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국립 회화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4
윌리엄 델로 로소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를린 국립 회화관은 유럽미술사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명화 컬렉션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베를린 국립 회화관이라는 건물 자체도 독일의 근 현대사를 그대로 녹여낸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 곳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 베를린에 있던 보데 미술관과 서 베를린에 있던 다렘 미술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는데 1,600여점의 작품이 수장고에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턱없이 부족한 공간에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원래 이 미술관은 다렘 미술관의 컬렉션을 기준으로 만들었으나 독일의 통일로 인해 이러한 형태를 갖게 된 것이다.

베를린 국립 회화관에 있는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성모자와 연주하는 천사들이다. ‘성모의 대관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를린 국립 회화관의 작품들을 구경하면서 내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은 세밀한 묘사였다. 표지에 있는 큐피트를 먼저 보기 위해 휘리릭 책장을 넘기다 프란스 할스의 카타리나 호프트와 유모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한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금빛의 다마스코 천과 섬세한 장식들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렇게 실물과 흡사활 정도로 철저히 묘사된 그림을 트롱프뢰유라고 한다는데, 책에서 소개된 작품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피테르 클레즈의 은제 컵과 성작이 있는 정물이다. 당장이라도 올리브를 손으로 집을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는데, 그 순간을 포착해내는 사진이 주는 생생한 느낌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뭐랄까? 세밀하게 묘사된 미술작품들을 보면 대상이 되는 인물이나 사물 혹은 풍경에 작가의 시선이나 정신세계가 더 명확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작가들은 자신이 남긴 작품에 다양한 장치를 하곤 한다. 얀 판 에이크의 교회의 성모는 배경 역시 작품의 의미를 부여하고, 성모의 치마단을 장식하고 있는 금빛 문양 역시 하나의 문장이라서 작품에 담긴 메시지에 힘을 더하고 있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성전의 방문은 도리어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배경을 제거하고 인물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벽에 사각형 창을 뚫고 액자처럼 활용하기도 했다. 배경뿐 아니라 작은 소품이나 벽에 쓰여진 메시지 등을 통해 인물에 대한 다양한 힌트를 추론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