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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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원제를 보고 나서였다. ‘Chaque jour est un adieu.’ 가슴에 와 박히는,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이란 말인가. 김광석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와 같은… 아듀는 다시 만나지 못할 헤어짐을 뜻한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책을 펼쳐 읽고 있으려니 샤토브리앙의 문장이라 한다.


나의 모든 하루하루는 작별의 나날이었다. _84쪽


공습으로 고향이 파괴되어 노르망디에서 브르타뉴로 오게 된 레몽네. 부모 2인과 5대 5 성비의 10남매로 구성된 가족은 가톨릭에 우파였다. 전쟁 후 국가의 모범적 모델이라 할 만 했다. 우리 집에 대한 얘기로 글이 시작된다. ‘그 곳을 떠난 지 25년이 되었어도, 그 집은 여전히 우리 집이야!’ 하는, 그러나 아픔이 가득해 돌아갈 수 없는… 알랭 레몽은 자신의 유년기를 지배하는 장소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짧은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스해진다. 미화된 기억이라 해도 좋다. 슬픔도, 아픔도 파스텔 톤의 부드러움이 감싼다. 겨울이면 따스한 돌을 데워 발아래 두었다가 돌이 식어 새벽이면 동상에 걸리고 했던 일들, 화장실은 어떻게 해결했고 하는 얘기들. 물은 우물에서 길어 와야 했지만 산길로 접어들면 그 곳은 상상으로 지어진 왕궁이었다. 놀이는 무궁무진했다. 닭과 토끼를 기르고 먹이는 장면들에선 가난의 모습이 슬쩍 비치지만 그마저도 즐거운 추억이다.


목수가 깎아주는 머리, 푸줏간 마당을 차지한 큰 솥에서 삶는 이불, 일요일 성당에 모이는 각양각색의 마을 사람들. 학교를 졸업하고 기숙학교로 간 형과 누나들이 돌아오는 날은 축제다. 따스한 햇볕과 시끌시끌하고 단단한 씨족으로 맺어진 유대 관계는 옛 카페 터였던 ‘우리 집’에서 이어진다. 그것을 비집고 들어오는 부모님의 높은 언성은 어린 알랭의 세계를 무너뜨린다. 간절한 기도들과 함께 마지막 장에 가까워 올수록 눈물이 아른거린다.


참았던 눈물이 흐른 건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에서 아버지께 용서를 비는 대목이었다. 그리움, 사랑, 죄책감…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의 성공 이후, 사람들은 아버지가 난폭했고 부인을 때렸다고 생각했다. 알랭은 이 오해에 화가 나고 또 아버지가 그립다. 이 마음은, 고모가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편지를 발견하면서 조금씩 풀린다. 자신이 머물렀던 알제에서 조금 떨어진 모로코에서 근무했던, 넷째 아들이 알지 못했던 20대 초반의 아버지.


유년 시절과 20대를 털어놓는 이 글들은 유기적이며, 서로를 보충한다. 견습사제로서 캐나다와 로마에서 공부하고, 알제를 다녀오고 파리에서 사회 운동을 벌인 과거는 지금의 알랭을 구성한다. 행동에 옮겨진 열정은 그저 부럽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했던가… 알랭 레몽은 이 글을 통해 과거와 조우하고, 화해한다.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고통을 마주한다. 그리고 ‘삶은 전진한다.’


