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의 행운
매튜 퀵 지음, 이수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내용은 꽤나 무거운 편인데 이상하게도 책을 읽는 나의 템포는 지극히 경쾌했다. 이미 드림웍스사에서 영화화가 결정된 작품이라 그런가, 한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 해서 가끔은 머릿속에서 책의 장면들이 한편의 영상처럼 흘러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하지만 39이라는 부담스러운 나이에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도서관을 전전하는 바솔로뮤는 치매에 걸린 그의 엄마가 꿈꾸던 '영화의 마법'을 이루어줄 수 있는 '그런 척'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리처드 기어'가 된 그에게 어머니는 마지막 유언마저 '리처드?'라는 말로 대신하게 된다. 그는 그 물음표가 엄마의 평생을 요약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사회부적응자인지 아니면 통찰력이 좋은 사람인지 헛갈리는 순간들이 있다. 어쨌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는 자신이 '그런 척' 해야 했던 리처드 기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가 꿈꾸던 동화 같은 삶을 이루어주는 영화 '프리터 걸'이 리처드 기어라는 인물과 다르게, 바솔로뮤가 바라보는 리처드 기어는 티벳교에 헌신하고, 영적인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는 그를 제대로 직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술을 입에 달고 살다 바솔로뮤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성직을 내려놓고 바솔로뮤의 집에 기숙하게 되는 맥내미 신부가 있다. 그리고 그가 늘 가는 도서관에서 마음을 두고 바라보던 사서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엘리자베스와 고양이를 잃은 절망감을 갖고 치유상담모임을 찾은 늘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맥스가 등장한다. 그리고 특별히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 각자의 목적을 갖고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흐름을 갖게 된다.

마치 비밀친구에게 편지를 쓰듯 리처드 기어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바솔로뮤와 그의 주변인들이 여행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문득 왜 사람들은 서로에게 동화를 선물할 수 없느냐던 바솔로뮤의 엄마의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분명 그들의 여행은 언제나 행복한 동화 속의 이야기나 모험이 가득한 순례기를 담은 환타지 소설의 그것과는 참 다르다. 하지만 도리어 그런 이야기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동화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하고 기름처럼 떠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해고 공감하는 과정은 극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뱃속에 조그만 화난 남자와 환상처럼 등장해 속삭이는 리처드 기어가 아닌, 진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으로 한발한발 내딛고 있는 바솔로뮤는 어린 시절 즐겨 읽던 동화 속 주인공들만큼 친근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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