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사랑한 여행
한은형 외 10인 지음 / 열림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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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의 배경이 홋카이도가 아닌 것을 알고 있으면서, 홋카이도 하면 이 글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그래서 소설가, 시인, 영화칼럼니스트로 구성된 10인의 여행산문을 담아낸 <작가가 사랑한 여행>의 첫 번째 글인 한은형의 겨울에 당신과 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또다시 설국을 떠올렸다. 거기다 며칠 전까지 한겨울의 홋카이도를 즐기고 있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여름에 홋카이도를 가볼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내 예상과 달리 홋카이도의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더욱 독특하게 느껴졌다. 홋카이도의 여름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냄새를 보내며 겨울의 우리를 궁금해하는 이야기는 부드러운 침엽수라는 표현과도 참 잘 어울리는 거 같았다. ‘홋카이도 그린이라니, 이런 조합은 생각도 못해봤는데,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홋카이도의 여름은 또 다른 매력이 풍부해 마치 나에게 보내진 초대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박후기의 달의 뒤편을 찾아서18세기 유럽 도시의 모습을 옮겨 놓은 듯한 이탈리아의 코르티나 담페초를 그려내고 있었다. 마치 제임스 볼드윈이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그려낸 풍경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그 곳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 말러의 오두막도 찾아볼 수 있다니 더욱 관심이 갔다. 그리고 9번 교향곡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10번까지 완성하기에는 너무나 짧았던 음악가의 삶이라고 하는데, 과연 백세시대라는 지금은 어떨까 하는 작은 호기심도 들었다. 또한 황희연의 귀중한 지상의 방 한 칸은 짧은 글속에서 많은 풍경들을 느낄 수 있었다. 미리 그려볼 수 없어서 더욱 인상적이라는 러시아의 크라스키노는 그녀가 좋아하는 마크 트웨인의 탐험에 대한 영감을 담은 글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크 트웨인이 지상 천국이라고 말했던 모리셔스를 지나 네팔 안나푸르나의 작은 로지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서인지 글의 제목이 마음에 더 와닿았다. 낯선 여행지의 시간을 섬세하게 담아낸 것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한 여행지의 낯선 냄새를 품고 있는 책이라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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