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 화가들이 기록한 6.25
정준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가는 시대의 사상과 사건에 무관할 수 없다. 때론 가장 치열하게 반응하고 작품으로 표현해 내기도 하지만, 때론 순수주의를 표방하며 괴로운 시대적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육이오 전쟁이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한국 미술, 전쟁을 그리다: 화가들이 기록한 6․25>는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유명한 서양화가들의 작품은 많이 공부하여 알고 있다. 웬만한 작품은 누구의 것인지 ‘척’ 알아보는 정도는 된다. 그런데 정작 한국 화가는 열 손가락에 드는 유명한 분들 외에는 생소하다. 학교에서도 거의 배운 바가 없다. 특히 분단과 육이오 전쟁과 휴전은 미술계뿐 아니라 모든 문화계에 큰 혼란과 상처를 남겼다. 오랜 세월 동안 남쪽 미술계에서는 월북한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알고 있어도 정치적 이유로 입 한번 뻥긋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북쪽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뒤늦게나마 육이오전쟁 발발 해인 1950년부터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 열린 1953년까지의 미술계 상황을 객관적으로 소개한 책이 나온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월북 화가들 중 김용준, 이쾌대의 행적과 작품에 대한 소개는 당시 북한 미술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리얼리즘에 입각한 북한 주체 미술의 기반을 닦은 변월룡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1.4 후퇴 때 월남한 미술인 중에는 이수억의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피난시절 부산 광복동, 대구 향촌동에서 예술인들의 어떻게 모이고 척박한 삶을 살아냈는지 이 책은 꾸밈없이 때로는 덤덤히 기술하고 있다. 서울이 수복되고 화가들이 다시 귀환하며 되살아나는 명동의 모습도 담아냈다. 1953년 제 2회 국전이후 1959년 제 8회 국전에 이르기까지 심사위원에 큰 변동이 없어 화단 내부에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국전은 폐쇄적이고 고답적인 관전(官展)의 전형이 되었다는 날카로운 비판에도 동감한다.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전쟁을 겪은 한국 화가들의 삶은 후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척박했을 것이다. 이념 논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어느 곳엔가 적(籍)을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북쪽, 남쪽 가릴 것 없이 이데올로기적 작품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남쪽에서는 현실 도피적이고 탐미적(decadent)인 경향으로 빠져든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예술인들이 전쟁의 역사적 증언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난받는다.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작품 중 상당수가 우리의 빈곤과 무지 등에 의해 사라졌다. 저자가 맺는말에서 지적했듯, 육이오 전쟁의 문화 예술 활동과 미술가들의 행적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공백상태와 다름없다. 이 책은 조금은 따분할 정도로 객관적 사실들만 나열했지만, 한국 현대 미술사를 세워나가는데 중요한 자료임에는 분명하다. 한국 현대 미술계를 이해하고 싶은 자들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