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2 : 자연 명승 편 - 김학범 교수와 함께 떠나는 국내 최초 자연유산 순례기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2
김학범 지음 / 김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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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실 뒤편 게시판에는 대한민국지도가 있고 그 위에 명승지 표시가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명승지 표시는 문화재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아름아름 유명한 곳을 표시해 놓은 것이었다. 대학시절 여러 자연 명승지에 가서 그저 풍광이 멋지다 정도 느꼈을 뿐이다. 이곳이 왜 명승지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명승 분야의 연구자 김학범 교수는 명승의 기초자원조사와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온 분으로,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 기행: 역사 문화 명승 편>에 이어 <자연 명승 편>을 내 놓았다. 그가 머리글에서 이야기한 대로, “문화는 ‘보는 것’이 아니고 ‘보이는 것’이며, ‘읽는 것’이 아니고 ‘읽히는 것’”(p. 8)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대한민국의 경관을 인문학적으로 보여주고 이해하게 한 멋진 책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평생 서울에서만 살았다. 그래서 서울의 산들에 친숙해서인지 명승지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을 많이 찾아 갔었다. 설악산의 그 화려함, 지리산의 그 푸근함, 그리고 한라산 백록담의 그 독특한 풍광에 감탄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서울의 산들도 명승임을 제대로 배웠다. 삼각산은 서울의 종산(宗山)으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삼봉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삼각산이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함께 한국의 오악(五嶽)에 속하는 명산으로, 무학대사가 백운대를 지나 만경대에 올라 서울을 수도로 정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친절히 알려 준다. 또 삼각산의 지질이 쥐라기 말기에 형성된 화강암으로 산 정상에 화강암이 우뚝 솟아올라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아! 인수봉의 꼭대기의 그 바위. 이 책을 통해서야 삼각산이 명승인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어디 삼각산뿐인가! 백악산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웠다. 백악산으로부터 동쪽으로는 낙산, 서쪽으로는 인왕산, 남쪽으로는 남산(목멱산)이 백악과 마주하고 있다는 설명과 백악산이 청계천의 발원지라는 설명에 무릎을 쳤다.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무작정 다니기만 할 일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멋진 자연을 인문학적으로 읽어내는 안목을 조금 갖추게 되었다. 올 여름 휴가에 가볼만 한 곳을 이 책에서 찾고 꼼꼼히 역사적, 사회적, 지리적으로도 공부 좀 해 두는 것이 우리나라의 자연을 제대로 즐기는 법이지 싶다. 이 책 부록에 ‘지도로 보는 명승’과 1호부터 109호까지 ‘명승 목록’을 수록해 놓았다. 가볼 때가 이렇게 많다니, 행복하다. 한국의 자연을 더욱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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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맨발
한승원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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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다. 그 책에서 싯다르타는 현세와 영원, 고뇌와 행복이 실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고 해탈한 존재로 묘사된다. 반면 한승원의 <사람의 맨발>에서 싯다르타는 불교라는 종교의 신 혹은 교주가 아닌, 삶의 고통에 대해 고뇌하고 그 고통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인간이다.

 

싯다르타는 전륜성왕이 되라는 신의 뜻에 따라 태어났다고 교육받았다. 그는 스승 비슈바미트를 통해 무엇인가를 소유함으로 행복을 누리는 ‘아르타(artha)’, 육체적 사랑으로 행복을 누리는 ‘카마(kama)’, 종교 도덕적 의무를 행함으로 행복을 누리는 ‘다르마(dharma)’, 그리고 영적인 해방을 통해 행복을 누리는 ‘모크샤(moksha)’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고,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손으로 만든 세상을 꿈꾼다. 싯다르타는 결혼을 하고 부왕을 이어 농업과 경제를 활성화시켜 나라를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욱 탐욕스러워졌고, 싯다르타는 그의 장인인 재정대신 다리나에 의해 태자궁에 갇힌다. 결국 싯다르타는 인간의 탐욕과 그 탐욕을 인정하는 허위의 신을 버리고 출가를 한다. 그는 구도자, 맨발의 사람이 된다. 당시 수행자들은 다음 세상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고행을 행했다. 싯다르타는 그런 고행이 아니라, 지금 세상에서 인생의 고통을 없애는 지혜를 추구한다. 그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 스스로 깨달은 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몰려들고, 큰 교단이 형성된다. 그가 열반에 들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부디 게으름 없이 정진하여라.” 그는 철저하게 삶의 고뇌를 끌어안고 가는 절대 고독자로 살다 죽었다. 그의 제자 카샤파는 싯다르타의 맨발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통곡한다.

