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 세계문학 마음바다 2
조지 오웰 지음, 안경환 옮김 / 홍익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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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가인 늙은 수퇘지 ‘메이저’의 연설과 이후 자연스럽게 일어난 반란으로 매너 농장은 동물들의 손에 넘어갑니다. 동물들은 ‘동물주의 이념’과 ‘일곱 계명’을 공포하고, 두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지도자로 인정받습니다. 결국 농장 안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스노볼은 축출되고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합니다. 나폴레옹은 친위견들을 활용해 농장의 모든 것들을 통제합니다. 동물들은 노예처럼 일만해야 했습니다. 노동조건은 더욱 힘들어졌지만, 동물들은 체제에 순응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나폴레옹이 추진한 풍차 건설은 실패하지만, 나폴레옹은 이 실패를 통해 오히려 더욱 강력한 독제체제를 구축합니다. 모든 통계는 조작되고 농장의 삶의 질은 좋아졌다고 선전합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동물은 사형 당했기에 모두들 침묵할 뿐입니다. 지배계급인 돼지들은 전쟁의 승리를 선전하며 나폴레옹 정권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 이런 체제 속에 순진한 다른 동물들은 처절하게 이용만 당하고 죽어갑니다. 대표적으로 말(馬) ‘복서’가 그랬습니다. ‘복서’는 자신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유의 몸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기적인 욕망을 제어하고 위대한 농장의 건설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바로 위대한 ‘동물농장’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돼지 몇 마리를 제외하고 저 옛날의 ‘반란’을 기억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농장은 여전히 번창해갔지만, 동물들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배계급인 개와 돼지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를 한 번, 인간을 한 번, 그리고 인간을 한 번, 돼지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보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돼지이고 어느 쪽이 인간인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pp. 168~169). 「동물농장」은 동물들을 빗대어 인간의 어리석을 풍자한 우화소설이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에 대한 냉소로 가득한 반유토피아 정치소설입니다.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동물농장」은 번역자 안경환 교수의 친절한 ‘해설’과 오웰의 서문 부록들, 그리고 문학 평론가 정여울 씨가 번역자와 인터뷰한 내용들을 수록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동물농장」을 저자 조지 오웰의 저작 동기를 이해하고 저자의 관점에서 책을 읽어내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조지 오웰은 1900년대의 러시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칼 마르크스(Marx)와 레닌(Lenin)의 ‘공산당 선언’에 따라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고, 권력투쟁에서 트로츠키기(Trotskii)는 축출되고 스탈린(Stalin)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지도자 돼지들은 쉽게 이런 인물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거의 몰락한 현시대에서 오웰의 이 소설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오웰은 모든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지금도 이 책은 시의성(時宜性)이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유명한 책 「1984」을 읽으면서 전체주의에 대해 느꼈던 오싹한 감정을 이 책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어디 전체주의가 공산주의뿐이겠습니까? 제국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오늘날 모든 사회 속에 전체주의의 모습은 보편적으로 일어납니다. 「동물농장」의 마지막은 아무런 희망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치와 국가 체계도 결코 유토피아를 이룰 수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사회에서든 인간 개개인은 온전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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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이광호 지음 / 홍익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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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유명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이 두 분의 명성은 이미 알고 있으나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에게 책 제목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는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 율곡은 퇴계의 제자이며 둘 다 위대한 성리학자 아니었나? 두 분이 생각을 다투었다니 무슨 의미일까?’ 이런 질문을 하며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얼마 전에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읽은 터라,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겼습니다. 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道)>와 율곡의 <성학집요(聖學輯要)>에 따르면, 학문은 스스로 성인(聖人)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답게 사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나이(35세 차이) 뿐 아니라 기질과 생각 그리고 지향점이 달랐습니다. 편역자인 이광호 교수는 ‘해제’(여는 글)에서 두 사람이 “같은 유학자이지만 유학에 대한 이해의 관점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힙니다. 퇴계는 “궁극적 진리 곧 하늘을 향하고”(p. 12) 있었던 반면, 율곡은 ”땅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향하고 있었다“(p. 13)고 말합니다. 과연 퇴계와 율곡이 주고 받은 시와 편지, 그리고 이 분들과 관련된 문서들을 통해 이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이 분들이 주고받은 시(詩)에서, 서로 생각이 달라도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경하는 옛 선비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분 사이에 오간 편지의 내용은 차분히 읽어도 다 이해하기 어렵군요. 내가 유학 특히 성리학에 관해 오리엔테이션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럴 것입니다. 편역자의 해설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유학(儒學)의 도는 지선(至善)이라 하는데, “지선에 대한 인식을 격물치지(格物致知), 곧 사물에 나아가 앎을 얻는 것”(p. 53)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밝혀줍니다. 사실, 두 분의 차이는 이기론(理氣論)을 주축으로 하는 성리학의 본질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관념론과 경험론, 유심론과 유물론의 대립처럼, 퇴계 이황으로 대표되는 이(理)를 중시하는 이상주의와 율곡 이이로 대표되는 기(氣)를 중시하는 현실주의가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두 큰 봉우리가 함께 통합되고 어우러진다면, 성리학은 지금도 여전히 인간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길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 매우 단단하고 마음에 듭니다. 퇴계나 율곡의 시와 편지, 글들을 먼저 차분히 번역하고 자세한 각주와 해설로 이해를 돕습니다. 그리고는 원문(原文)인 한문 전문을 실었습니다. 편역자의 해설과 여러 글들로 이 책의 가치는 커졌습니다. 책표지도 멋집니다. 홍익출판사답습니다. 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道)>와 율곡의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완독한 뒤, 다시 이 책을 꼼꼼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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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뮈스 -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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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 그의 작품 하면, <우신 예찬(Moriae Encomium)>이 입에서 저절로 뛰어 나옵니다. 이렇게 유명한 천재 인문학자이지만, 나는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했습니다. 저 유명한 요한 하위징아의 <에라스뮈스> 평전이 나의 무지를 깨뜨려줄 것이라 기대하며 책을 열었습니다.

