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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2013년 여름은 참 굉장합니다. 계속되는 폭염, 열대야, 높은 습도, 그리고 남부지방의 오랜 가뭄으로 육체와 영혼이 함께 지쳐 갑니다. 사무실에 있는 화분의 화초들도 물러져서 죽어갔습니다. 더위에 강한 다육이 식물도 잎들이 물러 떨어졌습니다. 마삭도 다 시들어 대부분의 이파리가 떨어졌습니다. 다행히도 정성을 들여 물을 주고 가지를 잘라 주었더니, 여기저기서 작고 푸릇한 새싹 이파리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은퇴를 하면 시골에 내려가 야생화를 키우며 살고 싶습니다. 한 해의 무더위에 작은 사무실의 몇 몇 화초 때문에 이렇게 마음 졸였으니, 정원과 텃밭을 일구면서는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이런 여름에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상큼함을 담고 있는 산들바람이며, 때로는 시원한 소나기였습니다. 헤세는 알프스의 열풍에 쓰러진 복숭아나무에 대해 ‘나의 오랜 친구였던 복숭아나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나무는 영웅처럼 당당하지 않은, 상처받기 쉬운 나무였지만 헷세의 세계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정원 일을 돌보는 로렌초에게 쓰러진 나무를 헛간으로 옮기라고 지시하며 나무에게 말을 건넵니다. “잘 가거라. 내 소중했던 복숭아 나무여! 하지만 너는 적어도 품위있고 자연스럽게 온당한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 너는 우리보다 더 멋있고 아름답게 나이 들었고 기품 있게 죽어갔다”(pp. 161~162). 전쟁의 상처로 고통당한 시대에 자연으로 물러간 헤세의 인생관을 잘 보여주는 글입니다. 그가 하늘과 구름, 호수와 나무, 풀, 그 속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사랑하며 찬미할 때, 그 모든 것들은 고귀하게 다가옵니다.
‘여름 목련나무와 난쟁이 분재’(pp. 53~61)도 인상적입니다. 아틀라스의 기둥처럼 단단한 목련 꽃잎들이 하루 만에 색이 바래 시들어가고, 건너편에 있는 실측백나무는 난쟁이 나무지만 위엄 가득한 채 서 있습니다. 헷세에게 있어서, 거대한 목련나무는 성장하는 모든 것, 충동적이고 자연스런 생명의 상징이며, 실측백나무는 자연이 아니라 정신이며, 충동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그 두 나무 사이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깊은 생각에 잠긴 헷세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헷세가 직접 그린 수채화들과 정원을 가꾸는 사진들이 곳곳에 자라잡고 있어 마치 독자가 그의 정원을 찾아가 헤르만 헷세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수필집은 대개 가볍게 읽는데, 이 책에는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밑줄 친 문장 몇 개를 적어 봅니다.
“빠르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영혼이 자신을 스스로 의식할 수 있는 시간은 놀랍게도 너무나 짧다. … 잠 못 이루는 밤은 가치가 있다.”(p. 36)
“지나치게 고가로 팔리는 너무나도 어리석은 낙관주의 … 비판적인 시각을 잃어버린 눈 먼 정신…”(pp. 58~59).
“적당한 즐거움이야말로 두 배의 즐거움 …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은 절제하는 습관에서 나온다. … 이런 기쁨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우리가 매일같이 자연을 접할 때 느끼는 기쁨이다.”(pp. 70~71).
“다정한 벗들이여, 너희는 아느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 또한 내가 짓는 모든 시를 어떻게 이해할지를. / 그것은 미화가 아니라 다만 고백이다. / 너희는 그렇게 나의 환상을 받아주고 이해해준다 ……”(p. 199).
멋진 책입니다. 삶에 지친 자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