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책 읽기
앨런 제이콥스 지음, 고기탁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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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꼭 읽어야 할’ 도서 목록에 집착했다. ‘꼭 읽어야 할 세계 명작’,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단편 소설’ 같은 글귀는 눈에 번쩍 띈다. 한 달에 4~5권은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책을 읽어내지만 정말 즐기는 것인지 의무감에서 읽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리고 때로는 초스피드로 수박겉핥기식 독서를 하기도 한다. 한번 본 책들은 다시 거들떠보기도 싫어한다. 갈수록 주의도 산만해지고 집중해서 책을 읽지 못할 때도 많다. 이런 나에게 이 책, <유혹하는 책 읽기>는 즐거운 독서를 위해 어떤 태도는 버리고 또 어떤 태도는 견지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영어 제목, <The Pleasures of Reading in an Age of Distraction>이 이 책의 논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독서를 방해하는 TV와 컴퓨터 같이 것에 길들여진 시대에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 첫 페이지에 큰 글자로 쓰인 경고문(?)이 인상적이다. “독자는 주의하시라 - 독서에 늘 거부감을 가져왔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서의 즐거움, 지혜, 기쁨 등을 느껴본 독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pp. 4~5). 일단 나는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긴다.

 

저자 앨런 제이콥스는 일관되게 ‘독서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 자유로움은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읽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학교에서 숙제로 이런 저런 책을 읽으라 하면 그것은 이미 의무감에서 독서하게 되어 독서의 즐거움을 잃어버린다. 또 정해진 시간에 숙제하려면 ‘초집중’해서 읽어야 하는데, 이런 초집중하는 습관 때문에 깊이 집중하는 습관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독서는 학교교육과 분리되어야 한다. 또 사람마다 관심분야도 다르고 성숙도도 다르다. 그러니 책으로부터 참된 위로와 기쁨을 누리려면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이 내킬 때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다가 재미없으면 언제든 중단하라고 충고한다. 저자는 집중해서 독서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해졌던 자신이 전자책을 통해 오히려 몰입을 경험했다고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어쨌든 저자는 다양한 책들을 즐기며 읽기 위해 어떻게 독서해야 할지, 책읽기와 관련된 다양한 생각들을 설득력 있게 펼쳐놓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독서의 즐거움을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독서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 생생하게 표현된 멋진 문장들이 있다.

“책은 때를 기다린다. 여기에 확신을 가져도 좋다. 책은 어느 날, 당신의 마음이 내킬 그날까지 당신을 기다려줄 것이다.”(p. 38).

“어떤 형태의 지적 노동은 수고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마음 가는 대로’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 이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은 우리에게 정신력과 집중력을 길러주며, 인내하는 법을 가르친다. … 이러한 덕목들은 새롭고 더 커다란 즐거움으로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욕심낼 가치가 있다.”(p. 75).

“독서는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가장 뛰어난 도구다. 그 내면에는 활력이 가득하다. … 영원한 현재를 만끽하는 데 전념한다.”(p. 130).

“자신이 읽는 것을 너그러운 마음을 대하라. 책과 싸우려고 들기보다 신중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라. 마치 당신 집을 방문한 손님을 대하듯이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어라.”(pp. 139~140).

“‘깊은 집중’을 요하는 진지한 독서는 언제나 소수만이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p. 151).

“평생에 두 번,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았음을 깨닫는다. 걷는 법을 배울 때와 읽는 법을 배울 때다.”(p. 204, 퍼넬러피 피츠제럴드의 말).

“독서하는 종족이여 번성할지어다.”(p.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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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장석훈 옮김 / 판미동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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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여름휴가 때, 이 책 한권을 들고 동남아시아의 한 숲속 리조트에 자리 잡았다. 수영장 벤치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다 나른해지면 물속에 뛰어 들어 수영을 했다. 다시 젖은 몸을 타월로 감싸고 벤치에 누워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와 대화를 나누어 본다.