역자 후기를 읽으니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책을 집어든 것은 ‘만만해 보여서’라고 했다. 그리고 원제를 어떻게 번역해야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제목을 가만히 읊노라면 심장이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 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작별은 예견치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그리움과 후회는 늘 함께한다…


책을 덮고 다시 알랭의 트랑으로 돌아가본다.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인, 따뜻한 바람이 부는 마당 위로 춤추는 먼지들…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의 2악장, 피아노 트릴이 이끌고 오보에와 플루트가 만나는 이 선율이 지금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b플랫 단조 작품번호 38

https://youtu.be/9_nx3TIbf0k?t=26m4s


바르바라의 유년시절(Mon enfance)

https://youtu.be/VQ7MxTBUZ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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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1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제목만 보고 친구에게 선물했어요. 에이바님 글 읽다보니 과연 친구가 좋아할만한 내용이었을까? 싶긴 하지만^^
클래식 공부 열심히 하시더니 이젠 문학작품 읽고 클래식 선율이 머리에 떠오르는 경지에 이르셨군요. 음악을 들으며 그 마음 짐작해보려고 애써봅니다^^

에이바 2016-01-11 17:05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하루하루가~랑 분위기가 아주 달라요. 알제리에 대한 죄책감으로 대체 복무라고 해야하나? 거기서 우리로 치면 코이카 활동을 하거든요. 이후 68혁명 이후의 파리로 와서 종교에 귀의하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정치 활동 및 저서 집필에 집중하는데요. 젊음의 에너지, 그런 것들이 활자 너머로 전해지더라고요. 그런게 부러웠어요. 뭔가 열정을 다할 수 있다는 것... 차피협은 요즘 듣는 중이라서요 ㅎㅎ 사실 읽을 땐 바르바라의 노래를 생각했어요.
 


인터내셔널반으로 1월 15일 발매 예정인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두번째 DG 앨범입니다. 2013년 바르샤바 필하모니 홀에서 연주한 슈베르트입니다. 베토벤 소나타 함머클라비어와 앵콜로 연주한 라모와 브람스는 2013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입니다. 자세한 소식은 DG 홈페이지(클릭) 참고하세요. 라이센스반은 1월 18일, 수입반은 2월 22일이 예상 출고일입니다.



작년 1월에는 소콜로프의 첫번째 DG 앨범이 나왔는데 200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입니다. 1996년 이후로 19년만에 발매한 음반입니다. 이 앨범도 좋아요. 직접 가서 듣고 싶다... 피아니스트가 비행기를 안 타니 제가 타야하는데 그 때까지 소콜로프 옹 만수무강하소서...



2013년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앵콜로 연주한 라모의 부드러운, 상냥한 투덜거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버전으로 앨범에 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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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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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이라는 이름을 들은 것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표백』의 부분 발췌글을 읽었을 때 였다. 뭔가 시각이 좀 다른 소설가구나 싶었다. 그 다음 이름을 들은 것은 『한국이 싫어서』였다. 이 때 신문기자였다는 이력을 알았고 이슈를 잘 다루는 작가이구나 생각했다. 그의 글을 읽은 건 Y서점 연재 덕이었다. 한국형 좀비물. 아마 출간 예정인 줄로 안다. 이 작품에 한해서는 좀 어정쩡하고 뒷심이 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여기엔 『한국이 싫어서』에 대한 다양한 리뷰를 읽은 기억도 한 몫 했다. 주인공의 결정에, 어떤 이는 반색하고 어떤 이는 반대했다. 물론 온건한 입장도 있었다. 읽지 않았기에 결정은 보류했지만 원래 편견이 완성되는 과정이라는 게 그렇다. 주어지는 정보 중에서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장강명에 대한 나의 편견 또한 그러하다. 풀어내는 과정은 어떠할지 몰라도, 이슈 중에서 소재를 선택하는구나.


하지만 일단 펼치니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다. 퇴폐성이 드러나는 밤문화는 거북했으나, 자체 정화를 위해 잠깐 알랭 레몽의 글을 읽고 오니 한결 나았다. 이 부분은 소설가가 나름대로 수위 조절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의 직·간접 경험과 문학적 상상력이 합치된 결과보다 실제는 더 할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의 신뢰성은 알 수 없지만, 몇 년 전 읽은 룸살롱 문화에 대한 르포기사는 여기 등장하는 것보다 수위가 더 했다.