 

그렇다. 인생은 나그네 길의 여정이다. 싯다르타는 길 위에서 태어나, 결국 평생을 맨 발로 걸으며 올바른 인생의 길을 가르치다 길 위에서 열반했다. 작가는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인생의 고뇌에서 벗어나 결국 부처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그가 진정한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부조리하고 차별이 가득한 세상에서 올바른 인생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가르친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싯다르타는 신이 아니다. 한 평생 구도의 맨발로 고뇌하는 인간이다.

 

이 책은 현세의 행복인 아르타, 카마, 다르마, 모크샤를 위해 부처에게 절을 하고 기도를 드리는 자들에게 도전한다. 부처는 신이 아니라 고뇌하고 깨달은 자가 되기 위해 팔십 평생을 맨발로 산 구도자였다고! 그를 따르는 제자라면 맨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어디 불교뿐이겠는가? 이 땅의 모든 종교가 올바른 삶의 길을 고민하고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사원이나 성당 혹은 교회에 다닐수록 더욱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간다면, 그는 진정한 종교인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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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영원 찬송가
민호기 지음 / 죠이선교회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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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예배당에 가 따라 부르던 찬송가들은 지금도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는 주로 예배 첫 번째로 부르던 찬송가였다. 민호기 목사는 우리가 ‘복의 근원 강림하사’라고 찬송하면서도 복의 결과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복이라는 단어를 나열한다. ‘아쉐레이’, ‘토브’, ‘바락’, ‘마카리오스’까지! 그는 시편 1편을 인용하며 복있는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씀을 읊조리며 하나님을 바라는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노래의 작시자 로버트 로빈슨(Robert Robinson)은 이발소 견습생으로 방탕한 삶을 살다가 부흥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목사가 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이 찬송가는 많이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모두가 사랑하는 찬송으로 특히 할머니들의 애창곡이라고 할 수 있다. 맞다. 지금도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연세 많으신 할머니 권사님들은 노인 버전으로 느릿느릿 축 처지게 이 찬송을 부르곤 하는데, 그 찬송소리가 내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2절의 첫 줄, “주의 크신 도움 받아 이때까지 왔으니”와 3절 둘째 줄,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라고 찬송할 때, 내 삶은 하나님의 도움과 은총 속에 지금까지 왔음을 고백하고, 나의 남은 삶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흘러넘치리라고 소망하게 된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는 중학교 때 학교에서 많이 부르던 찬송이다. 미션스쿨이었던 중학교에 입학하여 첫 번째 채플에서 이 노래를 배웠다. 아직 앳된 중학생들의 찬송소리는 어린 목동들의 소리 같았다. 이 찬송을 읊조리니 중학교 채플실이 떠오른다. 그리고 양을 치는 목동 다윗의 모습이 중첩된다.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저자는 이 노래 묵상 마지막에 <탄일종이 땡땡땡>이라는 곡을 상기시켜주었다. “탄일종이 땡땡땡, 멀리 멀리 퍼진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갑자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오뉴월에 성탄절 노래를 불러 본다. “그 맑고 환한 밤중에 뭇 천사 내려와…”

 

저자가 묵상한 오래된 찬송가를 부르고 있자니, 저 옛날 예배당과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찬송가는 시간을 보존하고 있다. 찬송가가 단순한 유행가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래전 소위 가스펠 송이 교회에 들어왔다. 대학시절 많이 불렀던 그 노래들은 지금 다 어디 갔는가? 그 존재의 가벼움이라니! 하지만 찬송가는 이 책의 제목처럼 ‘오래된 영원 찬송가’임이 분명하다. 이 책에 소개된 열편의 찬송가와 묵상 해설, 곳곳에 배치된 사진들을 들여다본다. 각 찬송가 시작 페이지에 QR 코드를 스캔해서 저자가 부르는 찬송가를 들어본다.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어느덧 내 마음에 계신 듯하다. 저자가 편곡한 반주 악보를 음악 하는 아들에게 건네주어야겠다. 내가 부모에게 이어받은 찬송가가 내 삶 전체에 울려 퍼질 뿐 아니라 아들의 손으로 연주되고 불리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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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3
루치아 임펠루소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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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북스의 ‘세계미술관 기행’ 시리즈는 유명한 미술 작품들의 소개와 해설을 넘어 세계의 주요 미술관의 역사와 소장 작품들, 그리고 작품 해설까지 일석삼조의 유익을 주는 기획물이다.

