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1세기에 로마에 물을 공급한 수로 시스템을 어찌 경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시 로마 시에는 1985년의 뉴욕 시보다 훨씬 많은 물이 공급되었다. -A. 트레버 호지, 『로마의 수로와 급수 Roman Aqueduct & Water Supply』


새로운 지역을 빠르게 로마화하며, 제국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은 도로, 다리, 수로 건설이었다. 로마의 수로 체계는 발전된 공학과 기술을 보여주고 있으며, 수도교를 통해 아주 많은 양의 물을 들여왔기 때문에 도시와 하수시설에 그야말로 강이 흐를 정도였다. 아쿠아 아우구스타(Aqua Augusta)를 건설했던 아그리파는 배를 타고 시설을 점검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고대 로마가 하루에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현대의 많은 도시가 누리는 것보다 많았다. 부유한 가정은 실내 배관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도시 곳곳에 위치한 분수는 공공 및 개인용 식수를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로마 제국의 첫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의 친우이자 참모이기도 했다. (출처)


가정에서 소유한 화려한 우물과 분수는 상류층의 지위를 과시하는데 이용되었다. 사치스러운 물의 사용, 물의 공급을 지배하는 능력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물의 이용으로 농업 생산력이 확대되고, 기술력이 발전했기에 이 둘의 관계는 더욱 확고해진다. 로마의 물 사용자들은 물의 품질과 각 수원지의 특별한 성질에도 주의를 기울였으며, 다른 수원지의 물이 섞이는 것을 싫어했다. 따라서 수도교 물길은 가능한 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수도교의 물은 도시의 분수와 대중목욕탕에서 거리를 거쳐 강까지 막힘없이 흘렀다. 수도꼭지도 없었으며, 다른 기술적 방법으로 물의 흐름을 막는 일도 없었다. 이는 물을 존중하는 태도, 즉 물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물을 계속 흐르게 놔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며 로마법은 수도관 물을 막아 담아 놓는 것을 금지했다. 이러한 흐르는 물, 실내 배관과 하수체계는 제국 내 수인성 질병을 예방했다.



→ 아쿠아 아우구스타의 수원지인 세리노에서 종착지인 피스키나 미라빌리스를 볼 수 있는데(녹색선), 베네벤토에서 시작되는 베네벤툼 수로와 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크게보기 및 출처)


저기 먼 만(灣)의 반대편, 소나무가 울창한 아펜니노 산맥의 고지에서 세리누스의 수원을 끌어내어 그 물을 서쪽으로 보낸다. 그 물이 굽이굽이 지하수로를 따라 흘러 겹쳐 쌓인 아치들의 정상에 있는 협곡에 이르면, 거대한 도관을 통과해 계곡을 가로지른다. 그렇게 캄파니아 평원까지 내려간 물은 베수비우스 산을 크게 돌아 네아폴리스 만(나폴리 만)의 해안으로 남하하고, 마침내 미세눔 반도의 등뼈를 따라서 먼지가 자욱한 해안마을까지… 약 1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이를 90미터 당 5센티미터도 안 되는 평균낙차로 흘러가는 것이다. 


-로버트 해리스, 『폼페이』 (18-19)


아우구스타 수도교의 종착지는 거대한 지하 저수조, 피스키나 미라빌리스(기적의 저수지)이다. 바깥에서 보면 도시 한 블록 정도의 길이에 반 블록 정도의 폭을 지닌, 낮고 평평한 지붕의 붉은 벽돌 건물로 벽은 연녹색의 담쟁이덩굴이 덮고 있었다. 건물 주변에는 상점과 창고, 술집, 아파트 등이... 저수조의 둥근 지붕은 48개의 기둥들이 받치고 있으며, 저수조 물 속에 잠겨 있는 부분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15미터 이상에 달했다. 