 

이들이 실존 인물인지 토론할 수 있는 자료에 대한 이야기는 따분했다. 후다닥 읽어치우고, 이 세 존재의 공통점을 확인해 본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아주 많이 걸어 다녔고 부와 명예를 멀리 했다. 그들은 안주하지 않는 삶, 고난의 길을 택했다(p. 123). 그렇다고 금욕주의적인 삶만 산 것은 아니다. 이들은 다른 이들과 기꺼이 음식을 더불어 즐길 줄 알았다(p. 140). 저자가 비교해 놓은 ‘가르침의 기술’이 흥미로웠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인간에게서 무언가를 이끌어 내는 힘이 있고 인간의 영혼을 살피는 힘이 있다. 부처의 설법은 그의 가르침을 따라 명상하며 고독의 길을 따라 진리와 해탈에 이르게 하는 일련의 과정과 잘 부합한다. 반면 예수의 가르침은 늘 인간적이며 소탈한 어투로 세속적 이야기에 영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또 죽음을 대하는 이들의 공통적 태도는, 죽음이 닥쳐도 자신들이 가르친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분명 세 분의 위인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 분들의 가르침에 관심이 집중된다. 저자는 이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몇 가지 중요한 주제로 분류하고 설명한다. 영원불멸의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이들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현재를 보라고 가르쳤다. 그러면 내면의 삶을 계발하고 진리와 정의, 사랑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진리를 찾는 일에 대해, 이들은 모두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를 볼 수 있는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에 대해, 이들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로워지는 존재다. 진리에 의해 그리고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을 통해 인간은 자유로워진다. 특히 예수에 따르면,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도덕과 교육을 넘어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소크라테스는 정의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가르치지만, 붓다는 자비를 예수는 사랑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친다.

 