  저자는 에라스뮈스의 출생과 어린 시절, 수도사가 되기로 서약했던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면서 이 책을 풀어나갑니다. 나는 ‘제 9장,「우신예찬」’에 이르러 이 유명한 책의 내용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에라스뮈스는 스툴티티아(Stultitia, 어리석음의 신)가 연설하는 형식을 빌려 유익한 어리석음과 망상에 빠진 지혜를 대조합니다. 그는 매우 풍자적이고 대중적인 이 책을 통해 명성을 얻었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 탓에 자신의 최고의 책을 스스로 깎아 내렸다지요. 하지만 하위징아는 이 책에는 총명한 정신에 유머가 깃듦으로써 아주 심오한 정신의 광채를 발하고 있어서 에라스뮈스의 많은 책 중에서 오직 이 책만이 불후의 작품이 되었다고 평가합니다(pp. 174~175).

  에라스뮈스의 사상과 그의 성품을 다룬 12~14장은 에라스뮈스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형식에 대한 혐오증을 가진 에라스뮈스는 당연히 스콜라 철학으로 대표되는 중세의 신학과 철학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위징아는 에라스뮈스 자신도 스콜라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오만한 냉소주의로 비난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p. 217). 동시에 고전 사상과 기독교의 정신이 융합된 세계를 보았다는 사실에 에라스뮈스의 위대함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밝힙니다. 산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를 좋아하는 에라스뮈스는 문장을 쉽게 풀어 쓰는 일에 탁월했답니다. 가장 좋은 사례는 바로 그의 <라틴어역 성경>입니다. 그의 사상의 바탕에는 자유, 명석함, 순수함, 단순명료함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다(p. 228). 그는 스스로 단순명료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의 성품은 복잡다단합니다. 질병에 대한 공포가 있고, 싸움을 싫어했으며, 물고기에 대한 혐오증도 있고, 식사시간에 늦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은둔자의 심성을 가졌으며, 친구를 쉽게 의심했고,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했답니다. 이 장들에서 에라스뮈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 편견이 없고 극단적인 것을 싫어했으며, 너무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격이여서 시대의 영웅이 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새로운 것들을 이해하고 볼 수 있지만 낡은 것과 맞서 싸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그를 교회를 부패시킨 자로, 프로테스탄트는 그를 복음의 파괴자로 보았지만, 어느 쪽도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여론은 에라스무시를 존경하고 숭배했기 때문입니다(p. 394).