-상동, (35)


로마 수로가 중요한 것은, 물 공급에 따라 도시의 상태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류량이 감소하면 어획량이 줄고 식이단백질의 감소를 불러온다. 이 수원을 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원로원에 줄을 대고 있는 계급이었기에, 제국 행정을 반영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물을 도시까지 운반해오는 능력만큼 하수를 내보내는 능력도 중요했다. 로마의 주요 하수로인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는 현대에도 일부 사용 중이다. 오수는 길 양 옆을 흐르다 맨홀을 통해 배수로로 흘러들어간다. 맨홀은 빗물을 삼키려는 강의 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는데, 유명한 ‘진실의 입’이 그 중 하나이다. 클로아카 막시마에 모인 오수는 테베레 강 하류에 버려지는데 문제는 강이 범람하면 오수가 범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시 전역의 하수를 전부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화조 같은 구덩이에 오물을 모아 거름으로 재활용하기도 했다.



→ 프랑스 남부의 퐁 뒤 가르는 3층의 아치로 이루어진 로마 수도교(50킬로미터)로 위제스에 있는 샘에서 나온 물을 로마 식민지였던 네마우수스, 님므까지 운반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수도교는 돌, 벽돌, 특수한 화산재인 포졸라나를 석회와 섞은 수경 시멘트로 만들어졌다. 물이 계속해서 흐르게 하려면 적절한 경사도와 중력을 사용해야 했으며 이를 통해 로마의 높은 공학 기술을 짐작할 수 있다. (골짜기에서는 사이펀을 이용) 도시에 들어온 물은 높은 지대의 수조(Castella)로 이르렀고, 저수지는 거대한 납파이프에 연결되어 도시에 물을 공급한다. 수로체계 건설은 공공 노동 프로젝트였기에 정치적 성격을 띠었고, 유지와 정비는 도시 운영에서도 중요 과제였다. 로마인들은 그만큼 물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로마의 수도청 장관(Curator Aquarum)은 종신직이었다. (첫 번째 쿠라토르 아쿠아룸은 마르쿠스 아그리파) 쿠라토르 아쿠아룸이 로마 시의 수로체계를 책임지고, 지방은 그가 임명한 관리-쿠라토르-들이 책임을 지는 식이었다. 쿠라토르의 업무를 보조하는 이들에는 기록원, 안내인, 노예, 수문장(릭토르)등이 있었다. 이러한 수로체계의 유지와 관리, 사치스러운 물 사용은 로버트 해리스의 『폼페이』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아스쿨룸 피켄툼이 무너질 날도 머지않은 상황이었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는 10월에 공마를 타고 자신의 군대를 데려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와 병력을 합쳤다. 그런 다음 로마 병사들이 아스쿨룸 피켄툼의 성벽을 완전히 포위하도록 배치했다. 이제 성벽 위에서 내려온 밧줄 하나도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다음 작전은 도시의 식수원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물은 트루엔티우스 강바닥의 자갈층을 통해 수백 개 지점에서 공급되고 있었기에 이는 실로 대단한 규모의 작업이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는 상당한 공학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기꺼운 마음으로 이 작업을 직접 감독했다. 


-콜린 매컬로, 「풀잎관 2」, (524)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은 공공시설 건설과 유지 작업에 투입되었다. 군단은 위대한 로마 도로와 수로의 건설자였다. 로마 시가 유지되는 2000여 년 동안 11개의 수로가 기능하고 있었다. 가장 처음에 건설된 것은 아쿠아 아피아(312 BC)이고 아쿠아 알렉산드리아(AD 226)가 마지막에 건설되었다. 서로마의 쇠퇴기,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인해 로마의 수로가 끊기게 되었고, 완전히 지하에 건설된 아쿠아 비르고만이 물을 운반했다. 중세 때 몇 개의 수로가 복구되지만 르네상스 시기가 될 때까지 완전한 이용은 불가능했다.