소설의 구성은 인터넷 여론 선동을 주도한 이의 제보와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팀이 어떻게 조직·운영되며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지원을 받는가. 타겟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방법은 얼마나 치밀하게 혹은 허술하게 구상되며 이는 어떤 결과를 낳는가. 이 결과와 여론을 선동하는 인물들의 사회적 위치·학력 설정과 비교하면 더욱 흥미롭다.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넘기고 주어지는 보상을 받을 때 느껴지는 희열과 같은 감정이 전해지는 부분에선 혀를 차게 되고…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에 대한 장강명의 통찰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기자 출신이니 사회 현상을 큰 틀에서 보는 것이 익숙해서일까. 자료 조사과정에서 위키를 상당 참고했다고 하지만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 있는 반전보다 더 나은, 어떤 면에서는 통합된 정보를 제공한다. 인터넷 문화의 형성과 전파 과정, 사용자들의 수용 과정, 팩트 체크조차 않고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과 정보의 진실성. 20·30대는 이미 틀렸으니 미래세대인 10대를 타겟으로 해야 한다는 작전까지… 기시감이 없지 않지만…


보다 정확하게 줄거리를 쓰지 않는 이유는 사전에 제공된 정보 없이 읽는 것이 훨 나으리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등장하는 혹은 언급되는 어떤 인물상에 대입하더라도, 아니 읽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린다. 어쩌면 그것이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문학에 요구되는 어떤 아름다움, 읽기에서 오는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묘사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러한 대중 조작의 가능성, 그에 대처해야 할 방법은 이 글을 읽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2016년 2월 4일 별점 조정)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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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1-0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소설이 한국이싫어서도 그랬고 이번 것도 약간 르뽀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술술 잘 읽히기는 하죠.

에이바 2016-01-07 17:30   좋아요 0 | URL
시류에 맞게끔 소재를 잘 다루네요. 공감대 형성은 좋은데 좀 더 성찰이 필요한 느낌이 있어요. 그래야 르포 느낌도 덜할텐데... 왜 리모노프 쓴 카레르도 언론인 출신이잖아요. 장강명 작가도 열심히 쓰다보면 그런 느낌이 나려나요? 근데 이런 작가도 필요한 것 같아요. 문학을 도구로 불편해하는 사실을 끄집어내는...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살리미 2016-01-07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작가로서 도전해볼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생각해요. 인터넷 세상도 더러운 권력 못지않게 참 무서운 세상이더만요 ㅎㅎ
자체정화의 방법이 있었는데... 융통성 없는 저는 계속 불편했어요 ㅋㅋ

에이바 2016-01-07 17:38   좋아요 0 | URL
요즘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보이는 문제점들... 뾰족한 말투, 짧고 쾌감을 주는 자극적인 글 등 연계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오로라님께도 자체 정화를 알려드려야 했는데... ㅋㅋㅋ

한수철 2016-01-0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장차, 장강명도 자신이 본격 르뽀로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는 걸 알 것 같은데요?ㅎㅎ

사실 한국 순문학(신경숙 등)을 향한 반감의 역작용에 따른 반사이익을 본 면도 없지 않은 것 같아요.
그게 아니어도, 장강명은 장르소설로 나아가거나 말씀드린 대로 본격르뽀소설을 쓰거나 할 것 같아요.
이쪽- 이쪽?-으로 발을 담그는 순간 평범해지리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테니까요.^^

에이바 2016-01-08 11:29   좋아요 0 | URL
저도 이런 스타일이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작품만 봤지만요. 아무래도 시각 자체가 좀 냉정하달까, 분석은 좋은데 깊이는 보이지 않고 반대로 낭만이나 유미주의 취향은 아닌 것 같고... 그래도 호모 도미난스인가 리뷰에서 SF쪽은 괜찮을 것 같다고 모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좀비물 그건 별로였어요...
 
