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진 들녘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노을진 들녘.. 책을 읽는 내내 참 묘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조금은 작위적인 설정속에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며 얽혀가는 등장인물, 거기다 사촌오빠와의 사회적으로 용납될수 없는 관계와 겁탈과 불륜까지.. 어떻게 보면 출생의 비밀과 불치병정도면 더한다면 막장드라마로 손색이 없을지도 모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말미에 있는 작품해설을 읽으니 통속적 주제와 작위적 구성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확실히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심지어 이 작품의 발표시기는 1961년대였으니 상당히 충격적인 작품이 아니였을까 한다.
그래도 역시 박경리님의 작품이구나 싶었던 것은.. 등장인물들이 너무 뻔한 성격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과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어느정도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나 4.19 혁명같은 굵직한 사건들도 등장인물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으면서도 이를 너무나 심각하게 반영하지 않는 것도 그녀답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리님의 작품을 읽을때면 역사적 소용돌이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들이 갖고 있는 그러한 꼿꼿함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게 만든 인물이 바로 송노인이였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슬픈 가족사를 갖게 된 그는.. 거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 선택에 자신의 손녀를 비극적인 삶으로 몰아넣게 된다. 지극히 비합리적이였던 그의 몰락은 단순히 그의 가문의 종착점을 넘어 한 시대의 종말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여, 그와 대치점에 있던 현대문명이 그렇게 아름답고 빛나는 것만은 아니다. 박경리님은 물질문명의 그림자를 제대로 짚어내고 있었는데... 가치관의 충돌과 혼재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이 소설의 한 축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소설.. 사무엘 리차드슨이나 헨리필딩의 작품에서 농촌사회의 전통적 가치관과 도시사회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가치관의 충돌을 그려내는 걸 자주 접할 수 있었는데.. 그때도 여성의 순결이 주요한 화두가 되곤 했다. 빠르게 산업화 도시화 되는 사회속에서 전통사회의 단단한 규율과 보호 혹은 억압아래 있던 여성들이 상처받고, 심지어 그 상처들이 사회속에서 드러나는 것.. 아무래도 그런 모습이 기존 사회질서의 붕괴를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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