→ 로마 근처의 아피아 가도 (2003년 촬영으로 추정, 출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고대 로마의 도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로마로 이어지는 약 8만킬로미터의 포장도로는 로마 제국의 문화를 문명세계에 퍼뜨리는 주요 역할을 했다. 도로는 원래 군사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나 관리들과 시민들, 상업을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이 도로망 덕분에 로마는 지중해에서 상업, 무역, 정치, 문화, 군사력의 허브로 기능할 수 있었다. 아피아 가도는 로마 최초의 포장도로이면서 가장 유명한 길이다. 기원전 312년, 삼니움 전쟁 중에 감찰관 아피우스 클라디우스 카이우스가 군사 목적으로 첫 삽을 떴으며, 그의 이름인 아피우스를 딴 이름이 붙여졌다. 현재 도로 위 차량 통행은 금지되었다. 2천년이 지났음에도 도로 상태를 보면 놀라울 정도다.


〈로마 군인들에게 걷기란?


이탈리아에서 군대를 배에 태워 히스파니아로 보내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알프스 너머 갈리아 해안을 따라 도로를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우세풍과 해류 때문에 해상 수송은 지나치게 위험했다. 따라서 카이피오의 군대는 지난해의 롱기누스 군대처럼 캄파니아에서 나르보까지 1천 600킬로미터 넘게 걸어야 했다. 로마 병사들은 걷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바다를 무서워했으며, 160킬로미터를 항해한다고 생각하면 몸서리를 쳤다. 1천 600킬로미터를 걷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들의 근육은 신속하고 끝없이 걸을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단련되었다. 따라서 걷기는 그들에게 가장 편한 이동 방식이었다. 


-콜린 매컬로, 「로마의 일인자 2」, (62-63)



→ 로마 포장 도로의 단면 (출처)


로마의 도로는 단순한 통나무길에서 포장도로까지 다양했다. 포장도로의 경우 노반에 잡석을 깔아 수분이 돌과 잡석 사이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도로가 진흙 등으로 지저분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도로는 보통 영토 확장 중에 군단이 건설했는데, 로마 군대의 공병들은 도로, 진지, 교량 건설 전문가로 귀중한 자원이었다. (공병대장은 보통 장군이 고용한 민간인으로 전문가) 시기와 지형에 따라 도로건설 비용은 천차만별이었으나 건설비는 중앙정부가 부담하였으며, 유지비용은 보통 지역민들에게 전가되었다. 로마의 도로는 아주 효율적이었고, 적군들이 로마 군대만큼 빠르게 이동하는데 이 길을 이용했기 때문에 제국 후기에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공병대장에게 절벽에 위치한 분기공이란?


분기공은 공병대장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간단해요.” 그는 분연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 꼭대기까지 튼튼하고 넓은 계단을 설치하겠습니다. 공간은 충분합니다.”

“얼마나 걸리겠나?” 마리우스가 물었다.

“마침 수레 몇 대분의 판재와 작은 각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밤낮으로 작업하면 이틀이면 됩니다.” 공병대장이 말했다. 


-콜린 매컬로, 「로마의 일인자 2」, (98)



〈공병대장에게 석조 교각이란?〉


한편 로마군 공병부대는 동트기 훨씬 전부터 가교 아래의 들보와 버팀목 사이에서 열심히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항상 똑같다니까요!˝ 작업 진행상황을 보러 온 술라에게 공병대장이 투덜거렸다. ˝늘 이래요. 살짝 당겨만 주면 와르르 무너지는 낡아빠진 놈을 기대하고 왔는데, 로마식으로 제대로 지어놓은 다리가 떡하니 있더란 말입니다.˝

˝할 수 있겠소?˝ 술라가 물었다.