나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인간이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면 행복도 삶의 가치도 잃어버린다. 하지만 올바른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면 가치 있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라고 했다. 인생의 짧고 지혜의 길은 멀지만, 지혜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정의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길이 아닐까? 이 책 덕분에 세 분의 위대한 스승과 삶에 대해 대화하는 멋진 휴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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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 화가들이 기록한 6.25
정준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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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시대의 사상과 사건에 무관할 수 없다. 때론 가장 치열하게 반응하고 작품으로 표현해 내기도 하지만, 때론 순수주의를 표방하며 괴로운 시대적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육이오 전쟁이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한국 미술, 전쟁을 그리다: 화가들이 기록한 6․25>는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유명한 서양화가들의 작품은 많이 공부하여 알고 있다. 웬만한 작품은 누구의 것인지 ‘척’ 알아보는 정도는 된다. 그런데 정작 한국 화가는 열 손가락에 드는 유명한 분들 외에는 생소하다. 학교에서도 거의 배운 바가 없다. 특히 분단과 육이오 전쟁과 휴전은 미술계뿐 아니라 모든 문화계에 큰 혼란과 상처를 남겼다. 오랜 세월 동안 남쪽 미술계에서는 월북한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알고 있어도 정치적 이유로 입 한번 뻥긋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북쪽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뒤늦게나마 육이오전쟁 발발 해인 1950년부터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 열린 1953년까지의 미술계 상황을 객관적으로 소개한 책이 나온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월북 화가들 중 김용준, 이쾌대의 행적과 작품에 대한 소개는 당시 북한 미술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리얼리즘에 입각한 북한 주체 미술의 기반을 닦은 변월룡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1.4 후퇴 때 월남한 미술인 중에는 이수억의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피난시절 부산 광복동, 대구 향촌동에서 예술인들의 어떻게 모이고 척박한 삶을 살아냈는지 이 책은 꾸밈없이 때로는 덤덤히 기술하고 있다. 서울이 수복되고 화가들이 다시 귀환하며 되살아나는 명동의 모습도 담아냈다. 1953년 제 2회 국전이후 1959년 제 8회 국전에 이르기까지 심사위원에 큰 변동이 없어 화단 내부에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국전은 폐쇄적이고 고답적인 관전(官展)의 전형이 되었다는 날카로운 비판에도 동감한다.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전쟁을 겪은 한국 화가들의 삶은 후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척박했을 것이다. 이념 논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어느 곳엔가 적(籍)을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북쪽, 남쪽 가릴 것 없이 이데올로기적 작품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남쪽에서는 현실 도피적이고 탐미적(decadent)인 경향으로 빠져든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예술인들이 전쟁의 역사적 증언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난받는다.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작품 중 상당수가 우리의 빈곤과 무지 등에 의해 사라졌다. 저자가 맺는말에서 지적했듯, 육이오 전쟁의 문화 예술 활동과 미술가들의 행적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공백상태와 다름없다. 이 책은 조금은 따분할 정도로 객관적 사실들만 나열했지만, 한국 현대 미술사를 세워나가는데 중요한 자료임에는 분명하다. 한국 현대 미술계를 이해하고 싶은 자들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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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 명상록은 책이 아니라 영혼의 처방전이다, 최신 완역판 다상 고전의 향기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키와 블란츠 옮김 / 다상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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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5현제의 마지막 황제요 스토아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학생 때부터 들어 익히 알고 있었고 일부 발췌한 것을 읽기는 했지만, <명상록> 전체를 접하지는 못했다. 그의 <명상록>은 본래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영혼에게(To Himself) 쓴 것이어서 혼자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나 지나치게 압축된 문장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읽어 내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다상 출판사에서 내놓은 <명상록>은 읽기 편하다. 1장에서 12장까지 전체를 적절하게 번호를 붙여 놓아서 한 눈에 쏙 들어온다. 역자후기도 <명상록>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 “정신을 집중해서 다시 한 번 찬찬히 읽는 단계”(p. 266)의 독서를 하면 명상에 이르게 된다는 충고에 따라 가능한 한 집중해서 천천히 읽으며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찾아본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을, 아니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생의 최고 덕목은 무엇일까?” “어떻게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답게 인간의 이성을 절대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성찰할 것을 스스로에게 도전한다. “2.8. 다른 사람의 속내를 모른다고 내가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속내를 내가 알지 못하면 반드시 불행해진다.”(p. 30). 그는 삶의 지혜를 어디서 배웠는가? 1장에는 그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이 열거되어 있다. 철학자 디오그네투스, 루스티쿠스, 아폴로니우스, 섹스투스, 알렉산데르, 프론토, 카툴루스, 세베루스, 막시무스, 그리고 아버지! 아우렐리우스는 신의 은혜로 부모, 누이, 스승, 친구, 친척, 지인 등 하나같이 훌륭한 사람들을 곁에 두게 되어 지혜의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주변에만 이런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가? 아우렐리우스 자신이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자이기에 주변 모든 사람을 훌륭한 인생의 선생으로 생각할 수 있었으리라.

 

그는 인생의 중요한 덕목인 성실성, 근면성, 자제력, 작은 것에 만족하는 마음, 자비로움, 솔직함, 진실함, 등등은 천성적으로 타고나지 않았어도 마음을 다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p. 78~79). 마음속에 있는 허황된 욕심과 야망을 버리고, 내면을 지배하는 이성과 지성을 존중하면 평화와 만족을 얻을 것이며 신과 주변 인간들과도 화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한다(p. 107). 인간관계에서 갈등하며 힘들게 살아갈 때, 유용한 지혜 하나! “6.6. 최고의 복수는 원수가 내게 한 짓을 따라 하지 않는 것이다”(p. 101).

 

이 책은 삶의 지혜를 얻도록 삶과 죽음에 대해 이성적으로 많이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11.30. 솔직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자여, 너는 노예다”(p. 244). “12.31. 오로지 모든 만물의 최종 목표를 향해 정진하라. 그 최종 목표는 신과 이성을 따르는 것이다”(p. 261). 그렇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마음으로 새 삶을 살 것을 다짐해야 한다. 왜냐하면 “7.2. 새로운 삶은 바로 내 수중에 있기”(p. 125) 때문이다. 탐욕을 버리고, 오늘을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 “6.16. 지금 당장이라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허황된 욕심과 야망을 버려라. … 사람이 탐욕에 빠지게 되면 신을 원망하는 시간이 잦아진다. 하지만 내면을 지배하는 이성과 지성을 존중하게 된다면 평화와 만족을 얻을 것이며, 주변 사람들과 화합하는 것은 물론 신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다.”(pp. 106~107).

