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드로잉 노트 : 여행 그리기 이지 드로잉 노트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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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충원 교수의 ‘스케치 쉽게 하기’ 시리즈를 접한 뒤였습니다. <기초 드로잉>부터 <인물 드로잉>, <인체 드로잉>, <동물 드로잉>, <풍경 드로잉>까지, 이 정도면 도전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습니다. 사실, 이 때 당시 딸 녀석이 미술학원에 다니며 그림 그리기에 집중했을 때입니다. 덕분에 나도 그림에 관심을 갖고 서점에 나갔다가 이 시리즈를 발견하고는 단숨에 구입해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리즈의 미덕은 마치 낙서하듯 부담없이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그림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이어 나왔던 책 <수채화 쉽게 하기>, <색연필화 쉽게 하기>를 따라 그림을 그리면서 나에게 엄청난 그림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서재 한켠에는 그 때 그린 그림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의 책 <스케치 아프리카>(진선 아트북 刊)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로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드로잉한 뒤 가볍게 수채화 작업을 한 그림들이 많은데,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림 오른쪽 페이지에 그림을 그릴 때 상황이나 동물의 특징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글도 매우 담백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욕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습니다.

  이제, ‘이지 드로잉 노트’ 시리즈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올 여름에 딸과 함께 제주에 한 주간 여행을 가서 ‘여행 그리기’를 하기로 했는데, 딸 녀석은 겨우 두 점을 그리고 나는 빈스케치북만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 책 <여행 그리기>가 진작에 나왔더라면, 큰 도움이 되었겠다 싶습니다. 김충원 교수는 여행 스케치의 세 가지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첫째, 실내 스케치부터 시작할 것! 둘째, 3분을 넘기지 말 것! 셋째, 미완성을 미완성으로 남길 것!(p. 5). 그리고 보니 나는 의욕만 앞섰지 첫 번째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시간을 질질 끌면서 완벽한 그림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왜 내 여행 스케치북이 텅 비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간편한 사진찍기로 대신하며 찍은 사진을 보고 드로잉을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사진은 사진대로 컴퓨터 화면에만 담겨있고, 드로잉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사진을 찍는데도 특별한 관찰이 필요하지만, 드로잉은 더 섬세한 관찰과 귀 기울임이 필요합니다. 나만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보고 그린다는 것이 여행 드로잉의 가장 큰 매력일 것입니다.

  김충원의 그림 그리기 책들이 다 그렇듯, 이 책도 책 자체가 드로잉 연습장이 됩니다. 그런데 다른 그림 그리기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설명이 참 많습니다. 두들(doodles)에 대한 설명, “How to draw?”, “What to draw?”, 보너스로 “Wellbeing Knowhow”도 유익했습니다. 세잔, 모네, 위트릴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도 흥미만점입니다. 이 책을 읽고 연필로 드로잉을 따라하면서 드로잉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졌고, 잘 그리고자 하는 욕심은 아직도 많지만 조금은 작아졌습니다. 다음 여행 때는 꼭 여행 스케치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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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좋은 질문 642
샌프란시스코 작가집단 그로토 지음, 라이언 옮김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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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35명의 예술가가 단 하루 만에 만들었답니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 작가 집단 Grotto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편집장이 어느 날 뜬금없이 ‘642가지 글로 쓸 것들’이란 책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죠. 왜 하필이면 642가지일까요? 일 년의 날 수인 365도 아니고 642라니, 나는 이 숫자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642에서 일 년 365를 빼면 77이 남는군요. 일 년 365하고도 77개의 글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642는 앞자리 수에서 뒷자리 수를 빼면(6-4=2, 4-2=2) 언제나 2가 나오는데, 편집장은 수의 규칙에 민감하고 짝수를 사랑하되 특히 2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는 왜 2라는 숫자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혹시 쌍둥이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신발을 보고 처음으로 숫자 2를 떠올렸던 어린 시절, 그는 2라는 숫자를 인생의 가장 신비하고 효율적인 숫자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말도 되지 않는 서평 글을 쓰고 있다고요? 이 책이 나에게 이런 것을 요구합니다. 이 책은 말도 되지 않는 책입니다. 그런데 말이 되네요. 책을 펼치면 긴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슨 설문지처럼 642개의 문장이나 구가 나옵니다. 그리고 아래는 밑줄 친 여백이 나옵니다. 이 책의 독자가 자신의 글로 채워 넣는 공간입니다. 그러다 보니, 독자가 이곳에 무엇인가를 적으면 이 책의 공동저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에도 언급했듯, 그냥 아무 데나 펼쳐서 읽을 수 있는 자유, 간략한 글에 답을 다는 방법도 마음대로, 아니 글을 쓰지 않고 빈 공간으로 남겨 둘 자유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냥 읽고 싶은 대로 읽고,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됩니다. 낙서장으로 사용해도 좋겠는데요.