 

마르코 카르미나티가 쓴 서문에는 조르조네의 작품 <폭풍>이 오늘날까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컬렉션으로 남게 된 역사를 간략히 소개해주고 있다. 이 작품 하나만의 소장으로도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세계적인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화가 및 작품 색인 페이지를 펼쳐 조르조네의 작품들을 확인해 본다. 두 개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폭풍>과 <늙은 여자>. <폭풍>이라는 작품이 ‘명화’인 이유를 이 책은 아주 쉽고 멋지게 설명해 준다. 화면 가득한 경이로운 대기의 분위기, 기하학적 원근법에서 벗어나 공간의 느낌을 살린 자유로운 표현 방식, 원죄로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운명을 모티브로 한 설정 등을 작품의 부분 확대와 자세한 설명으로 해설해 놓았다(pp. 64~66). 조르조네의 <늙은 여자>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 본다. 부분 확대한 그림에서 이 여인이 젊은 시절 참 아름다웠을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두루마리에 “시간과 함께”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지상의 아름다움도 사라진다! 이 작품은 오랜 세월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던 조르조네의 경험과 재능이 잘 발휘된 걸작임이 분명하다(pp. 70~71).

 

직접 가서 보고 싶다. 그곳에서 저 유명한 화가들, 티치아노, 틴토레토, 조반니 벨리니, 피에트로 롱기의 작품들뿐 아니라, 한 작품씩만 소개된 로렌초 로토의 <서재에 있는 젊은 신사의 초상>, 도메니코 페티의 <명상>,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멘디칸티 운하와 성 마르코 스쿠올라>을 보고 싶다. 아무리 책이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보는 것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지금 미술관을 거닐고 있는 듯하다. 책 맨 뒤에는 미술관 주소, 개관시간과 휴관일, 교통편, 가이드 투어까지 친절하게 알려 주고, 미술관 평면도에 각 전시실을 소개하고 있다. 멋진 시리즈 기획물이다. ‘세계미술관기행’ 시리즈를 한 권 한 권 구입해 감상하다보면 서양 미술에 일가견이 생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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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야기 - 무신론자를 위한
조반니 파피니 지음, 음경훈 옮김, 윤종국 감수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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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일대기는 저자에 따라 전혀 다른 예수를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예수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해석되는 인물이 또 있을까?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인가? 정치적 해방자인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가? 아니면 진짜 신(神) 혹은 희대의 종교 사기꾼?

 

지금 한국사회에서 기독교회는 타락했다고 비난을 받고 있으며 예수에 관한 악의에 찬 조롱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세기 전 전기 작가인 조반니 파피니가 쓴 <예수 이야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파피니는 인문학적 시각에서 균형 잡힌 예수의 일대기를 썼다. 한 때 무신론자였던 그가 자신을 변화시킨 예수의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사람 행세를 하는 신의 일대기를 쓰려고 한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가 부담이 되었지만, 이 책이 나에게는 어떤 울림을 줄지 기대하며 읽어보았다. 생각보다 술술 읽을 수 있었고, 파피니의 문학적 재능을 맛볼 수 있었다. 전기 작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성서의 복음서를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 책은 마태와 누가복음서처럼 예수의 탄생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곳곳에 의미 있는 해석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된다. “훗날 사람이라 불리는 짐승들에게 잡아먹혀야 할 운명인 예수의 첫 요람은 짐승들이 신비스러운 봄꽃들을 되새김하는 구유였다.”(p. 19). 마구간의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짐승보다 야비한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을 예수의 운명과 오버랩(overlap)시킨 것이다. 참신한 해석이다. 그는 성서의 복음서만으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역사 정치적 배경들도 흥미롭게 다루었다. 잔인한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와 유다의 폭군 헤로데에 관한 이야기는 이 땅의 진정한 왕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한다. 파피니는 예수라는 존재를 무조건 신격화시키지 않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예수와 관련된 인물들과 그들의 심리를 독창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예수에 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파피니는 성서 이외의 다른 문헌들을 통해 빌라도의 아내 이름이 ‘클라우디아 프로쿨라’고, 예수 십자가 옆에 달린 선한 도둑의 이름이 ‘디스마스’임도 알려준다.

 

파피니는 <예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신(神)으로 받아들였음을 분명히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의 부활과 구름타고 오실 메시아를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마지막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예수가 한 약속은 어떤 것도 소멸하지 않는다. 매일 우리는 예수를 감싸고 하늘로 올랐던 그 날의 구름 조각들을 보고 있다. 그리고 예수가 영광을 위해 다시 올 날을 기다리며 … 그 때와 똑같은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p. 575). 예수, 그는 여전히 인류의 소망이다. 신이 인간으로 오셨기에, 인간은 신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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