진 출처


우리나라 여인들은


우리나라 여인들은 오월달이로다. 기쁨이로다.


여인들은 꽃 속에서 나오도다. 짚단 속에서 나오도다.

수풀에서, 물에서, 뛰어나오도다.

여인들은 산과실처럼 붉도다.

바다에서 주은 바둑돌 향기로다.

난류처럼 따뜻하도다.


(중략)


여인들은 생률도, 호두도, 딸기도, 감자도, 잘 먹는도다.


(중략)


여인들은 소프라노로다. 바람이로다.

흙이로다. 눈이로다. 불이로다.

여인들은 까아만 눈으로 인사하는도다.

입으로 대답하는도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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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 프란스’ 마지막 구절이 인상 깊었어요. 강아지가 내 발을 빨아달라는 구절. 나라 잃은 슬픔을 강아지의 애교로 달래려는 시인의 모습이 처량해보였어요.

에이바 2015-09-16 13:31   좋아요 0 | URL
cyrus님 이 시를 아시는군요! 이국종 강아지야 내 발을 빨아다오, 내 발을 빨아다오. 파도도 바다도 모두 좋지만 역시 표제작이 남기는 인상이 강한가봐요. 표지들도 다들 이쁘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09-1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마티스 그림이네요. 보고 있으면 웬일인지 두둥~~ 북소리가 들리며 기분이 좋아집니다^^

에이바 2015-09-16 19:05   좋아요 0 | URL
생동감이 느껴지고 아주 좋지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수이 2015-09-1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는데 학생 때 알던 정지용보다 더 좋아서 계속 정지용 정지용 거리며 읽고 있어요. :)

에이바 2015-09-16 19:06   좋아요 0 | URL
야나님도 읽고 계셨군요! 야나님의 시 사랑. 학창시절에 읽던 시들이 또다른 울림을 주더라고요. 모아서 보니 더 좋아요.
 
살라미나의 병사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27
하비에르 세르카스 지음, 김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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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사건을 덮자는 권유를 듣게 된다. 이쯤 되면 시비를 가리는 것은 ‘따지는’ 것이 되고 성가신 일이 되는 것이다. 스페인도 그러했다. 내전과 독재, 왕정 복고라는 현대사를 거친 그들은 과거사를 정리하고 청산하기 보다는 학살 등의 문제를 덮기로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었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들이 지쳤기 때문이리라. 공화정을 핍박하고 학살했던 이들은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공화정을 수호했던 이들의 영광 역시 그러했다. 이를 ‘민주화 이행기’라 한다. 하비에르 세르카스의 『살라미나의 병사들』은 내전과 독재, 이행기를 거친 90년대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상흔이 남은 역사를 더듬어 진정한 영웅을 찾아내는 기록이다.

 

소설은 세르카스 본인의 목소리로 진행되는데 역사와 실존인물들을 바탕으로 하며 작가의 삶 또한 함께 진행되는 메타픽션이다. 20대 후반 첫 소설을 출판한 후로 이렇다 할 작품이 없는 작가는 곧 마흔이 된다. 하는 수 없이 신문사로 복직하고 라파엘 산체스 페를로시오를 인터뷰하는데, 그의 아버지 라파엘 산체스 마사스가 내전 중 총살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공화파 병사가 마사스를 살려줬다는 것이다. 이 기이한 이야기를 제외한 적당한 기사를 써 낸 세르카스는 얼마 후 독자들의 생각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그 중 눈길을 끈 것은, 다른 생존자가 있다는 편지였다. 기자는 이 독자에게 연락하고, 마사스의 일화에 등장한 ‘숲속의 친구들’ 중 한 사람인 피게라스의 아들을 만나게 된다.

 

라파엘 산체스 마사스는 나쁘지 않은 문인이라는게 당대의 평가였지만 내전을 일으킨 열렬 팔랑헤 당원이기도 했다. 흥미를 느낀 작가는 1939년 1월 30일, 마사스가 총살현장에서 달아난 전후 며칠을 더듬어 간다. 세르카스는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프랑코 체제와 마사스의 작품을 다룬 학자와 교수, 그의 지인들을 만난다. 결정적인 증언을 한 이들은 마사스를 숨겨주었던 마리아 퍼레, 안젤라츠, 피게라스였다. 특히 피게라스는 마사스가 남긴 수첩(일기와 같은 기록)을 제공함으로써 시간적 순서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작가는 기억과 증거(수첩)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면밀히 살핀다. 1부는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며 2부는 마사스의 삶의 궤적이라 할 수 있다. 3부는 글을 완성했지만 부족한 부분, 그 한 조각을 찾지 못해 작품을 포기하려 하는 세르카스의 이야기이다.

