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출신입니다만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인호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시절이 바로 고등학교 때였다. 지극히 문과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이과로 정해진 후, 내신을 관리하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는 과정에서 내 관심사에 맞게 전공을 바꿀 수 있어서 행복했고, 지금은 과연 문과와 이과라는 영역구분이 의미가 있는가라는 막연한 생각마저 하기 때문에 이 책이 더욱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을 얼마 전에 읽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소설가이자 영화제작가 가와무리 겐키의 <문과 출신입니다만> 그는 자신을 이과 콤플렉스를 짊어진 문과 남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세상을 혁신하고, 미래를 그려나가는데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이과인이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2년동안 이과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이과와 문과는 똑같은 산을 다른 길로 오르고 있을 뿐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항상 이과를 선택해서 손해를 봤다고 여기는 나이지만, 그 시절 우리 역시 입시라는 똑같은 산을 다른 길로 올라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이 중에는 다른 책을 통해 익숙해진 인물들도 꽤 있었다. 가와카미 노부오의 <콘텐츠의 비밀:스튜디오 지브리에게 배운 것들>을 정말 좋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역시나 그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경쟁없이 승리하는 부전승이 최고의 승리법이라는 그의 생각에 얼마나 공감이 가던지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인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가 있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정정당당하게 싸웠다면, 패배했어도 그 과정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자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도리어 내가 이길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낼 생각을 하자는 그의 제안이 요즘의 내 상황에 도리어 도움이 되는 거 같다.

가와카미 노부오 역시 우유부단이 현명함의 상징이라고 말했는데, 아예 조령모개가 최고라고 말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바로 라인의 최고전략 및 마케팅 책임자인 마스다 준이다. 조령모개朝令暮改를 의사결정과 사업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마치 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주변을  못 돌아보고, 앞만 보며 달려가다 보면, 놓치는 것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빠르게 변화하는 IT세계에서 적당한 우유부단함과 조령모개는 도리어 유연성을 키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한다.

유연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MIT 미디어랩 소장인 이토 조이치도 기억에 남는다. 또한 연두벌레로 식량문제와 미래의 에너지 문제도 해결하고자 하는 이즈모 미쓰루도 있다. 다양한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고의 전환과 확장을 엿볼 수 있게 해준 가와무라 겐키는 아까도 밝혔듯이 문과인이다. 하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런 훌륭한 인터뷰를 접할 수 없지 않겠는가? 마치 이과만이 세상을 바꾸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지 몰라도, 결국 함께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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