˝그러길 바라야죠, 부사령관님! 이 다리에는 그냥 밧줄로 묶거나 나사못으로 죄어놓은 곳이 하나도 없어요. 홈과 은촉도 제대로고, 전부 사개맞춤으로 이어서 위쪽으로 떠받치는 게 아니라 아래쪽으로 누르게 해놓은 다리입니다. 그러니 빨리 해체하려면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큰 기중기가 필요해요. 뭐 어차피 그만큼 큰 기중기를 만들 시간이 있지도 않지만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힘든 방법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마지막 병사들이 건널 때쯤에는 다리가 다소 흔들릴 겁니다.˝

공병대장의 말을 듣고 술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힘든 방법이란 게 뭐요?˝

˝지금 중심 버팀목과 들보를 톱으로 자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 힘써주시오! 아까 말한 살짝 당기는 일을 도와줄 황소 100마리를 준비해뒀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겠소?˝

˝그래야겠지요.˝


 -콜린 매컬로, 「로마의 일인자 3」, (284-285)



〈로마 도로는 로마인들만 이용한 것이 아니다 (1)〉


8월 중순경 황금을 실은 짐마차 450대가 톨로사를 떠났다. 호위대는 군단병 1개 대대뿐이었다. 로마의 도로는 아주 오랫동안 싸움 한번 나지 않은, 문명국을 관통하는 문명화된 도로였기 때문이다. (...) 보름달이 뜬 맑은 밤이었다. 짐마차 행렬은 어두워질 때까지 몇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사이 도로에 나타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속주에 있는 로마의 도로들은 사실상 군대 이동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 구간은 해안과 내륙 간의 무역도 뜸했다. 


-콜린 매컬로, 「로마의 일인자 2」, (70-71)



〈로마 도로는 로마인들만 이용한 것이 아니다 (2)


무틸루스가 말했다. “(...) 로마인들은 카푸아나 푸테올리를 끝까지 놓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캄파니아의 나머지 지역은 로마로부터 충분히 빼앗을 수 있을 겁니다! (...) 우리는 로마의 동쪽과 남쪽으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빼앗고, 플라미니우스 가도와 카시우스 가도를 점령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 


-콜린 매컬로, 「풀잎관 2」, (201)


로마의 장군들이 군대를 이끌 때, 도로건설을 위해서는 스스로의 자원을 이용하길 기대받았다. 그러나 관할지에 대한 완전한 지배력(임페리움)은 지역민을 수탈-돈, 원자재와 부가적인 노동력에 이르기까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로마의 경제가 힘들어지고 외부적인 압력이 가해지기 전인 7세기만 해도 도로는 계속 건설되고 유지되었다. 로마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도로, 수로, 수도교의 상태는 제국의 상황과 유사하였다. 제국이 쇠락할 즈음 이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고 보수되지도 않았으며 파괴된 채로 남아있게 되었다. 로마 제국 후기, 관리되지 않은 도로에 대한 분위기는 버나드 콘웰의 군벌 연대기 3부작과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에서도 느낄 수 있다.


속주 내에는 적군이 없었지만 병사들에게는 임시 진지를 마련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어쨌든 로마군이 무방비 상태로 잠들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미 측량사와 공병들이 언덕 꼭대기에 영구적인 진지를 건설하는 작업에 나섰다. 임시 진지 건설에 투입되지 않은 인원은 언덕을 요새화하는 작업의 첫 단계에 동원되었다. 이 작업에는 기둥, 말뚝, 건축자재로 쓸 목재를 구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

마리우스의 군대는 로다누스 강의 삼각주이자 동서로 뻗은 거대한 염습지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임시 진지든 영구 진지든 경작지에 짓는 법이 없었다.

“잠재적인 협력자들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으니까. 게다가 이곳에서 먹여살려야 할 입이 5만 개나 늘어났으니 이곳 주민들이 가진 경작지란 경작지는 다 필요하단 말이지.”