[불안한 낙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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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사라진 것에 대한 꿈을 꾸었다. _27쪽


한나 렌스트룀, 한나 룬드마르크, 한나 바즈, 아나 블랑카, 아나 네그라. 모두 한 여인의 이름이다. 아직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한나 렌스트룀은 스웨덴 산간 마을 출신의 소녀다. 열여덟번째 생일을 앞두고 어머니는 독립을 요구한다. 도시의 친척을 찾지 못해 포르스만의 집에 머물렀다 그의 주선으로 호주로 가는 배에 오른다. 선상 요리사 자격으로. 그 곳에서 세 살 연상의 항해사를 만나 식을 올리지만 두 달 후, 열병으로 남편을 잃는다. 남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야음 속에 하선한 한나. 한 호텔에 투숙하며 하혈한 그녀는 현지 여성에게 보살핌을 받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곳은 매음굴이었다.


바즈라는 포르투갈인이 운영하는 호텔은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로우렌소 마르케스에 위치한다. 호텔 주인은 백인 간호사를 데려오고, 한나는 그녀에게서 포르투갈어를 배운다. 그리고 이 도시를 양분하는 삶 속에 이질성을 감지한다. 스웨덴 국기를 단 배를 찾던 일을 그만둔 것은 바즈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그가 선물한 석조 가옥으로 이사한 후부터였다. 부족할 것 없으나 무료한 생활이 시작된다. 바즈는 흑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약이라고 주는 것이 독일 수도 있다고, 그는 예견한대로의 죽음을 맞는다.


고향의 끝없는 겨울에서 벗어난 지 2년도 되지 않아, 한나는 열아홉에 두 남편을 떠나보냈다. 이제 그녀는 스웨덴에서도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유산을 상속받았다. 한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어젯밤, 사라진 것에 대한 꿈을 꾸었다.” 누구도 읽을 수 없는 모국어로. 이곳에서 그녀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침묵이다. 백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현지인들, 그들의 긴 침묵 그리고 융화될 수 없는 상하관계. 불안을 동반한 외로움은 여전했다.


한나를 붙든 것은 사건이었다. 흑인 남자를 죽이고 처벌받지 않은 백인들에 분노한 폭동, 거리에는 두려움의 냄새가 퍼져 있었다. 이제 한나는 호텔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여인들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그리고 우연히 성공한 포르투갈인 피멘타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가 현지처 이사벨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피멘타가 그녀를 속이고 배신했지만 중요한 것은 흑인이 백인을 죽였다는 것이다. 이사벨은 재판 없이 사형당할 것이었다.


한나 바즈, 아니 아나 블랑카는 자신을 에워싼 허위의 세계를 깨닫는다. 흑과 백의 거짓말로 이룩한 세계, 현지인들의 맑은 눈빛을 앗아가고 멸시를 준 백인 사회의 위선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사벨의 오빠 모세스는 아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한다. 백인들이 이곳에 와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유를 알 수 없노라고. 금과 다이아몬드는 언젠가 바닥날 것이라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채우는 곳에서 아나는 다짐한다.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 이사벨에게 자유를 주겠노라고.


왜 그녀는 다른 백인들과 달랐을까? 왜 주류 사회에 순응하지 않았을까? 포르스만의 집에 머물 때 자신 역시 가난한 노동자였다는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피부색으로 부여받은 우월성을 행사한 날엔 괴로워했다. 그녀는 허위의 세계에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호텔을 떠나 베이라에 도착한 한나는 이곳의 흑인들에게서 다른 것을 발견한다. 가난 속에서도 삶을 희구하는 모습을. 자신이 느꼈던 풍요, 백인 사회의 외로움과 무료함과는 다른 생동감을. ‘지금까지의 시각은 왜곡된 것이었다.’


그녀는 과연 찾으려던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글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 한 번의 연주를 위해, 6년 동안  낡은 피아노를 조율한 조제처럼 이 모든 일을 목격해야 할 사람이 그녀여야만 했던 것이다. 아나 블랑카이자 아나 네그라. 명명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우리는 진실을 적시할 용기를 가지고 가능성을 희망해야 한다. 1905년, 한나가 머물던 호텔 정원에 나타났다 사라진 놀라운 기쁨처럼.