  그런데 이 책의 이곳저곳을 펼쳐 보면서 자꾸 빈 공간에 무엇인가 쓰고 싶어집니다. 실제로 나는 이렇게 써보았습니다. “156. 저항할 수 없는 유혹” - 이 책은 내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꺼내라고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새까만 큰 눈과 붉은 립스틱을 바른 매혹적인 입을 가진 여인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 그래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장담합니다.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내 이야기에 푹 빠져 끝까지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당신이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면 마지막 결말을 먼저 읽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꾹 참고 처음부터 읽으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을 만난 것은 …

  이 책, 내 안에 있는 글쓰기의 본능과 내 안에 갇혀 있던 창조성을 마구마구 깨웁니다. 날마다 일기를 쓰듯, 이 책의 질문 하나하나에 반응해서 글을 쓰면 좋겠다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하지만 이런 책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엉뚱 발랄 참신합니다. 무척 재미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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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걸의 닥터 콘서트 - 힘 없는 환자가 아닌 똑똑한 의료 소비자 되기
홍혜걸 지음 / 조선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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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조선에서 방영하는 <홍혜걸의 닥터 콘서트>를 한두 번 본적이 있습니다. 유익한 건강상식과 의료 상식을 주는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했습니다만, 패널들과 나누는 가십성 대화가 오히려 프로그램을 느슨하게 만들고 좀 더 깊은 의료 상식을 전달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꼈습니다.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들어 시청률을 올려야 하는 TV속성상 그럴 수밖에 없겠다 이해도 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TV보다는 책을 통해 정보를 얻기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 책으로 만나는 <홍혜걸의 닥터 콘서트>는 마치 가정의학 전문의를 개인가정의사로 둔 것처럼 좋았습니다. 이 책은 쓸데없는 이야기는 제거하고 건강에 관한 핵심정보들을 담백하고 설득력 있게 제공해 줍니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일 것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목표했듯 “건강에 대한 작은 통찰”을 곳곳에 담아 놓았습니다. 특히 ‘PART1, 생활 습관 바로 잡기’와 ‘PART5, 현대의학의 새로운 화두, 부교감신경과 면역 염증’은 어떻게 건강을 챙길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닥터 홍혜걸의 부인 여에스더 박사가 제안한 다이어트를 위한 ‘음식 10계명’과 ‘운동 10계명’은 오늘날 우리를 현혹하는 상업주의 광고에 속지 않게 해 줍니다. 건강에 관한 기본적인 상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책은 잘 보여줍니다. 담배에 대한 글을 읽고 담배를 피우는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었습니다. 특히 “애연가들의 흡연을 위한 변명”(pp. 38~42)를 읽어보라고 했죠. 아들이 읽고 나서 “다 동의하는데 어디 담배 끊는 게 쉬운가요.”라고 말하다가 말꼬리를 내리면서 덧붙였습니다. “점점 줄여가고 있어요. 끊으려고요…”

  PART5에서 자율신경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명쾌한 설명이 크게 유익했습니다. 자율신경은 비상사태에 큰 힘을 발휘하는 교감신경(sympathetic nervous system)과 편안한 상태에서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비교감신경(parasympathetic nervous system)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몸은 원시인 시절의 환경에 맞게 진화되었습니다. 원시인들의 생존본능과 활력은 현대인들이 도저히 경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이나믹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런 교감신경의 동원은 부교감신경이 뒷받침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충전이 잘 된 배터리가 필요할 때 에너지를 힘있게 내보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한마디로 현대인들은 늘상 크고 작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려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건강하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게 어디 쉽습니까?” 이번에는 아들이 아니라 내가 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네요. 큭큭! 그래도 꼬리를 내리고, 이 책 마지막에 있는 ‘부교감 신경을 위한 10가지 비결’을 실천에 옮겨보려고요. 규칙적 생활, 혈당지수 낮은 건강한 음식 먹기, 칼슘과 마그네슘의 섭취, 카페인 줄이기(알코올과 니코틴은 접근 금지!), 의도적인 깊은 심호흡, 천천히 걷기, 반신욕과 스킨 터치, 깊은 잠자기, 즐거운 생활, 등.

