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다 - 허균에서 정약용까지, 새로 읽는 고전 시학
정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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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후에 나타난 조선풍 시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나는 나다>. 제목에서부터 딱 느껴지다시피,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으로 시를 짓고자 하는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마치 아기 새가 모이를 받아먹듯이 챙겨 읽고 싶어지는 정민 교수의 책이죠. 정말 다양한 주제로 책을 쓰시는데, 덕분에 한문학과 고전인문학의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시는 비로소 나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중략) 그리하여 그 시를 읽는 이들이 시를 쓴 나의 마음자리를 알고, 나의 사람됨을 알게 되는 시, 이러한 경계가 허균이 추구했던 허자시지의 궁극적 도달점이었다.” P27

 조선풍 한시를 고민한 허균의 글로 시작하여, 이용휴, 성대중, 이언진,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 가히 조선의 명문장가라고 할 만한 8인의 시론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한글로 쉽게 풀어 쓴 글뿐 아니라, 원문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도 정말 좋았습니다. 물론 전문을 다 실은 것은 아니지만, 그랬다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었을지 자신할 수 없기도 하네요. 물론 제 맘을 사로잡았던 성대중의 글은 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충분하지만 말이죠.

마음속에 일어난 느낌을 말로 한다. 그 말을 간추려 적은 것이 글이다. 글은 말의 정화精華. 시는 그 정화를 한 번 더 체로 쳐서 걸러낸 것이다” p63

 가끔 글을 쓰려고 보면, 마음 속에 있는 생각들이 글로 연결이 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할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 글을 보면서 어쩌면 그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위로도 좀 받을 수 있었거든요. 정화, 정수가 될 만한 뛰어난 부분을 뽑아내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된다면 그것도 조금 이상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그 정화를 다시 거르는 것이 시라니, 어쩌면 제가 시를 어려워하고, 그렇게까지 즐겨 읽는 편은 아닌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싶네요.

 조선의 시를 써야 한다는 것, 즉 자기 자신에서 시작되어 자신의 목소리로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8명의 문인들 역시 나름의 시론을 펼치는데요. 정약용 같은 경우는 정말 그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더군요. 재능에 의지한 잔재주보다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사색이 시에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요. 이덕무 역시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것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허균도 그러했는데, 이들은 그래도 제가 그래도 좀 알고 있던 문학가들이라 더욱 기억에 남고요.

 저에게 강한 인상을 준 인물은 앞서 말했던 성대중 그리고 이옥과 이용휴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이 책의 제목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한 것 같고요. 그리고 이용휴의 제자이기도 했던 이언진의 드라마틱한 삶은 시대의 한계가 만들어낸 비극처럼 다가와서 안타깝더군요. 그의 아내 덕에 그의 시가 그래도 조금 전해진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네요. 때로는 작가의 작품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에도 많은 관심을 갖곤 하잖아요. 이언진의 시는 그의 삶을 이해하고 보니 더욱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더군요.

 어린아이 울음소리 참 하늘 음악 /피리나 거문고보다 훨씬 낫다네. 낙숫물도 한가로이 듣기 좋으니 /베개맡서 한 방울 두 방울 듣네.” 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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