-로우렌소 마르케스: 오늘날 모잠비크의 수도 마푸토

-모잠비크는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하였다.

-조제는 쇼팽의 곡을 연주했지만 작품명이 나오지 않는다. 목가적인 풍경 속 불안함을 암시하는 줄곧 야상곡 작품번호 48, 1번이 떠올랐다. 그 대목부터 시작하는 유투브 영상(클릭).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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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1-0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막 끝냈는데, 앵무새죽이기도 생각나더라구요. 표지가 좀 섬뜩하고 맘에 안들어서, 내용까지 우울하게 읽었다는.

에이바 2016-01-07 17:27   좋아요 0 | URL
뭔가 냉정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도 있었어요. 카트린 드뇌브 주연 인도차이나 느낌도 살짝 나고 한나가 성장하는 과정 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익숙한 곳을 떠나는 행위가 타인의 결정(어머니, 포르스만)에서 자신의 결정으로 바뀌는 것도 그렇고요. 근데 한나가 배움이 일천한데 일기 내용은 상당히 지적인 구석이 있어 의아한 점도 있었고요. 쇼팽이 등장해서 더 반갑고 좋았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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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기, 리디 살베르


2014년 공쿠르 상 수상작. 에스파냐 내전 때 프랑스로 망명한 공화파 부모를 둔 리디 살베르의 소설이다. 110년의 공쿠르 상 역사 중 아홉번째로 수상한 '여성' 작가이다. 소설은 에스파냐 내전에 대한 두 가지 시각- 환희와 절망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어린 소녀 몬세의 눈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환희와 대작가 베르나노스가 바라본 광신적 학살. 몬세의 딸 리디 살베르는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잊혀졌으되 잊혀지지 않은 거대한 역사가 현재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고민하며 글을 전개한다.


하나의 동일한 역사에 관한 두 개의 진실. 『울지 않기』의 미덕은 하나의 실제 역사에 관한 두개의 진실을 균형있게 배치하고 젊은 카탈루냐가 가졌던 힘에 경의를 표한다는 것이다. _렉스프레스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 루 월리스


놀라운 수식어들로 가득한 영화, 뮤지컬의 원작이 드디어 완역으로 찾아왔다. 방대한 분량의 대하 드라마를 우리말로 옮긴 이는 김석희 번역가이다. 루 월리스의 치밀한 고증을 통해 재현된 로마 제국 치하의 예루살렘과 예수의 일생은 어떠할까. 역사소설이자 종교소설, 다양한 장르로 변주된 작품의 오리지널이 기대된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아마도 최초의 재난 소설이지 않을까? 알제리의 아름다운 도시, 오랑에 퍼진 전염병으로 인해 공포가 확산된다.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을 대처하는 이들의 다양성을 통해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도출해낸다. 노벨 문학상 수상 후, 카뮈에게 상업적 성공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서른넷 카뮈의 세상...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12쪽)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탄생 150주년이었던 2015년, 여러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 번역본은 상세한 주석이 일품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넌센스, 무의미 시, 수학, 독특한 캐릭터 등의 난제들을 해설하고, '빅토리아 시대' 문화를 작품과 연결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번역본의 특징은 작품에 대한 기존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배제하고, 수학자였던 캐럴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또한 작품의 모델이 된 앨리스에 대한 캐럴의 '소아 성애' 문제를 비교적 공정하게 다루려고 했다고 한다.