마리우스의 식량 조달관들은 농부들과 곡물 거래 계약을 맺으러 다녔다. 일부 병사들은 이번 추수부터 다음 추수가 시작되기 전까지 12개월 동안 5만 명이 먹을 양식을 쌓아둘 곡물 저장소를 언덕 꼭대기에 지었다. 무거운 짐수레에는 마리우스의 소식통들이 알프스 너머 갈리아에서 구할 수 없거나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던 물건들, 이를테면 역청, 거대한 각재, 도르래 장치, 각종 도구, 기중기, 발로 밟아 돌리는 기구, 석회, 귀한 철제 볼트와 못이 잔뜩 실려 있었다. 항구도시인 포풀로니아와 피사이로는 일바 섬에서 생산되는 괴철이 반입되었는데, 공병 대장은 공병들이 직접 강철을 생산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괴철을 모조리 사들였다. 무거운 짐수레에는 모루, 도가니, 망치, 내화 벽돌 등 강철생산에 필요한 도구도 실려 있었다. 이미 병사 한 무리가 숯을 대량으로 생산할 목재를 구하러 간 터였다. 숯이 없으면 용광로를 뜨겁게 달굴 수 없어서 철을 단단하게 만들기는커녕 녹이는 것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콜린 매컬로, 「로마의 일인자 3」, (60-61)


번외) 기원전 105년의 폼페이: 기원전 79년 베수비우스 폭발


미세눔 곶은 크라테르 만의 험난한 북쪽 돌출부에 해당했다. 크라테르 만은 선박들이 머물 수 있는 거대하고 안전한 정박지로 푸테올리, 네아폴리스, 헤르쿨라네움, 스타비아이, 수렌툼 등의 항구도시가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인간의 기억보다 훨씬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크라테르 만에는 원래 거대한 화산이 있었는데 그것이 폭발하면서 바닷물이 밀려들었다는 것이다. 그곳의 화산 활동이 그 증거라고들 했다. 갈라진 지표면 사이로 불길이 치솟으면 푸테올리의 검은 밤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걸쭉한 흙탕물이 보글보글 끓어올랐으며 샛노란 유황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증기 기둥이 갑자기 솟아오를 때면 지표면 틈이 닫히거나 더 넓게 벌어지곤 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베수비우스 산이 있었다. 해발 수천 미터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한때는 활화산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평화롭게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언제 이야기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콜린매컬로, 「로마의 일인자 2」, (307-308)



참고 사이트)

https://en.wikipedia.org/wiki/Roman_aqueduct

https://en.wikipedia.org/wiki/Roman_roads

http://www.unrv.com

http://www.romanaqueducts.info/index.html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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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5-11-27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논문을 쓰셨네요?

...그나저나 이 글을 읽다 보니 저의 군 시절, 분대장 시절 생각이 나네요.

당시 배수로가 아주 중요했어요. 넓은 지역을 관장해야 했거든요. 물이 소통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인식을 중대원 모두 공유하고 있었죠. 주입받은 건지도요.

그러던 어느 날 배수로 하나가 토사에 의해 막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의 분대가 관장하는 지역의 배수로 중 하나였지요. 해결하기 위해 나갔습니다.
근데 저는 암담하더군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조용히 혼자 생각하는 척하며 아무 생각 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부분대장이 저에게 약간의 동의를 구한 후, 앞으로 나서며 분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요는, 넓고 깊게 땅을 판 후 청석을 깔자는 것이었습니다. 넓고 깊게 파는 건 어리석은 짓 같지만, 청석을 그 위로 깐다는 발상은 훌륭하군, 저는 생각했어요.

여하튼 그 이후로 그 배수로만큼은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죠.

더불어 저는 그 배수로 사건 이후, 뭔가 신망이 낮아진 느낌을 받게 되었지요.

미안합니다, 쓸데없는 소리나 해서.

흠흠....

