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의 뜰
탁현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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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덕분일까요? 요즘 신사임당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저는 그 동안 신사임당하면 현모양처의 상징처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최고의 여류 화가이자 여성화가의 시조로 손꼽히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책들이 나와서 반갑더군요. 이번에 읽은 <사임당의 뜰>은 간송미술관 연구원인 탁현규의 책인데요. 사임당과 어머니 못지 않은 재능을 뽐낸 딸 매창의 작품을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목 역시 의미가 컸는데요. 조선시대에는 여성은 규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유람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남성이 산수를 화폭에 옮길 수 있었다면, 여성인 사임당과 매창은 자신이 가꾸는 뜰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죠. 비록 한정된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이 품은 바람과 뜻을 투영해내는 세밀함이 돋보이고, 작품에서 그녀의 성장을 느낄 수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림을 먼저 보고 있었는데요. 아름다운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더군요. 바로 귀비호접貴妃蝴蝶입니다. 양귀비와 호랑나비를 그린 그림인데요, 평소 나비를 좋아하는데, 나비가 보이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이 꽃은 관상용이 아닌, 지금은 재배가 금지된 마약 양귀비라고 하네요. 그림부터 볼까 하는 마음에 책장을 넘기다 그대로 멈춰버리게 만든 양귀비꽃을 보니, 너무나 아름다워 누구도 감히 다가갈 수 없었다는 당나라 현종의 후궁 양귀비의 이름을 붙인 이유를 알 거 같더군요. 궁금해서 양귀비 꽃을 찾아보니 사진에서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던데 말이죠. 아무래도 사임당의 손끝에서 그 요요한 자태가 더욱 빛나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사임당 '귀비호접' (사진제공 간송미술문화)

이 책 덕분에 한국화를 감상하는 방법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요. 사임당의 묵포도같은 작품을 보면, 포도송이를 다 드러내지 않고 감춤으로써 재미를 더했다고 합니다. 또한 곤충의 움직임을 통해서 작품의 상상력을 더해주기도 하죠. 그래서 원추리와 개구리라는 작품을 보면서 문득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는 뛰어오르려는 개구리의 시선과 벌의 위치가 어긋났음을 지적하는데, 저는 문득 그 벌보다 더욱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이 화폭 밖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마치 그림 밖으로 개구리가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래도 광고를 너무 봤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요. ^^

그리고 이어지는 매창의 그림, 취향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자면, 저는 매창쪽이더군요. 사임당의 그림세계가 초충도에 있었다면, 매창은 선비 화가의 그림인 사군자의 시조라고 합니다. 어쩌면 매창의 그림이 더욱 눈에 익은 편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어요.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월매도 月梅圖는 정말 재능만 있다면, 한 수의 시를 읊고 싶어지는 느낌을 주더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매창, 율록, 사임당과의 대화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그들과 가상 인터뷰를 한 느낌이었는데요, 매창이 자신과 어머니의 그림을 전시회로 연다면 조선 유일의 모녀화가가 색과 먹으로 살린 생명들이라고 하자고 했는데, 정말 그런 전시회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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