카인, 주제 사라마구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 카인은 하느님께 사랑받는 동생 아벨을 질투하여, 그를 죽이고 추방된다. 두려움에 울부짖는 그에게 하느님은 보호를 약속하나, 성경 속에서 이후 그의 행적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주제 사라마구는 그렇게 떠도는 카인의 눈으로 바라본 10여년을 통해 다음 질문을 환기한다. 과연 신은 자비로운가? 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외 문학 관심 신간)







(문학 외 관심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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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01-0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부아르> 나온 지도 얼마 안됐는데 바로 다음해 공쿠르 수상작 나오니 기분이 좀 이상^^; 두 작품 다 전쟁 관련한 작품이라 한국도 한국전쟁 소재 대작 나와야 하지 않나 싶어요^^

에이바 2016-01-02 17:22   좋아요 0 | URL
확실히 오르부아르가 울지않기 보다는 읽기 편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르메트르가 대중소설로 성공한 작가이기도 하니 재미도 보장할 것 같고요, 열린책들 대단한게 마케팅도 좋았죠. 작가와의 만남까지 준비하고... 저도 읽으려 했는데 짬이 안 나서...ㅎㅎ 근데 편견이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게 한국소설 같은 경우 근현대사를 다루면 잘 안 팔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어요. 특히 전쟁을 다룬 걸출한 태백산맥이 있고 해서요. 저도 장편소설 원해요. 긴 글을 단번에 써내려간 호흡이 긴 작품, 아갈마님 말씀대로 `대작`이 나온다면 좋겠는데 왠지 스포트라이트 받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흥미 위주가 아니라 제대로 다룬 그런 작품요.

AgalmA 2016-01-02 17:27   좋아요 0 | URL
태백산맥 저도 생각하긴 했는데...<태극기 휘날리며>나 <칼의 노래> 그런 식의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누가 과연~_~ 정작 글을 써야 할 작가조차 한국이 싫어서 판이니...
르메르트 교보문고 인터뷰도 했던데 알라딘 좀 더 노력하셔야 할 듯~ 보고 있습니까< ㅎㅎ
깨진 얼굴이란 소재가 너무 매력적!

에이바 2016-01-02 17:36   좋아요 1 | URL
여성 작가가 전쟁 소설 써서 문단에 파란을 좀 일으켰으면... 편견도 좀 불식하고요. 근데 쉽지 않을 것 같은게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 이 책도 자료 조사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중국 공안과의 문제도 있고 소재도 그렇고 해서... 전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르메트르 옹 한국 체류하실 동안 알차게 보내셨네요. 광장 시장에서 식사도 하셨던데 ㅋㅋ

다락방 2016-01-0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보니 <페스트> 읽고 싶어지네요. 책장에 안읽은 책이 수두룩한데 말입니다.

작년 한해 에이바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풍성했어요. 이번 해에도 작년처럼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해피 뉴 이어!

에이바 2016-01-02 19:14   좋아요 0 | URL
작년 메르스도 떠오르고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 같아요. 선정 안 되면 이 버전은 조금 늦게 만나겠지만... 이번에 전락 새 번역도 나오고 해서 카뮈 대표작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도 다락방님의 글을 읽으며 삶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글에는 성품이 드러나니까요. ㅎㅎ 저도 잘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CREBBP 2016-01-0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댓글에서 못봐서, 에이바님글 아직 안썼는줄 알았어요 제가 잘못봤나봐요. 울지않기, 소각의 여왕 술꾼의 전설 등등 추천했어요. 이미 결정난듯. 카인하고 벤허 유력하던데

에이바 2016-01-07 17:21   좋아요 0 | URL
기네스님 글 보고 왔어요. 그들이랑 카인 될 거 같아요. 전 페스트랑 벤허 밀었는데 안 될 것 같아서... 왜 제가 미는 건 하나도 안 되는거죠? ㅜㅜ 술꾼의 전설 첨 나왔을 때부터 찍어놨는데 삽화가 왠지 모르게 공허하다고 해야 하나 눈빛이 슬퍼서 구매 안했어요. 모스크바행 페투슈키행 열차 못지 않게 술냄새가 진동할 것 같았는데 조이스 오츠 거는 좀비 읽다가 덮은 적이 있어서 피하는 중인데 유력해서 좀 쓸쓸해요. 근데 대작일 것 같아요...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