에이바 2015-11-27 17:47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들려주신 군 생활 에피소드 덕에 배수로의 중요성은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한수철님이 긴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제 댓글은 무지 짧아 뭔가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ㅎㅎ;;;

만병통치약 2015-11-2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쓰는 곳에 이런 논문이나 리포트를 올리시면 저 같은 사람 비교되서 안됩니다. 철회하시지요 ㅋㅋ.리뷰의 하향평준하를 지향하는 만병통치약올림 ^^

에이바 2015-11-27 17: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만병통치약님. 근데 비주얼 경제사 리뷰에 알라딘 비주얼 담당 얘기 왜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거죠? ㅎㅎ

만병통치약 2015-11-27 19:49   좋아요 0 | URL
뭐 암묵적인 동의가 아닐까요? ㅋ

에이바 2015-11-28 09:21   좋아요 0 | URL
그렇죠? ㅋㅋㅋㅋㅋ 저도 한 표 보탤게요.

살리미 2015-11-27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대단해요!! 로마도 에이바님도!!!

에이바 2015-11-27 17:48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오로라님. 오로라님도 어서 로마에 빠지셔야 해요! ㅎㅎ

cyrus 2015-11-27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한 노력이 돋보이는 글이 마니아 순위에 제대로 반영해야 합니다. 이런 글을 썼는데도 에이바님이 북플 `로마` 마니아 첫 번째가 아니라면 북플 마니아 제도에 문제 있습니다.

에이바 2015-11-27 17: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자료들 모은 것에 불과한데 머쓱해져요.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cyrus님이 로마 얘길 많이 안 하셔서 제가 돋보이나 봅니다. ㅎㅎ

서니데이 2015-11-27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많은 책을 참고하여 페이퍼를 쓰셨군요.
서재에 와서 다시 한 번 읽었어요. 사진자료가 있으면 설명을 이해하는데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정성담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본문인용이 있거나, 긴 글은 역시 서재에서 읽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에이바님,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오늘도 날이 살짝 춥습니다.^^

에이바 2015-11-27 17:5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두 번이나 읽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역사를 다룬 책들이라 공통점을 발견할 때 마다 즐거워져요. 기억을 되살려 찾으면서 다시 한 번 로마에 감탄했답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한 주가 되셨길 바랍니다. ㅎㅎ

단발머리 2015-11-27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출력해서 형광펜 줄 그으면서 꼼꼼히 읽어야겠어요.
제인에어, 어떤 흔녀 다음으로 인상깊은 페이퍼예요. 정말 멋지세요, 에이바님^^

에이바 2015-11-28 09:19   좋아요 0 | URL
프로필 이미지도 제인 에어인 단발머리님 ㅎㅎ 감사합니다. 로마의 일인자 읽고, 폼페이 읽고 나니 궁금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 저 책 들춰보니 재미도 있고, 골짜기 사이 수도교는 사이펀을 이용한다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찾아보고 그랬어요. 공부할수록 참 대단한 로마! 이태리인들이 자부심을 갖는 이유를 새삼 깨달았어요. 인터넷으로 아피아 가도에 이어지는 수로 관광을 하니 참... 떠나고 싶어요.ㅋㅋㅋ

붉은돼지 2015-11-28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로마의 토목 건축술은 정말 엄청나다는 생각입니다. 기술도 대단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그 긴 안목도 부럽습니다.
제국이 그냥 제국이 된 것이 아니겠지요.. 독일의 아우토반에는 비행기의 이착륙도 가능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도로의 두께가 미국 고속도로 두께의 두배가 넘는다고 하더군요.....무슨 고속도로고 고속철이고 간에 초단기간 돈내기식으로 건설하는 것이 대수가 아니고 안전하고 오래가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실천은 아직 요원한 이야기 같습니다.

이스탄불에도 4세기에 세워진 발렌스 수도교가 아직 멀쩡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에이바 2015-11-28 17:15   좋아요 0 | URL
비행기요? 대단하네요. 고속주행을 위해서는 도로 표면의 커브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도로 표면의 커브가 바퀴의 마찰을 잘 받쳐줘야... 쓰고 보니 뻔한 얘기네요. ㅎㅎ 암튼 아우토반은 그것도 고려해서 지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역시 이스탄불에도 로마의 흔적이...^^ 찾아서 보고 왔어요. 도로도 그렇고 수도교, 수로까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2천년을 버티는건지 참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