  이 책의 PART2, 3, 4에 나오는 흔한 증세와 성인병, 암에 대한 이야기도 유익했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건강문제에 대해 찾아보면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건강에 대해 너무 똑똑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건강 상식을 많이 안다고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겠죠.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삶을 위해, 자 이제 실천하는 일만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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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잡영 - 퇴계, 도산서당에서 시를 읊다
이황 지음, 이장우.장세후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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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서가에서 주자학의 대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도산서당(陶山書堂)에서 지은 시모음집 <도산잡영>을 내놓았습니다. 하드카버의 표지부터 맘에 쏙 듭니다. 책날개 표지에 있는 고풍스런 수묵화는 도산서당을 연상시키며, 하드카버에는 붉은 매화가 여백의 미를 살려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그려져 있어 선비의 기개와 올곧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용을 펼쳐보니 한시(漢詩)를 한글로 직역해 놓았을 뿐 아니라, 친절한 풀이를 덧붙여 놓았습니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지 싶습니다. 덕분에 접하거나 읽기 어려운 대학자의 지혜와 풍류를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황의 시를 단순히 직역해 놓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워 곧 흥미를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세한 풀이는 이황의 시들을 마음껏 느끼게 해 줍니다.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예를 들어 “마음 속 정성은 세 이로운 벗 바라고(中誠望三益)”(p. 28)를 이렇게 풀어 놓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정성스레 「논어」에서 공자가 말씀하신 ‘곧은 이를 벗하고, 성실한 이를 벗하며, 견문이 많은 이를 벗하면 유익할 것이다’라 한 것에 부합하는 세 가지 이로운 벗들과 사귀기를 바라고”(p. 31). 또 “두 가지 좋아함의 오묘한 맛 어찌 알리오만(二樂安能知妙趣)”는 「논어」에서 말한 ‘어진 사람은 산을 즐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즐긴다.’는 두 가지를 좋아함의 오묘한 맛이야 어지 알 수 있겠는가마는”이라고 자세히 풀어 놓았습니다. 덕분에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가르침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렇게 읽으면 많은 공부도 되고 이황의 시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한시를 직접 소리 내어 읽으며, 그 운율을 느끼려고 해봅니다. 어려운 한자가 더러 있어도 각주에 자세히 설명해 놓아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글 직역을 읽어 봅니다. 때로는 유교에 대한 지식이 미천하여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글 직역을 읽은 후 해설을 읽으면 그 뜻이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兩心同切辨熊魚”를 직역하면 “두 마음 함께 절실하여 곰(발바닥)과 물고기 변별하였다 하네”(p. 187)인데,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번역자는 이렇게 풀이해 놓았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신 인간의 행위에서 비교적 덜 중요한 생(生)에 해당하는 물고기와, 더욱 절실한 의(義)에 해당하는 곰 발바닥을 변별하였었다고 하였다”(p. 189).

  이렇게 시 자체를 이해하고 느끼려고 하니, 한문 공부도 되고 조선시대의 대학자요 선비인 퇴계 이황의 정신과 일상의 삶, 그의 담백한 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 내가 아끼는 도서 목록에 집어넣고 자주 꺼내 읽고 싶어집니다. 간만에 한시와 유교 경전의 유명한 가르침들을 제대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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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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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앨리스 먼로(Alice Munro)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그녀가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입니다. 그 생소한 작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앨리스 먼로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출신으로 안톤 체호프와 비견될 정도로 단편소설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구성과 여성의 독특한 섬세함으로 짧은 이야기 안에 인간의 내면과 삶의 복잡한 무늬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작가입니다. 단편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은 이미 2001년 작품이고, ‘뿔’ 출판사에서는 이 단편을 책 제목으로 한 모음집을 2007년에 초판으로 찍어 냈습니다. 그런데 나는 2013년에야 앨리스 먼로의 이름을 처음 들었으니, 문학을 좋아한다는 사람치고 부끄럽네요.

  어쨌든 이 책은 작가의 소설 아홉 개를 묶은 단편모음집입니다. 이 책을 한참 읽고 있는데, 아내가 말합니다. “와, 책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드네. 세계적인 여성 작가의 책답네. 읽고 싶어지는데…” 나는 조금 잘난 체 하면서 말했습니다. “이 책 마지막에 있는 단편,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라는 영화의 원작소설이지. 나도 당신이 늙어 치매에 걸리면 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할 수 있을까?” 남자 주인공 그랜트는 치매에 걸린 부인 피오나를 요양원에 보내고 계속 아내를 찾아가 돌봅니다. 하지만 피오나는 남편도 알아보지 못하고 요양원의 다른 남자 오브리와 사랑에 빠지죠. 오브리가 떠난 뒤 깊은 우울증에 빠져 병세가 더 심각해진 아내를 위해, 그랜트는 오브리의 부인을 찾아갑니다. 오브리가 요양원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죠. 영화를 보면서 그랜트의 이 놀라운 사랑의 행위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반면, 원작을 읽으면서는 그랜트의 내면의 갈등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랜트는 대학교수로서 여러 여인들과 몸을 나누기도 했지만, 44년간 아내 피오나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은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오브리 부인이 전화로 은근한 유혹하고, 그 유혹 속에서 그랜트는 아내의 요양원을 찾아갑니다. 피오나는 거짓말처럼 남편을 알아봅니다. “그냥 가버린 줄 알았어요. 나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버려두고 간 줄 알았죠…” 그랜트는 아내의 머리에 얼굴을 기대고 마음으로 답합니다. “그런 적은 없어. 단 일분도”(p. 437). 그랜트의 마음의 대답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 단편 제목이 왜 <곰이 산을 넘어오다>일까요? ‘곰’은 오랜 세월 함께 한 부부의 사랑이고, ‘산’은 사랑의 수많은 내면적 위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앨리스 먼로의 아홉 개의 단편 소설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진가를 잘 보여줍니다. 먼로의 단편들은 언제나 있을 법한 그러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우리 삶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속고, 속이고, 미워하고, 사랑을 구하고, 사랑하고, 위로받고 … 우리는 그렇게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 책을 통해 앨리스 먼로의 작품 세계에, 아니 인생의 바다에 깊게 빠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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