 

원래의 목표는 총살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산체스 마사스의 전기를 쓰되, 그의 인물됨을 재평가하는 것이었다. 그가 대표했던 팔랑헤주의, 당을 이끌었던 소수의 미친 동기(자기집단의 특권과 안위를 위한 이기심으로 파시즘을 추앙)에 대한 평가를 제기하고자 한 것이다. 글쓰기를 중단하고 다시 신문기자로 돌아간 세르카스는 로베르토 볼라뇨를 인터뷰한다. 칠레의 그 작가가 맞다. 볼라뇨가 생각하는 영웅관, 그리고 그가 젊은 시절 캠핑장에서 만난 미라예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세르카스는 미라예스라는 인물이 자신이 잃어버린 조각이라 직감하고 그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세르카스가 미라예스를 등장시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산체스 마사스를 살려준 그 무명용사가 미라예스라 생각했기 때문에?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볼라뇨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 ‘영웅관’을 보자면 이 소설은 ‘망각 협정’과 그 수혜자들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스페인 사회에는 내전에서 승리한 자들의 목소리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산체스 마사스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공화파 병사의 아량으로 살아남은 그는, 붓으로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내전에 참전하게 했고 프랑코가 파시즘을 이용, 스페인을 독재하게 도와준 인물이나 마찬가지다. 내전 종료 후, 프랑코에 맞서지도 않고 동조하지도 않은 채 칩거하며 문예활동에만 몰두했다. 마사스는 팔랑헤의 상징으로 평안한 삶을 살다 죽었다. 그와 대척점에 위치한 미라예스의 삶은 어떠했던가. 그가 지금 스페인이 아닌, 타국에 홀로 남은 모습마저 묘하게 우리 현대사와 오버랩된다...

 

현 스페인 사회는 미라예스로 상징되는, ‘망각 협정’의 결과 의도적으로 잊혀진 무명용사들에 빚을 지고 있다. 미라예스의 ‘기억’에 대한 술회는 민주화에 대한 용사들의 공적을 떠올리지 않는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현재 우리 삶과 사회를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영웅의 행동에는 거의 언제나 뭔가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본능적인 것이 있습니다. 뭔가 자기 본성 속에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지요. 게다가 사람은 평생토록 기품있는 사람이 될 수는 있으나, 지속적으로 숭고한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웅은 단지 예의적으로 어느 한 순간만 영웅인 것입니다. (193쪽)

 

그들을 아직 기억하는 이유는 비록 그들이 죽은지 60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미라예스가 그들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가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에게 매달려 있는 건지도 모른다. 완전히 죽지 않기 위해서. (266쪽)


비록 이 엿 같은 나라는 아주 하찮은 마을의 아주 하찮은 거리 그 어디에도 미라예스의 이름을 붙이지 않을지라도, 내가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한 미라예스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 살아 있게 될 것이고,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한 가르시아 세게스 형제―주안과 렐라―, 미겔 카르도스, 가비 발드리치, 피포 카날, 고르도 오데나, 산티 브루가다, 조르디 구다욜 역시, 비록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죽고, 죽고, 죽고, 죽어 있었지만, 계속 살아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나는 미라예스와 그들 모두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피게라스 형제와 안젤라츠에 대해서도, 마리아 퍼레와 나의 아버지, 그리고 볼라뇨의 젊은 라틴 아메리카 친구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리라. 하지만 무엇보다도 산체스 마사스와, 마지막 순간 문명을 구원한 그 소수의 병사들에 대해서도 말하리라. 그 소수의 병사들에 산체스 마사스는 끼일 자격이 없지만 미라예스는 자격이 있다. 또한 생각하기도 힘든 그 순간들에 대해, 전 문명이 한 사람에게 달려 있던 그 순간들에 대해,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문명이 그 사람에게 지고 있는 부채에 대해 이야기하리라.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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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5 17: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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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5 1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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