  이 책,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는 매우 신중하고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지고 에라스뮈스에게 접근합니다. 에라스뮈스의 책들을 직접 읽기 전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 하위징아는 그의 이름에 걸맞게 매우 탁월한 인물평전을 썼습니다. 르네상스와 휴머니즘, 중세 스콜라 신학과 카톨릭, 종교개혁, 그리고 에라스뮈스의 책을 연구할 때 반드시 참고해야 할 매우 유익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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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 올바른 공부의 길잡이
이이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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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매우 친숙한 이름입니다. 학생시절 그의 어머니 심사임당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고, 두 분은 우리나라 지폐 오천 원과 오만 원 권의 인물이기도 하지요. 천 원권의 인물인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그의 주 저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과 <성학집요(聖學輯要)> 등등, 학생시절 참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율곡 선생님의 책을 직접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매함을 일깨우는(擊蒙) 중요한 비결(要訣)이라는 이름에서, 이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정도로 추측했었습니다. 역자 김학주 교수님도 ‘올바른 공부의 길잡이’라고 번역해 놓았네요.

  그런데 입지(立志) 첫 부분부터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공부하려는 사람은 먼저 반드시 뜻을 세워야하는데, 그것은 스스로 성인(聖人)이 되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율곡 선생님이 생각한 공부는 오늘날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답게 사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즉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10장 처세(處世)에서 오로지 벼슬자리를 위해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공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합니다. “다만 과거를 보려고 하는 사람은 흔히 이로운 일과 해가 되는 일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마음이 언제나 남과 겨루느라고 조급하여 오히려 노동을 하여 마음가짐을 해치지 않는 것만 못한 경우가 있다”(p. 221). 역자 김학주 교수님의 해설에도 있듯이, 율곡 선생님이 가르친 공부법은 거의 종교적 수양(修養)에 가깝습니다. 공자가 말했듯, 공부는 자기를 이겨내며 예의로 돌아가는 일(克己復禮)이며, 이로써 인(仁)을 이루는 일입니다.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은 오로지 올바른 도에만 신경을 써야지 잡다한 물건에 정신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충고합니다. 오늘날 선비정신을 가지고 올바르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에 모든 삶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연암서가에서 나온 김학주 교수님의 역서 <격몽요결(擊蒙要訣)>은 무척 읽기 쉽게 잘 만들어졌습니다. 먼저 원본을 쉽게 번역하여 실고, 다음에는 빨간 글자로 음을 달아 한문 원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역자의 해설도 빨강색으로 친절하고 자세하게 덧붙여 놓았습니다. 약간 중복되는 면이 있지만, 역자 김학주 교수님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서 격몽요결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책 맨 뒤에 있는 해설에는 책의 집필 목적, 율곡 이이의 삶에 대한 소개, <격몽요결>의 성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율곡 이이 연보’까지 매우 세심하게 책을 만들었네요. 연암서가에서 김학주 교수님이 옮긴 <장자>, <노자>, <열자>도 도전해 보아야겠습니다. 물론 율곡 선생님이 지적하신대로, 많은 책을 보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성인의 책 한 권이라도 완전히 섭렵한 뒤에 또 다른 책에 도전해야겠습니다. 나름대로 인문학 공부를 꽤 많이 한 중년의 남자인 나에게 공부의 길잡이인 <격몽요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대학생 아들 녀석에게 이 책을 건네주려 합니다. 그 녀석, 한문을 전혀 몰라 겁부터 먹을지도 모르지만 인내를 가지고 읽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참다운 인생 공부에 뜻을 둔 이 땅의 청년들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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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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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여름은 참 굉장합니다. 계속되는 폭염, 열대야, 높은 습도, 그리고 남부지방의 오랜 가뭄으로 육체와 영혼이 함께 지쳐 갑니다. 사무실에 있는 화분의 화초들도 물러져서 죽어갔습니다. 더위에 강한 다육이 식물도 잎들이 물러 떨어졌습니다. 마삭도 다 시들어 대부분의 이파리가 떨어졌습니다. 다행히도 정성을 들여 물을 주고 가지를 잘라 주었더니, 여기저기서 작고 푸릇한 새싹 이파리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은퇴를 하면 시골에 내려가 야생화를 키우며 살고 싶습니다. 한 해의 무더위에 작은 사무실의 몇 몇 화초 때문에 이렇게 마음 졸였으니, 정원과 텃밭을 일구면서는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이런 여름에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상큼함을 담고 있는 산들바람이며, 때로는 시원한 소나기였습니다. 헤세는 알프스의 열풍에 쓰러진 복숭아나무에 대해 ‘나의 오랜 친구였던 복숭아나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나무는 영웅처럼 당당하지 않은, 상처받기 쉬운 나무였지만 헷세의 세계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정원 일을 돌보는 로렌초에게 쓰러진 나무를 헛간으로 옮기라고 지시하며 나무에게 말을 건넵니다. “잘 가거라. 내 소중했던 복숭아 나무여! 하지만 너는 적어도 품위있고 자연스럽게 온당한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 너는 우리보다 더 멋있고 아름답게 나이 들었고 기품 있게 죽어갔다”(pp. 161~162). 전쟁의 상처로 고통당한 시대에 자연으로 물러간 헤세의 인생관을 잘 보여주는 글입니다. 그가 하늘과 구름, 호수와 나무, 풀, 그 속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사랑하며 찬미할 때, 그 모든 것들은 고귀하게 다가옵니다.

