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마지막 스피치 수행평가가 머지 않았고, 나는 스피치 주제를 '고3을 시작하며'로 잡았다. 대략 내용은 이러하다.
18년 인생중 11년을 하고싶은 것을 안하면서 살아왔고, 이제 마지막 1년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 3-3 반이 될 현 2-3반 독어과는 이 엄청나게 긴 레이스의 마지막을 함께 할 team mate이다. 남은 1년간 우리는 최고의 team이 되어 잘 견뎌보자.
3분 분량의 스피치를 영어로 써서 외워서 발표하는 것이다. 1힉년, 이 학교에 들어와서 첫 스피치를 준비할 때 대본을 쓰느라 몇시간을 고민하고 밤을 새기도 하고 힘들게 힘들게 준비했는지 모른다. 몇번의 스피치, 몇번의 에세이를 거치고 난 지금 야자시간 2시간 만에 대본을 다 쓴 나 자신을 보며 미소가 지어진다. 이 것은 그동안 몇날 며칠 밤을 샌 나에게 주어지는 약간의 행복이겠지.
아무튼 이 대본을 쓰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공부들과 정말 1년 남았다는 생각이 엄습해 오면서 마음이 야릇야릇해지는 시간이다.
여전히 영어를 못해서, 하필 영어의 단위수가 압독적인 외고를 다니면서 영어를 못해서, 종합전형은 원서도 못쓰게 생겼지만 그래도 성장한 나를 보며 가끔 미소를 짓는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지금까지 5년, 수고 많았다. 울면서 잠들었던 밤들과 '한계'를 느꼈을 때오는 좌절과 상대적 박탈감. 길을 걷다가, 독서실에서, 집에서. 참 주책맞게도 수많은 곳에서 눈물을 지어가며 공부해왔다. 정말 평생 안 올것 같던 고3이 눈에 펼쳐졌다.
사실 무섭다. '쫄린다'라는 말이 제일 적합할 듯 싶다.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볼 때, 쫄리고 졸고있는 나를 봐도 쫄리고 종합전형 최종 발표들을 기다리는 고3들을 봐도 쫄린다.
그리고 그냥 기도한다. 잘 이기게 해달라고.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후회하지 않은 1년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내가 이렇게 고3이 되어가는 동안 세상은 날이 다르게 새로운 이슈들로 가득하다.
부끄럽고, 화가 난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헛웃음이 나왔고, 그냥 웃겼다.
그러나 이젠 화가난다. 국민을 무엇으로 아는 것인가. 그들은 과연 국민을 무서워하고 이 나라의 법을 무서워 하는 인간들인가. 눈물을 흘리면서 '죽을 죄를 졌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들은 과연 속으로는 무슨생각을 했을까. 국민을 우롱하는 검찰. 국민을 속이는 그들. 이제는 치가 떨린다.
똑똑한 국민이 되어야한다. 국가가 '요지경'이 된 뒤 많은 사람들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글러먹은 세상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혹은 '공부해서 이 나라를 뜨자.'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나는 저 둘 중 그 어떤 것도 할 깡이 없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란다. 나는 똑똑한 국민이 될 것이다.
감히 양심도 없는 이기적인 종자들이 무시하고 우롱할 수 없는 무섭고 현명한 국민이 될 것이다.
고3. 정치에 관심을 갖고 분노할 때도 '과연 내가 이것에 분노할 여유가 있는지를 성찰해 보게 되는 시즌. 잡생각들도 많아지고 잡 감정들도 많아진다.
1년. 후회하고 싶지 않다.
국민여러분. 여러분도 후회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을 시간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내가 무슨말을 싸질러 놓은 건지도 모르겠는 생각만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