 

결국 이성을 따라 금욕과 절제 속에 평정심을 놓치지 않고 산다면,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12.36. 너에게 떠날 것을 명하는 그분(신)의 미소에 웃는 얼굴로 답하며 너의 길을 떠나라.” (p. 263). 이 책 전체를 천천히 곱씹을 때, 나는 아우렐리우스가 궁극적으로 던진 질문인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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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언어 - 나는 왜 찍는가
이상엽 글.사진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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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카메라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 찍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 필름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에세이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사진작가 이상엽은 어떤 삶의 현장에 관심을 갖고 어떤 카메라와 필름을 사용해 ‘찰나’를 담아냈는지, 그리고 그는 ‘찰나’의 이미지들을 어떤 글로 표현했는지 궁금하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니콘 FA 카메라를 들고 지관스님의 해인사 다비식에 가서 찍은 흑백사진을 소개하며, 필름카메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옹호한다. 디지털카메라와는 달리 필름카메라로는 많이 찍을 수 없다. 우리는 필름카메라 시대에 비용의 노예였든지,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이미지를 남발하고 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필름카메라는 한 컷 한 컷 넘어갈 때마다 빛을 철저하게 읽고 상황도 살펴야 한다. 이렇게 필름카메라는 사진가의 자세를 아주 진지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스님의 다비식에서 잘 드러나듯 여전히 세상은 아날로그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난한 사진가라 어쩔 수없이 전원생활을 하게 된 것을 소형카메라에 담았다. 한 장 전체를 채운 <단풍든 고기리 계곡과 동막천>의 이미지는 나의 시선을 오래 붙잡았다. 작가는 백령도, 제주도 강정마을, 울산노동자의 철탑 농성 현장, 우익 단체들의 데모, 천안 독립기념관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 사진들을 찍게 된 에피소드와 함께 동행 했던 이들,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떠올렸던 단상(斷想)들을 담담하게 글로 표현한다.

그가 중형카메라를 사용한 사진들 중에 중국 홍춘의 이미지들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고전 카메라 롤라이플렉스를 사용해 홍춘의 인공호수인 난후, 어느 집의 담벼락, 황산의 위용, 한 골목길에서 만난 한족 소녀(이 사진은 표지로도 사용되었다)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로라이플렉스가 파인더를 보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하기에 그 카메라를 ‘겸손한 카메라 혹은 신사의 카메라’라고 약간 썰렁한 유머를 말한다. 그래서 그의 글이 재미있다. 다시 그는 새만금 개발로 사막화된 부안군 앞바다 갯벌, 이번 세월호 참사의 현장을 쓸쓸하게 보여준다. 그는 예술사학자 존탁의 글을 인용한다. “사진은 그 자체로 아무런 정체성이 없다. 일관된 역사도 없다. 사진은 제도라는 공간의 장을 가로질러 명멸하는 빛의 깜박임일 뿐이다. … 사진은 역사의 증거가 아닌 역사 그 자체다”(pp. 244~245). 이상엽은 마지막 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 사진들을 보여준다. 하나같이 웃는 표정들이다. 그들은 정말로 웃고 있는 것일까?

 

나는 캐논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이번 여름휴가 때에도 들고 갈 것이다. 이전에는 아름다운 장면을 찍거나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기에 바빴다. 그리고는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파일이 수 천장은 될 것이다. 아마도 평생에 한번이나 제대로 들추어볼지 의문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진지해 보자. 마치 필름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듯 그렇게 조금은 진지하게 피사체를 느끼며, 그것들에게 질문하며 셔터를 눌러보자. 나만의 시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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