  ‘여름 목련나무와 난쟁이 분재’(pp. 53~61)도 인상적입니다. 아틀라스의 기둥처럼 단단한 목련 꽃잎들이 하루 만에 색이 바래 시들어가고, 건너편에 있는 실측백나무는 난쟁이 나무지만 위엄 가득한 채 서 있습니다. 헷세에게 있어서, 거대한 목련나무는 성장하는 모든 것, 충동적이고 자연스런 생명의 상징이며, 실측백나무는 자연이 아니라 정신이며, 충동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그 두 나무 사이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깊은 생각에 잠긴 헷세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헷세가 직접 그린 수채화들과 정원을 가꾸는 사진들이 곳곳에 자라잡고 있어 마치 독자가 그의 정원을 찾아가 헤르만 헷세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수필집은 대개 가볍게 읽는데, 이 책에는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밑줄 친 문장 몇 개를 적어 봅니다.

  “빠르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영혼이 자신을 스스로 의식할 수 있는 시간은 놀랍게도 너무나 짧다. … 잠 못 이루는 밤은 가치가 있다.”(p. 36)

  “지나치게 고가로 팔리는 너무나도 어리석은 낙관주의 … 비판적인 시각을 잃어버린 눈 먼 정신…”(pp. 58~59).

  “적당한 즐거움이야말로 두 배의 즐거움 …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은 절제하는 습관에서 나온다. … 이런 기쁨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우리가 매일같이 자연을 접할 때 느끼는 기쁨이다.”(pp. 70~71).

  “다정한 벗들이여, 너희는 아느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 또한 내가 짓는 모든 시를 어떻게 이해할지를. / 그것은 미화가 아니라 다만 고백이다. / 너희는 그렇게 나의 환상을 받아주고 이해해준다 ……”(p. 199).

  멋진 책입니다. 삶에 지친 자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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